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70화 (170/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70화

제44장. 수상한 움직임(1)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수오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사실 호 안에 가만히 있어도 상관없었다. 그럼에도 수오는 일부러 수풀 안쪽으로 향했다.

그가 이런 행동을 보인 이유가 있었다.

도혁과 만해 때문이었다.

그들이 있으면 제대로 마법을 발동시킬 수 없다. 게다가 괜히 이번 일에 휘말리면, 그들은 자칫 잘못하다가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본래 수오는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상관할 생각은 없었다. 하나 이들이 필두의 부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괜히 도혁과 만해를 사건에 휘말리게 만들어 목숨을 잃게 방치했다는 오해를 받기 싫다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게 옳았다.

그리고 수오는 필두와 마찬가지로 혼자서 행동하는 게 훨씬 편하다.

눈치 봐야 할 상대가 있는 상태에서 싸우는 것보다 함정의 기미가 다분히 보인다 하더라도 혼자서 싸우는 게 심적으로도 안심이 된다.

수풀 안쪽으로 들어서자 칠흑 같은 어둠이 수오를 반겼다.

호는 그나마 나았다. 도로변이라 그런지 가로수 등불 때문에 시야가 적당히 확보되었다.

그러나 수풀 안쪽은 산속 그 자체다. 빛이라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딱히 상관없었다. 이들은 어둠을 먹고 사는 흑마법사들. 수오도, 흑마법사 조작원도 어둠이 불편하다는 생각은 별로 가지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수오가 목소리를 높였다.

“있는 거 다 안다. 일부러 나 끌어들이려고 기척 흘린 것도 알고. 그러니까 숨어 있을 필요 없으니 후딱 나오기나 하시지. 유한조, 김봉수.”

수오는 상대가 누군지까지 알고 있었다.

한조와 봉수. 두 사람은 2인조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인질극 사건을 벌인 무장공비가 2인조라는 뉴스를 접했을 때, 수오는 본능적으로 두 사람이 범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들밖에 없으리라고 단정 지었다.

물론 이런 정보는 필두에게 일찌감치 전달을 마쳤다.

그러나 필두의 반응은 딱히 알아봤자 의미 없다는 식이었다.

유한조가 누구든, 김봉수가 누구든. 필두의 관심사 밖에 나 있는 존재들이었다.

필두의 목표는 오로지 단 한 명.

카잔이다.

흑마법사 조직의 우두머리 아니면 관심이 없는 필두였기에 수오도 한조와 봉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진 않았다.

수오의 도발에 봉수가 가장 먼저 등장했다.

아니, 기습 선공을 가했다.

오른 주먹에 마나 덩어리를 뭉쳐 두터운 글로브 형상으로 바꾼 봉수가 빠르게 공격에 임했다.

후우웅!

공기를 가르는 묵직한 효과음. 그러나 수오는 침착하게 뒤로 물러서며 녀석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위력은 강하지만, 속도는 느리다. 예전부터 봉수의 이런 스타일을 잘 파악하고 있던 수오였기에 기습 공격도 쉽사리 피해낼 수 있었다.

물론 맞으면 한 방이다. 그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다시 자세를 잡으려 했지만, 그전에 한조의 추가 공격이 이어졌다.

세 발의 화살이 정확하게 수오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나같이 치명타를 선사할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수오의 대처는 침착했다.

날아오는 화살 두 개를 각각 맨손으로 잡아냈다. 나머지 하나는 머리를 숙여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날 너무 얕봤군, 서수오.”

한조의 말이 끝나자마자 낚아챘던 두 개의 화살이 갑작스레 폭발을 일으켰다.

퍼버버버벙!

바로 옆에서 폭발이 진행되었다. 무사할 리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속단이었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그 속에서 처리했다 생각한 수오가 양손을 가볍게 털어냈다.

살짝 그을음만 남았을 뿐, 목숨에 지장은 없어 보였다.

놀랄 만한 것도 없었다. 서수오, 그가 이렇게 쉽게 당할 인재가 아니라는 건 두 사람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편, 서로 몇 번의 합을 주고받은 수오가 피식 웃음을 토해냈다.

“환영식이 거창하구먼.”

“앞으로 더 거창해질 텐데, 뭐.”

한조가 비꼬듯 수오의 말을 받아쳤다.

그의 말에 반응하듯 봉수가 양손에 마나 건틀릿을 착용했다.

한조도 다시 한번 활시위를 걸었다.

맹공격의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수오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그는 악명 높은 드리무어와 생사의 갈림길을 두고 일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 경험 때문일까. 한조와 봉수, 두 사람이 협곡을 가했어도 수오에겐 딱히 위기감이라는 게 들지 않았다.

오히려 필두와 일대일로 싸울 때가 더 손이 떨렸다.

그에 비하면 두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 명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필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렇다면.

‘해볼 만한데?’

자신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 *

“야! 서수오! 이런 미친……!”

만해는 말 그대로 미칠 노릇이었다.

후임 한 명은 제멋대로 가버리질 않나. 도혁은 계속 깨우고 있는데 쳐 자고 있질 않나.

“이 새끼는 왜 이리 안 일어나!”

결국 참다못한 만해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름 하야 전투화 끝으로 정강이 차기!

“끄억!”

도혁이 비명을 지르며 오른쪽 정강이를 부여잡고 침음성을 흘렸다.

두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일 정도였다.

고통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자, 이제는 분노라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야, 이 미친놈아! 너, 제정신이야? 자는 사람을 왜 때려!”

“지금 화낼 때 아니다. 난리 났다고!”

“난리? 뭔데. 무장공비라도 나타났냐?”

“무장공비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수오가 저 안 쪽에서 수상한 기척이 느껴진다면서 멋대로 가버렸다고! 나한테는 호 바깥으로 절대로 나오지 말라고 하고!”

