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화
제14편 현자를 스승으로 모시다
“눈치가 빠른 아이군요.”
“검술에도, 학문에도 뛰어난 아이입니다.”
“호오?”
나의 대답에 후작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고 나는 진한 미소를 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나의 모습에 후작은 더욱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이내 응접실에 도착했다.
“레브.”
“네 도련님.”
안으로 들어선 내가 후작에게 자리를 권하고 레브를 부르자 레브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다음 다른 시녀들이 준비한 차와 간단한 쿠키를 들고 들어왔다.
“어린아이들이…… 대단하군요.”
시종 시녀가 10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인 것을 잊을 정도로 능숙한 칼론과 레브.
그들을 보며 후작이 감탄하며 말하자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주인이 어리다 보니…….”
“재미있는 저택입니다.”
그런 나의 대답에 에스란 후작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권했다.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고맙네.”
“영광입니다!”
레브에게도 인사를 건넨 후작.
레브는 대륙의 현자라고 불리는 에스란 후작이 직접 감사인사를 건네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구십 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눈치껏 다시 인사를 한 레브는 응접실에서 물러나 문을 닫았고 이 넓은 응접실 안에 10살의 나와 70대 초반의 노인, 에스란 후작만이 남게 되었다.
“마들렌이 보이지 않는군요.”
“유모를 잘 아시는가 봅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에스란 후작이 주변을 둘러보며 자연스럽게 묻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나의 말에 후작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마들렌이 어린 시절 잠깐 본 적이 있어서…….”
그 이유를 뻔히 아는 나이지만 짐짓 모르는 척하며 입을 열었다.
“유모는 당분간 대공가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어머니를 도와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면 정말 저 아이 둘이 도련님을 보필한단 말입니까?”
“충분한 아이들이지요.”
“허어.”
나의 대답에 후작은 놀랍다는 듯 감탄을 했고 나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남자아이. 유모의 아들입니다.”
흠칫.
기습적인 나의 한마디에 찻잔을 들어 올리던 후작은 흠칫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그런 후작을 바라보았다.
“사실, 다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유모가 저의 이모라는 것을.”
“그것을 어찌!”
생각지 못한 나의 말에 에스란 후작이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하자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찻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셨다.
그런 나의 행동에 답답함을 느낀 에스란 후작은 빨리 말해달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제가 바보로 보이십니까?”
“!!”
-오 있어 보이는데?-
나의 한마디에 에스란 후작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옆에서 파닥거리던 크산느가 흥미로운 목소리로 감탄했다.
나는 그런 크산느를 가볍게 무시하고는 예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에스란 후작을 바라보았다.
“외할아버지께 한번 놀러 오시라고 말씀 전해주시겠습니까?”
“허어…… 알겠습니다. 그때 저도 이야기를 함께 들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나의 말에 허탈한 표정을 지은 에스란 후작이 부탁했고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서 외할아버지와 변함없는 우정을 자랑하던 에스란 후작.
큰아버지인 황제와 아버지가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던 인생의 스승.
어떻게 보면 가족 같은 존재, 그 존재가 바로 에스란 후작이었다.
그런 그를 배척할 이유가 없었으니 나는 흔쾌히 허락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똑똑.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들어와.”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식당에서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이곳에서 식사하시겠습니까?”
“식당으로 걸어가셔도 괜찮으십니까?”
칼론의 물음에 내가 에스란 후작을 바라보며 물었고 나의 물음에 후작은 허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식사는 식당에서 해야지요.”
“가시지요.”
그런 후작의 대답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앞장섰고 에스란 후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나를 뒤따라 나섰다.
“잘 컸구나.”
나를 따르던 후작은 옆에서 길을 비키고 가만히 고개를 숙인 칼론을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따뜻한 목소리와 따듯한 손길에 놀란 칼론이 당황하며 후작을 올려다보았고 후작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칼론을 바라보았다.
“조손지간이라 해도 믿겠습니다.”
그런 둘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은 내가 말하자 칼론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 쳤다.
“무슨! 미천한 제가 감히 어찌…….”
“죽을래?”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자신을 미천하다 하는 칼론을 보며 내가 얼굴을 굳히자 칼론은 안색을 굳히고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누구의 앞에서도 네가 미천하다 라는 말을 하지 마라. 만약 누군가가 너에게 미천하다 한다면 그것은 내가 미천하다는 뜻과 같은 의미이니 절대 참지 말도록. 상대가 그 누구이든 상관없어. 내가 아주 조져버릴 테니.”
“도련님 말조심!”
-크하하. 미친놈.-
아…… 말실수해버렸다.
나의 무서운 말에 칼론이 화들짝 놀라며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고 크산느가 파닥대며 옆에서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손님의 앞에서 보이면 안 될 모습을 보이고 말아 뻘쭘해진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칼론의 옆에 서 있는 에스란 후작을 바라보았다.
‘아이고…… 어지간히 놀랐나 보네.’
두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본 채 그대로 굳어버린 에스란 후작.
그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은 상황이 된 것 같아 한숨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후작의 반응은 나의 예상과 아주 달랐다.
“푸하하하!!”
늘 점잖은 행동과 말투를 유지하던 대륙의 현자.
그가 체통도 잊어버린 채 큰소리로 박장대소를 터뜨렸던 것이다.
전생에서도 보지 못한 후작의 모습에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옆에 있던 칼론과 멀리서 지켜보던 호위기사들 또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박장대소를 터뜨린 에스란 후작.
그가 억지로 웃음을 참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보스가 아닌 그 녀석과 많이 닮으셨군요.”
에스란 후작의 말에 나는 크게 놀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큰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얼굴을 본 적 없는 막내 삼촌까지.
