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화
제33편 5년 후, 그리고 성장(2)
실 또한 그런 위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첫 전투에서 죽을 뻔한 할버드를 처음 보는 괴상한 의술로 살려준 것이 위즐리였으니 큰 은혜를 지게 된 것이었다.
“아주 개판이군.”
그렇기에 실은 위즐리를 팰 수가 없었고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모두 도착했군요.”
7군단의 수뇌부 회의.
주위를 둘러본 파울로의 한마디와 동시에 시작되었다.
“요즘, 설인들의 공격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장기간의 전쟁, 우리보다 설인들에게 더 불리할 테니 말이다.”
이번 회의의 안건, 짧아지는 설인들의 공격주기.
파울로의 말에 실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그에 동의하는 듯 모든 인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설인들과 대화를 시도한 적은?”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내가 손을 들며 묻자 실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의 말대로다.
처음에 그들에게 대화를 요청하기 위해 사신을 보냈지만 보내는 족족 모두 죽여버렸다.
그에 열 받은 실은 그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고, 몬스터 취급을 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모든 병사가 군말 없이 따랐다.
“그들은 겨울 일족과 같은 북부의 원주민입니다. 그들이 분노한 이유는 겨울 일족이 잘 알지 않습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칼론.
이때까지 내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생각해낸 칼론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자 실과 파울로, 그리고 할버드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칼론을 바라보았다.
“왜……?”
그들의 시선에 칼론이 뒷머리를 긁적거리자 실은 진지한 표정으로 칼론을 바라보았다.
“설인족이 북부의 원주민이라는 이야기. 누구한테 들었느냐?”
“예 그야 주군한테…….”
칼론의 대답에 셋의 시선이 나에게 돌려졌다.
칼론 저 멍청한 자식.
그것을 이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면 어쩐단 말인가?
내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칼론을 노려보자 칼론은 당황해하며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넌 나중에 죽었어.
천막에 있던 모두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진짜 부담스럽네.
그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몇 년 전, 크산느에게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원래 겨울 일족 또한 설인족의 한 부족이었다고.”
사실 개 뻥이다.
전생에서 10년 후, 카자르가 설인족을 굴복시킨다.
그 과정에서 겨울 일족이 원래 설인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카자르가 코르에게 분노해 왕비의 자리에서 쫓아내 버린다.
자신을 속이고 이용했다는 것에 분노한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은 진심으로 사랑했고 일 년 후 화해하고 다시 행복하게 살아간다.
아무튼 그 사건 때문에 엘로나가 힘들어했고 그때, 엘로나를 위로하다 보니 그 둘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카자르가 설인족을 어떻게 굴복시켰는지도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러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으니, 5년 전부터 보이지 않는 크산느의 이름을 팔았고 실과 파울로, 할버드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크산느가 사라지기 전에 말이냐?”
“네.”
플라마에게 이미 크산느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실.
그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실은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회의는 끝! 국왕을 만나러 간다.”
“잠깐.”
금방이라도 카자르에게 달려갈 듯한 실의 모습에 내가 실을 말렸고 실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가서 그대로 얘기하면…… 카자르 국왕은 분명 큰 상처를 받으실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할 테니 말입니다.”
“그럼 이대로 병사들을 죽이자는 이야기냐?”
나의 말에 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게 다 생각이 있으니, 저에게 10일 정도 자유의 시간을 주십시오.”
“뭐?”
“제가 다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무슨 생각인지 말하도록.”
나의 말에 실이 다시 자리에 앉고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고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임무를 완료하고 나서 말씀드리면 안 됩니까? 크산느가 알려준 이야기가 있어서…….”
“기각.”
“군단장님!”
칼같이 거절하는 실의 모습에 내가 당황하며 그를 불렀지만 실은 단호했다.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곧, 황성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몸을 사리도록 하거라.”
“하지만. 저만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안된다 했다.”
“삼촌!”
“요한!!”
콰앙!
나의 소리침에 실은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우…….”
갑작스러운 실의 박력에 나는 당황하며 조용히 똑바로 앉았다.
이럴 때 나대다가 꼭 맞으니 말이다.
아무튼 내가 자세를 바로 하자 실은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너는 제국의 미래다. 혼자서 보낼 수는 없다. 아니면 나와 함께 움직이지.”
“군단장님…….”
“생각을 정리하고 나에게 보고하도록.”
실의 대답에 나는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고는 실을 바라보았다.
“아니 우리 사이에 뭔 갑자기 걱정을 하고 그럽니까?”
“뭐 인마?”
“아니 맞잖아요.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애틋한 사이…….”
빡!
“아씨…….”
결국 나는 실에게 한 대 맞았다.
* * *
“와…… 어떡하지…….”
“형아. 혼자 가는 건 내가 생각해도 아니야.”
나에게 주어진 천막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털썩 앉으며 인상을 찌푸렸고, 그런 나를 바라보며 위즐리가 입을 열었다.
나를 걱정해서 만류하는 것을 알기에 나는 위즐리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쭈우욱.
