제 39화
제39편 7군단, 출정하다
“모두 준비되었나.”
“충!”
7군단 진영에 마련된 높은 상단.
그곳에 오른 실이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의 수하들을 둘러보며 묻자 7군단에 소속된 1,000명의 모든 병사가 힘차게 대답했다.
두 눈에 보이는 긴장감, 그리고 분노.
자신들의 황태자이자 목숨의 은인인 요한이 야만인 설인족에게 잡혀갔다는 것에 큰 분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병사들만이 아니었다.
상단 뒤에 있는 할버드, 칼론, 위즐리, 파울로, 그리고 상단 위에 있는 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병사를 한번 둘러본 실은 조용히 상단에서 내려와 말에 올랐고 그 뒤를 따라 상단 뒤에 있던 존재들이 말에 올랐다.
“괜찮겠나?”
“모두 죽여 버릴 것입니다.”
가장 어린 위즐리.
그런 위즐리를 보며 실이 묻자 위즐리는 청량한 분위기와 달리 싸늘한 살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그런 위즐리의 모습에 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칼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북부에 온 5년간, 처음으로 7군단 전 병력이 움직였다.
주적인 설인들의 영역으로 말이다.
“멈추게!”
잠시 후.
진영을 막 벗어난 7군단은 반갑지 않은 불청객에 의해 진군을 멈추었다.
수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7군단의 앞길을 막아선 겨울의 군주 카자르가 길을 막아선 것이었다.
그런 카자르를 보며 실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말린 건가?”
“당연하지.”
실의 물음에 카자르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고 실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삐익!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플라마의 울음소리.
그런 실의 모습에 카자르의 옆에 있던 왕제, 하이아칸 기사단장 아인트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실! 진정하게!”
“너 같으면 진정하겠나?”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실이 싸늘한 목소리로 묻자 아인트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상대는 설인족들이네, 거기에다가 그쪽 영역에 괴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아인트의 말에도 실은 차가운 표정을 고수했다.
그러고는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았다.
스르릉.
맑은 소리를 내며 뽑힌 실의 검.
카자르와 아인트는 북부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검을 꺼내 든 실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늘 전쟁터에서 정령력으로 만든 불꽃의 검으로 전투를 하던 실이었다.
한데 그런 그가 검을 꺼내 들다니?
화르륵!
그와 동시에 실의 검에 타오를 듯한 불꽃이 생겨났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이 위협적으로 타오르는 실의 불꽃.
실은 그런 검을 세워 카자르를 가리켰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비켜.”
“…….”
싸늘한 실의 한마디.
카자르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아인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형이자 주군인 카자르를 바라보았다.
“비켜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아인트의 조언.
평소 같았으면 아인트의 조언을 바로 받아들였을 카자르였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의 손에 쥐어진 애검 프로하트.
그것을 강하게 쥔 것이다.
“형님!”
그런 카자르의 모습에 아인트가 화들짝 놀라며 카자르를 만류했다.
이곳에서 제국의 공작이자 동맹군인 7군단장 실과 싸운다면?
왕국에 있어서 크나큰 타격을 받게 된다.
“…….”
아인트의 놀란 음성에 그제야 손에 쥐어진 힘을 푼 카자르.
그는 고개를 들어 실의 붉은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5년 전, 황태자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닌, 자신이 기사들과 병사들을 지키겠다고 하였다.”
“…….”
“한데 지금 이 모습은 무엇인가?”
싸늘한 카자르의 물음에 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5년 전 자신의 조카 요한은 그리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허를 찌르는 카자르의 물음에 실이 아무 말도 못하는 그때.
“형아는 저를 살려주었습니다!”
생각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변성기가 채 끝나지 않아 조금은 가는 소년, 아니 위즐리의 목소리.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는, 어린 미소년 위즐리가 말에서 내려와 카자르의 앞에 당당하게 섰다.
“형아는 저를 살려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카자르를 올려다보며 다시 한 번 더 말했다.
굳건한 목소리로 말이다.
카자르는 그런 위즐리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건방지구나.”
“저도 세 번 정도 도움 받았수다.”
그때,
말에서 내린 할버드가 위즐리의 옆에서며 말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저도입니다.”
“나돕니다.”
할버드를 선두로 모든 병사가 너나 할 것 없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카자르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설인들에게는 흑발의 사신이라 불리며 전쟁터를 누빈 요한.
그에게 은혜를 받지 않은 병사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감히,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낼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일국의 왕인 카자르에게 당당하게 반항하는 행동을 말이다.
그런 병사들의 모습에 카자르는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고 위즐리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런 카자르를 바라보았다.
“비키십시오.”
“재미있군.”
자신의 머리 위에 보이는 수십 개의 작은 바늘.
언제라도 비처럼 내려 자신의 온몸을 찌를듯한 바늘의 모습에 카자르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무기와 기술에 흥미로웠던 것이다.
히이잉!
그 순간.
카자르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강한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말갈기와 말굽이 모두 불에 휩싸인 새하얀 색의 백마.
갑작스럽게 나타난 백마가 위즐리의 앞에 서더니 가만히 서 있었고 뒤이어 한 청년이 그 백마에 올라탔다.
