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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159화 (159/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59화

제40장. 탄피 찾기의 달인(2)

탄피 분실 소식을 접한 순간, 통제관의 입에서 이런 탄식이 튀어나왔다.

“망했다.”

지금의 상황을 아주 단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볼 수 있었다.

정말로 망했다.

설마 탄피가 분실될 줄이야.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야, 임마! 너 탄피 제대로 확인 안 하고 뭐 했어!”

통제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잔소리를 듣는 입장이 되어버린 하나포 반장도 나름 할 말이 있는 모양인지 탄피바지를 들어 올렸다.

“여기에 구멍이 났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게다가 야간이라서 잘 보이지도 않은 터라…….”

“그래도 네가 한 번 더 확인했어야지! 어이구, 미쳐 버리겠다. 진짜!”

골 때리는 일이 발생했다. 탄피 분실 소식이 대대장의 귀에 들어간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야간 아닌가. 시야 확보도 제대로 안 되는데, 여기서 탄피를 어떻게 찾아야 좋을지 앞길이 막막했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이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전원 손전등 들고 탄피 찾는다, 실시!”

“시, 실시!”

졸지에 탄피 수색 작전이 펼쳐지게 되었다.

* * *

한편, 사격장 뒤쪽에서 7, 8조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필두가 결국 먼저 행동에 임했다.

“무슨 일 있나.”

“해, 행보관님 오셨습니까.”

말을 살짝 더듬는 통제관의 행동에 무슨 사고가 발생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병사들이 각각 손전등을 들고 바닥을 비추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냥 가벼이 넘길 행보관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장소가 사격장이라고 한다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탄피가 분실됐나 보군.”

단번에 상황을 간파하는 필두였다.

필두가 눈치가 빨라서 그런 게 아니다. 상황이 너무 뻔했다. 그래서 알아맞힐 수 있었던 것이다.

굳게 입을 다물던 통제관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주의한 탓에…….”

“아니, 됐다. 그리고 병사들, 뒤로 돌려보내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수색 작전에 다수의 인력은 필요 없다. 탄피는 내가 찾아낼 테니까.”

“행보관님이 직접 찾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부사관이 어디 있겠나.

“아닙니다, 행보관님!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못 찾은 탄피를 행보관님이 어떻게 혼자서 찾으시려고 합니까? 너무 홀로 책임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든 찾아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니, 너희는 방해만 되니까 물러서라.”

“그래도…….”

“명령이다.”

“…….”

군인이라서 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딱 지금이다.

명령. 이 한 마디만 언급하면, 제아무리 들러붙는 부하들도 한꺼번에 떼어낼 수 있게 된다.

“알겠습니다. 그럼 병력들 뒤로 물리겠습니다.”

“애들 돌려 보낼 준비해라. 탄피 찾는 데 얼마 안 걸릴 테니까.”

통제관은 필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상황에서 홀로 탄피를 찾겠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무리 아닌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자처해서 하겠다고 하니, 통제관으로선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사격장의 모든 인원이 뒤로 물러서 막사로 돌아갈 준비를 할 때, 필두가 마나를 흘려보냈다.

어차피 저들은 마나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다. 수십 번도 넘게 실험을 해봤지만, 마나를 느낄 만큼 뛰어난 감각을 지닌 병사는 진수와 수오를 제외하고 없었다.

애초에 두 사람도 레디너스 출신이다 보니 마나를 느끼는 게 가능했다.

마나를 흩뿌린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다. 고작해야 사격장 정도가 다였다.

탄피가 엄청 멀리 튕겨 나갔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로 요 앞에 떨어져 있을지도 몰랐다.

‘우선은 주변 수색이 먼저다. 수색 범위를 넓히는 건 그다음 일이 되겠지.’

탄피에 발이 달려 있지 않는 이상, 사격장 바깥에서 발견될 일은 없으리라 여겼다.

필두의 이런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1사로 쪽으로 다가간 필두가 아스팔트로 포장된 사로 바닥과 흙바닥이 맞물리는 경계 지점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손전등을 켜는 순간, 반짝이는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안 봐도 뻔했다.

“여기 있군.”

분실되었던 탄피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 * *

병사들을 불러 모은 채 불안감에 휩싸인 얼굴로 연신 한숨을 내쉬는 통제관.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행보관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기에 혼자서 탄피를 찾아낸다고 하셨을까.’

차라리 인력 다 투입해서 탄피 수색 작전을 펼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나 그 의심은 머지않아 깔끔하게 사라졌다.

“아직 안 내려가고 있었나.”

터벅터벅 걸어온 필두가 통제관과 병력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리 내려가라고 했거늘, 여태까지 필두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행보관님, 찾으셨습니까?”

통제관이 말했지만, 본인 스스로 별로 기대는 안 했다. 애초에 찾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20여 명의 인력이 20분 내내 수색해도 못 찾았는데, 고작 단 한 사람이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어떻게 탄피를 찾아낸단 말인가.

그러나 필두의 손에 들린 작은 물체를 보자마자 통제관의 표정이 싹 달라졌다.

탄피다!

“찾았다.”

“어, 어떻게 찾으셨습니까?”

“1사로 바로 앞에 떨어져 있었다. 이런 것도 못 찾다니. 쯧쯧.”

못 찾은 이들을 탓하기보다 찾아낸 필두의 업적을 찬양하는 게 더 빠른 것으로 보였다.

그걸 어떻게 찾았을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도 찾았으니 다행 아닌가.

“자, 이제 그만 내려가자.”

“예!”

그제야 통제관의 얼굴이 환해졌다.

