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54화 (154/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54화

제38장. 다가오는 위협(2)

수오가 하나포로 배정받았을 때, 시전은 바로 옆 전포인 둘포 분과로 배정을 받았다.

시전이 말했던 그대로 같은 생활관을 사용하게 된 셈이었다.

비록 같은 분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훈련소 때처럼 같은 생활관을 공유하게 된 것만으로도 시전은 마음이 든든했다.

수오는 훈련병들의 영웅이라 불렸다. 그가 곁에 있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수오는 의외로 내무 생활도 잘 해내는 편이었다.

대기 기간임에도 딱히 모난 행동은 하지도 않고, 오히려 역으로 선임들이 필요한 부분을 정확하게 캐치해 행동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것들이 몇몇 있었다.

“…….”

생활관 마룻바닥에서 누운 채 TV를 보던 고만해 상병. 그가 대뜸 상반신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수오가 슬리퍼 하나를 꺼내 그의 발아래로 옮겨놓았다.

“고만해 상병님. 슬리퍼 여기 있습니다.”

“음? 내가 슬리퍼 필요하다는 거, 어떻게 알았냐.”

“그냥 남자의 감입니다.”

감이라고 하기에는 소름이 끼칠 만큼 정확한 안목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아직 대기기간에 불과한 신병이 알아서 이렇게 착착 자신을 위해 움직여주는데, 싫어할 선임이 어디 있겠나.

게다가 슬리퍼도 상태 좋은 A급이었다.

슬리퍼를 신고서 휴게실로 향한 고만해가 도혁과 마주쳤다.

“야, 도혁아. 너희 신병, 꽤 괜찮더라.”

“그래?”

“눈치가 엄청 빨라. 내가 이거 필요하다고 말해준 적도 없는데 알아서 착착 해내더라.”

고만해뿐만 아니라 다른 선임들에게도 이런 비슷한 말을 최근에 많이 들었다.

서수오. 그는 물건이다.

벌써부터 A급 병사로 분류되고 있으니, 이미 말 다한 셈이었다.

“아무튼 복덩이가 제대로 굴러들어왔네. 훈련소 때 최우수 훈련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며?”

“그렇지.”

“좋겠다! A급 후임 들어와서.”

부러움을 어필하는 고만해였다. 진수는 처음엔 고지식한 면이 좀 있었는데, 수오는 뭐랄까.

선임들의 비위를 살살 맞춰가면서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하는 여우 같은 타입의 인물이었다.

고만해와 함께 수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김조항과 함께 휴게실을 방문한 수오가 도혁에게 다가왔다.

“전도혁 상병님. 전화카드 여기 있습니다.”

“카드? 이걸 왜 나한테?”

“조금 있다가 전화 사용하실 거 같아서 미리 제가 챙겨왔습니다.”

“내가 카드 안 챙겼었나?”

“예.”

“가만…….”

활동복 주머니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전화카드는 보이지 않았다.

도혁은 수오의 말대로 전화 부스를 사용하기 위해 이곳 휴게실을 찾았다. 그런데 막상 전화카드를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았다니.

“내가 몰랐던 걸 네가 어떻게 알았냐.”

“그냥 감입니다.”

“또 그놈의 감이냐.”

여자의 감을 뛰어넘는 서수오의 감. 소름이 돋을 만큼 정확했다.

눈치 빠른 수오의 행동 덕분에 조항의 얼굴에는 연신 웃음꽃이 피었다.

“잘하네, 우리 신병. 그러고 보니 선임병들 얼굴하고 이름도 다 외웠었지?”

“예. 저기 코인 노래방 안에서 노래 부르고 계신 분이 서민서 병장님하고 지운호 병장님, 그리고 축구 게임 하고 계신 분이 하태오 상병님하고 류민기 일병님입니다.”

“대단하네.”

개인정비 시간이었기 때문에 저들은 전투복이 아닌 활동복을 입고 있었다. 활동복에는 전투복과 다르게 주기표가 따로 없다. 그럼에도 수오는 지목하는 선임들의 관등성명을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자대 전입을 온지 이제 몇 시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미 그는 제1포대 인사들을 전부 다 외우는 데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간부들 얼굴까지 다 알고 있었다. 놀랄 만큼 뛰어난 기억력이었다.

너무나도 뛰어난 역량이 황당한 웃음을 지은 도혁이 속내를 드러냈다.

“진수 놈도 처음 왔을 때에는 ‘뭐 이런 놈이 다 있어?’라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그보다 더한 녀석이 오게 될 줄은 몰랐네.”

“앞으로 많은 가르침,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전도혁 상병님!”

“그래. 나도 최대한 도와주마. 그리고 전화카드, 대신 챙겨줘서 고맙다.”

“예.”

눈치 9단. 이것이 수오에게 붙은 새로운 별칭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깨닫지 못했다.

수오가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눈치 있는 행동을 선보이는지를 말이다.

흑마법사들의 특기 중 하나가 바로 정신조작 마법이다.

이것을 응용하면 필요한 때에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그 의도를 파악하는 데에도 이용할 수도 있다.

슬리퍼가 필요하다, 전화카드가 필요하다. 이런 마음의 소리를 접한 수오는 바로 행동에 임했다.

그래서 눈치 빠르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마법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는 일반인이기에 통하는 수단일 뿐이지, 필두나 진수 같은 달인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유격 습격 사건 때 필두의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수오와 필두의 기량 차이가 월등히 난다는 것을 뜻했다.

‘내 신세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선임병들에게 칭찬을 듣긴 했지만, 수오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 * *

평일 오전 아침부터 대대장은 각 포대 주요 간부들을 소집시켰다.

국방부에서 내려온 공문 때문이었다.

