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제2편 천재로 한번 살아보렵니다(1)
“하아…… 미치겠네.”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에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륙의 지배자, 듀크 제국 황족의 상징 검은 머리와 붉은색의 두 눈.
그에 어울리는 새하얀 피부. 동그란 눈 똥똥한 볼살.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치명적인 외모를 지닌 나의 모습.
짐짓 감탄하다가도 다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3일 전.
나는 바보같이 술 취한 귀족가 도련님의 칼에 맞아 죽고 뜬금없이 15년 전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첫날은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에 이제는 10살이 되어버린 칼론에게 계속 날짜를 물어보고 자신을 때려보라는 듯 괴상한 행동을 했다.
둘째 날은 나를 공격한 복면인들은 누구인지. 왜 이곳에 왔는지 나를 공격할 세력이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했으며, 나를 죽인 귀족가 도련님의 얼굴을 기억해두기로 했다.
지금 당장 이름도 얼굴도 다를 테니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다 뒤졌어.”
전생과는 다른 삶을 살기로 다짐을 했다.
“도련님…….”
나의 입에서 나온 상스러운 말에 나의 시종이자 친구 같은 존재 칼론이 울상을 지으며 나를 불렀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른 칼론에게 나는 귀찮음을 느끼고는 중간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도련님…….”
어린 칼론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듯 나의 손가락 욕에 칼론이 결국 고여있던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내게 반말하며 기어오르던 25살의 호위기사 칼론이 아닌, 순수한 어린아이 칼론의 모습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칼론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귀여운 외모를 지닌 붉은 머리 붉은 눈의 어린 소년.
내가 알던 25살의 청년 칼론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한숨을 내쉰 것도 잊은 채 칼론의 볼을 잡았다.
쭈우욱.
그리고 밀가루처럼 쭉쭉 늘어나는 그의 볼을 잡아당겼다.
“아악…….”
볼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괴로웠는지 칼론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차마 나의 손을 떨칠 용기는 없는 듯 그저 신음만 내뱉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귀여운 칼론의 행동에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칼론의 신음을 흥겹게 들었다.
쭈우욱.
잡아당기다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덤이다.
“도련님. 대공 전하와의 조찬 늦겠습니다.”
“알겠어, 유모.”
나의 유모이자 칼론의 어머니인 마들렌.
칼론과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은 그녀가 말하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탁!
“아야야…….”
내가 칼론의 볼을 놓자 탱탱한 그의 볼은 찰진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제자리로 돌아올 볼이 상당히 아팠는지 칼론은 여전히 울상을 지은 채 자신의 볼을 매만졌다.
“가자, 배고프다.”
“예.”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하자 마들렌과 칼론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고 이내 앞장서는 나의 뒤를 따라나섰다.
“안녕.”
방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3명의 시녀.
삼 일 만에 방을 나온 나는 새로운 삶을 살고자 마음먹었기에 기분 전환 겸 환하게 웃으며 그녀들에게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흠칫.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일 줄 알았더니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치는 것이 아닌가?
“……?”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시녀 3명을 번갈아 보자 뒤에 있던 마들렌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짜악. 짜악.
그러고는 갑작스럽게 시녀들의 뺨을 때려버렸다.
유모 왜 그래…….
나는 평소와 다른 마들렌의 행동에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들렌은 나의 의문 어린 표정을 다르게 해석했나 보다.
그대로 다시 손을 들어 시녀들의 뺨을 때리려는 것이었다.
“그만!”
나는 황급하게 그런 마들렌을 말렸고 마들렌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와…… 엄청 무서운 사람이었네 유모.
마치 왜 말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마들렌의 모습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고는 뺨을 맞은 시녀들에게 다가갔다.
흠칫.
내가 다가가자 눈에 띄게 몸을 흠칫하는 시녀들.
그런 시녀들의 행동에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마들렌.”
“네 도련님.”
“시녀들을 왜 때린 것이지?”
“예?”
예상외의 질문이었을까?
마들렌이 당황하며 되묻자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흠칫.
치명적인 귀여운 외모를 지닌 10세의 소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마들렌은 몸을 흠칫했다.
“물었어. 왜 때린 것이냐고?”
“도련님…… 이 아이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마세요.”
나의 물음에 마들렌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대답했다.
뭔 개소리야?
동문서답 같은 마들렌의 대답에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마들렌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뭐하느냐!”
“죄송합니다. 도련님!”
“죄송합니다!”
허어?
나는 내 앞에서 벌어진 괴상한 상황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무릎을 꿇고 있는 3명의 시녀.
그러자 나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자신들의 뺨을 때린 마들렌이 아닌 이 귀엽고 깜찍한 나를 두려워해 몸을 부르르 떨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도대체 왜……?
“아…… 맞다.”
그런 시녀들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복도에 걸린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고는 그제야 옛날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왜 이것을 까먹었을까?
8살의 나이. 열심히 노력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나에게 엄청난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왔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예민 보스 그 자체였고 눈에 거슬리는 시녀들에게 벌을 주는 것은 물론 쫓아내기까지 하면서 괴팍한 행동을 이어나갔다.
13살,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내가 망나니 2년 차인 것을 깨닫자 시녀들이 왜 이러는지, 마들렌이 그렇게 오버를 했는지 이해를 한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들렌은 시녀들을 감싸주기 위해 먼저 나서서 뺨을 때려 버린 것이었다.
