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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146화 (146/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46화

제35장. 분과 외박(4)

“으…….”

연도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다수의 소주, 맥주병들. 하나포 병사들도 술병들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화장실에는 구토의 흔적마저 보였다.

마침 볼 일이 있어 화장실을 찾았던 연도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문을 닫았다.

“옆방 거 사용해야겠네.”

모텔 방 잡을 때 하나가 아닌 두 개를 잡았다.

바로 옆방의 화장실은 깨끗하리라 믿으며 복도로 나서려던 찰나였다.

군복을 말끔히 차려 입은 진수가 연도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잘 주무셨습니까.”

“응? 언제 일어났어?”

“새벽 6시 정도에 일어났습니다.”

“레알?”

“예.”

연도는 술자리 가장 마지막까지 버텼던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새벽 4시 정도에 술자리가 판토가 난 걸로 알고 있었다.

진수도 연도와 함께 술자리의 끝을 같이했다. 그렇다면 고작 2시간밖에 안 잤다는 뜻 아니겠는가.

게다가 알코올 섭취량으로 따진다면 진수가 가장 많았다.

승부욕이 있는 성태과 도혁이 어떻게든 진수를 보내버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덤벼들었지만, 소주 4병째에서 결국 GG를 치고 말았다.

진수는 그 이후에도 말짱한 모습을 보였다. 전혀 흐트러짐 없는 그의 면모에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최소 소주 4병 이상을 마셨음에도 숙취에 시달린다든지 하는 그런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혈색이 더 좋아 보였다.

“너, 진짜 대단하다.”

“어떤 게 말입니까?”

“어제 술을 그렇게 마셔놓고 멀쩡하다는 게 대단하다는 거야.”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 입대 전까지는 소주 같은 술보다 더 독한 술을 대여섯 병 원샷하는 게 기본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황진수는 여전히 미스터리한 남자였다.

제아무리 과거를 캐물어도 들려온 대답은 ‘평범한 삶을 살다 왔습니다’라는 것뿐이었다.

물론 주변인들이 들었을 때에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병사들이 곯아떨어져 있었을 때, 진수는 바깥에 나가 새벽 공기를 마시며 부족했던 스트레칭, 운동을 반복했다.

마나를 운영하며 체내의 알코올 성분을 전부 다 배출시켰다. 그 덕분에 숙취에 시달리는 일 같은 건 없었다.

연도가 이 같은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지금 몇 시지?”

“오전 11시입니다.”

“체크아웃이 몇 시까지였더라?”

“12시로 알고 있습니다.”

“선임들 빨리 깨워야겠네. 슬슬 복귀 시간도 고려해야 하고.”

그래도 5시 이전에는 부대 복귀를 완료해야 한다. 반드시 5시 이전에 복귀하라는 규정은 없지만, 대게는 5시가 기준이 되곤 한다.

“진수야. 선임분들 좀 깨워줄래? 난 화장실 가야 해서.”

“예, 알겠습니다.”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 퍼진 알코올의 냄새가 인상을 절로 찌푸리게 했다.

진수가 팔을 한 번 크게 휘젓자,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풍압이 알코올 냄새를 한꺼번에 날려 버렸다.

이후 조항에게 먼저 다가갔다.

“김조항 병장님. 슬슬 준비하셔야 합니다.”

“그, 근무냐?”

벌떡!

불침번이 외곽 근무 때문에 깨운 줄 알았던 조항이 멍한 눈으로 진수를 바라봤다.

내무반이 아니다.

여긴 어딜까.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조항이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맞다. 우리 분과 외박 나왔었지.”

“예, 그렇습니다.”

“몇 시야?”

“오전 11시 5분입니다.”

“일 났네!”

쏜살같이 일어선 조항이 나머지 인원들을 발로 차 깨우기 시작했다.

“애들아, 일어나라! 시간 없다, 빨리 나갈 준비 해라!”

“조금만 더…….”

