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화
제38편 족쇄가 풀린 수호수
이것은 지배자에 대한 도전이고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가 밀린다면?
설인족들은 나보다 케르파를 더 위의 존재로 인식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기세를 끌어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는 이 건방진 설인족들을 보라.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는 나보다 케르파라는 괴수가 더 위의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거 참, 기분이 상당히 뭐 같았다.
“일어나라.”
부들부들.
나의 명령.
이 공간의 지배자인 나의 명령에 위천은 나의 힘으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는 위천을 바라보았다.
위천은 오러 나이트 상급의 강자.
나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위엄이라는 스탯이 있다.
2년 전,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오른 칼론과 대련을 하며 나는 알 수 있었다.
나의 경지가 일반인들의 경지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오러 나이트 하급의 증표인 오러 토네이도가 이제 막 가능했을 뿐 나의 마나와 실력은 오러 나이트 상급의 끝자락이다.
바로 위엄이라는 스탯 때문이었다.
마나와 위엄. 둘은 똑같았고 그에 상응하여 더욱더 강한 힘을 만들었기에 현재의 나는 위천보다 강하다.
아니, 북부에서 나보다 강한 존재는 두 명뿐일 것이다.
실과 카자르.
아 세 명일 듯하다.
<그만하시게.>
멀리서부터 느껴졌던 엄청난 기세.
그 기세의 주인, 케르파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자 나는 직감했던 것이다.
저 녀석에게 나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나타났군.”
하지만 나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나는 북해신의 선택을 받은 자이니 설인족들은 나에게 해를 입힐 수 없었다.
나에게 해를 입힌다는 것은 곧 그들이 이때까지 믿어오고 삶의 지주였던 북해신을 저버리는 일이니 말이다.
위천에게 보내던 마나를 끊은 나는 거만한 자세와 말투로 나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존재를 바라보았다.
푸른색의 거대한 늑대.
설인족의 수호신, 케르파였다.
웬만한 건물보다 더 큰 케르파를 올려다보며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마음 같아선 저 녀석을 무릎 꿇리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이 공간의 지배자인 나.
그런 나의 지배를 벗어난 유일한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위천.”
“네.”
나의 부름에 위천은 빠릿빠릿하게 대답했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짓고는 이제는 비어버린 술동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더 가져와.”
“예.”
이번에는 위천이 나의 명령에 군말 없이 대답하고는 움직였다.
그런 위천의 모습에 나는 마나를 거두어 들었고 케르파 또한 편한 자세를 취했다.
“겁나 크군.”
우웅!
나의 한마디에 케르파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이내 어린 소년이 케르파의 자리에 서 있었다.
약간 위즐리를 닮은 듯한 미소년, 바로 마법으로 인간의 몸을 빌린 케르파였던 것이다.
“이제 괜찮은가?”
“어리군.”
자신의 몸을 보여주며 묻는 케르파의 모습에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고 케르파는 나의 말을 무시하고는 나의 맞은편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오랜만입니다.”
“응?”
-많이 컸네.-
갑작스럽게 아는 척을 하는 케르파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파닥거리던 크산느가 대답하자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어둠의 고대 정령 크산느. 그와 북부의 수호신 케르파가 아는 사이였던 것이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당신을 만난 것은 900년 전, 제가 아직 아이였을 때니까요.”
-시간 빠르군.-
오우.
나이도 많으셔라.
은은하게 미소를 지으며 케르파가 말하자 크산느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파닥거리며 날아와 나의 머리 위에 앉았다.
-설인족을 이 녀석에게 맡겨. 지켜줄 것이야.-
“아…….”
이 자식 감동인데?
크산느의 말에 케르파는 감탄한 표정을 지었고 나 또한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나를 믿는다는 듯 말하다니…….
크산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를 믿고 있나 보다.
물론 설인족은 내가 지킬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여기 있습니다.”
그때, 위천이 두 개의 술동이를 가져와 나의 앞에 한 개, 케르파의 앞에 한 개를 놓아둔 다음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그러자 다시 생겨난 마나 막.
나도 몰랐는데 케르파가 어느새 마나를 끌어올려 우리의 소리가 나가지 않도록 차단하고 있었나 보다.
케르파 이 녀석…….
아무래도 실보다 강한 듯하다.
그의 강함이 나의 눈에 도저히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내 앞에 도착한 술동이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케르파 또한 술동이의 뚜껑을 열었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미소년, 케르파를 바라보았다.
“걱정 말고 맡겨. 나는 내 것을 소중하게 여기거든.”
“크산느 님을 믿으니, 계약자인 너도 믿는다. 부탁한다.”
예상외로 바로 부탁을 하는 케르파의 모습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은 다음 술동이를 들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 케르파 또한 미소를 짓고는 나의 술동이에 자신의 술동이를 가져다 대었다.
땡!
거대한 술동이답게 묵직한 소리를 낸 술동이들.
꿀꺽꿀꺽 꿀꺽.
그렇게 나와 케르파는 나의 키만 한 술동이를 한 번에 들이켰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이다.
그런 우리 둘의 모습에 설인들이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미소를 지은 채 케르파를 바라보았다.
“좋은 술친구가 되겠군.”
나와 마음이 맞는 아니, 주량이 맞는 술친구.
찾기 힘든 그것을 케르파가 가능할 것이라 감이 온 내가 웃으며 말하자 케르파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군.”
