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66화
제42장. 경고장(3)
무장공비 인질극 사건이 벌어진 이후, 국방부는 비상이 걸렸다.
인질극을 벌였던 두 무장공비를 잡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문제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처음에는 두 명이었던 무장공비가 인질들의 증언으로 인해 1명이 더 추가되어 세 명으로 늘었다.
세 명의 간첩들이 무장한 상태로 대한민국 수도권 근처를 활보하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달고 있는 것과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안 그래도 무능한 대처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데, 안일한 대처를 선보였다가 국민들의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9090대대도 마찬가지였다.
호출을 받고 잠시 자리를 비웠던 대대장이 다시 부대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각 포대의 수뇌부들을 즉각적으로 소집했다.
대대장실에 모인 각 포대장과 행보관들. 주임원사도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들어서 잘 아시겠지만, 무장공비 사건 때문에 지금 상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포대장과 행보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이미 뉴스를 통해 현 상황이 얼마나 급한지, 그리고 얼마나 위험한지 충분히 전달되었다.
“당분간 경계근무는 무조건 FM으로 진행합니다. 포대장들은 병사들에게 경계설 때 철저히 서라고 교육시키고.”
“예, 알겠습니다.”
“간부들이 매시간 직접 순찰 돌면서 하나하나씩 다 체크해.”
“네!”
말을 하면서도 침이 마르는지 대대장이 입맛을 다셨다.
위에서 얼마나 많은 압박감을 느끼고 왔는지 말로 다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짧고 강한 회의를 마친 뒤, 제1포대 포대장이 전포대장과 부사관들을 소집했다.
부사관들은 포대장이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전부 다 감을 잡았었다.
보나 마나 뻔하지 않은가.
무장공비에 관련된 이야기다.
“잘 알겠지만, 상부로부터 특별 지침 사항이 내려왔다. 병사들 근무 설때, 간부들이 직접 매 타임 순찰을 돌라고 하더군.”
“…….”
“…….”
“…….”
부사관들이 입을 굳게 다문 채 포대장의 말을 경청했다.
일정 시간 때마다 순찰을 돌라는 건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부사관들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무장공비들이 부대 안으로 침투해 들어올지 알 수 없다. 목숨이 달린 일이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마 조만간 진돗개 둘이 발령될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병사들 외부작업시키는 건 자중하도록. 영내 대기시키면서 상황 떨어지면 바로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를 철저하게 시켜놔. 그리고 이번에 오대기 소대장이 하나포 반장이었나.”
“예, 그렇습니다.”
하나포 반장은 오대기 소대장 운이 참 안 좋았다. 하필이면 이런 순간에 오대기 소대장을 맡게 되다니.
“오대기 교육 똑바로 하고. 언제 비상 걸릴지 모르니까 항시 대기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순찰은 야간 전까지는 여력 되는 간부들이 알아서 하고, 야간 때에는 당직사관이 직접 돌면서 하는 거로 하지. 여건 안 될 때는 하나포 반장이 대신해 주고.”
구체적으로 부사관들에게 이런저런 상세 명령을 내렸다.
워낙 긴박한 때라 그런지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싹 가셨다.
평상시에는 서로 하하호호 작은 웃음거리라도 던지면서 회의를 주고받았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위급 상황은 언제나 이들에게 긴장감을 선사한다.
회의를 마친 이후, 필두가 직접 병사들을 소집했다.
1생활관에 모인 병사들이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소집 명령이 떨어질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당혹스러운 건 당혹스러웠다.
생활관에 등장한 필두가 병사들을 집중시켰다.
“주목한다, 주목.”
“주목!”
“너희도 아까 뉴스 봐서 알겠지만, 무장공비 사건이 또 한 번 발생했다. 이번에는 세 명이다. 게다가 실제로 인질극까지 벌였던 독한 놈들이다.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부상자는 다수 발생했다. 만약 그들과 조우하게 된다면, 대응보다는 최대한 몸을 사리고 지원 병력을 기다려라. 만약 여건이 안 된다면 죽을힘을 다해 저항해라. 보통 놈들이 아닐 테니까.”
마치 무장공비들을 잘 안다는 듯이 구구절절하게 설명에 임했다.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필두의 주된 적이니까.
“잊지 마라. 영웅 행세한답시고 섣불리 덤비지 마라. 그건 너희의 목숨을 단축하는 꼴밖에 안 될 테니까.”
상대가 안 될 거라는 건 필두가 잘 안다. 개죽임을 당할 바에야 몸을 사리라고 말해두는 편이 더 좋았다.
“그리고 당분간 외부 작업은 금지한다.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큰 작업은 시키지 않을 테니 무단으로 어디 막 돌아다니거나 하지 마라. 그리고 한 가지 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핵심이다.
“당분간 휴가, 외박은 통제한다. 예정되어 있던 휴가도 부득이하게 다 미룰 터이니 그리 알아둬라.”
“……!”
실제 상황이 벌어진 것보다 이게 더 충격적이었다.
* * *
근무를 나온 전도혁이 탄약고 초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총을 내려놓았다.
“하아, 뜬금없이 실제 상황이라니. 진짜 돌아버리겠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총을 내려놓는 모습이, 아직까지 제대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후임 근무자로 같이 따라온 진수는 좌경계총 상태를 계속 유지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도혁이 진수에게 손사래를 쳤다.
“뭐하러 총 계속 들고 있냐. 그냥 내려놓지.”
“당분간은 FM 근무 태도를 유지하라고 포대장님께서 그러셨습니다.”
