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63화 (163/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63화

제41장. 수상한 움직임(3)

평일 저녁 때 즈음, 6시가 되자마자 바로 퇴근 준비를 서두르는 필두의 모습에 부사관들이 작게 수군거렸다.

“행보관님이 칼퇴근을?”

“별일이네.”

“최소 7~8시까지 남아계시던 분이 오늘은 왜?”

물론 필두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칼퇴근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대략 90% 이상은 부대에 가장 오랫동안 남아 병사들과 부대의 상태를 살피고 퇴근하곤 했다.

그런 필두가 오늘따라 바삐 퇴근길에 오르니 수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예비 사모님이랑 기념일이라도?”

“오, 가능성 있네.”

“행보관님이 저렇게 보여도 가정적인 면이 있나 봐.”

여기저기서 쓸데없는 추측이 난무했다.

이 말들을 듣기라도 한 걸까. 행정반을 막 나서기 직전에 필두가 그들을 돌아봤다.

“이상한 잡담 그만 끝내라. 다 들리니까.”

“죄, 죄송합니다!”

바짝 군기 든 목소리로 필두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필두만큼 한번 화나면 무서운 사람도 없다. 대대장이, 연대장이, 사단장이 와서 화를 내도 필두만 한 포스를 선보이진 못할 것이다.

한편, 부사관들에게 입단속 철저히 하라는 식으로 압박을 넣은 이후에 사열대 앞에 주차된 본인의 차량으로 향했다.

그가 갈 곳은 부모님이 머물고 계신 집이다.

차를 끌고 가면서 필두가 어머니한테 연락을 시도했다.

-여보세요.

“접니다.”

-네가 웬일이냐? 먼저 전화를 다 하고.

“오늘 집에 계시죠?”

- 있긴 할 텐데.

“식사는요?”

-그냥 집에서 먹으려고 하는데. 왜.

“레스토랑 식사권이 두 장 생겼거든요. 기프티콘 보내드릴 테니까 아버지랑 같이 외식이라도 하고 오세요.”

-외식? 뭐…… 나쁘지 않지.

아들이 비싼 식사 대접해 준다는데 싫어할 부모가 어디 있겠나.

“기프티콘 사용 방법은 아시죠?”

-네 아빠가 그런 거 잘 알더라.

“그럼 아버지한테 보내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잘 먹으마.

“나간 김에 아버지하고 데이트도 충분히 즐기다가 오시고요.”

-얘가 참…… 그래, 알았다.

“그럼 끊어요.”

데이트 이야기는 두 사람의 귀가를 늦추기 위함이었다.

시기상으로 지금 당장 흑마법사 조직원들이 습격을 가해올 거라고 보이진 않았다. 폭발 사건이 발생한 지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았으니까.

수오의 말을 이리저리 따져본다면,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난 뒤에 필두에게 공격을 가해올 터.

앞선 두 차례의 기습 공격도 이와 같은 패턴이었다.

감정적인 행동보다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행동을 앞세우는 카잔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아직 이들의 공격 타이밍 시기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건 필두가 장담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차후의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일찌감치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그 준비의 일환이 바로 기프티콘이다.

선물이라든지 이런 건 예전부터 자주 줬었다. 드리무어의 실제 부모는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강필두로 살다 보니 부모와 자식에서밖에 느낄 수 없는 감정이 드리무어의 속에도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만약 흑마법사 조직과의 사투가 벌어진다면, 혜정과 더불어 필두의 부모도 보호 대상에 반드시 넣어야 한다.

두 번 다시 소중한 이들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을 잠시 바깥으로 내보내는 데에 성공한 필두.

차를 정차시킨 뒤에 잠시 대기를 했다.

그 와중에 필두의 아버지가 모는 차가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갔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하차해 본가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비밀번호는 필두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자식인데 모를 리 있겠나.

설령 비밀번호를 모른다 하더라도 순간이동으로 문 하나 넘는 것 정도는 별다른 힘 기울이지 않고 해낼 수 있다.

안으로 들어서는 데에 성공했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시작해 볼까.”

부모님 댁에 마법진 여러 개 놔드려야겠어요. 이 생각으로 여기까지 일을 벌이게 되었다.

문에다가 하나, 벽에다가 최소 3개 이상을. 빈틈없이 마법진을 촘촘하게 새겨뒀다.

이것이 당분간 필두의 부모님들을 지켜줄 것이다.

물론 100% 안전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일회용일 뿐. 그래도 서수오가 마련한 마법진 트랩보다는 훨씬 안전했다.

나머지는 진수의 협력자에게 맡기면 된다.

“에리나라……. 설마 그 여자까지 이곳으로 넘어올 줄은 몰랐군.”

마일더가 스스로 자처에서 이 세계에 넘어왔다고 했을 때에도 적지 않게 놀랐었다. 그 이후에 에리나까지.

이거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 아니겠는가. 본인이 상대하기 영 껄끄러운 놈들만 골라서 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에리나가 넘어온 게 다행이었다. 에리나는 드리무어도 인정하는 실력자 중 한 명이다.

그녀는 마일더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만큼 능력이 출중하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필두에겐 최악의 적 중 한 명이라는 말과도 같았다.

그래도 지금은 우호 관계를 맺기로 했다. 에리나는 이미 진수에게 모든 사정을 들었다. 필두가 진수에게 협력하기로 결정했다는 것도 전부다.

필두를 대신해 그의 가족들, 그리고 혜정을 지켜줄 것이다.

진수가 협력을 제안해 왔을 때, 필두가 선택한 답지는 ‘Yes’였다.

