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화
제18편 칼론의 기사도(1)
상태창
이름 : 요한 카르미언.
상태 : 영재.
힘 +7 민첩 +6
체력 +7 마나 +10(+3)
행운 +1 위엄 +2(+1)
시뮬레이션 진척도
4/50
“하아…….”
진척도에서 주어진 일주일.
그동안 사용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달리기를 완료한 나는 몸속에서 늘어나는 마나의 양에 짜릿함을 느끼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나의 앞에 보이는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영…… 재…….”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둔재에서 영재로 바뀐 상태.
한 달도 되지 않아 전생에서 나를 괴롭혔었던 족쇄를 극복한 나는 감회가 상당히 새로워 가만히 그 글귀를 바라보았다.
영재.
너무나도 아름다운 글귀가 아닌가?
-그간 고생했다.-
“고맙다.”
늘 나의 옆에서 깐족거리면서도 응원을 해주던 크산느.
녀석이 파닥거리며 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고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크산느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 녀석.
나도 모르게 칼론만큼이나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도련님.”
“음?”
그렇게 기분이 좋아 한참을 웃고 있던 나는 뒤에서 나를 부르는 차분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칼론의 모습.
나에게 이그니스의 숨결을 배운 이후로 심법의 영향으로 더욱더 붉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 칼론은 수건을 내밀고는 입을 열었다.
“곧 에스란 후작님께서 오실 시간입니다.”
“벌써?”
“네. 대공 전하께서 함께 맞이하러 가자고 전하셨습니다.”
“알겠어.”
칼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수건으로 땀을 대충 닦고는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같이 들어갈까?”
욕실의 앞.
웃옷을 벗은 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칼론에게 말하자 칼론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쭈욱.
“이놈의 자식이.”
“으으…… 죄송해요…….”
나의 농담에 칼론이 불경한 표정을 짓자 나는 그의 볼을 잡아당겼다.
감히, 나의 농담에 인상을 찌푸려? 건방진 녀석.
그런 나의 행동에 칼론은 괴로워하면서 나를 향해 두 손을 비비며 사죄했다.
오버하는 칼론의 모습에 피식 한번 웃어준 나는 몸을 돌려 욕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제국. 그곳의 대공인 카르미언의 성답게 욕실, 샤워기에 마법이 걸려있는 최고급 욕실이었다.
나는 새삼 욕실 내부를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권력이 최고지.”
귀족 만세다.
나는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나와 레브가 준비한 옷가지를 집어 들어 혼자 입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사용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나는 귀찮다는 이유로 모두 내쫓아버렸다.
처음에는 레브와 칼론, 그리고 마들렌까지 반발했지만 이제는 포기했는지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괜히 섭섭한 나였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그런 나의 모습에 크산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나는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아니. 어린 상태로 지내다 보니 진짜로 어려진 것 같아서.”
-확실히. 어울리긴 한다.-
“이 자식이?”
나의 말에 동감하는 크산느의 모습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크산느는 피식 웃고는 나의 어깨 위로 날아와 앉았다.
-그거 아나?-
“뭘?”
나와 계약을 맺고 처음.
진짜 처음으로 나의 어깨에 앉은 크산느의 모습에 살짝 놀랐던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나의 대답에 크산느는 날개를 파닥이며 날더니 나의 얼굴 정면 앞에 섰다.
-현재 소드 익스퍼트 하급의 단계라는 것을.-
전생에서 20살이 되어서 이루었던 경지.
25살로 죽을 때까지 졸업하지 못했던 경지 소드 익스퍼트 하급.
마나로 인해 검에서 공명이 일어나는 단계에 오른 나는 크산느의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의 모습에 크산느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나와 계약하고 약 한 달간. 너는 내가 본 모든 존재보다 뛰어나고, 성실하게 수련해왔다. 그런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에펜에게 느끼지 못했던 기대감도 생기게 되었다.-
“무슨 기대감?”
진지한 크산느의 말에 내가 침을 한번 삼키고 묻자 크산느는 붉은색 눈동자로 나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진정한 군주를. 고대시절 대륙을 지배했던 철혈 황제처럼.-
“미친놈.”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책에 적혀있는 고대제국, 트레이 제국의 황제 에르 트레이.
그의 이름을 들먹이며 말을 하는 크산느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런 나의 말에 크산느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나의 어깨로 날아와 앉았고 나는 미소를 지은 채 나의 방을 나섰다.
친구인 크산느의 기대감.
나쁘지 않았다.
* * *
“흥!”
초원을 달리는 화려한 사두마차.
귀족의 마차로 보이는 안에서 붉은 머리 녹색 눈의 깜찍한 소녀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리고 앉아있었다.
5~7살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꼬마.
소녀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돌린 모습은 너무나도 귀여웠기에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외 안경의 노인이 허허 미소를 지었다.
“많이 화났느냐?”
“코피아는 아무 말 안 할 거예요!”
노인, 대륙의 현자 에스란의 물음에 자신을 코피아라 칭한 소녀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허허. 거기 가면 잘생긴 오빠가 두 명이나 생기는데?”
“오빠……?”
미소를 지은 에스란이 코피아를 달래기 위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그제야 코피아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는 에스란을 바라보았다.
“그래. 코피아랑 놀아주고 지켜 줄 든든한 오빠들.”
“정말?”
아직은 어린 아이인 코피아는 에스란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되물었고 에스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꺅!”
에스란의 긍정에 코피아는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고 에스란은 허허 미소를 지었다.
