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64화
제42장. 경고장(1)
필두가 근무하는 9090대대.
그 근처에서 움직이는 수상한 그림자 둘이 서로를 바라봤다.
“어떤가.”
“빈틈이 없습니다. 그쪽은 괜찮습니까?”
“아니, 이곳도 마찬가지다.”
상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드리무어군. 허술하기 그지없는 곳을 요새 수준으로 만들어버릴 줄이야.”
“이래 가지곤 기습이고 뭐고 금방 발각될 거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카잔 님에게 돌아가자.”
“예.”
두 그림자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이후, 카잔이라 불리는 남자의 앞에 순간이동을 해온 이들이 직접 두 눈으로 본 것들을 보고했다.
“드리무어의 마법진이 빈틈없이 촘촘하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작업을 할 수는 있지만, 꽤 많은 시일이 소요될 거 같습니다.”
“얼마나 걸리지?”
“적어도 한 달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너무 늦어. 최소 1주 안으로 앞당겨 봐라.”
“그건 좀…….”
카잔의 명령은 너무 무모하다. 남자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자, 카잔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작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겠군.”
“방법이 있습니까?”
“정공법으로 가려고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좀 돌아가야지. 거대한 벽이 앞에 떡 버티고 있는데, 무식하게 주먹으로 벽을 계속 두드릴 수는 없으니까. 안 그런가.”
“옳은 말씀입니다.”
이들은 카진의 남은 충신들이다. 지금까지의 흑마법사들과는 다른 충성도를 보유하고 있다.
카잔이 시키는 일이라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존재들이기에 그의 말에 토를 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카잔의 장기말. 그것과 일맥상통이다.
“드리무어를 외부로 끌어온다. 그러면 상대하기 한결 수월해지겠지.”
“어떤 수로 말입니까?”
“간단하다.”
카잔의 입꼬리가 슬며시 위로 향했다.
“오랜만에 무장공비로서 본업 활동 좀 하면 된다.”
* * *
유동 인구가 많기로 소문이 난 강남역 근처.
한눈에 봐도 수상한 옷차림을 한 남자 2인조가 거리에 들어섰다.
허름한 옷차림. 머리도 푸석하며 얼굴에는 때에 잔뜩 찌들어 있었다.
게다가 냄새도 고약하다.
“저 사람들, 뭐야?”
“눈 마주치지 마. 괜히 시비 걸라.”
“어휴, 냄새!”
여기저기서 이들을 노골적으로 피하는 반응이 보였다.
그래도 딱히 크게 상관없었다. 이제부터 이곳은 혼돈으로 가득 찰 예정이니까.
2인조 중 한 명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웨이버 님.”
“여기선 본명으로 부르지 말고 이 세계 이름으로 불러라.”
“죄송합니다.”
남자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한조 님. 슬슬 시작합니까?”
유한조. 그가 자신의 부하인 김봉수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가슴 부근까지 오른 주먹을 들어 올렸다.
수신호였다.
봉수는 한조가 보내온 수신호가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허름한 손가방 안에 손을 집어넣은 봉수. 그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작은 권총 한 자루였다.
머리 위로 권총을 추켜올렸다. 이윽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짧지만 귀에 쏙 박히는 강렬한 소음이 대중들을 압도했다.
“초, 총?”
“도망쳐!”
“사, 살려주세요! 저기 미친놈이 있어요!”
말 그대로 혼란 그 자체였다.
봉수와 한조의 곁에서 걸어가던 이들이 기겁을 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구경하던 한조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꼴좋구먼!”
탕!
이번에는 한조도 가세를 했다. 두 번째 총성이 울렸을 때, 강남역 인근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다르게 일상생활에서 쉽게 총기를 접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 그런 나라다.
게다가 공포탄도 아니고 실탄을 쏘아대는 괴한이 거리 한복판에 출연했는데, 놀라지 않을 이가 있을까.
허둥대는 사람들. 그 속에서 한조가 추가 지시를 내렸다.
“저쪽 가게가 좋겠군. 이동한다.”
“예, 한조 님.”
한조와 봉수가 음식 가게 안으로 접어들었다.
바로 앞에서 발생한 총성 때문에 의자, 테이블 뒤에 오들오들 떨며 숨어 있던 사람들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왜 하필이면 이곳에?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농성할 장소와 인질이 필요할 뿐이었다.
봉수가 가게 문을 닫아버렸다. 그동안 테이블 하나를 차지한 한조가 의자에 몸을 묻으며 말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국밥 두 개 만들어 와라. 허기 좀 채우게.”
* * *
도심 한 가운데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은 대한민국을 충격에 휩싸이게 하기 충분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치안이 잘 된 국가 중 하나라 불리는 대한민국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런 사건이 벌어지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이것은 현실이다.
아나운서의 입을 통해 이 현실이 전 국민에게 전달되었다.
-속보입니다! 강남역에 무장공비 두 명이 인질을 잡고 농성 중이라고 합니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분들은 경찰의 통제에 따라 신속히 대비를…….
무장공비라는 단어가 유독 필두의 귀를 거슬리게 했다.
간부들뿐만 아니라 병사들 역시 평소답지 않게 뉴스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무장공비라니.”
“게다가 강남역이라고?”
“진짜 별의별 일이 다 있구나.”
