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69화 (169/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69화

제43장. 마지막 결전(3)

상황이 발생한 지 1일이 지났다.

이때까지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본래는 이게 정상이다. 평화로운 나날.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어도 정작 바깥에서만 전쟁 나는 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지, 군대 내부는 그냥 이게 일상이지 하면서 가벼이 넘기곤 했다.

이것이 군인들의 평소 모습이었다.

그 일상이 오늘따라 유독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일도 오늘처럼. 아니지. 앞으로도 오늘처럼.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임 근무자의 꿈을 담은 말 때문일까. 진수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누구든 평화를 바란다. 물론 몇몇 소수는 평화가 아닌 분쟁을 바라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대다수는 평화 쪽에 손을 들어주지 않겠나.

자신의 목숨은 소중하다. 특히나 사람의 생명이 많은 존중을 받는 이 세계라면, 모두가 다 이와 같은 말을 할 것이다.

도중에 진수가 태클을 걸었다.

“진돗개 발령된 상태의 일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정. 진돗개 둘 발령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렇지 말입니다.”

이들의 머리 위에서 존재감을 뽐내던 태양도 이제는 퇴근길에 오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아직 제자리를 지켜야 했다.

아직 진돗개 둘 상황이 해제되지 않았다. 현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된다면, 이들은 계속해서 오늘과 같은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

식사도 자대 내 식당에서 할 수 없다. 8시간 가까이 바깥에 나와 있어야 했기에 근무 시간에는 추진을 해야 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갈 즈음, 요란한 소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익숙해진 사운드다.

“밥 왔다.”

“정말?”

두 선임 근무자가 눈을 번쩍 떴다.

군용차가 이들의 앞에 잠시 정차했다. 이후 몇몇 병사들이 이들 앞에 전투식량을 보급했다.

선탑자로 타고 온 삼포 반장이 이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잠시 하차했다.

“몸 아픈 사람 없지?”

“예, 없습니다.”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오케이. 근무 잘 서고. 무슨 일 있으면 키 바로 넣어라.”

“네!”

병사들의 몸 상태를 살피는 것도 주요 임무 중 하나다. 결국은 사람이 재산이다.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한 건 없기에 주기적으로 병사들의 컨디션을 체크한다. 그것이 선탑자로 온 간부의 역할 중 하나였다.

차가 떠난 이후, 한 명씩 번갈아 식사를 진행하기로 합의를 봤다.

경계 근무에 사각지대는 없어야 한다. 훈련 중일 때에도 식사 시간이 되었다 하더라도 모두가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할 수는 없었다.

경계를 서는 병사 몇몇이 따로 있고, 그동안 다른 병사들이 빠르게 식사를 마친다. 이후 교대로 식사를 진행한다. 이런 방식으로 밥을 먹어야 했다.

훈련에서도 그런데, 실제상황이 걸렸을 때에는 오죽하겠나.

“진수야.”

“일병 황진수.”

“너 먼저 밥 먹어라.”

“예, 알겠습니다.”

가장 먼저 선택을 받게 된 진수가 전투식량 위에 달린 기다란 끈을 잡아당겼다.

몇 초 뒤, 뜨거운 열기가 위쪽으로 향했다.

전투식량이 데워지는 과정이다. 진수는 처음 이것을 봤을 때 문화충격을 받았었다.

마법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던 이 세계에서 마법 비슷한 게 등장하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러나 원리를 알게 된 이후로부터는 그러려니 하고 가벼이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보면 볼수록, 그리고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신기한 세계다.

다 데워진 전투식량을 꺼냈다. 볶음김치와 비엔나소시지, 그리고 초코와 빵조각 하나.

후식 거리는 따로 빼놓고, 나머지 것들은 전부 다 밥에 비벼서 먹기 시작했다. 이것이 진수의 먹는 스타일이었다.

숟가락질을 하면서도 그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했다.

‘이틀째. 아직 놈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군.’