제자인 요한은 코피아와 놀아줄 것 같지 않지만 칼론이라면 놀아줄 것이라 생각되어 코피아에게 이런 말을 한 에스란이었다.
하지만 에스란은 몰랐다.
요한의 성격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더럽다는 것을.
그렇게 초원을 한참 달린 마차는 거대한 대공성을 지나 대공성 내부의 큰 마을을 거쳐 대공의 저택 앞에 도착했다.
“내리자꾸나.”
멈추어선 마차 안.
에스란이 자신의 손녀 코피아에게 말하자 코피아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에스란의 품에 안겨 함께 마차에서 내린 코피아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정중앙에 있는 잘생긴 삼촌이랑 이모, 그리고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잘생긴 오빠.
코피아는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소년을 보며 두 눈을 반짝였다.
* * *
‘아….’
나는 부모님과 함께 저택의 정문에 서서 마차에서 내리는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품에 안겨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붉은 머리의 한 소녀.
그 소녀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나는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전생에서 나에게 매달리던 붉은 머리의 여인, 성인의 코피아 모습과 겹쳐 보였던 것이다.
전생에서도 나를 처음 봤을 때 분명 저 눈빛이었다.
그 눈빛 이후로 정말 오랫동안 귀찮게 시달렸던 나였기에 그녀의 눈빛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오셨습니까, 선생님.”
마차에서 내린 선생님이 어느 정도 앞으로 걸어오자 아버지는 예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의 인사에 선생님 또한 품에 안고 있던 코피아를 내려놓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못난 늙은이를 반겨주어 고맙습니다. 코피아, 인사드리거라.”
“안녕하세요!”
아버지의 인사에 화답한 선생님이 코피아에게 말하자 코피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반갑구나.”
“헤헤.”
코피아의 인사에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인 아버지.
코피아는 그래도 좋은지 미소를 지었고 옆에 있던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코피아를 바라보았다.
“아주 예쁜 아이구나.”
탐스러운 붉은 머리와 보석 같은 녹색 눈.
솔직하게 예쁘긴 했다.
지금은 어렸기에 인형 같았고 15년 후 대륙 3개의 꽃 중 장미라 불리던 그녀였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부터 외모가 남달랐고 어머니가 그녀를 칭찬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언니도 이뻐요!”
“어머.”
저 가증스러운 모습을 보라.
우리 어머니가 아름답긴 하지만 언니? 개뿔.
저거 알면서도 일부러 언니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8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찌든 능숙함을 지닌 어린 여우 코피아.
그녀의 말에 아직도 여자인 어머니는 입을 가리며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코피아의 앞으로 걸어가 쭈그려 앉더니 이내 코피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구. 예쁘기도 하지.”
“하아…….”
이미 우리 어머니는 넘어갔다.
코피아의 머리와 손을 잡으며 좋아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어머니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흠칫.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둘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흠칫하고 말았다.
일자로 앙다물어진 아버지의 입술.
하지만 미세하게 입꼬리가 위로 살짝 올라가 있었다.
이런 제길.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도 귀찮게 될 것만 같았다.
-귀엽네.-
복잡한 나의 마음도 모르고 나의 어깨에 앉아 코피아를 바라보며 말하는 크산느.
당장 크산느에게 닥치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았기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선생님의 앞으로 걸어갔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 오시는 길 불편함은 없으셨는지요?”
“풉.”
말주변이 없고 무뚝뚝한 아버지를 대신해 선생님의 안부를 묻는 나.
그런 나의 모습에 뒤에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알베르토가 작게 소리 내 웃었다.
“…….”
살벌한 아버지의 눈빛에 순식간에 웃음을 지웠지만 알베르토는 분명 웃었다.
알베르토만이 아닌 칼론 또한 미소를 지었고, 나의 인사를 받은 선생님 또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간 잘 지냈느냐?”
“!!”
선생님의 말씀에 주변에 있던 모든 사용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심지어 선생님의 호위로 온 에스란 후작가의 기사들과, 코피아를 모시기 위해 따라온 사용인들 또한 말이다.
황위 계승 서열권 3위.
황태자의 위치에 가장 가까우며 사실상 다음 대의 황제라고 불리는 나, 요한 카르미언.
대륙의 도련님이자 제국에서 황제와 그의 동생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보다 높은 지위를 지닌 나다.
그런 나에게 편하게 말을 하니 주변 인물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선생님의 물음에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하루라도 빨리 선생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 싶어 오늘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런 면은 실 공작과 다르구나.”
“저는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물음에 내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선생님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네 아버지 형제 모두와 닮았다.”
“쩝.”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입맛을 다셨고 선생님은 재미있다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대공부인 마마. 이 밥만 축내는 늙은이가 대공가에 잠시 신세를 져도 괜찮겠습니까?”
대공의 부인이자, 제자의 부인인 어머니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의 모습에 어머니 또한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환영입니다. 코피아가 이곳에 오게 되어 대공가가 한층 더 활발해 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언니!”
저 저 여우 같은 계집애.
어머니의 대답에 자신을 예쁘게 보는 것을 확신한 코피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말 기쁘다는 목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치마에 안겼다.
그런 코피아가 귀여운 어머니는 코피아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이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쿠키 좋아하니?”
“네!”
어머니의 물음에 아이답게 씩씩하게 대답하는 코피아.
여인 두 명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서로를 보며 연신 미소를 지었고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후작님.”
손님들을 오랜 시간 동안 세워둔 것을 염려한 알베르토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선생님에게 말하자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선생님과 코피아를 대공가에 맞이했다.
나의 교육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