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화
제23편 엘로나 하이아칸(1)
“뭐 해?”
그때, 문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칼론을 향해 내가 묻자 칼론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을 굳게 다물고는 황제의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나의 호위무사이니 나와 함께 들어오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곳은 황제의 응접실.
황제의 허락이 있어야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배 째라는 듯 대놓고 칼론과 함께 들어왔다.
칼론 또한 진지한 얼굴로 나의 명령을 받들었고 말이다.
발칙한 나와 칼론의 모습에 두 눈을 크게 뜨던 황제는 이내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그의 왼쪽에 앉아있는 젊은 청년, 나의 삼촌인 실 공작과 함께 말이다.
“요한.”
그런 나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던 아버지가 나를 타이르기 위해 목소리를 내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괜찮다.”
바로 황제인 큰아버지가 만류를 했던 것이다.
“그래 칼론이라 했느냐?”
“충. 지고하고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의 말에 칼론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고 황제는 흠잡을 데 없는 칼론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기사가 되겠구나.”
“황공하옵니다!”
황제의 칭찬에 칼론이 고개를 숙이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고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한 곳을 바라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신의 반쪽이었던 아름다운 여인.
그가 10살의 어린 나이로 소파에 앉아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또한 가만히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고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응? 뭔가 파지직 한 것 같지 않아 큰형?”
“그러게 말이다.”
“작은형. 엘로나 며느리로 어때?”
“…….”
그런 둘의 모습에 실이 깐족거리며 말했고 황제 또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실의 농담을 받아주었다.
아버지는 칼같이 무시했고 말이다.
아무튼 둘의 농담에 엘로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고 살짝 아쉬웠지만 이내 나는 미소를 지으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큰아버지. 못난 모습 보여 죄송합니다.”
“허허. 아니다. 실이 못난 모습을 보였지.”
“그래. 네 잘못이 아니다.”
“아니 형들……? 저 싸가지없는 말투 못 들었어……?”
“네놈이 더 싸가지없다.”
“양심 없는 놈.”
둘의 말에 당황하던 실은 본전도 못 찾고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황제와 아버지의 앞에서 나를 욕했다가는 좋은 말을 못 들을 것이라는 것을.
“걱정시켜드려 죄송합니다.”
그런 실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준 나는 황제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괜찮으니 이리 와서 앉거라.”
그런 나의 행동에 황제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아버지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황제의 명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다음 아버지의 옆에 앉았고 칼론은 조용히 문 한쪽 구석에 가만히 서 있었다.
실의 부관 파울로와 함께 말이다.
“아픈 곳은 없느냐?”
“아 큰형. 겁나 살살 때렸다니까!”
“실. 형님 폐하의 앞에서 예를 갖추어라.”
황제의 물음에 내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실의 입에서 대답이 튀어나왔고 아버지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시선을 무시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야.”
“네 삼촌.”
“너. 짱돌 좀 굴린다?”
“무슨 말씀이신지?”
실의 물음에 내가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제와 아버지의 앞에서 아양을 떨며 약한척하는 나의 모습을 잔머리 굴린다고 표현한 실이었다.
그의 의중을 단번에 이해한 나였지만 나는 모르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이 더 열 받도록 말이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런 나를 보며 실이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잠자는 미친 X을 잘못 건드린 듯한 기분이었다.
“참. 저 녀석에게서 불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런 나를 바라보던 실이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보았고 실의 물음에 아버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역시. 소드 마스터와 엘리멘탈 마스터. 그들의 눈을 속이기란 어려웠다.
칼론의 몸속에 잠들어있는 마나. 그리고 흔하지 않은 속성 마나.
그것을 눈치챈 상태였고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황제 또한 알고 있었나 보다.
당황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속으로 당황하였지만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에펜하르트 할아버님의 기사였던 화염 기사, 게르만 님의 검술과 심법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저번에 도서관에서?”
“네.”
“그렇구나.”
나의 대답에 황제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크산느가 알려줘서…….”
-야 내가 언제!-
나의 거짓말에 가만히 나의 어깨에 앉아있던 크산느가 발끈했지만 괜찮았다.
아무도 크산느가 보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나의 대답에 황제와 아버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실만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인간 왜 저래?
-참. 저 인간 나 볼 수 있다.-
“……?”
-정확히 저 인간의 정령, 그가 나를 볼 수 있지. 아마 내가 발끈한 소리를 저 인간에게 전달한 듯하다.-
이런.
크산느의 말에 나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고 실은 재미있다는 듯 실실 웃었다.
갑작스레 얼굴을 찌푸리는 나의 모습에 황제와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서둘러 얼굴을 고치고는 엘로나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는 누구입니까?”
