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화
제32편 5년 후, 그리고 성장(1)
“!!!”
생각지 못한 실의 제안.
그에 칼론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실을 바라보았다.
방금 한 말이 진실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너는 고대 불의 정령 씨앗을 지니고 있다. 나의 뒤를 이어라.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강하게 해주겠다.”
실은 진심이었다.
굳건한 두 눈빛.
거짓 한 점 없는 실의 두 눈빛이 칼론을 보며 말했다.
나의 제자가 되어달라고.
실의 말에 가만히 고민을 하던 칼론이 실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실 공작님의 제자가 되어 강해져도 괜찮습니까?”
“네 마음대로 해.”
칼론의 물음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칼론은 그 자리에서 나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기필코 강해져서, 주군을 지키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나는 진심을 담아서 칼론에게 말했지만 칼론은 들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진지한 두 눈이 무리를 해서라도 어서 강해지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예?”
그때, 가만히 우리 둘을 지켜보던 실이 나를 불렀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실을 바라보았다.
“너는 오늘부터 매일 나와 함께 대련한다.”
“싫어요.”
“아니면 일방적으로 맞든가.”
애초에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던 건가…….
씨익 웃는 실을 보며 나는 직감했다.
이번 5년은 X될 거 같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기대가 되었다.
내가 얼마나 강하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 * *
휘이잉!
쿠와아앙!
눈보라가 몰아치는 깊은 산 속.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며 온몸에 새하얀 털을 뒤집어쓴 설인들이 인간 병사들을 덮치고 있었다.
“물러서지 마라!”
가장 선두에서 검을 휘두르며 소리치는 인간 기사와 그 뒤를 따르며 창을 찌르고 검을 휘두르며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병사들이 보였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깊은 산 속에서 보기 힘든 대규모의 전투.
“쿠라라!”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그들이 휘두르는 주먹에 병사들이 한 명씩 나가떨어졌고 기사들은 이를 악물며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소리쳤다.
“설인들의 대응방식을 유지해! 열 명씩 붙으란 말이야!”
상상을 초월하는 괴력을 지닌 설인들에게 맞서기 위해 7군단장 부관 파울로가 창안한 검진.
기사의 소리침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서둘러 짝을 이루어 검진을 펼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수많은 설인들이 병사들 사이사이로 너무 깊게 들어온 것이다.
콰앙!
“끄아아!”
설인들 주먹 한 방에 괴성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병사들.
기사들은 이를 악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미 전세는 상당히 불리한 상황.
100여 명 정도 되는 설인들이 1,000명이나 되는 병사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슈웅!
퍽.
저 멀리서 날아오는 거대한 화살.
망할 설인들은 지력까지도 갖추고 있어 후방에서 50여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설인들이 활까지 쏘고 있는 개 같은 상황.
“후퇴하라!”
결국 하이아칸 왕국의 기사는 후퇴명령을 내렸다.
쿠웅!
우뚝.
그때!
전쟁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저벅. 저벅.
전쟁 한가운데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한 청년.
검은 머리가 인상적인 청년은 천천히 새하얀 눈을 밟아가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아…….”
청년이 지나가는 길 양옆.
병사들은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병사들을 무릎 꿇리며 앞으로 계속 나아가던 청년.
우뚝.
계속 나아갈 것만 같던 청년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바로 그의 앞에 한 설인이 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
청년은 말없이 고개를 들어 설인을 바라보았다.
청년보다 두 배는 더 큰 거대한 덩치의 설인.
청년은 그런 설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이 아프군.”
우웅!
쿠웅!
털썩.
청년의 단 한 마디.
그 한마디에 설인은 거짓말처럼 거대한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제야 눈높이가 낮아진 설인.
청년은 그런 설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너에게 숨을 쉬라고 허락한 적이 없다.”
“커헉!”
청년의 광오한 한마디.
하지만 그 한마디가 끝나는 순간 설인은 숨이 쉬어지지 않는 자신의 목을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추욱.
그렇게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던 설인은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축 늘어뜨렸다.
숨을 쉬지 못해 목숨이 끊긴 것이다.
청년은 그런 설인을 지나쳤고 이내 그 자리 그대로 굳어있는 설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꺼져라.”
사사삭!
청년의 단 한마디.
꺼지라는 단 한마디에 설인들은 무서운 동물을 피하듯 엄청난 속도로 도망쳤다.
잠시 후.
그 많던 설인들은 모두 사라졌고 청년을 향해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기사들과 병사들만이 남았다.
“누가. 다쳤지?”
움찔.
“…….”
청년의 물음에 움찔한 병사들.
청년은 그런 병사들을 보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위즐리에게 가라.”
“명을 받듭니다!”
청년의 명령에 수많은 병사들이 일시에 대답했고 청년은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유롭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 청년은 잠시 후 더 이상 병사들과 기사들이 보이지 않는 숲 속에 도착하였다.
울창한 나무들이 즐비한 숲 속에 도착한 청년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이마를 짚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군!”
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붉은 머리의 한 기사.