이 세 명이 황자이던 시절 에스란 후작은 황자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라는 이유로 편하게 말을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각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자 에스란 후작은 절대 편하게 말을 하지 않고 예의를 갖추었다.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옛날처럼 편하게 해달라 부탁하여도 절대 하지 않던 에스란 후작.
그런 그가 나의 앞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편하게 부르다니?
그리고 그 녀석이라면 설마…….
“그 녀석이라면…… 숙부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에스란 후작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생각지 못하게 숙부에 대한 에스란 후작의 야박한 평가에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에스란 후작은 허허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녀석을 만나 본 적은 없느냐?”
움찔.
전생에서 들어보지 못한 에스란 후작의 편안한 말투.
격식 없는 말에 나는 눈에 띄게 움찔하고는 에스란 후작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인자한 후작의 표정과 따뜻한 눈빛.
그런 후작의 모습에 나는 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네. 무심한 분이죠.”
“허허. 그 녀석이 그렇지 뭐.”
‘뭐지……?’
늘 격식을 지키는 에스란 후작답지 않게 편안하게 불평을 늘어놓는 존재.
얼굴도 보지 못한 숙부에 대해 나는 강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에스란 후작은 푸근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밥 먹으러 가자꾸나.”
“아. 죄송합니다. 따라오시지요.”
다시 들어도 좋은 에스란 후작의 편안한 말투.
그제야 나는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는 황급히 앞장섰다.
* * *
“선생님께서 반말을 하였다고?”
그 시각.
대공가의 주인 보스는 부인과 함께 식사를 하던 도중, 보고를 올리는 알베르토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네요.”
최근 들어 다양해진 보스의 표정을 보며 함께 밥을 먹던 살라만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보스는 놀란 표정을 지우고는 물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느냐?”
보스의 물음에 알베르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인 다음 몸을 돌려 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요한이 기거하고 있는 저택에서 근무하고 있는 호위기사.
그가 앞으로 나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고 이내 자신이 본 모든 것을 보스와 살라만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사용인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부터, 후작을 접대한 방식. 칼론에 대한 발언까지 모두.
“푸하하!”
“!!”
호위기사의 모든 보고가 끝나고.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보스가 큰 목소리로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런 보스를 보며 호위기사는 물론 알베르토와 살라만 또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미소는커녕 늘 정색을 하던 양반이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뜨리니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그들의 놀란 시선에 보스는 헛기침을 하며 표정관리를 하고는 보고를 마친 호위기사를 바라보았다.
“정말. 요한이 칼론에게 그렇게 말했더냐?”
“그렇습니다.”
“망나니 기질이 아직 남아 있군.”
“전하……?”
호위기사의 대답에 보스가 피식 웃으며 대답하자 알베르토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보스를 바라보았다.
자기 아들에게 망나니의 기질이 있다니?
살라만 또한 고운 아미를 찌푸린 채 보스를 바라보았지만 보스는 그들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수프를 한 숟가락 떴다.
“실 녀석과 똑같아.”
* * *
“그래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라면 계급에 상관없이 귀족의 작위를 주겠다는 말이냐?”
한창 식사를 하는 도중.
나는 에스란 후작의 날카로운 질문에 살짝 미소를 짓고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에스란 후작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평민이라는 이유로 재능 있는 자가 빛도 보지 못하고 죽어야 할까요?”
“호오.”
에스란 후작에게 배운 대화범.
상대방의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라.
그러면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게 된다면 이야기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전생에서 후작에게 질리도록 배운 대화법으로 에스란 후작의 의중을 묻자 에스란 후작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귀족의 작위를 유지하고 있는 세력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평민들보다 많은 기회를 주면 어떨까요?”
“……?”
“귀족들에게 기회를 주어도 재능이 있는 평민이라면 그런 귀족들을 꺾고 당당히 빛을 낼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인재를 원합니다.”
“하면 같은 재능을 가진 평민들은……?”
“그건 그렇게 태어난 자신을 탓해야지요. 행정 쪽으로 같은 재능이 있더라도 평민은 자신이 태어난 영주성에서 행정업무를, 귀족은 황성에서 행정업무를 볼뿐. 자신의 입장에 맞춘다면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불공평한 처사가 아니냐?”
“그렇다고 모든 평민을 제가 하나하나 봐줘야 합니까?”
“허어.”
에스란 후작이 포크를 내려놓으며 실망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약간은 질책 어린 눈빛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유로웠다.
그 여유로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나는 후작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해야만 평민들이 더욱더 빛을 낼 수가 있습니다.”
“…….”
나의 말에 에스란 후작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 더 절박하고 노력한 자가 빛을 보게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같은 능력을 지닌 귀족과 평민.
성인이 되고 난 후, 둘 중에서 누가 더 능력이 뛰어난지 승부를 본다면?
결과는 뻔하다.
훨씬 더 절박하고 이를 악문 채 노력하는 평민의 승리.
썩은 귀족들에게 더 기회를 준다? 그것은 그들이 노력해야 할 마음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더 많은 기회가 있다면 그만큼 쉽게 생각하고 노력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뿌리박힌 귀족들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
나의 깊은 뜻을 이해한 에스란 후작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실현은 힘들겠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사상이구나.”
“제가 실현할 것입니다.”
“제왕상이구나.”
나의 확실한 대답에 에스란 후작이 가만히 중얼거렸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런 후작을 바라보았다.
뜬금없이 제왕상이라니?
“내 너의 선생이 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
나와의 대화를 위해 잠시 식사를 멈추었던 에스란 후작.
그가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들며 지나가듯 나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그렇게 내 나이 10살.
회귀하기 전보다 5살 이른 나이에 대륙의 현자, 에스란 후작을 나의 선생님으로 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