“뭐,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설마 무장공비 놈들이 진짜로 우리 부대에 오겠냐. 어차피 여긴 오지도 못하고 잡힐 거니까 그냥 내려놓고 쉬어 둬. 몸만 고생한다.”
“아닙니다. 전 이대로가 좋습니다.”
진수의 고집은 꺾기 힘들어 보였다.
고지식함은 이미 진수를 대변하는 상징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같은 분과이기에 특히나 진수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네 속이 풀린다면야 뭐, 알아서 해라.”
진수에게 총 내려놓으라고 강요하기도 귀찮았다.
간부들이 순찰을 주기적으로 돈다고 했지만, 그때만 잠깐 좌경계총을 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그리고 탄약고 초소를 올라오는 길은 하나뿐이다. 좁은 산길 하나. 이것만 감시하고 있으면 어떤 간부가 올라오는지 쉽게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도혁이 간과하는 게 하나 있었다.
순찰을 도는 간부 명단 중에 필두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좌경계총 자세를 유지한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진수가 흘려듣기 힘든 말을 꺼냈다.
“행보관님 오셨습니다.”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개미 한 마리 안 보였는데 행보관님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오…….”
진수의 말에 트집을 잡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탄약고 초소 문이 벌컥! 하며 열렸다.
진수의 말대로 필두가 초소를 방문한 것이다.
“전도혁.”
“사, 상병 전도혁!”
“내가 불과 1시간 전에 했던 말을 금세 까먹은 거 같은데.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특별 교육 좀 시켜줄까.”
“죄죄죄죄죄송합니다!”
곧바로 좌경계총 자세를 취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발걸음 소리도, 심지어 산길을 타고 올라오는 모습조차도 안 보였다.
‘뭐지? 순간이동이라도 하신 건가!’
실제로 필두는 순간이동을 통해 탄약고 초소 바로 앞까지 왔다. 이 사실을 도혁이 알 리 없었다.
진수는 순간이동 마법진이 땅 밑 부분에 새겨지자마자 필두가 이곳에 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미리 경고를 해뒀건만. 도혁이 진수의 말을 좀 더 귀담아들었더라면, 이런 식은 땀 흘러내리는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한 번만 봐주마. 하지만 두 번은 없다.”
섬뜩한 경고를 남긴 채 사라지는 필두. 덕분에 전도혁의 등 뒤는 식은땀으로 젖었다.
예초기를 돌린 것도 아닌데도 제초 작업을 할 때보다 더 땀에 젖은 듯했다.
“도대체 언제 나타나신 거람.”
필두의 신출귀몰함은 이미 제1포대 내에서도 꽤 많은 유명세를 탔었다.
잠시 그것을 깜빡했을 뿐. 잊어서는 안 된다.
도혁을 지그시 응시하던 진수가 대뜸 제안을 했다.
“좌경계총, 어떻습니까?”
“해,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 * *
전도혁과 황진수 듀오 이후에도 필두는 수차례 외곽근무 순찰을 돌았다.
그럴 때마다 병사들은 우후죽순처럼 필두에게 지적을 당하고 말았다.
평상시에 AM 근무가 당연했는데, 이제 와서 FM 근무를 서라 해도 필두의 기준을 통과할 만큼 제대로 설 수 있겠나.
그나마 기준을 통과한 인물은 단 두 명뿐이었다.
황진수와 서수오.
애초에 두 사람은 논외로 쳐야 했다. 왜냐하면, 필두의 기습 순찰을 진작부터 눈치챌 수 있는 몇 안 되는 병사들이었으니까.
결국 두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제대로 근무를 서지 못했음을 뜻했다.
“통제관.”
“예, 행보관님.”
필두의 호출에 바로 달려간 통제관. 그에게 새로운 미션을 부여했다.
“지금 당장 병사들 집합시켜서 처음부터 근무 교육 다시 시켜라.”
“예, 알겠습니다.”
연달은 병사들의 근무 태만 때문에 필두의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필두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을 다시 집합시킨 통제관이 잔소리부터 개시했다.
말을 안 들을 때에는 매가 약이다.
부사관 중에서 필두 다음으로 가장 무서운 부사관으로 손꼽히는 통제관이 직접 나섰으니, 근무에 대해선 이제 더 이상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순찰을 돌면서 부대 주변도 한번 돌아봤다.
혹시 몰라 마법진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안 하는지도 확인을 해봤다.
그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열과 성을 다해 작업한 마법진들이라 그런지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병사들보다 마법진에 더 큰 기대를 걸어야 할 판이었다.
‘나중에 혜정이하고 부모님 집 쪽도 다시 확인해 봐야겠군.’
진수의 말을 통해서 이미 예나가 혜정의 집에 머물 수 있게끔 작업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혜정의 집과 필두의 본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여차하면 에리나가 양쪽 다 커버를 해줄 수 있을 터.
부족하다 싶으면 수오나 아니면 진수를 보내게끔 하면 된다.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이제 흑마법사 조직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또 한 번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인질극 사건 한 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분명 추가 작전이 있을 게 분명하다.
곰곰이 생각에 잠길 때, 포대장이 행정반 안으로 허겁지겁 뛰어들어왔다.
“가, 간부들 소집해! 지금 당장!”
“무슨 일이십니까?”
필두가 관심을 보였다. 또 무슨 일이 발생했기에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까.
거친 호흡을 고르던 포대장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무, 무장공비 녀석들이…… 또 인질을 잡았다고 합니다!”
포대장이 가져온 안 좋은 소식은 두 번째 인질극에 관련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