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55화
제38장. 다가오는 위협(3)
어둠이 짙게 깔린 해안가 마을 근처.
이곳으로 장소를 옮긴 필두와 수오는 우선 주변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근처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무장공비를 수색하기 위해 군인들이 밤을 지새우며 경계 모드에 들어가 있었다.
우선은 저들의 감시망을 피하는 게 일이다.
“조심해서 따라와라.”
“예.”
마나도 운영할 줄 모르는 일반인에게 필두와 수오가 들킬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는가. 신중함은 꼭 필요한 덕목 중 하나다.
필두가 목표로 삼은 장소는 사건이 벌어진 민가 근처다. 무장공비로부터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건, 다시 말해서 적어도 남한으로 건너온 그들이 민가를 한 번은 들렸다는 말과도 같기 때문이었다.
흔적을 찾기 위해서라도 이들이 들렸을 법한 장소로 이동하는 편이 좋다.
민가 근처로 다가간 이들. 그러나 근처에는 사건 현장을 보전하기 위해 경찰과 군인들이 대기 중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오가 필두에게 의사를 물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일대 주변의 경찰, 군인들에게 최면을 걸든가. 수면 마법을 걸든가.
그러나 그렇게 되면 꽤 많은 마나를 소비해야 한다. 한 명이 아닌 다수의 사람에게 한꺼번에 마법을 발동시키는 셈이니 말이다.
“은신하고 들어간다.”
“예, 알겠습니다.”
투명화 버프를 건 뒤 민가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소음 차단 마법까지 걸어둔 덕분에 이들이 이동하는 흔적이 외부로 새어나갈 일은 전혀 없었다.
조심스레 민가 안으로 들어섰다. 핏자국이라든지 이런 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량의 출혈을 야기하는 외상보다 내상을 통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른 듯해 보였다.
‘하긴, 그쪽이 뒤처리하기에도 편할 테니까.’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느냐를 알아봐야 한다.
“…….”
필두가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과거 조승천과 김한이 살해당했을 때 조사했던 방법과 동일했다.
마나의 흔적이 느껴지는 곳이 있는지 없는지. 마법이 사용되었는지 아닌지를 구별한다.
결과가 나오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녀석들이군.”
필두의 말을 듣자마자 수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게 있다.
조직의 우두머리가 직접 왔을까? 수오는 그게 궁금했다.
“과연 녀석들이 전부 다 남한으로 넘어왔을까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필두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왔을 거다.”
“그걸 어찌 압니까?”
수오는 의견이 달랐다.
흑마법사 조직의 우두머리는 자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겨왔다. 심지어 같은 조직원에게까지도.
그런 그가 직접 행동에 임한다? 수오의 입장에선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필두는 단언할 수 있었다.
“난 놈이 탐을 낼 수밖에 없는 걸 가지고 있으니까. 분명 녀석은 날 직접 상대하려 들 거다.”
“그게 뭡니까?”
“다시 레디너스 대륙으로 돌아갈 방법.”
“……!”
수오의 눈에 놀라움이 가득 찼다.
이건 수오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필두가 레디너스로 돌아갈 방법을 알고 있다고?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알고 싶나 보군.”
필두가 정곡을 찔렀다.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만 끄덕이는 수오. 속내를 숨기고 싶어도 필두 앞에서는 숨기는 게 불가능했다.
“알려줄까.”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아니. 내가 미쳤다고 너한테 그걸 알려주냐. 절대로 안 되지.”
“……기대도 안 했습니다.”
필두가 무슨 득이 있다고 수오한테 그걸 알려주겠나.
레디너스로 돌아갈 방법이 있다는 언급을 들려줬을 때, 수오는 애초에 그가 자신에게 방법을 공유할 거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감도 큰 법이니까.
“근데 그자들이 어떻게 필두 님이 다시 레디너스로 돌아갈 방법을 지니고 있다는 걸 어찌 압니까?”
“너희를 차원이동 시킬 때, 리더로 추정되는 놈한테 메시지를 미리 하나 보내뒀었다.”
“그게 뭡니까?”
“‘너를 죽이고 다시 레디너스로 돌아가겠다’라고 말이지.”
타깃으로 삼았던 흑마법사 중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담은 텔레파시를 보낸 적이 있었다.
만약 그것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필두를 만나려고 할 것이다.
방법을 알아낸 이후에 필두를 죽인다. 그것이 우두머리의 목적이리라.
그런 와중에 수오는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돌아갈 방법을 알고 있는데 왜 계속 여기에 머물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뭔가 좀 이상하다. 그러나 수오는 아직 필두의 속사정에 대해 알지 못했다. 조직의 우두머리를 겨냥해 일부러 다량의 차원이동 마법을 발동시켰다는 사실을.
그리고 흑마법사 조직의 우두머리가 필두의 원수라는 것도 아직 수오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래서 의구심만 쌓일 수밖에 없었다.
필두는 애초에 자신에 관련된 이야기를 남에게 잘 하지 않는 타입의 남자다. 비록 충성을 맹세한 부하라고 한들, 필두와 마음을 터놓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까진 아니었다.
* * *
조금 전까지도 방 안에 누워 TV를 시청하던 소예나는 지금,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해안가와 마주했다.
계기는 진수의 메시지였다.
-드리무어를 쫓는다. 지금 당장 나오도록.
이 말 때문에 예나는 애청하던 영화 관람을 포기하고 진수가 있는 쪽으로 바로 향했다.