나의 물음에 엘로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이아칸 왕국의 왕녀, 엘로나 하이아칸입니다. 황위 계승서열 3위, 카르미언 공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위대한 제국의 대공가. 카르미언 대공가의 공자 요한입니다. 아름다우신 엘로나 왕녀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후. 애새X가 뭐 저래?”
“우리 조카. 멋지다.”
엘로나의 인사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국의 예법에 맞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고 나의 칭찬에 실과 황제는 호들갑을, 아버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엘로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조금은 먹혔나 보다.
“작은형. 형 아들 맞아? 혹시 내가 사고 친 건데 형이 막아준 거 아니야?”
“죽는다.”
“쩝. 나랑 되게 닮았는데.”
아버지의 부정에 실은 입맛을 다시며 나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내가 봐도 나는 실과 더 닮은 것 같다.
전생에서 나의 모습은 현재 실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했고 저 촐싹거리는 말투…… 가벼운 생각…… 나보다 더 심했지만…… 아버지와 비교하자면…… 왠지 실을 더 많이 닮은 듯하다.
“아, 이게 아니지. 야.”
“네 삼촌.”
“나 할 말 있으니. 얘 데리고 가서 애들끼리 놀아라.”
“옙!”
“새X 엄청 좋아하네.”
실의 말에 내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실은 피식 미소를 지었고 나는 그런 실을 무시하고는 엘로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황궁을 안내해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레이디의 허락을 구한 나는 레이디의 허락과 동시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팔을 내밀었다.
이에 엘로나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형제국 하이아칸의 예법. 대공가의 아들이자, 황위 계승서열 3위로써 당연히 외우고 있습니다.”
안내할 때 레이디에게 한쪽 팔을 내미는 것.
그것은 하이아칸 왕국의 예법이었던 것이다.
놀란 엘로나를 향해 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답하자 엘로나는 감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나의 팔에 손을 얹었다.
“잘 컸군.”
그런 나의 모습에 황제와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실은 느끼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나와 엘로나, 뒤를 이어 칼론이 응접실을 벗어났고 실이 파울로에게 눈치를 주어 모두 물리게 하였다.
그렇게 현 제국의 실세, 황제와 아버지 실, 이렇게 셋만 남게 되었다.
아무래도 중요한 이야기가 있나 보다.
그 이야기가 궁금하던 나였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며 나의 옆에서, 팔에 손을 얹고 있는 엘로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엘로나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나를 만나기 전, 어린 시절은 외로운 삶의 연속이었다고.
척박한 하이아칸 왕국. 자신의 또래를 만나기가 어려웠고 또 만나더라도 왕녀인 자신을 어려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나는 오늘 엘로나를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사랑했던, 또 사랑하는 여인이었으니 말이다.
“오는 길 불편하지는 않으셨습니까?”
나와 비슷한 키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느린 엘로나의 발걸음.
나는 조용히 자신의 속도를 늦추어 엘로나의 속도에 맞추며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뒤에서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굳어버린 칼론이었지만 나는 무시했고 엘로나는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마차로 편하게 왔는걸요.”
“다행이군요. 덥지는 않으십니까?”
하이아칸과 비교하자면 한여름이나 다름없는 제국.
그것을 알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고 엘로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친구가 도와주고 있어요.”
“아. 눈의 정령……?”
나의 대답에 엘로나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비슷한 놈을 키워서요.”
-키우다니!-
나의 말에 가만히 있던 크산느가 발끈했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이놈…….-
그런 나의 모습에 분노한 크산느가 내 머리를 강하게 눌렀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아…… 위대하신 분이 함께하신다고…….”
엘로나가 자신의 정령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저에게 과분한 친구이지요.”
-녀석.-
나의 한마디에 기분이 풀어진 크산느는 힘을 거두어들이고는 다시 편한 자세로 내 머리 위에서 누웠다.
그 귀여운 크산느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엘로나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제 친구가. 공자는 좋은 사람인 것 같대요.”
“눈 좋은 친구이군요. 잘 부탁한다고 전해주십시오.”
나이에 비해 성숙한 엘로나.
그리고 그보다 더 성숙한 나. 우리 둘은 청춘 남녀가 나눌법한 이야기를 나누며 황궁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러게 나는 장장 두 시간 동안 엘로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황궁을 안내해주었다.
구석구석, 내가 아는 장소와 그에 관한 모든 지식을 다 알려주었다.
나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엘로나는 감탄했고 이내 살짝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 엘로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금방이라도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가까스로 참았다.
현재 엘로나는 어린 아이이다!
거기에다가 아직 친한 사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좋았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어린 시절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으며,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내가 알지 못했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정말 너무 좋았다.
회귀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