붉은 머리 붉은 눈이 인상적인 기사.
바로 요한의 호위기사 칼론이었던 것이다.
“비키십시오.”
따각.
“비켜라.”
칼론의 말과 동시에 다시 앞으로 말을 몬 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의 모습에 카자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제국의 최정예라는 7군단이 한 존재를 구하기 위해 모두 자진으로 전쟁터에 나선다.
죽을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형님…….”
카자르는 옆에서 들려오는 동생, 아인트의 목소리에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같이 간다.”
그 한마디에 7군단과 하이아칸의 최정예 병사들이 출진을 했다.
모든 수뇌부가 총집합한 채 설인족의 영역으로 말이다.
“멈춰라.”
그렇게 5시간여를 진군한 병사들은 가장 선두에서 말을 몰던 실이 말을 멈추고 손을 들어 올리자 거짓말처럼 한 번에 진군을 멈추었다.
“반갑습니다.”
병사들의 앞길을 막은 은색의 머리와 은색의 눈을 지닌 200명의 인간.
그중 가장 선두에 있는 한 사내,
은색의 긴 장발을 묶은 잘생긴 사내가 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자 실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런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설인이 마중을 나올 줄이야.”
웅성웅성!
사내, 아니 눈비의 일족, 워레인의 인사에 실이 싸늘하게 말하자 뒤에 있던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수인화가 아닌 일반 인간들과 같은 설인들의 본모습은 처음 보는 병사들이 많았기에 동요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때까지 설인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던 병사들이었기에 지금 보이는 설인들의 모습은 상당히 놀라웠었다.
“요한님을 찾으러 오신 것 아니십니까?”
“요한님……?”
워레인의 입에서 생각지 못한 극존칭이 나오자 실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런 실의 물음에 워레인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님의 명령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믿지?”
그런 워레인의 말에 가만히 있던 카자르가 앞으로 나섰다.
카자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얘기를 거부하고 무턱대고 전쟁을 하던 설인들이다.
대화를 위해 보냈던 사신들을 죽여 보내던 말이 통하지 않는 야만족들이다.
한데 그런 그들이 갑작스럽게 친근하게 나오며 안내하겠단다.
어느 누가 옳다구나 하고 따라가겠는가?
털썩.
그런 카자르의 모습에 워레인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활을 풀고는 바닥에 던졌다.
털썩. 챙그랑.
워레인을 시작으로 그 뒤에 있던 모든 설인들이 활과 품속에 있는 단도를 바닥에 던졌다.
그러기를 잠시.
모든 무기를 버린 워레인과 설인들은 고개를 들어 실을 바라보았다.
그런 설인들의 모습에 실은 가장 앞에 서 있는 워레인을 바라보았다.
퍼억!
“크윽…….”
그리고 바람 같은 속도로 워레인의 앞으로 달려가 워레인의 얼굴을 그대로 후려쳐 버렸다.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주먹질에 워레인은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허용했고 이내 옆으로 쓰러졌다.
실은 그런 워레인을 조용히 내려보고는 입을 열었다.
“안내해.”
“…….”
차가운 실의 목소리.
워레인은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분노에 몸을 떨었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약간은 차가운 눈빛으로 실을 바라보았다.
“따라오시…….”
퍼억.
워레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실은 다시 워레인의 얼굴을 후려쳤다.
“…….”
그에 다시 옆으로 쓰러진 워레인.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실을 올려다보았다.
갑작스럽게 이렇게 때리는 야만적인 행동을 하다니?
퍼억.
“족장님!”
“그만!”
하지만 실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워레인의 얼굴을 걷어차 버린 것이다.
그런 워레인의 모습에 욱한 설인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지만 급히 손을 내민 워레인이 그들을 말렸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실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것입니까?”
조용히 두 눈을 내리깐 채 묻는 워레인.
완벽히 패배를 시인한다는 뜻이었다.
그런 워레인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은 실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눈빛이 마음에 안 들잖아.”
움찔.
차가운 실의 목소리에 워레인은 자기도 모르게 움찔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실의 말과 동시에 느껴지는 매서운 기세에 자기도 모르게 겁을 먹었던 것이다.
“안내해.”
그런 워레인을 보며 실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고 워레인은 고개를 숙인 다음 앞장서서 그들을 안내했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위즐리가 불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칼론이 그런 위즐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주변을 둘러봐.”
칼론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위즐리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이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인족을 원수처럼 여기며 증오하던 7군단.
그들이 조금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설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수와 같은 그 설인들을 말이다.
“알겠어?”
앞으로 나서서 설인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나쁜 사람이 되어가면서 설인들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한 번에 없애버린 실.
아마 상대방 또한 알고 일부러 당했을 것이다.
그것을 콕 집어 가르쳐준 칼론의 말에 위즐리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마음에 안 드는 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후.
눈비 일족과 병사들은 설인들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맛있군!”
그리고 실은 볼 수 있었다.
넓은 광장에서 설인들에게 술잔을 받으며 술을 마시고 있는 자신의 조카 새X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