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65화 (165/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65화

제42장. 경고장(2)

사건이 발생한 지 2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너희는 지금 포위되었다! 얌전히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하라!”

“지금 항복한다면 목숨만은 보장해 주겠다!”

바깥에서 계속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에 한조가 잔뜩 찌푸린 얼굴을 했다.

“저 미친 새끼들은 왜 저렇게 떠들고 지랄이야!”

쾅!

테이블을 내려치자, 안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사람들이 몸을 크게 움찔했다.

가급적이면 저들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았다. 그런데 오히려 바깥에서 이들의 속을 박박 긁어대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었다.

한편, 한조와 다르게 바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봉수가 제 생각을 들려줬다.

“저희가 아무런 요구조건도 펼치지 않고 이렇게 말없이 농성만 하고 있으니 저쪽도 많이 답답하게 느껴져서 그런 거 같습니다.”

“흠, 그런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정확한 추측이었다.

한조와 봉수는 아무런 이유 없이 이곳을 점거했다.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특정 중요 인사를 이곳으로 데려오라는 요구 조건도 없었다.

그저 말도 없이 2시간 동안 여기서 죽치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바깥 입장에선 얼마나 답답하게 느껴지겠는가.

무장공비란 기본적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작전을 수행하는 그런 자들을 일컬었다. 이렇게 대놓고 도심 한 가운데에서 당당하게 소란을 벌이는 건 지금까지 북한에서 보여준 무장공비 침투 패턴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한조와 봉수의 행동. 물론 이것은 북한이 사주한 게 아니다.

그들은 애초에 북한이라는 나라에 관심 따위는 일절 없었다. 태생 자체가 레디너스인데, 북한에 충성을 맹세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흑마법사 조직원들은 그저 드리무어 단 한 명만을 노리고 남한으로 넘어왔다. 그러니 이 순간부터 무장공비든 뭐든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이다.

드리무어를 암살하기 위해 찾아온 흑마법사들. 그것이 이들의 신분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표현법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다른 일반인들이 알아줄 리 없겠지만 말이다.

“어찌하겠습니까.”

봉수가 한조에게 의사를 물어왔다.

답은 뻔했다.

“카잔 님의 추가 명령이 있을 때까지 여기서 무한 대기다. 그게 우리가 들은 첫 번째 명령이었으니까.”

카잔이 두 사람에게 내린 지시였다.

다음 행동 명령이 떨어지기 이전까지 그냥 이곳을 점거만 하고 있어라.

그 이후의 일정에 대해선 딱히 말이 없었다.

아직까지도.

그러나 그때, 봉수가 위쪽을 응시했다.

한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저쪽이 먼저 칼을 빼 든 거 같습니다.”

“외부에서 ‘투항하라!’라고 현혹하면서 뒤에서는 몰래 우리를 힘으로 제압하려고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나 보군.”

다수의 인기척이 위에서 느껴졌다.

이들이 점거하고 있는 건물은 10층 구조를 지닌 단독 빌딩이다.

가게는 가장 밑인 1층에 있었다.

최대한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몰래 잠입했지만, 한조와 봉수를 속일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아하니 위에서 기습 작전을 감행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농성하고 있으라고 했으나, 제압을 당하란 명령까진 없었다.

“가서 처리하고 와라.”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들겠다는 표식으로 짧게 고개를 숙인 봉수가 위쪽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후,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성인 남성 하나가 무리 없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를 지닌 원이 형성되었다.

퍼엉!

그대로 위로 뛰어오른 봉수. 아래에서 대뜸 천장이 무너지더니, 무장공비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기습 등장했다.

“헉!”

“이게 도대체 무슨……!”

놀라지 않는 게 이상했다.

특수부대원들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동안, 봉수가 먼저 행동에 임했다.

선두에 있는 남자 한 명에게 달려들어 총을 빼앗고 동시에 정확히 명치를 가격했다.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들고 있던 총을 그대로 오른쪽 방향에 있는 대원에게 휘둘렀다.

빙글빙글 돌아 정확히 남자를 맞췄다.

마나까지 실은 투척 공격이었기에 단 한 방의 공격으로 남자는 정신을 잃은 상태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두 명의 특수부대원을 쓰러뜨린 봉수의 기세가 매섭다.

아니, 두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철컹!

다른 대원들이 총구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막상 방아쇠를 당기기에도 여의치 않았다.

적군과 아군이 뒤섞여 있는 상황에서 함부로 발포를 할 수는 없었다. 괜히 아군을 쏘기라도 한다면 어찌하겠나.

“빌어먹을!”

“쏠 수가 없잖아!”

대원들이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이건 봉수가 의도한 것이다.

절대다수와 극소수가 싸울 때에는 이런 식으로 게릴라전을 펼치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물론 굳이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아도 봉수 혼자서 10여 명에 달하는 특수부대원들을 쓰러뜨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마법을 쓰면 모든 게 금세 해결된다. 그럼에도 봉수는 일부러 마법을 발동시키지 않고 육체 능력만을 강화시켜 몸을 움직였다.

2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서 농성을 펼치다 보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이 때문에 봉수는 일부러 육탄전을 택했다.

레디너스에 있을 때에도 그의 주먹은 정평이 나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임에도 강한 무력을 지닌 남자.

그가 바로 김봉수였다.

일곱 명째를 제압했을 때, 남은 세 명의 특수대원들이 다급하게 무전을 날렸다.