“응?”
갑작스레 사과하는 케르파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케르파는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정중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이곳을 막아놓은 마나 막을 해제하였다.
“위대하신 북해신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우웅!
그와 함께 북부의 산맥이 진동하기 시작했고 설인족들은 당황하면서도 나와 케르파를 바라보았다.
“뭐 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케르파의 행동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케르파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대가 이곳의 주인이니 그에 대한 예를 취한 것뿐이다. 잘 부탁한다.”
“어이!”
케르파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발끝부터 점점 옅어지는 케르파.
불어오는 바람에 먼지처럼 사라져 가는 케르파의 모습에 내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설인족들 또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북해신의 대리자인 요한님을 따르도록!>
“알겠습니다!”
마지막 마나가 실린 케르파의 명령에 모든 설인이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고 나는 멍한 표정으로 사라져 가는 케르파를 바라보았다.
<고맙네.>
한결 개운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감사인사를 전한 케르파.
그렇게 그는 사라졌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먼지처럼 말이다.
“…….”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 상황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고 설인족들 또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편하게 갔군. 그동안 어깨가 많이 무거웠을 거야.-
아련한 표정으로 케르파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크산느.
그가 나에게 말하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의 개운한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였으니 다행이었다.
띠링!
잠시 후,
나는 몸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기운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수많은 설인족들.
오늘부터 내가 관리해야 할 아이들이었다.
“죄인을 데리고 나오도록.”
그렇게 케르파의 여운을 떨친 나는 조금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고 이내 위천이 빠른 속도로 알룬을 끌고 앞으로 나왔다.
퍼억.
“크윽.”
그리고 나의 앞에 무릎을 꿇렸다.
“죄인에게 피해를 받은 사례는?”
“제물로 바친 소녀가 30년간 15명이며, 북해신의 정화 의식이라 하여 혼인을 하는 전날, 여인과 함께 잠을 이루었습니다.”
“뭐……?”
씨X. 정말 욕 나온다.
2년에 한 번씩 한 명의 어린 소녀를 죽인 것도 모자라 정화 의식이라는 개XX로 혼인을 하는, 축하받는 여인의 순결을 앗아갔다고?
말을 하면서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위천 또한 분노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워레인 또한 분노한 얼굴로 알룬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멍청한 놈들. 그것에 속았다는 말이냐?”
그런 설인족들의 모습에 내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설인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자신들의 행동은 한심했으니 할 말 없을 것이다.
“크크크.”
내가 설인족들의 멍청함에 화를 내고 있을 때, 가만히 있던 알룬이 돌연 웃음소리를 흘렸고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런 알룬을 내려다보았다.
퍼억.
그러고는 짜증 나는 면상을 한 대 걷어차 버렸다.
“크악!”
괴상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엎어지는 알룬의 모습에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알룬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덥석.
그러고는 그 녀석의 머리채를 잡아 들어 올렸다.
“아주 멍청한 놈들이었지. 크크.”
실성한 듯 웃으며 설인족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알룬.
그런 알룬의 모습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늙은 나이답지 않게 손톱이 아주 튼튼하군.”
“크크. 손톱이라도 뽑으면서 고문을 할 것이냐?”
나의 물음에 알룬은 소리 내 웃으며 말했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짓고는 알룬의 머리채를 놓았다.
그런 나의 모습에 알룬은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었고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마나를 천천히 끌어 올렸다.
끌어올린 모든 마나를 알룬에게 집중시키자 알룬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이마를 바닥에 박았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어라.”
“…….”
자신의 의지와 달리 나의 명령에 들린 고개.
알룬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입술을 움직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 공간의 지배자, 내가 허락한 적 없으니 말이다.
“나는 너에게 살아가라 한 적이 없다.”
“커윽!”
나의 한마디에 피를 토하는 알룬.
그의 모습에 깜짝 놀란 나는 황급히 마저 입을 열었다.
“나는 너에게 편하게 죽으라고 한 적도 없다.”
저 녀석이 편하게 죽으면 안 되니 말이다.
“끄아아…….”
그렇게 온몸이 비틀리며 괴로워하는 알룬.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런 알룬을 내려다보았다.
온몸의 비틀림을 시작으로 눈, 코, 입, 등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렸으며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정말 보기 끔찍할 정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든 설인족들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그런 알룬의 모습을 바라보았고 나 또한 팔짱을 낀 채 계속해서 내려다보았다.
순수하고 착한 소녀를 죽게 하고, 여인들에게 더러운 짓을 한 알룬의 고통스러운 최후를 보기 위해 말이다.
추욱.
잠시 후.
알룬은 목숨을 다하였는지 그대로 몸을 늘어뜨렸고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설인족들을 바라보았다.
“그간 고생했다.”
짧은 나의 한마디.
그 한마디에 몇몇 설인은 눈물을 흘렸다.
바로 죽은 소녀들의 부모였던 것이다.
그런 설인들을 안쓰럽게 본 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위천을 바라보았다.
“이 쓰레기는 아무 데나 집어 던져 짐승의 밥이 되도록 하고 축제를 준비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나의 명령에 위천은 고개를 숙였고 나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
쓰레기 같은 알룬의 시체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고생했다.-
그런 나에게 한마디를 건넨 크산느.
나는 그런 크산느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내가 회귀하고 나서 무언가를 이루게 된 것이다.
전생에서 없었던 큰 업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