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51화
제37장. 흑마법사, 입대하다!(1)
찌는 듯한 여름.
그리고 보이는 거라고는 머리를 빡빡 민 남자들뿐.
이곳에서 입대를 준비해야 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설마 내가 입대를 하게 될 줄이야.’
생각만 해도 어이없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본래 그는 입대를 할 수 없는…… 아니, 입대해선 안 되는 신분이다.
북한에서 넘어온 간첩이 어떻게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를 하겠나.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다른 간첩들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수오라면 가능하다.
사실 수오는 간첩으로 대한민국에 넘어온 이후부터 컴퓨터라는 물건에 많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진수도 처음에는 그랬지만, 수오는 그보다 더 컴퓨터 생활에 몰두했다.
폐인을 연상케 하는 집 내부의 풍경이 그 증거였다.
컴퓨터의 세계를 파고, 또 파고. 계속해서 파고든 결과. 수오는 ‘해킹’이라는 기술을 손에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위조 신분을 만들고, 그 신분을 통해 입대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 결과, 입대 예정자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게 되었다.
‘보안이 너무 허술해.’
대한민국 정부 공식 시스템은 그에게 보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약간의 해킹 실력만 발휘해도 금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흑마법사로서의 능력은 필두에 비해 부족할지 모르나,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은 필두보다도 한 수 위였다.
그러나 해킹 실력이 높아 봤자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미 수오는 필두에게 패배하고 충성을 맹세했다. 해킹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분명 동등한 관계의 동맹을 제안했을 터였다. 그러나 필두의 잔머리는 수오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결국 주종관계가 성립되었고, 수오는 현재 필두의 부하가 되었다.
살기 위해 입대를 하라고 하니, 불평불만이 있어도 그의 말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입대라…….”
머릿속에 절로 자신이 생활하던 방 풍경이 떠올랐다.
“방구석 폐인 생활도 나름 마음에 들었는데.”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 * *
입대 풍경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빡빡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20대 남자들이 연병장에 정렬했다.
머리 스타일이 똑같으니 누가 누군지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그 한가운데에 껴 있는 서수오.
그는 가족이라 부를 만한 사람도 없었기에 다른 장정과 다르게 입대 전 마지막 부모님과의 만남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었다.
담담한 표정의 서수오와 다르게 한쪽 구석에선 부모님과 포옹하며 우는 장병의 모습이 보였다.
다른 한쪽에선 여자 친구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장병도 있었다.
각양각색의 방식이었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이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강제로 차원 이동을 당할 때, 아는 사람들한테 작별 인사도 못했네.’
워낙 갑작스럽게 벌어진 덕분에 수오는 지인들과 이별의 말을 나눌 시간적 여유조차 얻지 못했다.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애초에 그는 레디너스 대륙 시절 때에도 그리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없었다.
고아로 자랐던 수오였기에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정은 없다시피 했다.
열렬히 사랑했던 여인도 없었고, 뜨거운 우정을 느낄 만한 친구도 없었다.
그는 인간관계 자체를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이별의 아픔에 눈물을 보여도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족, 연인과의 만남이 끝난 이후, 장정들은 조교를 따라 군부대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혹여나 아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가족들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장정 행렬을 눈으로 좇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민간인 통제 구역에 들어왔을 때, 장정들을 가장 먼저 반긴 건 바로 180도 달라진 조교들의 불호령이었다.
“똑바로 안 걷습니까!”
“고개 숙이지 않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뭐 하나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하던 조교들이었다.
그러나 입대식이 끝나고 군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이들은 본성을 드러냈다.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는 장정들. 그럴수록 조교들의 언성은 높아만 갔다.
“빠릿빠릿하게 안 움직입니까!”
“앞으로 밀착합니다!”
“조교의 말에 복명복창합니다!”
벌써부터 눈시울이 붉어지는 장정의 모습도 몇몇 보였다.
하기야. 생판 모르는 남에게 이런 식으로 하대를 받으니 억울할 만도 했다.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집으로 돌아가면 다 귀한 자식인데 말이다.
그러나 이곳이 군대다. 귀한 자식이든,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든, 재벌의 자손이든. 입대를 한 순간, 이들은 그저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통일된다.
그래서 부잣집 아들들은 어떻게든 군 면제를 따내기 위해 발악을 한다. 수오도 본래는 면제였으나, 필두의 억압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조교들의 윽박에도 수오는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오히려 이들의 태도는 너무 허접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레디너스 쪽이 훨씬 더 무섭게 장정들을 대한다. 수오는 이미 한번 경험을 했었기에 지금 이것은 애들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5주를 어떻게 버틴담. 재미도 없어 보이는데.’
벌써부터 그 걱정이 앞섰다.
* * *
입대한 첫날의 시간은 정말 무의미했다.
돌아다니면서 신체검사라든지 적성 검사, 인성 검사 등. 그러다가 밥 먹고 또 검사. 이게 반복되었다.
‘아니, 이럴 거면 신검은 뭐 하러 한 거야.’
속으로 열불이 터질 뻔했지만, 그래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냈다.
다 좋다. 무의미하게 돌아다니는 것도, 생활관에서 눕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리는 것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수오가 이해할 수 없는 게 존재했다.
바로 밥맛이었다.
‘이게 밥인지, 쓰레기인지 모르겠군.’
직설적인 그의 화법이었지만, 수오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병사는 거의 없었다.
맛이 없다. 어머니가 해준 밥맛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는 병사도 아주 가끔 보였다.