내가 더 큰 벌을 내리기 전에 말이다.
“일어나. 가서 볼일 봐.”
“네?”
아 짜증 나게 하네.
나의 용서가 의외였는지 시녀들이 고개를 들며 두 눈을 크게 뜬 채 되물었고 그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나의 모습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시녀들이 벌떡 일어나 나에게 고개를 구십 도로 숙였고 이내 다른 곳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마치 두려운 존재를 피하듯 급하게 말이다.
“도련님…….”
그런 나의 모습에 감동했다는 듯 두 눈을 반짝거리는 칼론을 가볍게 무시한 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매일 같이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분 좀…… 상당히 뭐 같았다.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은지 모르겠다.
‘이번 생에는 기필코…….’
무능함의 극치였던 전생.
다시 한 번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대공가의 식당 문 앞에 도착했다.
벌컥.
문을 지키던 시종이 문을 열었고 이내 굳게 닫혀있던 문틈 사이로 내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식당을 밝게 비추었으며 십여 명의 시녀들과 시종들이 가지런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용인들의 앞. 넓은 탁자에 똑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검은 머리 붉은 눈의 중년인, 그리고 그 옆에서 훈훈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금발에 푸른 눈의 아름다운 여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늦었구나.”
나와 흡사한 외모를 지닌 중년인.
나의 아버지이자 황제의 동생이며 고결한 기사라 불리는 보스 카르미언 대공의 말에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호오…….”
나의 정중한 사과에 놀랐을까.
아버지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요한. 어서 앉으렴.”
나의 이름을 따뜻하게 부르는 금발의 여인, 나의 어머니 살라만의 말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은 다음 자리에 앉았다.
“식사 시작하지.”
“예 대공 전하.”
내가 자리에 앉자 아버지는 멋들어진 외모에 어울리는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고 20년 전부터 아버지를 모신 집사 알베르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베르토의 대답과 동시에 시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한 명당 하나의 수프를 내오기 시작했다.
3명의 시녀가 각자 아버지, 어머니 나의 앞에 수프를 놓았고 다른 시녀들이 각자 샐러드와 빵을 든 채 그녀들의 뒤에 섰다.
시녀들은 능숙한 솜씨로 뒤에 있는 시녀들에게 음식을 받아 우리들의 앞에 놓아두었다.
포크와 스푼이 놓이고 시녀가 고개를 숙이며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먹지.”
아버지가 스푼을 들며 말하자 어머니가 스푼을 들었고 이내 내가 스푼을 들어 수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하아…… 진짜 불편하네.’
고지식하고 진중한 나의 아버지.
간단하게 말하면 완전 재미없는 아저씨다.
그런 아버지와 밥을 먹으려니 계속 주변 눈치만 살피게 되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이해한 듯 어머니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 불편한 곳 있니?”
미소만큼이나 따뜻한 어머니의 목소리.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어머니는 그런 내가 사랑스러운지 조금은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나이 먹고 저런 눈빛을 받으려니 참 기분 거시기했다.
육체의 나이는 10살이지만 정신연령은 25살이니 말이다.
“오후에 황궁에 들어갈 것이다.”
어머니의 눈빛을 부담스러워 하던 나의 귀에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가기 싫으냐?”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 아버지.
내가 아는 아버지의 성격상 만약 내가 가기 싫다 하면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전생에서도 내가 가기 싫다 했고 그래서 나를 데려가지 않았던 아버지였기에 확실했다.
하지만…… 현생은 다르다.
“꼭 가고 싶습니다.”
황궁 도서관에 내가 찾아야 할 것이 있거든.
나의 힘찬 대답에 아버지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 사실 한 가지 선언할 것이 있습니다.”
와락.
“또 무슨 사고를 친 것이냐?”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나의 모습에 아버지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며 물었고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말 한마디 하려는데 무슨 사고를 쳤냐고 묻는 아버지의 모습이 웃겼기 때문이다.
“……?”
조금은 무례한 나의 행동, 그런 나의 모습에 아버지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이 나이 때의 나는 아버지가 무서워 웃기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못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들어 아버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재로 한 번 살아 볼랍니다.”
* * *
“푸하하!”
아침 식사 후.
여느 날처럼 서류를 확인하며 사인을 하던 자신의 주인 보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자 알베르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보스를 바라보았다.
20년 동안 보스를 모시면서 이렇게 크게 웃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 미안하네.”
자신의 웃음소리에 알베르토가 놀란 표정을 짓자 보스는 웃음을 참으며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런 보스의 모습에 알베르토는 놀란 표정을 지우고는 살짝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무슨 재밌는 생각이라도 나신 것입니까?”
알베르토의 물음에 펜을 놓고 의자 등받이에 모을 기댄 보스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까. 요한 녀석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 말이야.”
“도련님의 선언 말씀이십니까?”
보스의 대답에 알베르토 또한 생각났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지 않나?”
“무엇이 말입니까?”
보스의 물음에 알베르토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보스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무능함을 잘 아는 녀석이 천재로 살아본다고 하잖아? 재미있고 기대가 된단 말이지.”
“도련님은 분명 가능하실 것입니다.”
보스의 말에 알베르토가 고개를 숙이며 진심을 담아 말하자 보스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펜을 집으며 입을 열었다.
“개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