평소의 필두였다면, 아니, 드리무어였다면 분명 ‘No’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드리무어와 다르게 필두라는 남자는 지켜야 할 존재들이 생기고 말았다.

후회가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란 사실은 이미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주변인들에게 멀어지려고 시도도 했었다. 하나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그들은 필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이 보 후퇴하면 삼 보, 사 보, 오 보 이상을 다가왔다.

그리고 결국 따라잡혔다.

가장 먼저 민혜정이라는 여자에게.

이후 그의 부모와 9090대대 부대원들에게도 따라잡히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멈출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필두는 또 한 번의 과오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과거와 지금의 다른 점이 있다면, 힘의 차이다.

소중한 이들을 지킬 힘이 그때는 없었다. 하르만 학살 사건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드리무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에겐 힘이 있다.

최강의 흑마법사!

희대의 악인!

그 악인이 지금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마일더가 직접 이 모습을 봤다면 두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나도 참 이상한 녀석이군.’

스스로 행동에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렴 어떠랴.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이거늘.

대략 1시간 이상 걸리는 작업을 마무리 지은 뒤, 피로에 전 한숨을 토해냈다.

지금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본래의 힘을 꽤 되찾았음에도 지금의 필두가 이렇게나 힘들어할 정도다. 그만큼 이곳에 공을 들였다는 것을 뜻했다.

혜정의 집에도 이와 같은 작업을 사전에 해뒀다.

‘이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나머지는 에리나가, 그리고 진수가 잘해주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다.

* * *

민혜정은 아침부터 이상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우리 집에서 당분간 머물면 안 되겠냐고?”

-네, 언니!

“왜 갑자기…….”

오전 8시라는 비교적 이른 아침에 전화를 걸어온 것도 모자라 대뜸 며칠 동안 집에서 먹고 자고 하겠다니. 얼토당토않은 소리였다.

예나가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자주 혜정의 집에 놀러 오곤 했었다.

그 이후에는 혜정을 타인 취급하듯 거리를 벌리나 싶더니, 오늘은 또 이제 와서 며칠 자고 가겠다는 말을 하다니.

너무 갈팡질팡한다. 듣는 입장도 좀 생각을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무런 징조도 없이 이런 말을 할 아이는 아니다. 이 부탁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예나가 심적으로 많은 고민을 품을 만한 요소가 뭐가 있을까.

‘역시 연애겠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황진수와 연인 관계가 되었다는 건 혜정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게다가 혜정이 알고 있는 바로는 예나는 이번 연애가 처음이라는 걸로 기억한다.

남자 친구와 트러블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연장자로서, 그리고 연애 선배로서 상담을 도와줄 수는 있지 않을까.

친동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나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도 친분이 있었고, 큰 사고를 당한 이후부터 계속해서 그녀를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손님 하나 며칠 동안 재운다고 크게 문제가 될 만한 가정환경은 아니었다.

이래 봬도 혜정의 집안은 그래도 좀 사는 축에 속했다. 방 하나의 여유는 충분했다.

“알았어. 아빠한테 말해놓을게. 너라면 아마 허락해 줄 거야. 언제쯤 들어올 건데?”

-오늘 점심에 갈게요.

“오, 오늘?”

심지어 점심 시간대다. 지금이 8시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통화 끝나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오겠다는 뜻이 되는 거 아닌가.

“너, 남자 친구 분이랑 심하게 싸웠구나.”

-마일더 님…… 아, 아니. 진수 님이랑요?

“그 호칭, 아직도 쓰는 거야.”

-그게…… 그분의 취, 취향이거든요.

“취향 한번 참 특이하네.”

간혹 그런 부류의 남자들이 있다.

정복욕이 강한 남자. 진수도 그런 부류에 속하기에 일부러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이게 한 건 아닐까. 혜정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혹여나 예나가 뒤틀린 연애 관계에 빠져 괴로워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일부러 혜정의 집에 머물며 심신 안정을 취하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더더욱 강하게 들었다.

“알았어! 오늘 점심! 기다리고 있을게!”

-고, 고마워요, 언니.

예나는 내심 혜정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오히려 당황하고 말았다.

물론 이상한 오해를 사긴 했지만.

* * *

캐리어 하나를 들고서 혜정의 집을 방문한 예나.

그녀가 도착하자 혜정이 곧장 방으로 안내했다.

“여기서 머물면 돼. 며칠 동안 있을 거야?”

“글쎄요. 최대 2주 정도는 될 거 같아요.”

“그렇게나 오래?”

“네.”

“부모님은 걱정 안 하셔?”

“자취할 때부터 이미 걱정하셨던 거 같은데요. 언니 집에서 당분간 머물겠다고 하니까 오히려 안심하셨어요.”

“하긴, 혼자 사는 것보다 우리 집에 있는 게 더 안전하긴 하지. 우리 엄마, 아빠도 있고.”

딸을 둔 부모 입장에선 늘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 말이다.

게다가 예나는 큰 사고를 당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혜정이 많이 살펴주고 보듬어줘야 할 때이다.

“일단 짐 정리부터 먼저 하고 상담해 보자꾸나.”

“상담이요?”

“남자 친구 문제 때문에 온 거 아니야?”

혜정은 예나가 연애에 문제가 생겨 이곳으로 온 걸로 알고 있는 듯했다.

차라리 잘됐다. 더 이상 둘러댈 핑계도 없으니, 연애 문제로 이끌어 가면 되지 않을까.

“마, 맞아요. 최근에 좀…… 그래서요.”

“구체적으로 어떤 거?”

“그건…….”

혜정의 집에 머물게 된 것까진 좋았으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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