그러고는 위즐리의 볼을 잡아당겼다.
“아아! 아파!”
위즐리는 괴로운 듯 신음을 내며 촐싹거렸고 나는 피식 웃으며 그런 위즐리의 볼을 놓아주었다.
탁.
찰진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위즐리의 볼살.
역시 아직 어린 녀석이다.
“형. 그새 마나가 늘었네.”
“그새 맥을 쟀냐?”
자신의 볼을 문지르면서 위즐리가 말하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매일 아침, 어떤 자세에서도 내가 모르게 맥박을 짚는 위즐리다.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했다. 질리지도 않는단 말인가?
“칭찬 고마워. 헤헤.”
질린다는 듯 말하는 내 말이 칭찬으로 들렸는지 위즐리는 그저 좋다는 듯 헤헤 미소를 지었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미소를 지었다.
“주군. 군단장님과 위즐리의 말이 맞습니다. 독단행동은 좋지 않습니다.”
“내가 약한 것 같아?”
“형 존X 세지~”
칼론의 말에 내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되묻자, 대답은 옆에 있는 위즐리에게서 나왔다.
위즐리의 대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칼론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위즐리를 바라보았다.
“그런 말투는 어디서 배운 것이냐.”
“엉……? 할버드 아저씨한테…….”
“쓰지 마.”
“알았어.”
저 녀석,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난 또, 내가 세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줄 알고 칼론을 때릴뻔했지 뭔가?
아이참. 나도 성질 많이 급해진 것 같다.
아무튼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형아. 자려고?”
“피곤하다.”
그런 나의 모습에 위즐리가 물었고 나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위즐리와 칼론은 내 천막을 나섰고 드디어 혼자 남게 된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스킬창.”
디위니타스 (dīvínĭtas) 검술 (SSS)
건국황제 에펜하르트가 만든 검술.
광오하다, 오만하다. 검술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제의 위엄에 그 누구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황제의 허락이 없으면 숨도 쉴 수 없다.
공간장악 검술이다.
성취도 5/12
디위니타스 (dīvínĭtas) 심법 (SSS)
건국황제 에펜하르트가 만든 심법.
디위니타스 검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심법이다.
자연의 친구 마나?
개 소리다. 마나를 제압. 마나를 굴복시키는 패도적인 심법이다.
성취도 5/12
냉(ice) 속성 내성(S)
그 어떤 추위, 얼음 마법에도 내성이 쌓인다.
성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내성이 강해져 나중에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얼음 마법을 무력화시킨다.
성취도 12/12
나의 눈앞에 보이는 화려한 스킬 창.
디위니타스 검술과 심법은 어느덧 5의 성취도를 달성했고, 냉 속성 저항은 마스터해버렸다.
지금 내 모습을 보았다면 크산느는 분명 칭찬을 해주었겠지?
문득 크산느가 그리워진 나는 피식 웃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크산느 비만 도마뱀 자식.”
-뭐 이 자식아?-
벌떡.
아무렇지 않게 혼잣말을 내뱉었던 나는, 내 귀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파닥. 파닥.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날갯소리.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검은색 작은 몸뚱어리에 붉은색 눈을 지닌 드래곤,
어둠의 정령이자 제국의 수호룡, 그리고 나의 친구인 크산느가.
5년 만에 보는 크산느의 모습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존X 늦게 오네?”
-존X 미안하다.-
나의 욕설 어린 인사에 크산느 또한 역시나, 욕으로 받아쳤다.
나는 그런 크산느를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이 녀석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그런 나와 같은 마음일까?
크산느 또한 나를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많이 컸네.”
미소를 짓는 나를 향해 크산느가 파닥거리며 기특하다는 듯 말했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시간이 5년이나 흘렀는데.”
-오러 나이트라…… 대단해.-
“응?”
갑작스러운 크산느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오러 나이트라니?
내가?
나는 아직 소드 익스퍼트 상급인데 말이다.
아무튼 그런 나의 행동에 크산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역시 아직 모르고 있었구나. 너 오러 나이트야. 하지만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군.-
“뭔 소리야?”
크산느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크산느는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5년 전처럼 나의 머리 위로 날아와 나의 머리에 앉았다.
-너. 자신감을 가져. 15살의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면 대단하지? 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이거 엄청 멍청한 새X 아니야?-
“뭐……?”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네 한계를 네가 만들어서 가두어 놓고 있는 거라고 멍청한 놈아.-
“…….”
생각지도 못한 크산느의 발언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내 한계를 만들어서 벗어나지 못하게 가두어 놓고 있었다고?
이 나이에 이 정도 경지에 안주해서?
전생에서 경지를 올리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고, 매일같이 안주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내가?
크산느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된 나는 나의 검을 꺼내 들고는 연무장으로 나섰다.
휘이잉!
사나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연무장.
내가 연무장에 도착하자 7군단의 병사들은 눈치껏 자리를 벌려 주었고, 나는 조용히 검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