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56화 (156/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56화

제39장. 오랜만의 재회(1)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흑마법사 조직의 기습에 대비해 필두는 부대 주변의 보안을 더 철저하게 했다.

필두가 머물던 요새 정도의 보안을 자랑할 만큼은 안 됐지만, 그래도 초창기 9090대대의 모습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많이 나아진 셈이었다.

예전에는 멧돼지 한 마리조차 방어하지 못해냈던 철조망도 이제는 개미 새끼 하나 얼씬거리지 못할 만큼의 위력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외형의 변화는 없다. 필두의 마법진 때문에 철통 같은 보안의 힘을 얻게 된 것이다.

필두가 설정해놓은 보안 경비의 수준은 다음과 같았다.

인위적인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는 순간, 그 즉시 적으로 인지하고 마법진 트랩이 발동한다.

위력도 상당하다. 필두가 혼신의 힘을 다해 제작했으니, 웬만한 적은 얼씬도 못할 것이다.

설사 흑마법사 조직의 일원이라 해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놈들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네 명. 우두머리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면, 아마 최악의 시련이 될지도 몰라.’

민간인이 살해된 민가까지 가서 그들의 흔적을 확인하는 데에 만전을 기했다.

한 명의 소행이 아니다. 적어도 다수다.

필두가 조직의 우두머리라면, 이번 습격에 사활을 걸 것이다. 더 이상의 조직원 낭비는 무의미하다.

제아무리 우두머리가 강하다 할지라도 필두가 적이라면 고전을 면치 못할 터였다.

필두는 레디너스 대륙에서도 흑마법 계통에서 절대적인 권위자로 불렸다.

물론 흑마법이라는 분야 자체가 마법사들에게 배척당하고 금기시 당한 분야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한 곳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달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본인보다 강하진 않을 것이다. 그것이 필두의 생각이었다.

저들이 이길 방법은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필두는 혼자서 행동하는 고독한 늑대.

그것은 타인에게 배신당할 우려가 없다는 장점도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편이 없다는 단점도 내포하고 있다. 필두가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조직은 어떻게 해서든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비록 진수와 수오가 있다고는 하나, 진수와는 협력 관계가 아니다. 수오도 필두에게 충성을 맹세하긴 했지만, 그건 마음에서 우러나온 충성의 맹세가 아닌 외부의 강압으로 인해 나온 강제 충성 맹세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결국 필두는 이곳에서도 혼자다.

아니, 혼자가 아닐지도 몰랐다.

쉬는 날에 찾아온 필두의 어머니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슬슬 그 아가씨랑 결혼 생각하는 게 어떠냐.”

순간 필두가 헛숨을 삼켰다.

결혼이라니. 물론 혜정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계기는 결혼을 전제로 했던 게 옳았다. 그러나 아직 1년도 안 됐는데 결혼을 논하기엔 좀 빠른 거 아닐까.

‘아니지. 레디너스에선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결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니까.’

자손을 낳고 인력, 일손을 확보한다. 농사를 본업으로 삼는 가족들은 대게 이런 경우의 수가 많았다.

그러나 이곳은 레디너스와 다르다.

“좀 이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이르긴 뭐가 일러. 새 아가, 마음씨도 참하고 예쁘고. 요즘 그런 여자 찾기 힘들어. 놓치기 전에 빨리 결혼부터 해라.”

“…….”

“듣자 하니 그쪽 부모님도 결혼 이야기 슬슬 꺼냈으면 하는 눈치던데. 넌 안 그러냐.”

“아직 부대 일도 있으니…….”

“충분히 잘해내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그러지 말고 혼기 놓치기 전에 잡아둬라. 새 아가도 서른 넘었잖아. 여자 나이 서른 넘으면 결코 적은 나이 아니야. 새 아가 더 기다리게 하지 말고 네가 남자답게 먼저 청혼해. 그쪽도 오케이 할 거다.”

그 말이 맞긴 하다. 혜정은 초기부터 필두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지금은 더 마음이 깊어졌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필두가 알 정도니까 이건 거의 확실하다.

게다가 부대를 핑계로 대는 건 이제 더 이상 그의 부모님에게 먹히지 않았다.

빨리 손자를 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일단 생각 좀 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런 여자 찾기 쉽지 않아.”

“명심할게요.”

그건 필두도 예전에 인정했다.

민혜정. 그녀는 정말 좋은 여자다. 남을 생각할 줄 알고, 자신의 감정을 내세워 무작정 고집을 부리지도 않는다.

최대한 필두의 시점에서 그의 고충이 어떤지 이해하려 노력하기도 하고, 비싼 선물이라든지 돈에 연연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먹고살 정도만 되면 그만이다. 그것이 혜정의 마음가짐이었다.

‘결혼이라.’

흑마법사 조직이 습격을 가해오기 전에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한 기분이었다.

* * *

월요일 아침의 해가 밝았다.

오전 8시 반에 필두의 차량이 사열대 앞에 도착했다.

차를 정차시키고 행정반으로 향하는 그의 걸음이 그리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주말 내내 결혼 이야기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육성으로도, 전화상으로도 계속해서 결혼, 결혼, 결혼 노래를 부르는데 필두가 어찌 반가이 받아들이겠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주말에 출근해서 부대 관리나 할걸. 이런 후회도 들었다.

부대가 편하게 느껴지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행정반에 들어서며 업무를 보던 와중에 하나포 반장이 행보관실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행보관님, 접니다.”

하나포 반장이 고개를 슬쩍 들이밀며 자신의 방문 소식을 알려왔다.

깐돌이 하나포 반장의 등장에 필두가 퉁명스레 반응했다.