“위에서 공문이 하나 내려왔는데, 최근 서해안 부근에 간첩의 소행으로 보이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더군. 민간인 2명이 이유도 없이 죽었는데,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타살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네. 당분간은 병사들에게 근무설 때 철저하게 임하라고 교육시키도록.”

무장공비. 그 단어를 듣는 순간, 필두의 얼굴이 금세 굳어졌다.

왜 하필이면 이 시기에? 타이밍이 너무나도 좋았다.

필두를 습격한 세 명의 흑마법사들이 역으로 당한 시점에서 찾아온 무장공비 소식. 흑마법사라는 단어와 연결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말로 그들이 필두를 습격하기 위해 남한으로 넘어온 것인지 살펴볼 필요는 있었다.

“어디서 발생한 사건인지 알 수 있습니까?”

필두가 대대장에게 장소 정보를 물었다.

“여기서 꽤 먼 지역인데…… 그보다 직접 가보시게요?”

“아닙니다. 그저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무장공비 침투 사건의 영웅이자 국민 행보관이라 불리는 필두였기에 이번 사건에 관심을 두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필두는 무장공비 전문 부대 소속 간부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는 155㎜ 견인곡사포 포병 부대의 행보관에 불과하다. 외부 일은 외부 부대에게 맡기는 게 적합하다.

그래서 필두도 일부러 관심 없는 척을 했다. 괜한 의심을 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말이다.

‘이건 개인적으로 알아봐야겠군.’

어차피 시간은 충분히 낼 수 있다. 굳이 여기서 조사 의지를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 * *

필두가 당직사관을 맡는 날.

자정이 되어갈 때 즈음, 당직병과 당직사병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필두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난 행보관실에서 자고 있을 테니까 그리 알고 있어라. 웬만한 일은 너희끼리 처리하고.”

“……?”

지금까지 필두는 당직을 서면서 단 한 번도 잠을 잔 적이 없었다.

다른 포대의 행보관이라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행보관실에 들어가서 충분히 수면을 취하곤 했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강필두도 그랬었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피곤하니 잠이나 자러 가겠다니. 이건 또 무슨 징조란 말인가.

여하튼 그렇게 말한 채 행보관실로 들어가 버리고 문을 닫았다.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던 당직사병과 당직병이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혹시 행보관님이 주무시는 척하고 막 순찰 돌러 다니시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거 같습니다.’

‘아니, 갑자기 이러시니까 또 이거 나름대로 무섭네.’

필두는 의미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 남자다. 분명 자러 가는 데에도 뭔가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당직들의 과대망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필두가 지금까지 보여준 전적을 떠올려 보라. 이런 의심이 안 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필두의 의도는 전혀 달랐다.

자러 간다고 하고서 실제로 자진 않는다. 여기까지는 당직들의 추측이 맞다.

문제는 이 이후부터다.

행보관실 창문으로 빠져나온 필두가 1생활관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12시 정각은 불침번들이 바깥 온도를 살피기 위해 생활관을 벗어나는 때다. 그 타이밍을 노려 생활관 안으로 들어온 필두가 빠르게 하나포 분과 인원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 뒤, 검지로 수오의 이마를 두세 번 툭툭 쳤다.

눈을 번쩍 뜬 수오가 필두를 올려다봤다. 입은 열지 않았다. 혹시 몰라 텔레파시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데에 집중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행보관님.

-잠시 나와 갈 곳이 있다. 준비하도록.

-지금 말입니까?

-그래.

대기 기간인 터라 수오는 다른 병사들과 다르게 근무 로테이션에 당분간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수오는 자신의 분신수를 생성해 매트리스 안에 넣어뒀다. 빈자리가 있다는 것을 불침번들이 발견하면 큰 소란이 벌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막사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두 사람. 그때, 진수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

‘드리무어. 또 무슨 꿍꿍이지.’

* * *

막사를 나선 수오가 필두에게 자신을 데리고 나온 이유를 물었다.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얼마 전에 무장공비가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 소식은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만.”

“당연히 그러겠지. 위쪽에서 정보를 철저하게 통제했으니까.”

언론 통제도 들어갔다. 병사들에겐 무장공비의 짓이 확실하다고 밝혀지기 전까지는 당분간 이야기하지 않을 방침인 듯했다.

국방부가 하는 일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필두와 그리 크게 상관은 없었다. 애초에 흑마법사를 상대해야 하는 건 행보관 강필두가 아니라 드리무어여야 하니까.

“해안가 근처 마을. 여기서부터 300㎞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하더군.”

“꽤 먼 거 같습니다만.”

차를 타고 이동하면 최소 3시간 이상은 걸릴 거리다.

그러나 이들이 누구인가. 이미 흑마법을 통달한 마법사 중에서도 마법사다.

“300㎞ 정도면 우습지.”

마법을 사용하겠다는 것을 뜻했다.

“바로 이동할 터이니 준비해라.”

“예, 알겠습니다.”

좌표 설정 이후 순간이동을 준비한다.

가본 적이 없는 장소까지 순간이동을 하는 것에는 많은 불안 요소가 따른다.

그러나 그건 일반 마법사들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 필두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이 정도는 껌이다.

비록 차원 이동을 거치고 난 이후의 필두는 예전의 드리무어 본연의 힘에 미치지 못하는 기량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클래스는 영원한 법.

누가 뭐라 해도 드리무어는 드리무어였다.

바닥 안에 새겨진 원 안으로 들어온 서수오가 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준비 다 되었습니다.”

“그럼 이동하지.”

이들의 주변에 밝은 빛이 형성되었다.

순간이동 마법이 발동된 이후에 사라진 두 남자. 그 모습을 숨어서 바라보던 진수가 짧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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