예나에게도 흑마법사 조직에 관련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발생하면 그녀와 주고받은 통신석으로 연락이 올 터. 그러나 아직까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인질극을 연달아 벌였던 무장공비 소식도 아직까진 뉴스에서 보도되지 않았다.

‘이런 걸 폭풍전야라고 하는 건가.’

언제 올지 모르는 폭풍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도 참 지독하기 그지없었다.

* * *

3일째에 접어 들어가는 상황에서 병사들은 거의 초주검이 되어가고 있었다.

간부들도 예외는 없었다.

고작해야 삼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삼 일이 주는 정신적, 육체적 부담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포대장을 비롯해 간부들 역시 그간 퇴근을 하지 못했다.

그건 필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필두의 정신상태는 멀쩡했다.

“통제관. 추진하는 거, 내가 나갈 테니까 넌 막사에 있어라.”

“아닙니다. 행보관님 피곤하실 텐데, 제가 나가야…….”

“괜찮다. 병력들 컨디션도 체크할 겸해서 나가보는 거니까. 그래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해야지.”

업무라면 통제관이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었다.

필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스스로 말을 하는데, 통제관이 어찌 그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

“예,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그래. 그리고 추진할 것들은 내 차에다가 실어라.”

“직접 운전까지 하시는 겁니까?”

“병력들 쉴 때 최대한 쉬게 해두는 게 장기적으로 더 좋을 테니까.”

운전병까지 배려한 결정이었다.

여기저기 다 돌다 보면 운전하는 시간과 거리도 적지 않게 나온다. 하루 세 번에 불과하지만, 운전병에겐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필두는 그것마저 최소한으로 줄이려 했다.

“알겠습니다. 행보관님 말대로 하겠습니다.”

“30분 후에 출발할 테니까 그때까지 다 준비 마쳐둬라.”

“예!”

지시를 내려놓은 후에 스마트폰으로 혜정에게 문자를 띄웠다.

내용은 간단했다.

별일 없지? 대충 이런 느낌을 담은 문자였다.

돌아온 문자 내용도 지금까지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응, 괜찮아. 예나랑 같이 잘 지내고 있어.

“그쪽도 낌새는 없나 보군.”

만약 조금이라도 흑마법사 조직에 관련된 기척이 감지되기라도 한다면, 에리나가 진수에게 바로 보고를 해줄 것이다.

필두와 진수는 정보 공유를 약속했다. 아직까지 진수한테 별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선, 그쪽도 이곳과 마찬가지로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필두와 다르게 진수는 거짓말에 서툴다. 그리고 한번 약속한 것은 지킨다.

정보를 공유하기로 타협을 봤다면, 진수는 100% 공유할 남자다.

‘나와는 다르게 정직한 놈이니까 그 방면으론 믿을 만하지.’

스스로 디스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추진할 것들을 다 실은 것을 확인한 이후에 차량을 몰아 위병소 바깥을 나섰다.

돌아야 할 장소가 꽤 된다. 한 번 도는 데에도 시간이 적지 않게 소요된다.

순간이동으로 한 번씩 순회공연을 돌면 참 좋을 텐데. 그러나 그럴 수도 없었다.

여기서 함부로 마법사용을 남발했다가 역으로 놈들에게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사실 이렇게 혼자서 바깥으로 나서는 것도 위험한 행동이기도 했다.

그래도 안 나갈 수는 없었다. 드리무어는 애초에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들은 것만 믿는 사람이다.

병사들에게 아직까지는 버틸 만하다, 괜찮다는 보고를 받아도 필두는 본인이 직접 확인을 해야 겨우 믿을 수 있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바깥으로 나선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식량 보급만 마치고 바로 부대로 돌아갈 예정이니 사실 엄청 위험한 상황을 스스로 초래한 정도까진 아니었다.

필두의 차량이 정차하자, 호 안에서 대기 중이던 병사들이 그를 반가이 맞이했다.

“충성!”

“환자 있나.”

