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화
제20편 엘리멘탈 소드마스터(1)
“하아…… 왜 임무가 안 생기는 거야?”
수련장을 한창 달리던 나는 일주일간 생기지 않는 임무에 짜증이 나 신경질적으로 크산느에게 말했다.
그러자 크산느는 혀를 차며 나를 바라보았다.
-쯧쯧. 그새를 못 참고. 임무가 계속 생기다 보니 당연하게 생각되었나 보지?-
“뭔 개소리야.”
크산느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대답한 다음 나의 눈앞에 내밀어 진 수건을 받아들였다.
“아아…… 섹시해.”
“이런 미친.”
당연히 칼론이 건넸을 것이라 생각했던 수건은 붉은 머리 녹색 눈이 너무나도 귀여운 소녀, 코피아가 건넨 수건이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던 나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어린 소녀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는 수건을 그녀에게 던졌다.
“꺅! 오라버니 냄새!”
“으아아아!!”
8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괴상한 성격을 지닌 코피아의 모습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아가씨. 대공비 마마께서 부르십니다.”
“아. 고마워요. 칼론 경.”
“아닙니다.”
가만히 내가 달리던 모습을 바라보던 코피아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정중하게 말하는 칼론을 보며 우아하게 치마 끝자락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코피아의 예의 바른 모습에 칼론은 살짝 미소를 지은 다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주일 전.
파티홀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코피아는 칼론은 물론 모든 기사와 사용인들에게 예를 갖추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말이다.
거기에 선생님은 흡족해하며 자신의 손녀를 칭찬했고 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코피아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코피아를 불러 대화를 나누었고 코피아는 그런 어머니의 앞에서 온갖 애교와 아양을 떨었다.
여우 같은 X.
-너무 혐오하는 거 아니야?-
그런 나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되었던지 크산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나는 달리기를 멈추고는 멀어지는 코피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전생에서 나를 괴롭히던 애야. 나는 선생님의 손녀에다가 귀여워서 봐주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새부터인가 제국의 미친 계집이 되어 있었지.”
-현생은 다르잖아? 싹수가 보이는데. 조금 잘해주지그래?-
나의 말에 크산느가 파닥거리며 대답했고 나는 크산느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코피아를 보면 전생에서의 코피아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어떻게든 괴롭히려던 악녀 코피아의 모습이.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크산느는 입맛을 한번 다시고는 나의 머리 위로 날아와 앉았다.
“아주 지배하려 드네.”
내가 불퉁한 목소리로 말하자 크산느는 나의 물음을 무시하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나 또한 그런 크산느를 내버려두고는 목검을 들었다.
그리고 늘 평소와 같이 기본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 * *
“뭐 하냐.”
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하이아칸 왕국과 그 밑 듀크 제국의 경계를 나누는 엘란 산맥.
북부 총사령관 7군단장 실이 파견되어있는 산맥이며, 하이아칸 왕국과 동맹을 맺고 제국의 백성, 왕국의 백성들을 약탈하는 설인들의 멸족을 위해 주둔하고 있는 엘란 산맥의 초입.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얇은 셔츠 하나를 입은 잘생긴 미청년, 실이 한쪽 구석에 쭈그려 앉은 소녀의 옆으로 걸어가 앉았다.
실의 물음에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던 소녀는 고개를 돌려 실을 바라보았다.
보석을 박아놓은 듯 반짝거리고 영롱한 푸른 눈동자, 은은하게 청색의 빛을 자랑하는 은발의 머리를 지닌 아름다운 소녀.
하이아칸 왕국의 왕녀이자 후계자인 엘로나는 자신의 옆에 앉은 실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있었어요.”
“안 춥냐?”
자신과 마찬가지로 얇은 옷을 입고 있는 엘로나를 보며 실이 묻자 엘로나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대 눈의 정령과 계약한 엘로나에게 있어서 추위는 친숙한 기운이었기에 전혀 춥지 않았던 것이다.
“외롭냐?”
“아니요.”
10살의 어린 나이인 엘로나.
왕국의 왕녀이기에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했던 엘로나는 정곡을 찌르는 실의 말에 칼같이 부정했다.
실은 그런 엘로나를 보고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 내일 제국으로 돌아간다.”
“아…….”
실의 말에 최근 2년간 정이 들었던 엘로나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실을 바라보았고 실은 피식 웃고는 그런 엘로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걱정 마, 다시 올 거니까.”
왕국의 왕녀인 엘로나의 머리를 아무렇게나 쓰다듬는 실의 행동은 분명 문제가 있었지만 주변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니면 같이 갈래?”
“네?”
실의 쓰다듬음에 기분이 좋았던 엘로나는 미소를 짓다가 예상외의 질문을 하는 실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 조카 새X가 있는데. 너랑 동갑이야. 그 옆에 호위기사라는 놈도 너랑 동갑이고. 나랑 많이 닮았다고 하더라.”
“정말요?”
실의 말에 엘로나가 두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고 실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음 날.
실은 떠났다.
알칸이 황제로 즉위하고 나서 알칸의 명령으로 하이아칸 왕국과 동맹을 맺고 설인과 전쟁을 한 엘리멘탈 마스터.
그가 황제에게 그간의 보고를 위해 직접 몸을 움직인 것이다.
