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60화
제40장. 탄피 찾기의 달인(3)
앞서 사격장을 이용하기로 했던 1008대대.
일정 시간 이전까지 사격장을 비워줘야 했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그 일정은 달성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탄피 분실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금방 찾아내겠습니다!”
9090대대 대대장에게 다가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하는 중대장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들이 사격을 시작한 시간을 고려한다면 대충 2시간가량을 탄피 분실 찾기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었다.
1백여 명의 병사들을 동원해 탄피 수색에 임하고 있음에도 차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허! 거 참…….”
대대장의 입장에선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감도 됐다.
9090대대에도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했었더라면, 아마 1008대대와 같은 방식을 취했을 것이다.
탄피 분실은 결코 있어선 안 될 재앙 중 하나다. 그 재앙이 벌어지고 말았으니. 1008대대의 심정은 안 봐도 뻔했다.
“우리도 도와줄까.”
대대장이 슬그머니 제안했다.
동정심 때문이었다. 서로 돕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부하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대대장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느 간부가 ‘안 됩니다! 저는 귀찮아서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겠는가. 양해를 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상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예, 돕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병력들 시켜서 수색하게끔 하겠습니다!”
탄피가 분실된 와중에 사격 훈련을 진행하기도 힘들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9090대대의 인력까지 투입해 빠르게 분실된 탄피를 찾아내는 게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처럼 보였다.
* * *
9090대대 병력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온 본부포대 탄약반장이 이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하달했다.
“전원 총기 휴대하고 사격장 쪽으로 가서 분실된 탄피 찾는다. 알겠나!”
“저희도 말입니까?”
“그래. 귀찮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저쪽이 탄피를 찾아야 우리도 사격을 진행하니까. 안 그러면 내일 또 이곳까지 와야 한다?”
“내일은 주말인데…….”
“군인에게 주말이 어디 있냐. 오늘도 겨우겨우 비집고 우리 차례 만들었는데, 나중으로 밀리면 정말로 주말에 사격하러 와야 할지도 몰라.”
“탄피 바로 찾겠습니다!”
병사들이 사격장을 향해 우르르 몰려 나갔다. 주말에 사격을 하러 나와야 한다니. 그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주말만큼은 어떻게든 휴식을 보장받아야 한다. 병사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결국 이렇게 해서 9090대대도 탄피 수색 작전에 투입되었다.
* * *
이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필두가 속으로 혀를 찼다.
‘뭔 놈의 군대가 탄피 하나 때문에 난리람.’
그까짓 탄피 하나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필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레디너스로 치자면, 롱소드 하나 잃어버렸다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찾는 꼴과 마찬가지였다.
그깟 롱소드 하나 없어졌다고 큰일이라도 벌어지겠나.
전설급 아이템이라면 몰라도, 탄피 하나에 백 명의 병력이 허리를 숙인 채 땅만 보고 걷는 모습은 필두에겐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찾으라고 하는데 어쩌겠는가. 하라면 해야 하는 곳. 그곳이 바로 군대다.
아까 필두에게 탄피 분실 여부를 보고했던 하사에게 다시 접근했다.
“탄피 분실된 곳이 어느 사로지?”
“5사로입니다.”
“그렇군. 알았다.”
그렇다면 5사로를 중심으로 마나를 흩뿌리면 알게 될 것이다.
참으로 간단한 일이다.
5사로 쪽으로 향하는 필두. 그때, 필두와 딱 마주친 이가 있었다.
황진수였다.
그도 필두와 같은 생각을 했다. 5사로를 중심으로 마나 탐지를 실행하면 탄피 정도는 금세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먼저 온 손님이 있군.”
필두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서로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행보관님이 하시겠습니까.”
진수가 차례를 양보했다. 구태여 자신이 나설 필요도 없었으니 말이다.
“네가 찾으면 포상휴가 정도는 얻을 수 있을 텐데. 왜 나에게 양보하지?”
“포상휴가는 이제 지겹습니다.”
이번 휴가도 거의 억지로 나간 거였다.
진수는 포상휴가보다 오히려 부대에 남아 있는 걸 원했다. 그래야 필두를 감시할 수 있을 테니까.
최근에는 필두의 심복인 서수오까지 합류했다. 감시 대상이 두 사람으로 늘어난 만큼, 가급적이면 부대를 비우는 짓은 삼가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필두에게 양보를 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어쩔 수 없군.”
진수의 양보를 받아들인 필두가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필두가 어딘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허리를 숙여 금속 물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진수는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탄피, 찾았다.”
이것으로 두 번째 탄피를 찾아냈다.
* * *
두 번 연속 탄피 찾기 신공을 발휘한 필두의 무용담은 또다시 널리 퍼져 나갔다.
뭐만 했다 하면 금세 화젯거리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인물, 그가 바로 강필두였다.
“행보관님, 혹시 탄피 찾아내는 비결이라도 있으십니까?”
간부 식당에서 식사를 진행하던 포대장이 슬그머니 물었다.
만약 정말 비법이 있다고 한다면, 무슨 일을 해서든 배워두고 싶었다. 그래야 차후에 탄피 분실 사건이 발생해도 자력으로 회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법이다.
이번에도 이와 마찬가지다.
필두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포대장에게 말하기도 좀 그렇다.
분명 좋은 건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필두가 내민 결론은 이거다.
“그냥 제가 운이 좋았던 겁니다.”