“없습니다!”

보고를 하는 와중에 병사들의 시선은 필두가 아닌 그가 들고 있는 전투 식량에 꽂혀 있었다.

허기가 많이 진 모양인가 보다.

작은 웃음을 토한 필두가 곧장 이것들을 넘겼다.

“식사는 교대로 하는 거, 잊지 마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목소리가 쌩쌩한 걸 보니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이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지면 난감하다.

모두가 다 힘들어지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차라리 내가 먼저 칼을 빼 들까. 아니, 그건 안 된다. 애써 참은 것들이 물거품 될지도 몰라.’

그것은 진수와 맺은 협약을 배신하는 일이기도 했다.

‘결국 내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뿐인가.’

필두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 방향이었다.

* * *

“아니, 도대체 이 무장공비 놈들은 죽은 거야, 산 거야!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고만해가 불만을 털어놓았다.

진돗개 둘이 발령되고 난 이후부터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근무 끝나고 부대로 돌아가면 오로지 잠이다. 필두의 작업 지옥에서 벗어났다는 건 참으로 좋은 일이긴 하지만, 점점 장기화가 되다 보니 그 생각도 이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차라리 작업하고 말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군대 일이 어찌 병사들이 마음먹은 대로 막 정해질 수 있겠나. 주어지는 상황이 그들의 처우를 결정짓는다.

이들과 함께 근무를 서던 수오가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새벽 1시. 한창 졸음이 몰려올 때다.

근무에 투입된 지는 얼마 안 됐다. 그래도 졸린 건 졸린 거다.

불만을 털어놓는 만해와 다르게 하품을 내뿜으며 졸음을 토하던 도혁이 두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누가 먼저 잘래.”

“상태 보니까 네가 먼저 자야 할 거 같은데.”

고만해의 말이 옳았다.

여기서 유일하게 졸음과 싸우고 있는 병사는 전도혁뿐이었다. 자려면 먼저 졸린 사람이 자는 게 좋았다.

“그럼 나 먼저 잔다. 고생해라.”

“1시간 뒤에 칼 같이 깨울 거다.”

고만해가 지레 겁을 줬지만, 도혁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판초우의를 지붕 삼아 만든 임시 장소로 들어간 전도혁. 가뜩이나 장소도 좁은데 도혁 같은 거구가 잠을 청하기엔 상당한 불편함이 따랐다.

그럼에도 들어간 지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안쪽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새끼, 벌써 잠들었네.”

“그러게 말입니다.”

처음에는 자라고 해도 쉽게 잠을 청하지 못했다. 그건 비단 도혁뿐만이 아니었다.

만해도, 그리고 다른 병사들도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이후. 쌓인 피로 덕분에 이제는 낯선 야영에도 금세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수오야 레디너스 대륙 시절 때부터 이미 야영에는 도가 텄기에 별다른 무리 없어 잠자리를 이뤘다.

“어휴, 저놈. 코 고는 소리 겁나 크네.”

결국 참다못한 만해가 전도혁 쪽으로 다가갔다.

야간 임무 때에는 무소음이 가장 중요하다. 괜히 소리를 냈다간 적들에게 위치를 드러내는 꼴이 된다. 그래서 도혁의 코골이를 없애는 것은 단순한 심술이 아닌 필요한 작업이었다.

고만해가 도혁을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수오의 얼굴이 굳어졌다.

빠르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풀로 우거진 지역. 그곳에서 낯선 인기척을 느꼈다.

‘설마.’

조심스럽게 호 바깥으로 나간 수오가 만해에게 경고했다.

“고만해 상병님.”

“왜…… 우왓? 너, 뭐야! 왜 바깥에 있어! 혹시 큰 거냐?”

“제 말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키 넣으셔서 행정반에 수상한 기척이 감지되었다고 보고하시고, 절대로 호 바깥으로 나오면 안 됩니다. 절대로.”

“야, 잠깐! 그게 무슨…….”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오가 수풀 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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