청년의 호위기사로 보이는 기사가 청년에게 황급히 달려왔고 청년은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마나를 무리하게 사용해서 잠시 어지러운 것뿐.”
“……고생하셨습니다.”
기사의 격려에 청년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래도…… 도대체 왜 이렇게 무리하시면서 설인들에게 도망갈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까?”
압도적인 강함과 검술을 지닌 청년이기에 설인들을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마나를 사용해 압박하고 설인들을 보내주는 청년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기사가 물었지만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미소만 지었다.
* * *
호위를 서주는 칼론 덕분에 디위니타스 심법을 운용한 나는 싱긋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상태창.”
나의 작은 목소리와 함께 나의 앞에 생성된 반투명한 창.
상태창
이름 : 요한 카르미언 듀크.
상태 : 천재.
힘 +25 민첩 +25
체력 +30 마나 +40
행운 +31 위엄 +30
매력 +50
시뮬레이션 진척도
20/50
5년이라는 긴 시간.
나는 정말 성장했다.
15개의 임무를 더 완성했으며 드디어, 천재라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다.
아마 천재 위의 무언가가 더 있을 것이라 짐작이 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3년 전부터 나에게 임무가 주어지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매일같이 실과 대련을 하고 실전경험을 쌓으며 스탯을 성장시켜왔다.
임무보상보다 직접 수련한 것으로 인해 스탯이 상승된 것이다. 그 결과.
나는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라는 경지에 올라버렸다.
우리 아버지도 불가능했던 경지를 말이다.
삐삑!
“군단장님의 호출입니다.”
그때, 칼론의 허리에 있던 호출기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빛을 냈고 칼론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 칼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네 주군.”
“둘밖에 없잖아.”
“…….”
“반말하라니까? 우리 외사촌이잖아.”
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칼론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명령이야.”
“죽음으로 불복 죄를 갚겠습니다.”
스릉.
저 미친X!
진짜 자신의 목으로 검을 가져다 대는 칼론의 행동에 내가 화들짝 놀라며 그런 칼론을 말렸다.
그러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칼론을 바라보았다.
“미친X이 죽고 싶어!”
“죄송합니다.”
나의 소리침에 칼론은 고개를 숙였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회귀로 인해 나는 아주 변했다.
아주 좋은 쪽으로, 그러다 보니 나의 주변 인물, 칼론 또한 변하게 되었다.
특히 칼론은 아주 재미없는 쪽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누가 보면 우리 아버지 아들인 줄 알겠다.
에라이. 재미없어.
“가자 새꺄!”
“예!”
내가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칼론은 힘 있게 대답했고 이내 앞장서는 나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우리는 엘란 산맥에 존재하고 있는 7군단의 주둔지에 도착했다.
“황태자 전하! 저번에 감사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생기셨습니다!”
“아 꺼져 새X들아!”
“하하!”
이 정신 나간 놈들.
내가 지나갈 때마다 저마다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처음 한두 번은 괜찮은데 계속되다 보니 짜증이 났고 내가 짜증을 내면 병사들은 웃으며 좋아했다.
정말 미친X들이 아닐 수 없었다.
“껄껄! 뭐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십니까!”
군단장의 천막으로 가는 길.
내가 짜증 내는 모습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거대한 덩치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붉은 광전사라 불리는, 오러 나이트의 고수, 천인대장 할버드였다.
그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욕을 해도 변태처럼 웃고 있잖아. 진짜 미친 것 아냐?”
“진정한 미친X의 밑에서 일하다 보니 이 정도야 가벼워진 것이죠. 껄껄…… 흡!”
나의 불평에 할버드가 소리 내 웃으며 말하다가 이내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대도 불쌍하군. 본 생각을 말하고도 눈치를 보아야 한다니…….”
“헤헤…… 비밀 지켜주실 거죠, 전하?”
그런 할버드의 모습에 나는 혀를 찼고 할버드는 헤픈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그런 할버드가 불쌍한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고 할버드는 역시! 하는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저 아저씨도 덩치에 맞지 않게 참 귀여운 아저씨다.
아무튼 우리 셋은 이렇게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누며 군단장의 천막에 들어섰다.
“노크 안 하냐?”
“천막에 노크를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불퉁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는 실.
그에 응하여 내가 맞받아치자 실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앉아 새꺄.”
“네.”
실의 말에 나는 웃으며 자리에 앉았고 이내 할버드와 칼론 또한 자리에 앉았다.
“형아~”
그때,
천막의 문을 열고 들어온 청량한 미소년.
올해 13살이 된 위즐리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나와 칼론을 향해 인사했다.
“의사 양반 오셨소?”
“아저씨도 안녕.”
7군단의 모든 병사에게 존경을 받는 어린 의사 위즐리.
할버드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건네자 위즐리는 특유의 청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인사 안 하냐.”
“흥입니다.”
자신을 제외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실이 삐딱한 목소리로 위즐리에게 말했지만 위즐리는 대놓고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위즐리, 참 괜찮은 놈인데 뒤끝이 너무 길다는 것이 문제다.
5년 전, 7군단의 시험이라는 괴상한 사건 이후 위즐리는 실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주 혐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