“……아직 시간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성태와 도혁이 소극적인 저항을 펼쳤지만, 상대가 선임인 이상 통할 리 만무했다.

“몇 시인 줄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후딱 안 일어나?”

“……알겠습니다.”

진수가 이들을 깨웠더라면 즉각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역시 조항부터 먼저 깨우길 잘했다.

스스로 행동에 흡족한 평가를 내리는 진수였다.

* * *

모텔에서 나온 이후 해장을 겸한 식사를 마친 이들은 어제 다 둘러보지 못한 시내 투어를 시작했다.

이후 용사의 집에 들러 같은 부대 사람들에게 주문받은 군용 물품들을 샀다.

오후 4시. 이제 슬슬 부대로 복귀할 시간이다.

“버스 타고 갑니까?”

“언제 올지 모르니까 그냥 택시 타고 가자. 2대 나눠서 타고 가면 되겠지.”

조항의 선택은 버스가 아닌 택시였다.

어제 필두가 고깃값을 대신 내줬기 때문에 금전적인 여유가 꽤 생겼다. 택시비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다.

“그럼 제가 택시 잡겠습니다.”

연도가 먼저 길거리로 나섰다.

그때, 갑자기 젊은 여성의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악!”

“뭐, 뭐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여성에게 집중되었다.

그곳에는 여성이 당혹감에 사로잡힌 얼굴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도, 도둑이에요! 도둑!”

여성의 핸드백을 가로챈 2인조 남자가 오토바이를 탄 채 도로를 가로질렀다.

소위 말해서 날치기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기에 뒤를 쫓고 싶어도 쫓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진수가 먼저 행동에 임했다.

“김조항 병장님. 제가 가서 잡아오겠습니다.”

“잡는다고? 무슨 수로!”

“방법이 있습니다.”

진수의 성격상 가만히 넘어갈 리 없었다.

오토바이가 도망친 쪽을 따라 냅다 뛰기 시작하는 진수.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조항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에이, 진짜!”

혹여나 무슨 문제라도 발생하면 어쩌나 싶었다. 그래서 조항도 진수의 뒤를 따르기로 한 것이다.

조항이 움직이자 성태와 도혁도 그 뒤를 따랐다.

그전에 성태가 연도와 두 신병에게 외쳤다.

“연도야! 신병들 데리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금방 오마!”

“이, 일병 조연도! 아, 알겠습니다!”

무난하게 끝날 거로 생각했던 분과 외박.

그러나 필두가 매번 생각하듯 사건·사고는 늘 예고 없이 찾아오게 마련이었다.

* * *

오토바이 뒷좌석에 탑승한 남성이 핸드백 내용물을 확인했다.

“캬! 이거 봐라! 현금 20만 원!”

“오늘 저녁은 비싼 거 좀 먹을 수 있겠네. 하하!”

그러나 이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뒤따라오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이대로 큰 길가로 들어서면 저들을 놓칠 가능성이 커진다. 그전에 잡아야 한다!

‘속도 좀 내볼까.’

진수의 주변에 마나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능력을 발동시키자, 인간이라 부르기 힘들 만큼의 속도가 재현되었다.

거의 130㎞에 육박하는 속도를 보이며 순식간에 이들을 앞질렀다.

“뭐, 뭐야!”

“군인?”

진수가 오토바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대로 계속 돌진하면 충돌하는 각이다.

“어,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그냥 밟아! 저 새끼가 알아서 피하겠지!”

두 남자는 겁이 없었다.

설마 죽기야 하겠나. 그런 생각으로 배짱을 부리기로 했다.

부아아아앙!

페달을 밟자 오토바이가 점점 가속을 했다. 그럼에도 진수는 전혀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 군바리, 안 비키는데?”

브레이크를 밟지만, 이미 늦었다.

이대로 가면 충돌한다! 두 남자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진수는 여전히 태평했다.

“후…….”

