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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168화 (168/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68화

제43장. 마지막 결전(2)

병력 배치 담당은 전포대장의 몫이었다.

한창 바쁜 포대장을 대신해서 어느 호에 어떤 병력들을 배치할지 고민하는 그에게 필두가 넌지시 다가와 물었다.

“배치 다 끝났습니까?”

“아니요. 이제 막 하려고 합니다만…….”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제안 하나 드려도 됩니까.”

“무슨 제안입니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충지가 있습니다. 그곳에 진수하고 수오, 이렇게 두 명은 꼭 배치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진수야 그렇다 치더라도 수오는…….”

전의성과 박대박보다도 막내인 신병 아니겠는가. 왜 그를 중요한 부분에 배치한단 말인가.

“수오는 보기와 다르게 배짱도 있고 실력도 있습니다. 담력도 갖추고 있지요. 어차피 다른 곳에도 막내급이 한 명 이상은 배치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나마 나은 수오를 중요도 높은 곳에 배치하는 곳이 좋겠지요.”

“음, 듣고 보니 맞는 말씀입니다.”

수오가 다른 동기들에 비해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건 전포대장도 인정하는 바였다.

훈련소에서의 성적도 좋았고, 자대에 와서도 우수한 내무생활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유망주였다.

아직 제대로 된 훈련을 뛰어보지 못했다는 것이 좀 불안한 요소였지만.

필두의 말마따나 어차피 막내급 신병들은 어느 호에든, 그리고 어느 타임에든 한 명 이상은 꼭 배치되어야 했다.

막내급 두 명을 한곳에 몰아넣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밸런스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막내 두 명이 포함된 타임에 무장공비들이 등장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필두의 말을 따르는 게 백 번 옳아 보였다.

진수는 계급이 일병이지, 사실 만능이라 봐도 무방한 인재였다.

지금 당장 실전에 투입해도 이상하지 않는 병사. 그가 바로 황진수였다.

필두의 제안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행보관님께서 지정한 곳에 수오하고 진수는 끼워 넣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포대장님.”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필두는 보는 안목이 있다.

모처럼 좋은 조언을 구한 덕분인지 전포대장의 얼굴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나 사실 그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진수와 수오만이 그들을 막아낼 수 있다.

진수를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수오를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근무를 서게끔 시간 조정까지 따로 부탁을 했다.

저들이 습격해 올 시간은 대낮이 아닌 밤일 확률이 매우 높다.

지금까지의 패턴도 그래 왔고 말이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건 카잔 일행도 바라지 않을 터. 야간에 습격해 올 확률이 크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수오와 진수를 야간에 걸치는 시간대에 배치하는 것이 옳았다.

완벽하게 시간 조정까지 마친 이후, 필두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전화를 해야 했다.

민혜정. 그녀에게.

* * *

“그…… 러니까 말이죠. 진수 님이랑은 뭐…… 잘 지내는 편이에요.”

“정말로?”

“네, 정말로요!”

고민거리가 있는 척하는 것도 힘들다. 예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레디너스에 있을 때, 에리나로 활동할 당시에 연애로 고민을 해본 적은 없었다.

실제로 남자친구를 사귄 적도 없었고, 후에 자신이 평범한 아내로, 어머니로 제 역할을 해낼 거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그 와중에 마일더에 대한 이성적인 호감은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건 꽤 나중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마일더와의 연애전선에 딱히 큰 문제는 없었다. 애초에 실제로 사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저 연극에 불과했다. 필두를 속이기 위한 연극.

지금은 무용지물이 되었어도, 아직 두 사람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혜정에겐 여전히 연인 관계라고 인식되어 있었다.

이제 와서 ‘사실 저희, 사귀는 척했어요.’라고 말하면 오히려 더 큰 후폭풍을 낳을 뿐이다.

그리고 혜정의 집에서 당분간 머물게 된 가장 큰 요인이 연애 떡밥 아니겠는가. 그 떡밥을 스스로 지우는 건 말이 안 된다.

한편, 깎아온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문 혜정이 눈을 흘기며 추궁하듯 물었다.

“정말로 아무런 일 없어?”

“네…… 아마도요.”

“아마도?”

“그러니까…….”

답답할 뿐이었다. 차라리 흑마법사 조직원과 맞붙는 게 더 속 편할 것 같았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예나에게 구원의 손길이 등장했다.

“언니, 전화 왔어요, 전화!”

“어머, 정말이네.”

액정 화면에 불이 깜빡이는 걸 귀신같이 알아차린 예나가 손으로 혜정의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잠시 자리를 비킨 혜정이 스마트폰 액정화면을 응시했다.

통화를 걸어온 이의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예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

“행보관님한테 걸려온 거예요?”

“응.”

“천천히 하고 오세요.”

혜정은 자신과 필두를 배려해 이런 말을 해주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제발 좀 길게 통화하고 와라. 그래야 혜정에게 추궁받는 시간이 짧아지지 않겠나.

한편, 집 바깥으로 나온 혜정이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여보세요?”

-나야.

“무슨 일이야? 필두 씨.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다 하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응? 뭔데?”

필두가 하고 싶은 말이라니.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었다.

-당분간은 집 바깥에 나가는 일, 자제해 줬으면 좋겠어. 설령 나가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반드시 예나를 데리고 나가.

“그게 무슨 소리야?”

