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화
제31편 겨울의 왕국 하이아칸(2)
“안에 누가 있습니까?”
“국왕 전하와 왕비 마마, 그리고 7군단장님께서 와계십니다.”
“다 왔군요.”
뮬란의 대답에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뮬란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늦지 않으셨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에게 위로하듯 한마디를 해준 뮬란은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한 다음 이내 문 앞에 위치한 손잡이를 들었다.
쿵 쿵.
“황태자 전하와 위즐리 공자, 칼론 경께서 오셨습니다.”
“들라 하지.”
뮬란의 보고와 함께 안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듣기 좋은 목소리로 나에게 헤어져 달라 부탁하던 사내를 떠올린 나는 긴장 어린 표정을 지으며 점점 열리는 문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문이 활짝 열렸고 나는 그 누구보다 당당한 걸음으로 안에 들어섰다.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카자르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코르.
그리고 그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짓고 나를 바라보는 실이 보였다.
나는 그런 셋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어 준 다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황태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비굴하지도, 무례하지도 않은 짧은 나의 인사.
나는 제국의 황태자이다.
겨울의 군주라 불리는 카자르에게 더 굽히고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나는 담백하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그런 나의 인사에 코르는 눈을 반짝였고 카자르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삼촌을 닮아 버릇이 없는 건가?”
카자르는 나를 황태자가 아닌, 10살의 어린 나이로 생각하고 있나 보다.
갑작스러운 카자르의 발언에 칼론은 욱하며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내가 손을 들어 칼론을 막았다.
이 자식. 가면 갈수록 성질이 급해지는 것 같았다.
나의 손짓에 칼론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고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카자르를 바라보았다.
“제가 삼촌을 많이 닮긴 닮았습니다.”
“그런 것 같군.”
나의 대답에 카자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고 실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또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한가 보다.
“엘로나 왕녀는 카자르 국왕과 닮지 않아 다행이군요.”
“뭐라?”
“풉.”
나의 대답에 카자르는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고 실은 풉 하고 웃었다.
“왕비 마마.”
“네 황태자 전하.”
나의 부름에 코르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역시 현명한 여장부답게 나를 황태자라 칭하며 존대를 사용한다.
나는 그런 코르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엘로나 왕녀가 왕비 마마를 닮아 예의가 바르고 현명한 것 같습니다.”
“네 이놈.”
“그만하지?”
나의 말에 카자르가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에 따라 실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카자르를 노려보았다.
“조카라고 감싸는 건가?”
휘잉.
쩌적!
그런 실의 모습에 카자르는 차가운 눈빛으로 실을 바라보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지금의 겨울의 군주, 카자르를 있게 한 마나심법, 프리구스 숨결.
얼음 속성의 마나답게 카자르가 마나를 끌어올리자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불더니 카자르의 발끝부터 서서히 주변이 얼려지기 시작했다.
역시 강하다.
하지만, 실 또한 만만치 않았다.
“제국을 이어받을 황태자이다. 무례한 발언 사과해라.”
삐익!
화르륵!
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방안에 울리는 새 소리.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불꽃이 생성되더니 이내 불꽃으로 만들어진 새가 나타나 무서운 기세로 카자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불꽃의 새.
실의 정령으로 알려진 고대 불의 정령 플라마였다.
플라마의 등장과 동시에 방안은 따뜻해졌고 카자르의 발에서 시작되던 얼음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마나의 싸움에서 카자르가 밀린 것이다.
그런 둘의 모습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실을 바라보았다.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여유로운 표정으로 카자르를 바라보고 있는 실.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도록 자세를 살짝 낮춘 실의 모습에 나는 조용히 신음을 흘렸다.
저 인간. 알려진 것보다 더 강하다.
확실하다.
어서 강해져 실에게 복수하려 했던 나였기에 조금은 아쉬웠지만 이 불안한 상황을 끝내기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만하시지요.”
우웅.
나의 몸에서 끌어올려 진 마나.
나는 카자르와 실에 비해 터무니없이 약하다.
하지만 나의 마나 속성은. 위엄, 지배이다.
나의 마나와 더불어 위엄이라는 스탯의 힘이 합쳐져 더 강한 힘을 내었다.
그로 인해 카자르와 실이 돌아보게 할 정도의 힘을 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나의 만류에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카자르와 실.
나는 싱긋 미소를 짓고는 카자르를 바라보았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제국의 황태자, 요한입니다.”
“…….”
나의 인사에 카자르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전하.”
그때, 옆에 있던 코르가 카자르를 부르자 카자르는 헛기침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한 황태자. 본국에 방문한 것을 환영하오.”
“환영에 감사합니다.”
카자르의 환영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카자르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잘했다.”
그런 나를 보며 실이 씨익 미소를 지었고 나 또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성질 좀 죽이십시오.”
“남이사.”
“남이 아니지 않습니까?”
“에라이.”
한마디도 지지 않는 나의 모습이 짜증났을까?
실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렸고 나는 미소를 지은 채 카자르를 바라보았다.
