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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149화 (149/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49화

제36장. 제초의 계절(2)

“따라와라.”

나정상의 이끌림에 따라 전도혁과 한정욱이 곧장 걸음을 재촉했다.

이들이 향한 곳은 공병들만 사용한다는 바로 그 장소, 공병창고다.

일반 병사들은 접하기 힘든 장소라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곳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웬만해선 공병들만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공병이 아님에도 이곳을 들어올 수 있는 병사들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공병과 매우 친하거나. 아니면 말년병장이거나.

말년병장들이 공병창고를 애용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숨기 위함이다.

말년병장을 찾아 작업을 시키려는 간부들의 시선을 피해 일부러 공병창고에 숨는 것이다.

공병창고뿐만 아니라 보일러실도 말년병장들이 애용하는 주된 장소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말년병장들의 머리 위에 노는 행보관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부 다 알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나 필두의 경우에는 더더욱 통하지 않았다.

공병창고든 보일러실이든, 말년병장이 숨어 있는 곳이라면 그는 귀신같이 이들의 소재지를 파악해낸다.

그 배경에는 마법이라는 사기 스킬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필두의 탐색망을 빠져나갔던 말년병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도혁과 정욱은 오늘, 이곳에 숨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예초 수업을 듣기 위해서 공병 창고를 찾았다.

공병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도혁과 정욱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장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정상 병장님. 이건 뭡니까?”

바닥에 굴러다니는 기다린 쇠막대. 페인트까지 칠해져 있었다.

“아, 그거? 통제관님이 측각수 다리 하나 새로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도중에 취소됐어.”

“그럼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버리긴. 나중에 또 뭐 만들어달라고 하면 그때 재료로 써먹어야지. 아, 결코 버리기 귀찮아서 놔둔 거 아니다. 나중에 필요할까 봐 일부러 놔둔 거야.”

물론 진실은 나정상, 한 명밖에 모르겠지만 말이다.

공병창고 안에 자리를 잡은 나정상이 의자에 엉덩이를 걸터앉은 채 말했다.

“어서 와. 두 사람 다 예초는 처음이지?”

“예, 그렇습니다.”

“내가 제대로 알려줄 테니까 너무 긴장 안 해도 된다 이래 봬도 제초학 마스터라 불리고 있거든.”

굳이 마스터가 아니더라도 예초 작업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은 나정상, 한 명밖에 없다. 좋든 싫든 그에게 배워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제초란 말이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화이트보드까지 꺼낸 나정상이 열렬하게 설명에 임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가 알려주는 제초학은 유용했다.

그러나 사회에 나가선 써먹지 못할 지식이었다. 하기야. 사회에서 직접 두 손으로 풀을 뽑고 다녀야 하는 경우가 몇 가지나 될까.

별로 없으리라 예상된다.

그렇게 대략 1시간 동안 이어지던 제초학 강의를 마친 나정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이론 수업은 이것으로 끝. 이제 바로 실전이다.”

“벌써 말입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안 그래도 행보관님이 3일 뒤에 예초기 돌릴 수 있게끔 해놓으라고 했으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어, 친구들. 예초기 하나씩 들고 움직여.”

“예, 알겠습니다.”

바깥으로 나온 뒤, 나정상이 두 명의 신인 예초병들을 이끌고 빨래터 근처로 향했다.

“여기가 연습 장소다. 우선 내가 시범을 보일 테니까 잘 보고 따라 하라고.”

예초기를 가동시키자, 엄청난 소음이 세 사람의 귀를 괴롭혔다.

애애애애애애애애앵!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나정상은 담담한 얼굴로 예초기를 든 채 풀밭을 베어 가기 시작했다.

슥, 다시 한번 슥.

물 흐르듯 완벽했다. 예초기를 일정 높이까지 들고, 흔들림 없는 움직임으로 수평 방향을 유지하며 휘두른다. 그것만으로도 프로페셔널이 느껴졌다.

“자, 봤지?”

“예!”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겉보기에는 쉬워 보였다. 그러나 예초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먼저 치러야 할 선행 과정이 있었다.

“그럼 바로 예초 시작해 보자. 그전에 이거 입어라.”

들고 나온 제초복을 두 사람에게 건넸다.

그것을 내려다본 도혁과 정욱의 인상이 살짝 일그러들었다.

제초복에서 풍겨오는 괴상한 냄새 때문이었다.

구형 활동복 중에서도 ‘떡볶이’ 활동복이라 불리는 옷이 있다. 위, 아래. 다 주황색으로 디자인 되어 있는 활동복이다. 그러나 제초복은 좀…… 아니, 많이 달라 보였다.

하의 부분. 특히 무릎 아래 부분이 녹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미용을 목적으로 물들인 건 아니었다. 한눈에 봐도 제초 과정에서 물들여진 것으로 보였다.

그건 둘째 치고, 다른 문제가 있었다.

긴팔과 긴 바지. 심지어 하복도 아닌 동복이었다.

“이거 여름에 입으면 쓰러질지도 모릅니다, 나정상 병장님!”

“하다못해 하복으로 입으면 안 되겠습니까?”

정욱도 도혁의 의견에 몇 마디를 보탰다. 그러나 나정상의 태도는 완고했다.

“충고하는데, 그게 좋을 거다. 뭣하면 너희 활동복 가져와서 작업해도 좋아. 단, 그 활동복. 분명 버리게 될 거다.”

“…….”

“…….”

“그래도 좋다면 입어도 상관없어.”

“아닙니다! 바로 환복 하겠습니다!”

활동복을 버리느니, 그냥 제초복 입고 제초하는 게 더 좋아 보였다.

결국 환복을 마친 두 신입들.

“누가 먼저 해볼래?”

“제가 해보겠습니다!”

