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67화 (167/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67화

제43장. 마지막 결전(1)

포대장이 헐레벌떡 행정반으로 뛰어올 때마다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을 더 많이 접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도 그 느낌은 변치 않았다.

무장공비들의 재등장 소식에 행정반이 크게 술렁였다.

상황 종결된 줄 알았던 무장공비 사건이 다시 발생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아마 국방부는 머리가 돌기 일보 직전일 것이다.

안 그래도 여론이 안 좋게 형성되어가고 있는데, 한 번 놓쳤던 무장공비들이 다시 말썽을 부리니 얼마나 속이 탈까.

필두에게 자세한 설명을 부탁받은 포대장이 당직병으로부터 받은 물 한 컵을 원샷 하고 나서야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전곡 시내에…… 그놈들이 다시 인질극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전곡…….”

9090대대와 가깝다.

실제로 전곡 시내는 9090대대를 비롯해 인근 부대 병사들이 외박, 외출을 나갈 때마다 자주 애용하는 군인들의 성지이자 메카이기도 한 장소였다.

그곳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9090대대까지 금방 도달할 터.

덕분에 전방부대들은 비상이 걸렸다.

설명을 더 이어가려던 찰나에 대대장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소집을 알리는 내용의 문자였다.

“행보관님, 일단 전 대대장님한테 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동안 부대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다다다다다다!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포대장의 뒷모습이 다급함을 표현했다.

아직 뉴스에는 전곡 시내 인질극에 관련된 내용이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내 한복판에서 인질극을 벌였다면, 머지않아 긴급 속보로 또다시 전파를 탈 터.

실제로 SNS에는 벌써부터 인질극에 관련된 내용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강남에서 전곡.

두 차례의 인질극이 나타내는 건 상징적이었다.

“점점 북상하고 있군.”

* * *

국방부 역시 북상 여부를 알아 차린지 오래였다.

관자놀이를 누르던 국방부 장관이 참모들에게 소리쳤다.

“전방부대는 어떻게 해서든, 놈들이 북상하는 걸 막으라고 전해!”

“예, 알겠습니다!”

장관을 비롯해 참모들은 무장공비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런 루트를 짠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이들의 목표는 드리무어다.

다시 북한으로 넘어가느니 마느니 하는 건 일절 관계없었다.

오로지 드리무어를 죽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원인.

그리고 레디너스로 돌아갈 방법을 알고 있는 유일한 남자.

그는 너무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드리무어를 쓰러뜨려야 이들이 다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국방부는 그저 성격 괴팍한 무장공비들이겠거니 하면서 이들을 어떻게 북한으로 가지 못하게 막을까 고민만 하고 있었다.

우선은 장관의 말대로 북한으로 넘어가려 하는 걸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

이러한 방침은 다른 부대들에도 전달되었다.

대대장과 함께 국방부 장관의 뜻을 전해 듣고 온 포대장이 다시 제1포대로 돌아왔을 때. 이미 시간은 저녁을 향해 가고 있었다.

퇴근 시간을 훌쩍 넘었음에도 간부 중 누구도 퇴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아직 전곡 시내의 인질극은 해결되지 않았다.

2차 인질극이 발생한 지 2시간 남짓 하는 상황에서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진수가 필두를 찾았다.

행보관실에 진수만 따로 데려가면 의심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행보관실이 아닌 막사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수오도 따로 호출을 했다.

세 남자가 모였을 때, 이 모임을 주도한 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놈들이 전곡까지 왔다. 아무래도 여기를 목표로 잡은 거 같은데.”

9090대대를 목적지로 잡은 것까지는 예상했던 행동 패턴이었다.

이제 필두와 수오를 부대 바깥으로 끌어내면, 그 즉시 이들을 습격할 것이다.

굳이 필두가 설치한 마법진 더미들을 뚫고 9090대대까지 들어올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네가 외부로 나갈 때까지 이 소란은 계속되겠지.”

진수가 필두 쪽을 바라봤다.

그들의 목적은 드리무어다. 이미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할 거지?”

진수가 드리무어에게 생각을 물었다.

마지막 결전이 될 수도 있는 이 전투는 드리무어에게 주도권이 있었다.

진수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정체를 숨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놈들의 뒤를 칠 수 있을 테니까.

고민할 시간조차 없이 필두가 바로 응답했다.

“미끼를 쓴다.”

“미끼? 설마 무고한 시민들을 또 인질로 잡히게 하자는 건 아니겠지.”

“놈들이 탐낼 만큼 먹기 좋은 미끼를 던져야지.”

필두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향한 곳의 끝에는 수오가 서 있었다.

“저 말입니까?”

“그래. 왜. 자신 없나.”

“있는 게 오히려 비정상 아닙니까.”

수오는 누구보다도 카잔의 무서움을 아주 잘 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미끼가 되어 그들을 낚으라고 하다니. 자칫 잘못하다가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저들을 피해 살기 위해서 필두에게 붙었건만.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수오의 솔직한 발언에도 필두는 한결같았다.

“어차피 여기서 놈들을 꾀어내지 못하면 죽는 건 마찬가지다. 잊지 마라. 지금 당장 도망칠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쓰러지면, 그다음 타깃은 너라는 사실을.”

“…….”

흑마법사 조직은 등을 돌렸던 조직원에게 관대한 그런 집단이 아니다.

그 때문에 수오는 흑마법사 조직에서 나오고 싶었어도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때 마침 드리무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고, 기어코 그와 접선을 펼쳐 결국은 그의 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과정에 큰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작전이 있습니까?”