“자리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아. 미안해요, 어서 앉아요.”
대답은 카자르가 아닌, 왕비 코르에게서 들려왔다.
코르의 허락에 나는 자리에 앉았고 이내 위즐리도 자리에 앉았다.
“칼론 경. 그대도 앉아요.”
“…….”
가만히 나의 뒤에 서 있던 칼론.
코르가 비어있는 나머지 한 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칼론은 나를 바라보았다.
허락을 요구하는 얼굴이었다.
“앉아.”
그런 칼론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고 그제야 칼론은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우리가 모두 자리에 앉고, 시녀들이 내온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코르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왕궁에서 5년간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이신지……?”
갑작스러운 코르의 말에 내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짓자 코르는 다시 입을 열었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요한 황태자.”
“물론입니다.”
코르의 말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어머니에게 기분 나빠하고 화를 낼 수가 있겠는가?
절대 안 그럴 것이다.
“북부, 설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전선은 아주 위험합니다.”
“…….”
“정말, 하루에도 수십 명이 죽어가고 혹독한 추위와 잦은 눈사태에 정말 힘든 곳입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5년간 공부를 하다가…….”
“왕비 마마.”
더 이상 코르의 말을 들어주지 못하겠다.
코르의 말을 끊은 나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코르를 바라보았다.
“걱정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황태자입니다. 제 명령 하나에, 제 생각에 수백만이 되는 백성들의 목숨이 달려있습니다. 그런 제게 무섭다는 이유로 왕궁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이십니까?”
“황태자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병사들이 죽을 수 있어요.”
나의 물음에 코르가 단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코르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전생에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 죽어간 병사들과 기사가 많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생은 다르다.
“누가 저를 지킵니까? 제가 병사들과 기사들을 지킵니다.”
“아…….”
“푸하하!!”
나의 대답에 코르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카자르와 실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요한 황태자.”
한참을 웃던 카자르.
그가 나를 부르자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카자르를 바라보았다.
“진정한 남자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카자르.
그의 낯선 표정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전생에서 늘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카자르였다.
하지만, 회귀 후 현생에서 나에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으니 어색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왕비, 요한 황태자는 전장에 나서야 할 것 같소.”
“하지만…….”
“왕비.”
카자르의 말에 부정을 하려던 코르는 따뜻한 목소리로 만류하는 카자르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전장에 나가 있는 카자르를 대신해 국정을 보는 코르지만, 국왕은 카자르다.
그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런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제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 코르를 보니 마음이 불편해진 내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코르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 나의 위로에 코르는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 * *
“부르셨습니까.”
손님들을 위한 별궁.
그곳의 연무장에 나온 나는 정중앙에서 검을 바닥에 꽂은 채 폼을 잡고 있는 실을 향해 물었다.
“너 말고. 칼론.”
“예.”
“나와.”
실의 부름에 칼론은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오기 전 아버지에게 얼핏 이야기를 들었기에 실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칼론은 내가 직접 맞추어준 짧은 검을 들었고 나는 뒤로 물러났다.
“너. 약하다.”
“압니다.”
“약한 게 자랑이냐?”
“…….”
역시 칼론은 실에게 말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실의 물음에 칼론은 입술을 꽉 깨물었고 실은 그런 칼론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대 정령이 무엇인지 아느냐?”
“고대시절부터 존재했던 정령입니다.”
“멍청한 새X.”
“…….”
“크큭…….”
또 욕을 들어먹은 칼론.
벙찐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웃겼기에 나는 소리죽여 웃었다.
“형아. 나 저 아저씨 싫어.”
그때, 나의 옆에 있던 위즐리가 실을 가리키며 말했고 나는 피식 웃고는 위즐리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내 숙부야. 예의는 지키자.”
“……응.”
나의 말에 고민을 하던 위즐리는 마지못해 대답했고 나는 그런 위즐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 연무장 중앙을 바라보았다.
“고대 정령이란, 일반 정령의 원소 속성보다 더욱더 강력한, 신들이 사용했던 원소의 힘을 지닌 정령들이다. 그 이외에는 일반 정령들과 같다. 정력과 친할수록 정령력이 오르며, 기술의 테크닉이 높을수록 강해진다.”
“그렇습니까.”
칼론 저 자식…….
지겨워하고 있다.
실의 설명에 칼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지겨워하는 표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너에게, 고대 불의 정령의 씨앗이 있다.”
“!!”
갑작스러운 실의 말에 칼론은 두 눈을 부릅떴고 실은 미소를 지으며 칼론을 바라보았다.
“나는 엘리멘탈 마스터,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다.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
“나 정도는 되어야, 장차 황제가 될 네 주군을 지킬 수 있지 않겠나?”
“강해질 것입니다.”
실의 물음에 칼론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칼론의 모습에 실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도와주마.”
“……?”
갑작스러운 실의 말에 칼론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았다.
못되게 굴던 양반이 갑자기 도와준다니? 의심스러울 것이다.
“나의 뒤를 이어, 엘리멘탈 마스터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