일병의 패기를 부리는 한정욱이었다.

바로 예초기에 시동을 건 후, 목적지인 풀밭으로 향했다.

아까 나정상이 보였던 그대로 몸동작을 선보였다.

스윽, 슥.

어려울 것도 없었다.

‘예초, 쉽네!’

자신감이 깃든 한정욱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나정상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그려졌다.

이윽고 잠시 후.

“억?”

정욱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비명을 질러댔다.

“아야야야야야야!”

“너, 왜 그러냐.”

도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며 다가와 물었다. 그러나 정욱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게…… 갑자기 다리가 엄청 따갑습니다.”

“풀 알레르기라도 있냐?”

“없습니다.”

“그럼 엄살이구먼. 비켜 봐. 이 선임이 모범을 보여주마.”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 도혁이 거침없이 예초기를 발동시켰다.

위이이이이잉!

그 역시 무난하게 풀밭을 베어 갔다. 예초기가 좀 무겁다는 점, 그리고 한여름에 동복 긴팔, 긴바지를 입고 있어야 한다는 점 빼고는 나머지는 다 괜찮았다.

“뭐, 할 만하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악!”

도혁의 입에서 조금 전, 정욱이 질렀던 비명이 동일하게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심지어 아까 정욱이 내뱉은 비명보다도 훨씬 더 길고 횟수도 많았다.

“뭐, 뭐야, 이거!”

다급하게 예초기를 끈 전도혁이 종아리 부분을 걷어 올렸다.

여기저기 붉은 반점이 생겼다.

알레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외부의 충격으로 발생한 흔적으로 보였다.

그때, 나정상이 옅은 웃음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아둔한 신입들아. 그래서 내가 뭐랬냐. 괜히 동복을 입는 게 아니야.”

“도대체 이게 뭡니까? 나정상 병장님!”

“예초기 돌리다 보면 바닥에 돌들이 튀기게 마련이다. 그게 우리한테 오면 그렇게 돼.”

“아……!”

“어쩐지!”

예초기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풀이 자라는 곳이다 보니 작은 돌멩이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예초기의 각도가 틀어지거나 혹은 과도하게 밑으로 내리면 조금 전과 같은 엄청난 고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햇볕과의 싸움. 그리고 풀냄새와 튕겨 지는 돌멩이들의 고충을 직접 겪은 두 신입은 기가 질린 얼굴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 나정상이 호쾌한 웃음을 냈다.

“하하, 어떠냐. 예초병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됐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도혁과 정욱은 동시에 이런 생각을 품었다.

‘X발, X됐다!’

강필두라는 거대한 난관을 피하려고 골랐던 예초병인데, 이것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하기야. 괜히 4박 5일 포상휴가를 주는 게 아니다. 힘든 만큼 휴가를 주는 곳이 바로 군대 아니겠는가.

진작 알아봤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두 사람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린 나정상이 음흉한 미소를 선보였다.

“웰컴 투 제초 월드.”

* * *

3일 뒤.

공병창고를 찾은 필두의 귀에 가장 먼저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열심히 하나 보군.’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다. 예초병은 이번 여름 시즌에 가장 많은 활약을 보여줘야 할 작업병들이다. 그래서 굳이 귀찮더라도 면접까지 본 것이다.

물론 면접이 큰 의미는 없었지만 말이다.

공병창고에 도달한 필두. 그를 보자마자 나정상이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충성. 애들은 이제 숙달됐나 보군.”

“예.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써먹을 정도는 된 거 같습니다.”

“좋군. 그럼 바로 예초 작업 시작할 테니까 따라오도록.”

“예. 가자, 애들아!”

“네!”

필두의 뒤를 따라간 곳은 바로 하나포 포상이었다.

하나포에 도달한 예초병들에게 필두가 간단히 작업 브리핑을 들려줬다.

“하나포를 시작으로 여섯포 포상까지. 우선 포상부터 예초기 돌려라. 대대장님이 조만간 대대 돌아다니면서 제초 잘 되어 있는지 안 되어 있는지 직접 확인하신다고 하니까 꼼꼼히 잘하고. 괜히 대대장님 입에서 쓴소리라도 나오는 순간…… 알고 있겠지?”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절로 들려왔다.

자칫 잘못하다가 4박 5일 포상휴가가 날아갈지도 모른다. 그걸 생각한다면 예초 작업에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포장으로 올라간 도혁이 본인에게 할당된 구역으로 향했다. 곧장 예초기를 돌리자, 엄청난 소음이 그의 귀를 강타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위이이이이이이잉!

소음과 함께 리듬을 타듯 예초기를 휘둘렀다.

중요한 건 높이다. 조금이라도 내려가는 순간, 돌멩이 폭격에 휘말릴지 모른다.

그 고통은 웬만하면 맛보고 싶지 않다.

무난하게 예초기를 돌려가던 순간, 작은 벌 하나가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웬 벌이야.”

예초기를 들고 있지 않은 왼손을 휘저으며 벌을 내쫓았다.

한동안 도혁의 주변에 맴돌던 벌이 이제야 사라졌다. 다시 예초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자 속도를 높였다.

빨리 예초하면 그만큼 더 많은 휴식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추가 방해꾼이 등장했다.

“이 벌 새끼가 또!”

한 마리였던 벌이 두 마리로 늘었다!

다시 한번 왼손을 휘저으며 벌 두 마리를 내쫓았다. 그러나 이후, 벌은 세 마리가 되고 네 마리가 되고.

‘뭔가 좀 이상한데?’

점점 벌이 늘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머지않아 그 기분이 착각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 수십 마리의 벌떼가 모여 전도혁 앞에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다.

예초기 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벌들의 날갯짓 소리는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것들을 보는 순간, 도혁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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