* * *

이것저것 작업 지시를 하던 필두가 때마침 예초병들과 함께 인사과 근처를 지나치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대기하고 있어라. 인사과 좀 들렀다 올 테니까.”

“어느 정도 걸리십니까?”

“한 10분 정도. 오래 안 걸릴 거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나무 밑에서 쉬고 있겠습니다.”

예초병 중에서 최고참을 담당하고 있는 나정상이 후임병 두 명과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겠다는 말을 했다.

이후 예초기를 들고 나무 그늘로 향하는 예초병 3인방.

“읏차!”

등에 멘 무거운 예초기를 내려놓자,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와, 날씨 대박이네. 바지 밑단까지 다 젖었다, 야.”

나정상이 손으로 작업복 끝자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나정상뿐만이 아니었다.

한정욱도, 전도혁도. 두 사람 다 작업복이 땀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한창 더울 때라 그런 걸까. 아무리 그늘 밑에서 산들바람으로 열과 땀을 식히려 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다가 저희, 죽는 거 아닙니까?”

한정욱이 오죽 힘들면 이런 말까지 다 하겠나. 그러나 나정상은 손사래를 칠 뿐이었다.

“얌마. 엄살도 적당히 해라. 이 정도로 안 죽어.”

“그래도 열사병이라든지 이런 거 있지 않습니까.”

“너, 열사병 걸렸냐?”

“그렇진 않습니다만.”

“그럼 됐어. 그리고 입 놀릴 시간 있으면, 그냥 도혁이처럼 퍼질러 있어라. 쉴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쉬어두는 게 좋을 테니까.”

군대의 법칙 중 하나다. 쉴 때 쉬어라. 그렇지 않으면 많은 고생을 맛볼지어다.

예초병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아직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해가 중천인데, 벌써부터 생활관에서 쉴 생각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편, 제초병 3인방에게 10분간의 짧은 휴식을 부여한 필두는 인사과의 문을 열어 인사장교에게 안부를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인사장교님. 일은 좀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행보관님 오셨습니까!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인사과에서 따로 그를 호출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깜짝 등장을 하니 인사장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얼굴 좀 비췄습니다. 마침 근처에 지나갈 일도 있었고요.”

“하하, 그렇군요.”

본부포대 간부 중에서 필두와 가장 많이 얼굴을 마주하는 인물은 인사장교다. 신병 배치가 가장 큰 이유였다.

실제로 필두는 인사장교와 미리 쌓아놓은 친분 덕분에 꽤 많은 덕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신병을 제1포대로 끌어올 수 있었던 덕분에 인력난에 허덕이는 분과는 적어도 제1포대엔 없었다.

서수오를 제1포대로 끌어오는 데에도 인사장교가 많은 역할을 했다.

가벼운 대화라 하더라도 서로 얼굴 마주 보고 말하는 이 행동 자체가 중요하다. 그만큼 친분이 쌓인다는 소리니까.

서로 수고하라는 말을 남긴 채 다시 인사과 바깥으로 나서려는 때였다.

“그러고 보니 행보관님, 혹시 내일 시간 되십니까?”

“내일이요? 내일이라면 사격 훈련 있지 않습니까.”

휴가, 혹은 기타 이유로 사격을 하지 못한 병사들을 따로 모아 추가 사격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번에는 제1포대를 비롯해 본부포대, 제2포대, 제3포대까지 합동으로 이뤄진다. 각 포대당 인원수가 얼마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것과 관련된 일입니다. 내일 행보관님 중 최소 한 분 정도는 사격 훈련에 같이 동참해 주셨으면 하는데…… 대대장님이 직접 안전 통제하시니까 그게 보기도 좋을 거 같기도 해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다른 행보관님들은 개인 사정이 있어서 안 될 거 같다고 하셨습니다. 행보관님은 어떠십니까?”

“괜찮을 거 같습니다.”

작업 지시야 미리 내려놓으면 그만이다. 마법진 작업은 어느 정도 끝을 내뒀으니까.

그리고 다른 부대가 사격하는 모습도 직접 보고 싶었다. 제1포대보다 나은지, 못한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거절하지 않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 * *

다음 날. 저번 주에 사격에 불참했던 인원들이 대대 연병장에 모였다.

도합 40여 명 정도 된다.

그중에는 진수도 껴 있었다.

유격 훈련을 포함해서 여러 군데에서 받은 포상 휴가를 계속 썩혀두기만 하던 진수.

휴가를 너무 안 써서 결국 포대장이 거의 강제적으로 진수를 휴가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휴가를 갔다 왔지만, 본의 아니게 사격 훈련에 불참하게 되어 오늘 훈련에 참가하게 되었다.

전도혁의 동기인 고만해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아는 얼굴들이 포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의 사격 훈련은 영내 사격장이 아닌 외부 사격장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다.

사격장까지의 거리는 대략 20분 정도.

“행보관님, 도착했습니다.”

“오냐.”

선탑자 자리에서 내린 필두가 병사들에게 하차 명령을 내리기 직전이었다.

“충성!”

타 부대 간부 한 명이 행보관에게 다가왔다.

얼굴은 처음 보지만, 마크는 익숙했다.

필두와 같은 사단이다. 그러나 부대는 다르다.

1008대대다.

필두에게 다가온 하사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어려 있었다.

“충성. 무슨 일이지? 내가 알기론 오후 14시까지 사격장 비워주기로 했는데. 왜 아직도 있나.”

“그게 말입니다…….”

1008대대 소속 하사가 식은땀을 흘렸다.

이 상황. 왠지 저번 주에 한 번 접해본 것 같다.

“탄피가 하나 분실되어서…… 그거 찾느라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습니다.”

데자뷰(Deja-vu)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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