“왜 왔냐. 혹시 사고라도 친 건 아니겠지.”

“에이, 행보관님. 제가 언제 심각한 사고라도 친 적 있습니까. 그보다 보고드릴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말해봐라.”

그렇다고 보고 내용을 패스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하나포에게 보고할 것을 명했다.

“주말에 면회 신청할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면회? 굳이 나에게 신청하러 올 이유가 있나.”

하나포 반장은 병사가 아닌 간부다. 면회 오면 그냥 가서 만나면 된다. 그런데 구태여 행보관에게 허가를 구할 필요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세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면회를 하는 게 아니라 하나포 애들 전체한테 면회 오는 겁니다.”

“누구지? 그 사람이.”

“진언이입니다.”

소진언. 실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필두는 소진언의 개인 연락처를 알고 있었다. 행보관이니 그건 당연했다.

그러나 전역 이후, 따로 진언과 이렇다 할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필두가 먼저 솔선수범을 해 연락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고, 진언도 괜히 자신이 전화하면 필두가 일 보는 데 방해나 되는 건 아닐까 해서 일부러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포 인원들과는 자주 전화 통화를 했었다.

“지지난 주였나. 그때 진언이가 조항이랑 통화 나누다가 면회 이야기가 나왔었나 봅니다. 마침 진언이, 학교도 방학했다고 해서 이번에 한 번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군.”

전역자가 부대로 찾아오는 건 필두가 행보관을 맡으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소진언의 방문을 막을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애초에 그런 생각도 안 들었다.

“오라고 해라. 이번 주 주말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때마침 나도 그때 당직이군. 면회 왔을 때 면회실에 있다가 때 되면 막사로 데려와라.”

“막사까지 올려보내도 됩니까?”

“내가 허락할 테니까 괜찮다.”

“예, 알겠습니다!”

본래 민간인을 막사로 들이는 일은 잘 없다. 그러나 소진언은 좀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전역자가 온다는데, 그만한 대우 하나 못 해줄까.

‘이번 주 주말이라고 했지. 달력에 체크해둬야겠군.’

소진언의 방문은 필두에게까지 묘한 기대감을 심어줬다.

* * *

토요일 아침부터 하나포는 분주한 움직임을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

“A급 전투복에 줄이 하나도 안 가 있었네?”

“아이, 썅! 어제 불광 좀 내둘걸!”

“성태, 다리미질할 시간 있냐?”

“지금 다리미, 누가 쓰고 있습니다.”

소진언이 온다는 소식에 하나포 병사들은 휴가, 외박, 면회 때에만 꺼낸다는 A급 전투복과 전투화를 꺼내 꽃단장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나포 반장이 어이가 없는 웃음을 흘렸다.

“야야야. 여자한테 잘 보이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잔뜩 기합 줘봤자 무슨 소용이냐. 그냥 평소 입던 전투복 입고 내려가.”

“그래도 왠지 진언이 형이 A급 전투복에 줄 안 가져 있으면 엄청 놀릴 거 같지 않습니까.”

“그냥 한 번 놀림 받고 끝나면 될 일이지. 이래서 군인들은…… 어휴.”

하나포 반장, 본인도 군인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거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하나포 분과원들의 대대적인 꽃단장식이 드디어 끝을 맞이했다.

사열대 앞에 나란히 모인 이들. 인솔자 위치에는 김조항이 섰다.

“앞으로 갓.”

그의 ‘왼발, 왼발, 왼발.’ 구령에 맞춰 발걸음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면회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소진언을 만나는 것도 좋긴 하지만, 그보다 더 반길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저 멀리 오와 열을 맞춰 내려오는 이들을 향해 소진언이 양손을 번쩍 들었다.

“동생들아! 형 왔다!”

진언의 양손에는 치킨과 피자가 한가득 포장되어 있었다.

여자, 그리고 먹을 거. 군인이 환장하는 요소 중 하나를 갖춰 온 소진언의 방문을 그 누가 반기지 않을 수 있을까.

면회실에 마련된 탁자 2개를 이어 붙인 뒤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현(現) 하나포 멤버들과 전(前) 하나포 멤버 하나.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병사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치킨과 피자를 거침없이 해치워가기 시작했다.

이들의 모습을 보던 소진언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래, 그래. 형이 사온 거니까 마음껏 먹어라. 그보다 신병 많이 들어왔네. 막내가 누구야?”

“이병 서수오! 접니다!”

이병들 사이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어 치우던 수오가 번쩍 손을 들었다.

사회에 있을 때, 수오는 일주일에 최소 네 번 이상 치킨, 피자를 먹을 만큼 이 음식에 길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군대에 온 뒤로 짬밥만 먹으려고 하니 혀가 마비될 것만 같았다.

그러니 진언의 방문은 사막 한가운데에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고결하게 느껴졌다.

반면, 진수는 여전히 다른 이등병들과 다르게 치킨, 피자에 집착하지 않았다. 실로 진수다운 모습이었다.

“마음껏 먹어. 그리고 차 안에 더 있으니까 이거, 조금 있다가 막사로 가져가서 다른 분과 애들한테도 나눠주고.”

“역시 진언이 형이야!”

“사랑합니다, 행님!”

도혁과 성태가 진언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때 조항이 진언에게 같이 막사로 올라갈 것을 제안했다.

“형도 우리 따라서 올라가자.”

“응? 나, 올라가도 되냐?”

“행보관님이 허락해 주셨으니까 괜찮아.”

“역시 우리 행보관님이라니까!”

필두가 빡센 행보관 축에 속하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에 있어선 시원스러운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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