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52화 (152/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52화

제37장. 흑마법사, 입대하다!(2)

1사로부터 10사로까지. 긴장된 얼굴로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하고 있는 훈련병들.

물론 긴장하고 있는 건 훈련병들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의 바로 곁에 붙어 있는 조교들의 눈에도 긴장이 감돌았다.

훈련소에서 인명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훈련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실제사격, 그리고 수류탄 훈련.

부상 단계가 아니라 사상이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올 수 있었기에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훈련들이었다.

전 사로 준비 완료를 보고받은 통제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탄창 인계!”

“탄창 인계!”

실탄 3발이 장전된 탄창을 건네받은 수오의 시선이 한동안 탄창에 머물렀다.

‘오오, 좋은데?’

필두와 진수, 두 사람이 느꼈던 감정보다 한층 더 격했다.

수오가 위치한 곳은 1사로였다. 물론 1사로라고 먼저 사격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통제관의 신호가 떨어져야 그때가 되어서야 사격을 개시할 수 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킬 때, 통제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사격 선언과 함께 수오가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첫발은 그의 차지였다. 마법을 통해 시야를 기하급수적으로 상승시킨 수오가 표적지를 응시했다.

‘정확하군.’

딱 한가운데에 적중했다. 이후 두 발, 세 발째도 마찬가지로 가운데 근처를 향했다.

멀리서 보면 구멍이 하나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들어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세 개의 탄환이 거의 한 자리를 뚫고 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사로 담당 조교가 표적지를 확인하자마자 칭찬의 말을 들려줬다.

“잘했다. 지금까지 내가 본 훈련병 중에 네가 가장 잘 쐈다.”

“154번 훈련병 서수오! 감사합니다!”

영점을 맞출 필요도 없었다. 합격 선언을 받은 서수오. 그러나 시전을 비롯해 훈련병 중 50% 가량이 영점 사격을 통과하지 못했다.

사격에 통과 못한 훈련병은 클리크 수정을 통해 다시금 영점 사격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럼에도 합격하지 못할 경우에는 PRI 훈련을 다시금 맛봐야 한다.

일찌감치 합격을 결정지은 수오는 다른 훈련병들과 함께 편안한 휴식에 임했다.

그렇게 영점 사격 일정이 끝난 이후 바로 다음 날. 영점 사격에 이어 20발 실사격의 날이 다가왔다.

병사들 앞에 마주 선 중대장이 이들에게 합격 요건을 알려줬다.

“20발 중 12발 이상을 맞춰야 합격이다. 합격 통보를 받지 못한 훈련병들은 PRI 이후 다시 사격에 임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PRI 이야기가 나오자 훈련병들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수오는 딱히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는 만발로 합격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탄환 궤도가 틀어져도 그는 마법으로 표적지를 맞게끔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사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그가 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이 자리에 없었으니까.

사로에 입장할 때, 가장 먼저 선두에 선 수오가 이렇게 외쳤다.

“1사로!”

또다시 1사로에 당첨됐다. 이번에는 종이 표적지가 아니라 각 사로마다 사람의 상반신 형태의 표적지가 존재했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타앙!

이번에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수오가 스타트를 끊었다.

거침없이 맞춰가는 그. 서서 쏴 이후 엎드려 쏴 자세에서도 그는 모든 표적지를 전부 다 쓰러뜨렸다.

“1사로. 만발!”

“우와……!”

“대박. 어떻게 맞췄대?”

“난 쏴도 표적지 그대로 있던데.”

훈련병들 입에서 부러움이 가득 담긴 말들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수오는 담담했다. 오히려 당연한 결과라는 듯이 행동했다.

수오와 다르게 시전은 이번에도 역시나 탈락의 고배를 맞봐야 했다.

그가 적중시킨 발수는 11발. 1발 차이로 상당히 아까운 성적을 기록했다.

그래도 탈락은 탈락이었다. PRI 지옥에 빠져 개고생을 하는 동안, 수오는 불어오는 산바람을 만끽했다.

‘그다음은 수류탄 훈련이었나.’

이것 또한 기대되는 훈련 중 하나다.

수류탄. 과연 어떤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물건일까.

이론적으론 알고 있지만, 실전으로 만져본 적은 없었다.

간첩 활동을 준비할 때에는 모의 수류탄만 주야장천 만지다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수류탄이 얼마나 강한지 보고 싶었다.

* * *

실사격 훈련이 끝난 이후, 수류탄 훈련 기간이 돌아왔다.

연병장에서 모의 수류탄을 가지고 죽어라, 연습한 이후에 다시 한번 산으로 향한 훈련병들.

산언저리 부근에 도착하자, 이들 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계곡?”

“근데 뭔가 좀 이상한데.”

휴양지로서의 계곡보다는 뭐랄까. 한눈에 봐도 훈련장처럼 보였다.

3개의 호. 그 앞에 놓인 작은 호수.

호 뒤에는 가건물로 지어진 대기실이 있었다.

수류탄 훈련은 상당히 위험한 훈련이다. 자칫 잘못하다가 대량의 사상자를 야기할 수 있는 훈련이기에 특히나 각별한 주의를 요구한다.

훈련병들 앞에 마주 선 대대장이 병사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반드시 조교의 통제에 따르도록!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라! 그러면 너희도 해낼 수 있다!”

“예!”

대대장의 훈화를 끝내고 시작된 수류탄 투척 훈련.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첫 번째 조가 수류탄을 투척했을 때,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퍼어어어엉!

호수 안에 담긴 물이 기둥이 되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진귀한 광경이었다.

동시에 병사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와…….”

“장난 아니구나, 이거.”