말로만 듣던 짬밥을 직접 접하게 된 수오는 속으로 필두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도대체 지금까지 이걸 어떻게 먹어온 거지? 대단하군, 드리무어.’
그렇게 맛없는 짬밥과 하루를 보낸 수오. 취침 시간인 22시가 되자 병사들이 매트리스를 깔고 각자 자리에 누웠다.
이후 새벽 6시에 기상. 오늘도 마찬가지로 돌아다니기만 할 뿐이었다.
단, 어제와 차별화된 점이 있었다.
“지금부터 군복을 받으러 갈 거다. 각자 사이즈에 맞게 적당한 군복으로 고르도록.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장정들의 목소리에 기대감과 설렘, 걱정이 느껴졌다.
난생처음 입어보는 군복. 기쁘다는 감정을 느끼는 이는 별로 없었다.
“32입니다.”
“받아라.”
상병으로 보이는 병사로부터 전투복 하의를 건네받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온갖 보급품들을 다 받고 나니 양손이 한 가득이었다.
마치 백화점에 놀러 간 젊은 여성의 기분을 간접 체험하는 듯했다.
군복을 받고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온 이들. 그때, 조교가 들어와 군복 입는 방법을 교육했다.
멍한 얼굴로 조교의 설명을 듣는 장정들. 그중에 유일하게 서수오만이 제대로 다 알아들었다.
그는 애초에 간첩으로 활동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다른 20대 미필보다 대한민국 군대에 대한 정보는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설마 그것이 여기에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전투화 끈을 묶는 게 좀 걸렸지만, 이것도 숙달되면 금세 끝낼 수 있을 터.
어색한 군복 차림으로 입소대 근처를 돌아다니는 장정들의 모습은 ‘햇병아리’라는 단어와도 잘 어울렸다.
그렇게 3일째가 되었을 때.
몇몇 병사들이 군복을 다시 반납하고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사흘 동안 치른 적성 검사에서 떨어진 장정들이었다.
귀환 조치를 당한 이들은 다시 재검을 받거나 해서 입소대에 돌아오거나, 아니면 공익, 면제 판정을 받게 된다.
어쩌면 입소대 생활을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들이었으나, 훈련소행이 결정된 병사들은 이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집에 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수오는 달랐다.
‘3일도 이렇게 안 지나갔는데, 5주는 또 어떻게 보내나.’
그냥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자대로 입대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뿐이었다.
* * *
훈련소에 입소하자마자 조교들이 군기를 잡는답시고 또다시 훈련병들에게 윽박을 지르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미 입소대에서 충분히 체험한 패턴이었기에 훈련병들은 입소 초기와 다르게 빠릿빠릿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조교의 기준에 못 미쳤다.
“그렇게 움직임이 둔해서 군인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훈련병이면 훈련병답게 빨리 움직여!”
“너희의 훈련받는 태도에 따라 훈련의 강도가 정해진다. 이곳 훈련소가 천국이 될지, 지옥이 될지는 오로지 너희가 하는 거에 달려 있다. 항상 명심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훈련소 생활. 그나마 다행인 건 왔다 갔다 하기만 했던 입소대 생활보다 덜 심심하다는 거였다.
하나 변함이 없는 게 있었다.
‘밥은 여전히 맛없군.’
짬밥 맛은 변하지 않았다.
* * *
훈련소의 첫 날 밤.
운이 좋게 불침번 로테이션에 걸리지 않은 서수오는 그대로 매트리스 위에 누워 눈을 감은 채로 잠을 청했다.
그때였다.
“수오야.”
“……?”
누군가가 수오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자신의 앞번호를 차지하게 된 훈련병이 수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서수오 맞지?”
“근데. 왜.”
“난 김시전이라고 해.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인사하려고 일부러 불렀어.”
“그러냐.”
별거 아니었다. 그냥 인사 주고받고 싶어서 일부러 수오를 불렀던 것이다.
“보아하니 수오, 너도 여기 훈련소에 아는 사람은 없어 보이는 거 같은데, 나도 마찬가지거든. 그러니까 친하게 지내자.”
“그래, 노력해 보마.”
친구 같은 건 별로 만들고 싶지 않다.
어떻게 보자면 수오도 필두와 비슷한 과라 할 수 있었다. 혼자서 행동하는 게 편한 타입. 그렇기에 김시전의 제의에 대한 대답은 빈말일 수밖에 없었다.
* * *
1주차 훈련, 제식.
입소대에서 대충 배웠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열중 쉬엇. 차렷. 거수경례. 받들어 총. 세워 총. 뒤로 돌아. 좌우로 정렬. 등등 기초적인 제식을 다시 재정립했다.
2주차에는 사격이 들어가 있었다.
그전에 PRI라는 지옥 같은 훈련을 견디고 나서야 본격적인 실사격에 임할 수 있었다.
대다수의 병사는 PRI 단계에서 벌써 거품을 물었다. 물론 수오는 이에 해당 사항이 없었다.
PRI 훈련 이후 찾아온 실사격의 기회. 하나 그전에 먼저 치룰 게 있었다.
영점 사격.
3발을 쏴 영점을 맞추는 훈련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수오는 만족했다.
‘이게 이 나라 군대에서 쓰는 총이군.’
간첩 훈련을 받을 때 사용했던 총에 비해 무게감이 있었다.
K-2. 디자인을 따지자면 K-2쪽이 수오의 취향이었다.
‘한번 쏘고 싶었는데, 잘 됐군!’
입대한 이후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