동맹이자 친우의 동생인 그를 마중하기 위해 초입까지 나온 하이아칸의 국왕 카자르는 바닥에 그의 애검 프로하트를 꼽아 놓고는 근엄한 자세와 표정으로 멀어지는 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형님.”
그때, 카자르의 동생이자 하이아칸 왕국의 공작인 아인트 공작이 다가왔고 카자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런 형님의 모습에 아인트 공작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7군단장이 말을 전해 달라 하였습니다.”
“말하라.”
아인트 공작의 말에 카자르가 짧게 대답했고 아인트 공작은 한 번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형! 딸내미 제국 구경시켜 주고 올게!”
빠득.
아인트 공작의 입에서 나온 가볍고 장난스러운 목소리.
실의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 낸 아인트 공작이 헛기침을 했고 카자르는 바닥에 꽂힌 자신의 검을 조용히 뽑았다.
그러고는 멀어지는 실을 향해 거대한 프로하트를 한번 휘둘렀다.
우우웅!
그 순간.
프로하트가 공명을 하더니 이내 순백색의 오러가 뭉쳤고 그대로 멀어지는 실 공작을 향해 날아갔다.
날아가면 날아갈수록 더욱더 커지는 오러 블레이드.
실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마나 기운을 보며 진한 미소를 짓고는 옆에 있는 엘로나를 바라보았다.
“너희 아빠 인성 왜 저러냐.”
“삼촌이 할 말은 아니잖아요.”
실의 물음에 엘로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에 피식 미소를 지은 실은 조용히 몸속에 잠들어있던 마나를 끌어 올렸다.
삐이익!
그 순간.
드넓은 창공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함께 보이는 붉은색의 아름다운 거대한 새.
그 새가 날아와 실의 몸속으로 들어갔고 이내 타오를 듯한 화염에 둘러싸인 실이 자리를 박차 날아오는 오러 블레이드를 향해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쉬익.
실의 검과 맞닿은 오러 블레이드는 수증기처럼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졌고 바닥에 착지한 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카자르를 향해 손을 들어 주었다.
마치 하늘을 뚫을듯한 기세로 당당하게 세워져 있는 중간 손가락을 말이다.
* * *
선생님이 저택에 들어오시고 한 달 동안 수업을 둘은 나는 갑작스러운 황제의 부름에 온 가족이 다 함께 황성으로 달려갔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오구 우리 조카 왔어?”
황궁의 대전에 들어선 부모님과 나.
나의 인사와 동시에 황좌에서 일어난 황제가 나를 안아 들었다.
갑자기 몸이 붕 떠올라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나는 체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건강하신 듯합니다.”
“왜 이렇게 딱딱하니 우리 조카?”
나의 말에 황제가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흔들었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내려주세요.”
“응.”
나의 부탁에 황제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려주었고 나는 아버지의 옆으로 걸어가 다시 고개를 숙인 채 예를 갖추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 입맛을 다신 황제는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에잉. 재미없는 놈. 제수씨 어서 오세요!”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한 번 혀를 찬 황제는 옆에 있는 어머니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고 어머니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우아함이 몸속에 배인 듯한 완벽한 예법.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살짝 감탄했다.
언제봐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어째서 우리 아버지 같은 목석과 연애결혼을 하게 된 것일까?
정말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형님. 갑자기 그 녀석이 왜 오는 것입니까?”
“아 요한이 보고 싶다더라.”
아버지의 물음에 황제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고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그 녀석이란?
백 퍼센트 나의 삼촌인 실 공작이다.
엘리멘탈 마스터이자 북부에서 내려오지 않은 7군단장.
한데 그가 갑자기 내가 보고 싶어서 내려온다고?
전생에서 없었던 일이라 나는 당황스러웠고 그런 나의 표정이 귀여웠던지 황제는 나의 볼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
“삼촌은 처음 보지?”
“예…….”
황제의 물음에 내가 대답하자 황제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셋 중에서 제일 성질 더러운 놈이야.”
“너와 똑같다.”
“아버지……?”
황제와 아버지의 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를 바라보았고 아버지는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어째…… 회귀하고 보니 우리 아버지 많이 귀여워지셨다.
그래서 어머니가 결혼하신 건가?
“폐하. 다른 귀족들도 찾아오고 있으니 대공 전하를 쉬게 해주시지요.”
그때, 회색 머리의 중년인, 시종장 드라칸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황제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곧 성문을 통과한다고 하니 파티홀에 가서 조금만 기다릴래?”
“알겠습니다.”
황제의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숙였고 어머니와 나 또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 다음 드라칸의 뒤를 따라 파티홀로 걸음을 옮겼다.
드라칸이 안내해준 방으로 들어선 나는 나의 뒤에 서 있는 칼론을 바라보았다.
“야.”
“네.”
“호.”
“…….”
“안 웃어?”
“하하.”
너무나도 심심해 칼론에게 장난을 걸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나를 보며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어머니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칼론을 불렀다.
“여기 앉으렴.”
“괜찮습니다. 마마.”
“칼론. 우리밖에 없잖니?”
칼론의 딱딱한 거절에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고 그제야 움찔한 칼론이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이모…….”
“어이 사촌! 이리로 오게나!”
어색한 표정을 짓는 칼론을 보며 나는 내 옆자리를 탕탕 치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칼론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나의 옆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