“현재 무장공비 1명과 교전 중! 지원 병력 바란다!”

“한 명한테 쩔쩔매는 것도 모자라 지원까지 요청하나.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군.”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이 세계의 인간들은 레디너스의 병사들보다 약하다. 육체적으로 강하지도 않을뿐더러,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바로 개인화기 때문이었다.

총이라는 건 흑마법사 조직원들, 특히 카잔에게 많은 감명을 심어준 물건이었다.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병사라 할지라도 총과 수류탄만 있으면 수십, 수백 명을 학살할 수 있다.

총을 무시해선 안 된다. 비록 이들이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특별한 존재라 할지라도, 본래의 힘을 완벽히 되찾지 못한 이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순수한 몸싸움만으로도 이렇게나 강하다.

몸풀기 형태에 지나지 않은 싸움이 거의 종막에 다다랐을 때, 남은 세 명의 특수대원들 쪽으로 발길을 돌린 봉수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손을 풀었다.

“마무리는 확실하게 해야겠지.”

* * *

쿠웅!

구멍 뚫린 천장에서 다시 내려온 봉수가 양손을 털어냈다.

“다 끝났나.”

“예.”

“꽤 걸렸군. 소란스러웠던 걸 보니 또 네놈의 이상한 취향이 발동한 거 같은데.”

“취향까지는 아닙니다. 선호도라고 하죠.”

“아무렴 어떠냐.”

마법사면 마법사답게 싸우면 참 좋겠거늘. 그러나 봉수의 스타일은 한조와 전혀 달랐다.

예전에는 잔소리 식으로 말을 자주 했었지만,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차원 이동을 하고 난 이후에도 그 습관은 계속되었다.

계속해서 강요적으로 말하는 것도 귀찮았기에 이제는 한조도 포기한 단계였다.

그보다 지금은 본업에 충실해야 할 때였다.

“저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봉수가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

인질들의 처우에 관해서였다.

“죽입니까?”

노리쇠를 장전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이 바짝 몸을 움츠렸다.

살려달라고 애원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괜히 몇 마디 더 붙였다가 그대로 총살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호전적인 봉수와 다르게 한조는 달랐다.

“아서라. 앞으로 몇 시간을 더 버텨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피 냄새로 후각 괴롭힐 필요가 있냐.”

“그것도 그렇군요.”

다시 총구를 거둬들였다. 인질들 입장에선 한조가 구세주로 보일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상황을 만든 것도 한조지만 말이다.

그렇게 또다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을 때였다.

바닥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가게 안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동그란 한 원으로 뭉쳐진 그림자. 한 가운에서 불쑥 사람의 형상이 솟아올랐다.

기이한 현상에 인질들이 입을 쩍 벌린 채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술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한조와 봉수는 담담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제 왔냐.”

“오셨습니까, 고우 님.”

고우라 불린 검은 그림자의 형상이 손을 살짝 들어 올려 이들의 인사에 반응을 보였다.

“임무는 잘 되어가고 있나.”

“중간에 쥐새끼 몇몇이 오긴 했는데, 봉수가 처리했으니 괜찮아.”

“쥐새끼?”

처음에는 그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천장을 올려다본 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그보다 무슨 일이야.”

“카잔 님께서 슬슬 퇴각하라고 명하셨다.”

“3시간만인가.”

기지개를 켜면서 이제야 해방됐다는 기쁨을 표출하는 한조. 그러나 봉수는 다른 쪽에 더 관심이 있었다.

“드리무어는 어디 있습니까?”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쪽은 포병대대라서 우리가 여기서 별 지랄을 다 해도 웬만하면 안 움직이더군.”

“그럼 작전 실패 아닙니까.”

“아니, 이것도 작전의 일환이다. 1단계에 불과하지. 그리고 카잔 님에게 실패란 없다. 그런 말을 삼가는 게 좋을 거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잘 새겨들어.”

“……예, 죄송합니다.”

이들에겐 절대적인 규율이 있었다.

카잔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그의 생각에 의구심을 지니는 순간, 더 이상 조직원이 아니게 된다.

그때부터는 배신자 취급을 받는다.

배신자를 기다리는 건 오로지 죽음뿐. 이제 와서 카잔을 버리고 다른 배로 갈아탈 수도 없었다.

“움직이자.”

“알았어.”

“예.”

고우를 감싸고 있던 그림자가 한조와 봉수에게로 뻗어 나갔다.

이후, 이들은 그림자와 함께 흔적을 감췄다.

이로써 근 3시간에 달하는 인질극이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 * *

-그, 그 사람들, 이상해요! 막 천장을 맨손으로 부수고, 그림자를 타고 다니고. 장난 아니었다니까요?

-거짓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하는 말이 전부 다 사실입니다. 저희가 다 봤어요!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인질들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사건이 벌어진 직후 3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겨우 종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남긴 여파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무장공비. 고작 한 명에게 무기력하게 제압당한 특수부대원들. 벌써부터 여론은 국방부를 겨냥한 맹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전투력, 과연 믿을 만한가.

고작 두 명의 무장공비조차 잡아내지 못한 게 과연 군대라 할 수 있을까.

하나 필두는 속사정을 잘 알기에 현장을 지휘했던 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날고 긴다 하더라도 일반인이 녀석들을 제압하긴 힘들지.’

종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막 시작되었다 봐도 무방했다.

이건 카잔이 보내는 경고장이다.

준비하고 있어라, 드리무어.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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