진수와 함께 도착한 곳은 9090대대 부대와 반대 방향에 있는 서해안 끝자락의 어느 마을이었다.
“드리무어가 왜 이곳에 온 겁니까?”
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필두의 기행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레디너스에서도 그의 행동을 예측하기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진수는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무장공비 때문인가 보군.”
“무장공비라면…… 또 흑마법사, 그들입니까?”
“아니, 그건 아직 확실하지 않아. 아마 드리무어도 그걸 확인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거겠지.”
병사들은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 대한 정보를 듣지 못했었다. 그저 포대장이 ‘북한의 도발이 심해질 징조가 보이니 경계 똑바로 서라’라는 말만 전해 들은 게 다였다.
그러나 속사정은 달랐다.
‘보아하니 민간인들까지 피해를 입은 거 같은데. 뉴스에도 나온 적은 없어. 국방부가 언론을 통제한 건가.’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경찰과 군인들이 유독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하다 보니 사건이 발생한 민가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조심스레 행동하며 나오는 필두와 수오를 목격할 수 있었다.
필두의 표정을 예의주시했지만,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괜히 그가 포커페이스의 달인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담벼락을 넘어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한 필두가 수오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녀석들의 소행이 확실한 거 같군.”
“……?”
“마법을 사용한 흔적이 느껴져. 조만간 놈들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릴 게 틀림없다.”
“그건 아까 한 말 아닙니까?”
왜 같은 내용을 두 번이나 반복해 말하는 걸까. 수오는 필두가 무엇을 의도하는 것인지 영 알 방법이 없었다.
한편, 필두의 말을 접수한 진수가 예나에게 입을 뻥긋하며 말했다.
‘가자. 필요한 정보는 입수했다.’
‘예.’
진수와 예나가 모습을 감춘 뒤.
이들이 잠복해 있던 뱡향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필두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밤 말을 몰래 듣는 쥐 녀석들한테 떡밥 좀 던져줬을 뿐이다.”
“……?”
수오는 여전히 필두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 * *
아침 식사 이후 오전 집합이 거행되었다.
근무 휴식이고 뭐고 그런 것도 필요 없다는 듯이 사열대로 들어선 필두. 그가 병사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이번 주, 제1포대 자체 진지공사 시즌을 거행한다.”
“……?”
“자, 자체라니…….”
“그게 무슨…….”
병사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진지공사는 다음 주부터 시작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자체 진지공사라니.
병사들이 이해력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행보관 강필두의 독단으로 제1포대만 이번 주부터 진지공사 시즌에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점도 잘 안다. 그럼에도 병사들이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못한 건 단 하나의 이유뿐이었다.
현실 도피.
방금 접한 악몽 같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
하나 그러기가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이때 휴가 쓸걸!’
‘하, X발. 내 군 생활 망했네.’
‘전역이 다음 주인데!’
이 원성을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되는 순간, 그 즉시 진지공사의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게 뻔 하다는 걸 병사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한편, 도혁을 비롯한 예초병 3인방은 필두의 진지공사 시즌 확장 소식에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예초병을 택한 게 정답이었어!’
예초기를 잡고 나서 엄청난 후회를 하긴 했었으나, 그래도 틀리지 않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에 절로 흥이 피어올랐다.
하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예초병들.”
“병장 나정상!”
“상병 전도혁!”
“일병 한정욱!”
“근처에 벙커 몇 개 더 만들 거다. 뒷산 언저리, 위병소 맞은편 산 입구에 만들 거니까 내일까지 깡그리 다 제초해 둬라.”
“……!”
헛숨을 절로 삼켰다.
부대 안도 아니고 산에 들어가서 제초를 하라니!
부대와 산속은 애초에 잡초들의 퀄리티가 다르다. 부대 영토 제초 작업이 고추장 정도라고 한다면, 산속 제초는 캡사이신 수준이다.
예초병의 지옥이라 불리는 산속 제초.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초병 3인방은 현기증을 느꼈다.
모두가 불행한 진지공사 시즌이 제1포대 한정으로 1주 먼저 시작되었다.
* * *
한창 바삐 움직이는 병사들. 곡괭이와 삽이 춤을 출 때마다 이들의 몸에서 굵은 땀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게다가 산속 작업이라 그런지 벌레들도 너무 많다. 혹여나 뱀이라도 나올까 봐 근처에 담뱃재를 탄 물들을 주변에 뿌려뒀지만, 작은 벌레들의 공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가장 짜증 나는 건 역시 모기다.
따갑고, 피 빨리고. 사운드까지 귀에서 ‘앵앵’ 거리면서 맴돌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고통을 선사하는 최악의 벌레다.
“도대체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거람!”
“그래도 행보관님 말씀이신데, 어길 수도 없지 않습니까.”
“하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병사들의 불평불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이번 진지공사는 편하게 넘어가지 않을 거로 이들 역시 예상했었다. 그러나 설마 진지공사를 2주로 잡으면서까지 빡세게 굴릴 줄은 몰랐다.
병사들이 더위, 벌레와 전쟁을 펼치고 있을 때, 필두 또한 마찬가지로 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움직였다.
필두가 진지공사 시기를 1주 확장시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놈들의 목적이 나라면, 분명 9090대대로 찾아올 터. 미리 대비를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병사들에겐 차마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흑마법사들이 습격해 올지도 모르니 진지공사를 하자고 말해봤자 누가 믿어주겠나.
이것도 결국은 제1포대 인원들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흑마법사 조직의 습격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이 이들에게 주어진 히든 미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