“우, 운입니까?”
“예. 마침 앞에 탄피가 떨어져 있더군요. 그걸 집었을 뿐입니다.”
말 그대로 운이다. 운을 비법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지 않은가.
“행보관님은 유독 탄피 찾기 운이 좋으신가 보군요.”
“그런 거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대화에 어울려줘야 하는 자신이 그저 우스꽝스러울 따름이었다.
하나 며칠 뒤, 더 웃긴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 * *
“파견 말입니까?”
“예, 행보관님.”
대대장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동기 중 한 명이 지휘하고 있는 대대가 요 근처에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사격 훈련하다가 탄피를 잃어버렸는데, 그걸 찾지 못해서 지금 이틀째 밤을 지새워가며 수색 중이라고 합니다.”
“허허…….”
“게다가 잃어버린 개수만 하더라도 자그마치 2개입니다.”
한 개도 아닌 두 개나 분실하다니. 부대가 뒤집어질 만도 했다.
“그 친구를 위해서라도 행보관님이 나서주시면 정말 감사할 거 같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행보관님께서 유독 탄피 찾기 운이 좋다는 건 포대장한테 들었습니다. 못 찾아도 딱히 행보관님에게 아쉬운 소리 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그냥 저 도와준다고 생각하시고 한 번만 시간 좀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간곡해 보였다. 대대장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꽤 친한 동기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대대장을 위해 움직여주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필두가 9090대대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더 강해진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고작해야 탄피 찾기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 정도면 껌이다.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행보관님!”
이리하여 분실 탄피를 찾아내기 위한 필두의 특별 파견이 결정되었다.
* * *
제1포대 레토나를 타고 5319대대로 향하는 필두.
레토나 안에는 운전병과 필두, 그리고 서수오가 자리해 있었다.
“행보관님. 수오는 왜 데려가시는 겁니까?”
레토나 운전병은 아까부터 그게 궁금했다.
그는 필두가 탄피를 찾기 위해 5319대대로 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탄피 찾기에 특화된 인력은 강필두 혼자뿐이다. 수오는 굳이 필요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에 이런 질문을 꺼낸 것이다.
그러나 들려온 대답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냥.”
“그, 그렇습니까.”
결국 ‘아무 이유 없음’이었다.
하나 대외적으론 그렇지, 실제로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서수오는 필두와 마찬가지로 마나를 다루는 자, 흑마법사다.
필두가 했던 방식을 똑같이 시행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러 그를 대동한 것이다.
탄피가 2개인데다가 대대급 단위의 병력들이 이틀이나 수색작전을 펼쳤는데도 못 찾았다고 할 정도면, 찾아봐야 할 범위가 꽤 넓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일부러 수오까지 대동을 한 것이다.
5319대대에 도착하자, 그곳의 대대장이 필두를 열렬히 환영했다.
“먼 곳에서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사격장은 어디입니까? 바로 수색해 보겠습니다.”
“아무쪼록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 대대 운명이 행보관님한테 달려 있습니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5319대대는 보병대대다. 그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9090대대에 비해 사격장이 비교적 큰 축에 속했다.
사로도 20사로까지 있다. 확실히 앞선 경우들보다 훨씬 난이도 있어 보였다.
그러나 필두가 누구인가. 최강의 흑마법사다. 레디너스 대륙 전부를 적으로 돌리고도 살아남은 희대의 악인이 고작해야 탄피 2개에 어려움을 겪을 리 있겠나.
“바로 시작하자.”
“예.”
필두와 수오가 마나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뒤.
“찾았군.”
“저도 하나 찾아냈습니다.”
“어느 쪽이지?”
“20사로 옆쪽입니다. 땅에 살짝 파묻혀 있습니다.”
“내 것은 1사로 쪽에 있군.”
1사로의 탄피도 20사로와 마찬가지로 살짝 땅에 묻힌 상태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더니. 딱 그 상태군.’
금속 탐지기도 몇몇 보인다. 최첨단 장비까지 동원했음에도 탄피 2개를 못 찾아내다니.
심지어 멀리 떨어져 있던 것도 아니다. 사로 근처에 떨어진 채로 있었는데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필두의 골치를 아프게 만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드는 군대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 * *
이틀간 해결되지 못했던 5319대대 탄피 분실 사건도 깔끔하게 해결한 필두.
그 덕분에 그에겐 ‘탄피 찾기의 달인’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능력을 인정받는 건 좋지만, 그 덕분에 여기저기서 탄피 좀 찾아달라는 애원의 물결이 쇄도했다.
한동안은 분실되었던 탄피들을 찾아주는 데에 이리저리 끌려다녔던 필두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행보관님.”
“또 왜. 설마 탄피 찾아달라는 요청은 아니겠지.”
당직병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당직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니고, 방송국 사람이라고 하는데 행보관님이랑 대화 좀 나누고 싶다고 합니다.”
“…….”
마지못해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안녕하세요, 행보관님! ‘세상에 이런저런 일이!’를 연출하고 있는 황오영 PD라고 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탄피 찾기의 고수’ 편에 주인공으로 출연하실 생각 없으신지요?
필두가 들려줄 대답은 뻔했다.
“관심 없습니다.”
-그, 그러지 말고 이야기를 좀 더…….
뚝.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제 탄피의 ‘ㅌ’ 자만 들어도 지긋지긋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