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53화 (153/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53화

제38장. 다가오는 위협(1)

야심한 시각.

서해안 근처에는 짙은 어둠이 깔렸다.

인적이 드문 바닷가. 들려오는 건 파도치는 소리와 벌레들이 우는 소리뿐.

그러나 이들 사이로 이질적인 소음이 섞여 들어왔다.

사락, 사락.

누군가가 모래사장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

“…….”

“…….”

바닷가에서 불쑥 솟아오른 세 인영이 해변으로 들어섰다.

한껏 자세를 낮춘 이들은 어두컴컴한 환경에도 마치 대낮과도 같이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가장 선두에 선 존재가 뒤따라오는 둘에게 손짓했다.

전방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후 수풀 근처까지 다가간 이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리에 안착했다.

그 와중에 다른 남자 한 명의 오른손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이들이 머무는 곳 주변을 맴돌았다.

마법이었다.

“근처에 누군가가 오면 바로 알려줄 겁니다.”

“나쁘지 않군.”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도를 표했다.

이후 기상을 한 우두머리 남성이 바닷가 주변을 훑었다.

“이곳이 남한이라는 곳인가.”

“예. 드리무어가 있는 곳이기도 하죠.”

“드리무어라.”

아직 드리무어가 찾지 못한 네 명의 흑마법사 중 세 명이 이들의 정체였다.

드리무어를 없애기 위해 다섯 명의 자객을 보냈지만, 역으로 드리무어에게 처참하게 당해 버리고 말았다.

결국 이들이 먼저 칼을 뽑기로 했다.

“최강의 흑마법사라.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궁금하군.”

남자의 말에는 섬뜩함마저 묻어나왔다.

* * *

9090대대 위병소를 통과하는 한 대의 군용 차량.

그곳에는 이번에 새로 9090대대로 전입을 명받은 훈련병들이 탑승해 있었다.

‘여기가 9090대대인가.’

앞으로 수오가 생활할 곳이기도 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설마 자신이 드리무어가 있는 곳에 입대하게 될 줄이야.

‘내 운명도 참 기구하군.’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약 그 자리에서 필두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분명 결과는 죽음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설령 필두가 넓은 아량을 발휘해 수오를 살려줬다 하더라도 그의 운명은 빤히 정해졌을 것이다.

같은 조직원에게 암살당한다. 게다가 수오가 필두에게 동맹을 제안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수오의 목숨은 바람 앞에 촛불인 셈이었다.

‘그래, 현명한 선택을 한 거야. 그리 생각하자.’

그보다 궁금한 게 있었다.

유격 훈련 당시, 필두를 도왔던 이가 있었다.

일반 병사로 보이진 않았다.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조력자로 보였는데, 과연 드리무어를 도와줄 만한 이가 누구일까. 몇날며칠을 고민해 봤지만, 마땅한 후보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필두에게 동료가 있었나?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면 수오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No라고.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는 동안, 이들이 타고 온 차량이 대대 연병장에 정차했다.

“짐 들고 하차해라.”

“하차!”

간부의 지시에 따라 신병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들이 향한 곳은 대대 인사과. 이곳에서 어느 신병이 어느 자대로 전입을 하게 될지 결정하게 된다.

인사과 건물 안으로 들어설 때, 수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가 있었다.

행보관 강필두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키보드를 바삐 두드리며 업무에 심취해 있던 인사장교가 필두에게 말을 걸었다.

“신병 두 명 필요하시다고 하셨죠?”

“예.”

“알아서 데려가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인사과에서 처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미 모든 협의가 다 끝난 상태였다.

필두가 고를 이는 진작부터 정해져 있었다.

“거기, 너.”

“이병 서수오!”

“짐 챙기도록.”

“예, 알겠습니다!”

이것 역시 예고된 일이었다. 더블백을 들고서 힘차게 일어서는 서수오. 이로써 소기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나머지 한 명이 남은 상황에서 필두가 지목한 이는 수오와 제법 가까운 연을 지닌 자였다.

“그리고 너.”

“이, 이병 김시전!”

“너희는 오늘부터 제1포대 소속이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필두를 따라 포대 막사로 향했다. 시전이 같이 있었기에 필두와 수오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래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서로 이야기 나눌 시간은 충분하다 못해 넘칠 테니까.

앞으로 필두는 수오를 계속해서 찾을 것이다. 마치 입대 초반의 진수에게 그랬던 것처럼.

* * *

서수오 혼자만 따로 행보관실로 부른 필두가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고생했다.”

“고생은 뭘요. 고생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편했나 보군.”

“편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였습니다.”

“하긴, 나도 처음에는 그랬지.”

필두도 이 세계에 처음 넘어왔을 때, 이곳 군대의 수준에 한숨이 절로 나오던 때가 있었다.

그건 진수도 마찬가지였다.

수오라고 다르겠는가. 레디너스 출신이라면 분명 같은 기분이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보아하니 최우수 훈련병을 차지했더군. 활약이 아주 대단했던 거 같은데.”

“그냥 다른 녀석들이 너무 무능했습니다. 특별히 제가 잘해서 된 건 아닙니다.”

“그렇군.”

“그보다 앞으로 저를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수오가 궁금한 게 이거였다.

필두의 명령에 따라 일단 입대부터 시작해서 이곳 9090대대까지 오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의 계획은 온전히 필두의 몫이다.