집 바깥에 돌아다니지 말라니.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요즘 무장공비들이 돌아다니잖아.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아…… 무장공비.”

혜정은 뉴스를 통해 이미 무장공비 관련 소식들을 접했었다.

그걸 떠올리니 필두가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면서까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필두는 군 관계자다. 아직 언론에서 언급되지 않은 기밀 같은 것들을 잘 알고 있을 터. 그래서 상세히 말은 못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응, 알았어. 필두 씨 말대로 할게.”

-고맙다.

“고맙긴. 나 생각해서 해주는 말인데,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 어차피 당분간 집 바깥으로 나갈 일도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안 그래도 우리 부모님도 웬만하면 사태 해결되기 전까지 나가지 말라고 잔소리했어.”

필두가 말하지 않았어도 이미 외출은 자중하라는 말을 그녀의 부모님으로부터 지겹도록 들었다.

-나까지 괜히 간섭한 건가.

“아니야. 아무튼, 필두 씨 말대로 할게. 몸조심하고.”

짧은 통화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 혜정.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달라진 혜정의 태도에 예나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기분 좋은 거라도 있었어요?”

“응? 아무것도 아니야.”

무뚝뚝하기만 하던 필두가 자신의 걱정을 해주니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있을까.

“그보다 아까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자.”

‘아차…….’

아직 예나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었다.

* * *

필두가 중요 요충지로 꼽은 곳은 부대에서 5㎞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호였다.

2차선 도로 옆에 붙어 있으며, 근처에는 수풀과 산으로 우거져 있는 장소였다.

필두가 이곳을 고른 이유가 있었다.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들이 많았기에 잠입하는 루트로도 이용 가능했다.

가장 먼저 투입된 1조 멤버.

서수오와 전도혁, 고만해. 이렇게 세 명이 도로 옆 호에 도착했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기에 내리는 차례도 가장 나중이었다.

선탑자로 올라타 있던 삼포 반장이 이들의 무운을 빌었다.

“고생해라, 애들아.”

“예!”

도혁과 만해, 수오가 곧장 호를 찾았다.

첫 번째로 투입된 이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교범에 나와 있는 대로 각종 장치를 설치했다.

판초우의로 호의 반을 지붕으로 삼듯 덮었다. 밑에 추진을 해온 먹거리들을 비롯해 밤의 추위를 대비한 방한용품들도 안에다가 숨겨뒀다.

“피난민이 따로 없네.”

도혁이 푸념을 늘어놓듯 말했다.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이들은 이곳에서 8시간 동안 경계근무를 서야 한다.

“수오야. 암구호 숙지하고 있지?”

“이병 서수오! 오늘의 암구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어에 기상청, 답어에 등대, 이상입니다!”

“오케이. 만해야, 들었지?”

“물론.”

임시 보금자리 설치를 마친 만해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잠은 어떻게 할 거냐?”

휴식도 없이 바로 막 이곳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한 명씩 번갈아 잠을 청해야 했다.

어차피 호에는 3명이 들어간다. 한 명이 잠을 자고 두 명이 그동안 근무를 서고. 이런 방식의 로테이션을 돌리면 충분해 보였다.

“어떻게 할래.”

“졸린 사람 있어?”

서로가 서로를 응시했다.

딱히 없어 보였다.

“수오야, 네가 먼저 잘래?”

“전 괜찮습니다. 전도혁 상병님이 먼저 주무시는 게 어떻습니까? 안 그래도 예초작업 때문에 힘드시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지. 그럼 나 먼저 잔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수면 타자로 전도혁이 선정되었다.

눕기에는 그리 넓지 않았다. 다리를 잡고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취침을 취해야 하는 구조였다.

그래도 잠을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딱딱한 흙바닥 위에 갑바천을 깔고 누웠다. 그때, 머리 위에 있는 판초우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톡, 톡 하는 소리.

도혁이 먼저 입을 열기도 전에 수오가 한발 앞서 말했다.

“비 오는 거 같습니다.”

“그러게.”

만해도 눈치챈 모양인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래 봤자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과 구름이 짙게 깔렸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매번 출석 도장을 찍던 달조차도 거의 안 보일 정도니…… 이 정도면 말 다한 셈이었다.

게다가 비까지 오니 시야가 한층 더 좁아졌다.

수오가 속으로 혀를 찼다.

‘습격당하기 딱 좋은 환경이군.’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습격당하는 걸 정말로 바라는 건 아니었다.

야간 파트는 두 부류로 나뉜다.

수오가 들어간 조, 그리고 진수가 들어간 조.

확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에 수오가 배치되었을 뿐이지, 수오 입장에서 운이 좋다면 진수가 배치된 시간대에 놈들이 습격을 해올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기대는 필두의 설명을 듣기 이전까지만 유효했다.

‘놈들은 마일더의 존재를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면 분명 너를 먼저 치려고 하겠지. 너 혼자 무방비로 바깥에 나와 있다면, 놈들은 너를 노리고 달려들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가는 게 좋을 거다.’

이게 필두의 의견이었다.

차라리 이 말을 안 듣기라도 했었더라면, 그래도 ‘나는 안 걸리겠지’라는 희망을 품고서 이곳에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나,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밤하늘에 짙게 깔린 먹구름이 마치 수오의 앞날을 예견하는 듯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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