수류탄의 위력은 충분히 알았다. 이제 남은 건, 조심히 자신의 차례를 마치는 일뿐.

수오와 서진,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의 훈련병 3명이 이렇게 한 조가 되어 호 안으로 들어갔다.

훈련병보다 더 긴장한 조교들이 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선보였다.

“침착하게 안전핀 제거하고. 저 호 안에 던지기만 하면 된다. 어렵지 않아.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묘하게 친절한 말투였다. 하기야. 목숨이 달린 일인데, 괜히 훈련병을 자극하면 무슨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호랑이 같았던 조교도 천사의 탈을 쓸 수밖에 없었다.

“수류탄 투척!”

“투척!”

복명복창하며 있는 힘을 다해 수류탄을 던졌다.

수오와 서진은 무사히 성공했다. 그러나 또 다른 훈련병이 문제였다.

“헉……!”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탓일까. 호수 안으로 들어갔어야 할 수류탄이 호 바로 앞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런 X발!”

“엎드려!”

조교들이 한바탕 난리를 쳤다. 뒤에 훈련병들도 기겁을 했다.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꽤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서 가장 먼저 행동에 임한 사람은 바로 서수오였다.

자신의 방탄모를 벗어든 수오가 곧장 옆의 호로 뛰어갔다.

수류탄 위에 방탄모를 그대로 덮었다. 혹시 몰라 추가적인 방어 마법까지 겹겹이 발동시켰다.

퍼어어어엉!

안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방탄모를 꾹 누른 오른손에 진동이 그대로 전달됐다. 그러나 수오의 마법을 뚫을 수는 없었다.

‘별거 없군.’

마법 덕분에 방탄모도 멀쩡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방탄모를 착용한 수오가 엎드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조교와 훈련병들에게 말했다.

“이제 괜찮습니다.”

“어, 어떻게 된 거냐?”

“방금 그건…….”

“그냥 불량품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수류탄의 잔해를 조심스럽게 발로 툭 쳐 호수 안으로 던져 넣었다.

폭탄 자국까지 제거하면서 완벽하게 증거를 인멸했다.

“알아서 호수 안으로 굴러떨어졌습니다.”

“그, 그러냐.”

“예.”

거짓말이지만, 조교들은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하튼 수오의 용기 있는 행동 덕분에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냥 칭찬만 들은 건 아니었다.

수류탄 훈련이 끝난 이후, 행정반으로 불려 간 서수오는 중대장으로부터 앞으로 그렇게 위험한 행동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며 잔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용기 있는 수오의 행동에 꽤 감동을 받은 모양인지 가벼운 잔소리만 하고 끝을 냈다.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온 수오를 향해 훈련병들이 엄지를 추켜올렸다.

“우리 소대의 영웅!”

“인정한다!”

‘영웅은 무슨.’

속으로 투덜거리는 수오였으나,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기로 했다.

시전도 다른 훈련병들과 마찬가지로 수오에게 존경의 눈빛을 마구 쏘아댔다.

그러나 수오는 동기들의 과도한 관심이 오히려 귀찮았다.

‘아, 빨리 퇴소하고 싶다.’

흥미 있던 훈련이 죄다 끝나버렸으니. 이런 생각이 들만도 했다.

* * *

주간행군과 야간 행군, 그리고 각개전투까지. 훈련병들을 괴롭히는 굵직한 훈련들이 여럿 있었지만, 수오에게 크나큰 시련은 되지 못했다.

행군 때의 수오는 마치 산책을 나가는 듯한 모습으로 임했다. 각개전투는 훈련보다 더 쉬웠다. 남들이 괴로워하는 포복 자세도 마법으로 신체를 강화시켜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훈련 일정을 마치고 난 뒤, 퇴소식을 가지게 된 수오에게 깜짝 소식이 전달됐다.

“서수오.”

“이병 서수오.”

“너, 최우수 훈련병으로 뽑혔으니까 퇴소식 때 상장 수여식 준비해라.”

최우수 훈련병이라니. 수오는 애초에 그런 걸 노리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훈련소에서 보여준 수오의 모습은 누가 봐도 최우수 훈련병이었다.

사격 만발에 수류탄 사건도 해결하고, 주간행군과 야간 행군을 무리 없이 소화했으며 각개전투 때에는 분대장으로서의 역할까지 충실히 임했다.

이러니 간부들이 추천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수오가 최우수 병사가 아니면 누가 최우수를 받겠는가. 이번 기수는 서수오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퇴소식보다 더 신경 써야 하는 게 있었다.

자대 전입이다.

요즘 군대는 자대를 랜덤으로 돌린다. 국방부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랜덤 배치 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훈련병이 어느 자대로 갈지 결정한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나 수오는 어제 저녁, 이 문제를 아주 깔끔하게 해결했다.

취침 시간에 몰래 일어나 잠입을 시도한 뒤 컴퓨터를 해킹해 프로그램을 약간 손봤다.

서수오를 9090대대로 전입시키게끔 말이다.

9090대대까지만 알아서 가면 된다. 그 이후부터는 필두의 역할이다. 수오가 따로 연락을 취하면, 필두가 대대 인사과에 영향력을 행사에 수오를 제1포대로 데려올 것이다.

이미 입대하기 전부터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봤다.

수오가 의도한 대로 랜덤 배치 프로그램은 그에게 9090대대 전입을 명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면, 동기인 김시전도 같이 9090대대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9090대대에서 온 포차에 몸을 싣는 이들. 한 자리를 차지한 시전이 사심 섞인 말을 들려줬다.

“거기 가서도 같은 생활관 썼으면 좋겠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글쎄다.”

거기까지는 수오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부터 모든 것은 필두가 알아서 정할 터.

수오가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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