“일단 조직의 우두머리라는 놈을 죽이기 전까지 너를 내 밑에 데리고 있을 거다. 알고 있겠지? 울타리 바깥을 벗어난 양은 늑대의 좋은 먹잇감이란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쯤 조직은 서수오의 생존 사실을, 그리고 그가 배신을 해 필두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여기서 필두에게까지 버림을 받는다면, 수오는 얼마 안 가 죽임을 당할 게 뻔하다. 살기 위해서라도 필두의 비위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

필두가 노린 게 바로 이것이다.

조건 없는 충성!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구태여 유격 훈련 때 귀찮은 방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너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누굽니까?”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기도 전에 누군가가 행보관실의 문을 노크했다.

“일병 황진수입니다.”

“들어오도록.”

“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진수가 뚫어져라 수오를 응시했다.

이후 문이 닫히자, 필두가 걸어놓은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안에서 하는 말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해주는 유용한 마법진이었다.

“저번에 그 흑마법사로군.”

“……?”

단번에 정체를 간파당한 수오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는 진수가 평범한 병사라 생각했었다. 필두에게 조력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가 진수라는 건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래서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설마 드리무어 님의…… 아니, 행보관님의 동료가 이자입니까?”

“아니, 녀석은 동료 같은 게 아니다.”

“오히려 적이지.”

마치 화음을 맞추듯 서로 말을 주고받는 필두와 진수. 두 사람의 말에 수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설명하자면 좀 길다.”

이후 필두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수오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 * *

“그러니까 이자가 그 마일더라는 겁니까?”

“그래.”

“이런, 세상에……!”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지금의 서수오가 딱 그러했다.

마일더는 악인 킬러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악한 이들에게 천적 같은 존재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설마 이 세계로 넘어올 줄이야.

이건 자칭 브레인이라 칭하는 서수오조차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근데 내 정체를 밝혀도 되는 건가.”

진수가 필두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진수는 웬만하면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싶었다. 필두도 처음에는 그러했기에 진수의 의견에 동조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진수의 정체를 스스로 밝힌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하나 계획이라는 건 유동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필두의 생각이었다.

“이 녀석은 믿을 만하다. 나의 충성스러운 부하거든.”

필두의 말 때문일까. 진수가 작은 웃음을 토해냈다.

“네 입에서 충성이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거수경례 구호 자체가 충성인데,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일이 있나?”

“재미없는 농담이군.”

레디너스에서 대표적인 선과 악의 축이라 불리는 두 존재, 드리무어와 마일더가 이런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다니. 수오는 자신의 눈과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것이 현실이거늘.

“아무튼 이렇게 우리 셋은 이제부터 그 망할 놈의 조직을 없애기 전까지 임시로 협력하는 구도로 갈 거다. 마일더, 너도 동의하겠지.”

“어쩔 수 없군. 지금은 녀석들이 우리의 공공의 적이니까.”

필두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진수는 이미 예전부터 방향을 흑마법사 조직 쪽으로 선회했었다.

필두의 이 제안을 거절할 리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직 말할 거리가 더 남은 모양인지 필두가 또 다른 화제를 거론했다.

“수오는 하나포로 보낼 거다. 그러니 네가 잘 챙겨라.”

“예?”

수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동맹 관계라고 하지만, 왜 하필이면 마일더가 자신의 사수란 말인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진수는 담담하게 수오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예?’가 아니라 ‘잘못 들었습니다?’라고 해야지. 벌써부터 교육이 필요한 신병이군.”

“…….”

섬겨야 하는 주인은 드리무어고, 사수는 마일더다.

운명이란 이렇게 가혹한 것이었을까.

한숨 참는 일이 이렇게나 힘들 줄은 처음 깨달았다.

* * *

“신병이 또?”

분대장 수첩을 덮은 조항이 진수에게 재차 물었다.

“정말로 신병 한 명을 우리 분과한테 준다고?”

“예, 그렇습니다. 행보관님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흐음, 그래?”

사실 이제는 그렇게까지 신병 부족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뜬금없이 신병 받아라! 가 되다니.

그래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인원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니겠는가.

한편, 예초를 마치고 돌아온 도혁이 양쪽 발로 의성과 대박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야. 니들 좋겠다? 벌써 신병도 다 받고.”

“이병 전의성! 아닙니다!”

“이병 박대박! 부담감만 좀 느는 거 같습니다. 아직 저희도 배워야 할 게 산더미인데…….”

“짜샤. 그런 게 어디 있냐. 어쨌든 내 밑에 후임 생기면 그냥 좋은 거야. 다섯포 봐봐. 준하 녀석, 1년째 후임 없이 생활하는 거 보면 그래도 너희가 훨씬 나은 편이지.”

“그건 맞는 말씀 같습니다.”

후임이 과한 것이 안 들어오는 것보다야 나았다. 그건 의성과 대박, 두 사람도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아직 일병을 달기도 전에 벌써부터 후임이라니.

표현은 안 했지만, 두 사람은 내심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아직 이들이 알지 못하는 게 있었다.

새로 들어올 후임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필두와 같은 흑마법사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이는 필두와 진수, 단 둘뿐이다.

만약 하나포 병사들이 새로 들어올 후임이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도 궁금했지만, 이건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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