조심스럽게 물었다.

작전 없이 무작정 미끼가 되라고 하면, 소위 말해서 ‘너, 그냥 죽어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하다못해 납득할 만한 작전이 있다면 거기에 따를 의향은 있다.

“있긴 있다. 하지만 성공한다고 장담은 못한다.”

“그…… 그렇습니까.”

“하겠나.”

필두가 재차 수오에게 물었다.

할까 말까를 논할 단계가 아니었다.

사실은 무조건 해야 한다.

필두는 체스로 치자면 왕(King)과 같은 존재다. 그가 제압당한다면 경기 자체를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수오는 폰이 될 수도 있고, 비숍이 될 수도 있고, 룩이나 나이트, 퀸이 될 수도 있었다.

그가 먼저 나서서 활약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

무조건 해야 한다. 살고 싶다면, 필두의 작전에 올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작전을 설명하겠다.”

수오가 결심을 굳혔으니,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 * *

“여긴 강남이라는 곳보다 심심하군.”

의자에 걸터앉은 채 소소한 불평을 늘어놓는 한조. 그가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읊을 때마다 인질로 잡힌 8명의 젊은 남녀들은 몸을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언제 변심이 생겨 이들의 목숨을 앗아갈지 모른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인질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처음에는 안전하게 구조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있었다. 그러나 그 희망의 끈은 사건이 발생한 지 1시간 만에 깨지고 말았다.

정신을 잃은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성인 남자들.

이들은 인질극을 벌이는 한조와 봉수를 제압하기 위해 투입 되었던 특수부대원들이었다.

이번에야말로 한조와 봉수를 제압하리라! 이런 각오를 굳히고서 병력을 투입시켰지만, 금세 제압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봉수 혼자서 20여 명에 달하는 이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렸다.

“이 세계 군대는 진짜 약하군. 총 같은 좋은 무기를 쓰고 있으면서 잘 활용할 줄도 몰라. 무기가 아깝구먼.”

한조가 소총을 들고서 장전을 했다.

철컹! 소리가 들리자마자 인질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조가 총구를 들이대자 기겁을 했다.

“하하하! 순 겁쟁이들이네.”

쏠 생각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상황이 바뀐다면, 언제든지 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저 심심해서 인질들에게 겁을 줘본 것뿐이었다.

“언제까지 있어야 한담.”

“그러게 말입니다.”

봉수도 그게 궁금했다.

강남 인질극은 3시간가량 진행되었다. 전곡 인질극도 30분만 있으면 그와 비슷한 시간을 달성하게 된다.

언제까지 또 이 지루한 대치 구도를 이어가야 할까.

하품만 나오는 상황에서 봉수가 반가운 소식을 알려왔다.

“고우 님이 보내온 전령입니다.”

“전령? 어디.”

“저기 전봇대 위에 있습니다.”

그림자 하나가 작은 고양이 형태를 하고 있었다.

한조와 봉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그림자 형태로 되돌아가 자취를 감췄다.

“퇴각 신호군.”

한조가 잘 됐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안 그래도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잘 됐다.

강남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 듯 모습을 감추는 두 사람.

또다시 인질극 사건은 찝찝한 형태로 마무리되었다.

* * *

전곡 인질극 사건이 종결되었음에도 사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인질극을 벌인 주범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언제든 또다시 인질극을 벌일 수 있다. 그래서 국방부도 나름의 결단을 내렸다,

진돗개 2단계 발령.

그 때문에 9090대대도 여타 다른 전방부대와 마찬가지로 최소 인원만을 남기고 부대 근처에 배치된 각 호로 병력들을 주기적으로 파견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한 호에 세 명이 들어간다. 그곳에서 3교대로 8시간씩 근무를 서고 다시 교대를 하고. 이 순서가 반복된다.

영내 대기를 명받은 병사들은 오대기 소대원들, 그리고 사수와 부사수, 1번 포수와 2번 포수였다.

그 이외의 병사들은 전부 부대 바깥의 호로 투입될 예정이었다.

“나 참. 내 군 생활에 실제상황이라니. 운도 지지리도 없지.”

도혁이 볼멘소리를 냈다. 그 과정에서 조항이 이의를 제기했다.

“실제상황 체험이라면 이미 한번 했잖냐.”

“그러고 보니…….”

혹한기 훈련 도중에 무장공비를 봤다는 신고를 받고 바로 출동한 적이 있었다.

그 사건까지 친다면, 두 번째 실제상황 체험이다.

“남들 군 생활할 때 한 번 경험할까 말까 한 일을 두 번이나 체험하다니. 진짜 운도 없지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이번만큼은 조항도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사라도 지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고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나포는 사수인 김조항과 부사수인 정성태, 그리고 조연도가 남기로 했다.

조항이 도혁에게 다시 말을 붙였다.

“도혁아.”

“상병 전도혁.”

“나 대신 애들, 잘 부탁한다.”

분대장으로서 후임들과 함께 나가지 못하는 게 신경이 쓰였다.

부대 방침이라고는 하나, 아직 아는 것보다 알아가야 하는 게 더 많은 신병을 전선에 내보내는 건 선임으로서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여기선 도혁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도혁이 시원스레 웃어 보였다.

“걱정 붙들어 매시기 바랍니다, 김조항 병장님. 우리 애들은 어떻게 해서든 제가 무사히 데려오겠습니다.”

“그래, 너만 믿으마.”

선임과 후임을 떠나서 남자 대 남자의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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