강남역 총기 사건이 낳은 파급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정부는 이미 북한의 행동에 대해 강한 규탄을 하며, 동시에 군, 경찰들이 다수 현장으로 투입되었다.
9090대대는 그 현장에 포함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들은 전방 포대다. 보병도 아니고 포병 소속이기 때문에 총기 사건에 투입되어봤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부대에 남아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저쪽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일 때 바로 초탄 사격에 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여러모로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필두는 본능적으로 강남역에서 총기 사건을 자행한 자들이 흑마법사 조직원들이라는 점을 알아차렸다.
안 봐도 뻔했다.
그러나 왜 저들이 저런 행동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외부로 끌어낼 심산인가? 그렇다면 작전이 잘못된 거 같은데.’
필두가 포병대대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을 잘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아니, 어쩌면 다른 작전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저들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필두를 부대 바깥으로 끌어낸다. 이 의도만큼은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번 사건 하나만으로 끝나진 않겠지.’
필두는 여전히 부대 안에 있다. 그걸 아는 이상, 저들은 여러 차례의 시도를 할 것이다.
흑마법사 조직이 본격적으로 행동에 임하기 시작했다는 것만 알아두면 될 일이다.
이후에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상황을 보고 유동적으로 대응하면 될 터.
한편, 뉴스를 보던 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필두에게 다가갔다.
“…….”
말없이 필두와 시선을 맞췄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필두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막사 바깥을 나섰다.
이후 건물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필두가 오른손에서 까마귀 두 마리를 소환했다. 붉은 눈을 지닌 까마귀들이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날아올랐다.
주변에 사람이 오면 까마귀들이 즉각적으로 알려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군.”
필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너무 많아서 문제일 정도였다.
“왜 저들이 저런 소동을 벌이는지 알고 있나.”
진수도 저 소행을 만들어낸 자들의 정체가 흑마법사 조직원들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이상, 강남역 한가운데에서 난동을 부릴 이유는 없기 때문이었다.
무장공비들이 무슨 볼일이 있다고 유동인구가 많기로 소문이 난 강남역에서 총기 사건 같은 걸 벌이겠나.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일 존재는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흑마법사 조직. 그들뿐이다.
“나도 모르겠는데.”
필두가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머리가 좋은 그도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보였다.
딱히 지금 당장 필두에게 답을 얻으려 하는 건 아니었다. 진수는 그저 필두가 사전에 저들이 이런 사건을 만들어낼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협력 관계다. 앞으로 들어오는, 혹은 알아차린 정보가 있다면 절대적으로 공유하기로 맹세했다.
그런 상황에서 필두가 무언가를 숨겼다면, 이 동맹의 관계는 한순간에 깨질 것이다.
필두에게 힘을 빌려주기로 한 만큼 보다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진수의 현 입장이었다.
모른다는 필두의 대답에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은 네 말을 믿어보도록 하지.”
“그것참 고맙군.”
빈말을 흘리는 필두였다.
“그보다 어떻게 할 거지?”
진수가 확인차 물었다.
저들을 저대로 방치할 순 없었다. 인질극을 벌이는 거로 봐선, 농성이 꽤 장기화할 듯싶었다.
군대, 경찰로 흑마법사들을 제압할 수는 없다. 결국 필두나 진수가 나서야 한다.
그러나 필두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것도 안 한다.”
“뭐?”
“저들의 목적은 우리를 외부로 끌어내는 거다. 속셈이 빤히 보이는데, 굳이 움직여줄 필요는 없지.”
“그렇게 되면 저기 잡힌 인질들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할 거냐.”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때로는 희생이 필요한 법이지.”
“…….”
진수는 잠시 잊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희대의 악인, 드리무어라는 사실을.
진수의 반응을 본 필두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거다. 어차피 저들은 머지않아 철수할 테니까.”
“그걸 어떻게 알지?”
“아까도 말했지만, 놈들의 목적은 나를 외부로 끌어내는 거다. 그런데 9090대대가 움직이지 않았으니, 그걸 확인했다면 바로 이 사건에서 발을 뺄 거다. 안 봐도 뻔하지.”
“네 예상이 틀리다면?”
“그때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소수의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
“걱정 마라. 내 예상대로 흘러갈 테니까.”
확신을 보여주는 필두였지만, 진수는 인질로 잡힌 이들에게 신경이 쓰였다.
그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그저 이 사건에 휘말렸을 뿐.
그럼에도 필두는 냉정하게 그들을 버릴 각오를 굳혔다.
마일더가 마음이 약한 걸까. 아니면 필두가 독한 걸까.
‘모르겠어.’
진수는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도 필두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저들의 작전에 함부로 놀아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드리무어나 마일더가 저들의 손에 쓰러지면 이 세계는 끝이다.
어쩌면 필두의 반응이 정답일지도 몰랐다.
대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이성적으로 납득은 간다. 그러나 뭐랄까. 양심이라는 녀석이 진수를 괴롭혔다.
필두도 진수가 본인의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네놈이 저번에 나에게 했던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주지.”
새겨들으라는 식으로 또박또박 말을 전달했다.
“날 믿어라. 믿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라도 믿게 해라.”
그 말만 남긴 채 다시 막사로 돌아가 버렸다.
드리무어를 향한 믿음, 그리고 신뢰.
“어려운 문제군.”
드리무어가 남겨준 숙제는 마일더에게 꽤 난이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