“뭐?”

만해가 정강이를 때리면서까지 도혁을 깨울 만한 이유가 있었다.

“수오 녀석, 어느 쪽으로 갔다고?”

“저기 저 수풀 안쪽.”

“무장공비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모른다고 했지?”

“어. 근데 나한테 그 말 할 정도면…… 무장공비 아니냐?”

아니면 그냥 수오의 착각에 불과한 걸까.

그때, 이들의 의심을 불식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퍼버버버벙!

폭발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발생한 곳은 수오가 향한 수풀 안쪽.

“설마……?”

두 사람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범상치 않은 소리다.

순간 도혁의 얼굴이 굳었다.

“만해야. 키 넣었냐.”

“행정반에? 어, 넣긴 했는데…….”

“그럼 넌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라. 난 수오 데리러 가마.”

“뭐? 야! 방금 폭발소리 못 들었냐? 어떻게 될 줄 알고!”

“김조항 병장님이랑 약속했어. 우리 후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무사히 데려오겠다고.”

폭발음이 들려온 순간, 도혁의 머릿속에 조항과 주고받았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물론 가볍게 한 말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말 속에 담긴 의지는 진짜였다.

“그, 그럼 나도 같이 가자!”

“안 돼. 여기 남아서 누군가는 호를 지켜야지. 그리고 대대에서 무슨 연락이 올지도 모르는데. 키 대기하는 사람도 있어야 되잖아.”

“그래도…….”

“걱정 마, 짜샤. 나, 전도혁이야. 곱게 죽을 사람 아니다.”

한때 9090대대에서 악명 높았던 전도혁 아닌가.

예전에는 제1포대의 골칫덩어리였던 그는 필두와 만난 이후부터 믿음직스럽게 성장하게 되었다.

“그럼 갔다 오마.”

“반드시 살아서 와라!”

“물론이지. 나도 내 목숨은 아깝다고.”

보급받은 실탄 박스를 들고서 빠르게 수풀 안쪽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수오가 무사히 살아 있기를.

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 * *

“폭발음이 들려왔다고?”

“예, 그렇습니다!”

제1포대 상황실에서 만해가 전해온 상황을 간부들에게 보고하는 FDC 병사들.

보고를 들었을 때, 포대장과 전포대장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그런 얼굴을 했다.

두 번 연속 무장공비와 조우하게 되다니! 정말 굿판이라도 벌여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러나 지금 벌어진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대대에 연락해! 그리고 만해한테는 절대로 호 바깥에 나가지 말라고 전하고!”

“그, 그게…….”

FDC 병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추가 보고를 해왔다.

“이미 수오하고 도혁이가 현장으로 뛰어갔다고 합니다.”

“왜 그딴 짓을!”

포대장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장공비를 잡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사들의 목숨 또한 귀중하다.

게다가 포대장은 무장공비가 발견되면 적극적으로 덤벼들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없었다.

본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최대한 그들의 행적을 추적, 보고하라는 것만 명령했다.

그건 필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수오가 있는 조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수오가 먼저 반응했다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필두의 질문에 병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확인을 시켜줬다.

‘놈이 먼저 반응했다는 건…… 그놈들이라는 뜻이군.’

수오의 생각은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도혁과 만해 때문에 전투가 다른 곳에서 펼쳐지게끔 유도하려고 일부러 먼저 움직였으리라. 그것밖에 없었다.

이미 보고는 상부까지 직통으로 바로 전달되었다. 이제 본대가 알아서 폭발음이 발생한 곳으로 투입될 터.

오대기 비상은 진작부터 걸려 있었다. 인근 부대 병력들은 벌써부터 현장으로 출동하기 시작했다.

무장공비는 현재 사회적으로 가장 큰 이슈화가 되어 있었다. 국방부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기에 즉각적인 반응은 필수였다.

설령 그것이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출동한다 하더라도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적어도 필두는 그렇게 봤다.

이 사건의 해결사는 따로 있었다.

말을 아낀 채 제1포대 상황실을 나온 필두. 그가 1생활관으로 접어들었다.

조금 전까지 취침을 취했던 병사들은 현재 전투복으로 환복한 채 전투태세를 갖춘 상태였다.

영내 대기를 명받은 포수들은 각 포상으로. 다른 병력들은 대대 근처로 퍼져 혹시 모를 무장공비들의 침공에 대비했다.

1생활관에 남은 채 대기 중인 병사들을 훑어보던 필두가 슬쩍 진수에게 눈짓을 했다.

필두가 나간 뒤, 진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오겠습니다.”

“어, 알았어.”

연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로 향했던 그의 발걸음이 사열대 앞쪽으로 방향을 옮겼다.

목적지는 흡연실 뒤쪽. 막사 뒤편은 현재 제1포대 상황실을 왔다 갔다 하는 간부, 병사들이 많은 탓에 이용할 수 없었다.

그다음으로 인적이 드문 곳이 흡연실 뒤쪽이었다.

그곳에 드리무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자마자 진수가 곧장 물었다.

“놈들인가.”

“아마도.”

필두는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수오가 움직인 걸로 봐선, 거의 100% 확실해 보였다.

“어떻게 할 거지?”

필두에게 앞으로의 행동 방침을 물었다.

해답은 간단했다.

“대기한다.”

“대기라고?”

“카잔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된다. 우리가 움직일 때는 카잔이 나타났을 때가 될 거다.”

“그전에 서수오가 놈들에게 당한다면 어찌할 거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필두 측에 극심한 손해가 발생한다.

하나 필두는 그 점에 대해선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내 부하라면 이 정도 위기는 충분히 극복해내야지.”

“…….”

부하의 위기를 보고도 이런 말을 손쉽게 하다니.

역시 악인은 악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