심호흡을 내쉬던 그가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이후, 빠른 속도로 아래를 향해 내려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미끄러지던 오토바이가 마치 자석처럼 바닥에 딱 달라붙었다!

쿠웅! 소리와 함께 몇 번 불꽃이 튀기더니,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포, 폭발한다!”

“히익!”

남자들이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퍼어어어엉!

폭발이 발생하면서 사방으로 오토바이의 잔해가 날아들었다.

겁에 질린 남자들이 몸을 웅크렸다. 그 사이를 덤덤하게 걸어가는 진수.

날카로운 철조각이 그의 얼굴로 날아들었으나, 방어막에 의해 벽 쪽으로 튕겨 나갔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두 남자가 재차 비명을 질렀다.

“너, 너! 정체가 뭐야?”

“외계인이냐?”

이들에게 들려줄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군인이다.”

그 말을 끝으로 남자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 *

“정말 감사합니다!”

여성이 몇 차례 허리를 숙이며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경찰들 앞에서, 그것도 군복을 입고 이러고 있으니 뭔가 어색했다.

괜히 문제 일으킨 건 아닌가 싶었으나, 그래도 좋은 일 하지 않았는가.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일단 복귀부터 하고 봐야 했다.

“저희가 부대로 들어가 봐야 해서…….”

조항이 말끝을 흐리자, 경찰관 중 한 명이 괜찮다며 이들을 보내줬다.

“나머지는 여기서 알아서 할 테니 부대로 들어가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오후 5시 반. 그래도 6시 이전까지는 들어가야 한다.

빠르게 택시를 2대로 나눠 타 부대 앞까지 빠른 시간 내에 도달했다.

위병소를 보자마자 병사들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부대 들어가기 싫다…….”

“누군 좋아서 들어가는 줄 아냐.”

“아직 꿈만 같습니다.”

꿈이라는 건 언젠가는 깨어나게 되어 있다.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이끌며 위병소로 향했다.

이후 막사에 도착한 이들이 오늘의 당직사관인 전포대장에게 외박 복귀 신고를 했다.

“그래. 나가서 문제 일으킨 건 없지?”

“…….”

“…….”

서로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다. 단지, 날치기한 좀도둑들을 때려잡았을 뿐.

“그게 말입니다…….”

대답을 망설이는 이들의 모습에 전포대장이 재차 되물었다.

“나가서 사고라도 쳤어?”

“사고까지는 아닙니다. 그저…….”

“그저?”

“도둑을 잡았습니다.”

순간 전포대장이 귀를 의심했다.

“도둑? 너희가?”

“예.”

“잠깐. 무슨 이야기인지 자세히 좀 들어보자.”

당직사관으로서 보고받을 건 받아야 하지 않겠나.

조항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전포대장이 묘한 얼굴을 했다.

“그건 딱히 문제라고 보기 힘든데.”

“그렇지 말입니다.”

“뭐, 오히려 좋은 일 한 거니까 괜찮겠지. 알았다. 이건 내가 따로 포대장님한테 보고 드리마. 너희는 들어가서 쉬어라. 그리고 진수는 고생했다. 도둑 잡느라.”

“아닙니다.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 그러냐.”

간부보다도 더 FM 같은 병사의 모습에 전포대장은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9090대대 제1포대.

그 앞에 이상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통신보안. 상병 정성태입니다. ……잘못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뭔데. 그러냐.”

필두가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성태가 필두에게 수화기를 넘기며 이렇게 말했다.

“외부에서 온 전화입니다. 무슨 무슨 기자라고 합니다만…….”

“기자라고?”

“예, 그렇습니다.”

“잘못 들은 거 아니냐.”

“아닙니다. 받아보시면 아실 겁니다.”

“흠.”

수화기를 건네받은 필두가 입을 열었다.

“제1포대 행보관 강필두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취재 문의 때문에 연락 드렸습니다.

“무슨 취재요?”

-얼마 전에 그쪽 병사가 도둑 잡았다는 제보를 받아서요. 그에 관해서 취재를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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