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45화
제35장. 분과 외박(3)
청소를 끝낸 이후에 시내로 나오게 된 필두와 혜정은 근방에 입소문을 탄 고깃집을 찾았다.
“여기, 친구들이랑 자주 오는 곳인데, 괜찮더라고. 필두 씨 입맛에도 맞을 거야.”
“고기가 거기서 거기지, 뭐.”
“에이. 그런 말 하지 말고. 자, 들어가자.”
혜정이 필두의 손을 잡고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혜정은 입맛이 비교적 까다로운 편이다. 그녀가 인정한 가게라면 맛은 분명 있을 터. 적어도 필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물며 맛이 없다 하더라도 웬만한 음식은 다 먹어본 덕분에 그건 큰 장애가 되지 않을 듯하다.
매일 먹는 짬밥은 그렇다 치더라도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때에는 굶어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을 때 벌레도 잡아먹은 적 있었으니 말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필두였기에 가게에서 파는 고기 정도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이상 웬만하면 다 맛있게 먹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두 명이요.”
“자리 안내해 드릴게요.”
종업원의 뒤를 따라 안내를 받은 두 젊은 커플.
이후 고기가 세팅되는 동안에 혜정이 추가 설명을 이어갔다.
“여긴 직접 구워주시니까 우리는 먹기만 하면 돼.”
“그건 편하군.”
고깃값이 좀 비싼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그게 다 이런 서비스가 포함된 가격이라고 생각한다면 납득될 만했다.
게다가 혜정의 말마따나 고기의 육질도 상당했다.
필두가 지금까지 먹어본 고기 중에서 탑이라 부를 만큼 맛있었다.
‘레디너스에 가져가면 웬만한 식당들은 다 때려잡겠군.’
과학과 기술의 발전도 그렇지만, 이곳은 음식도 상당히 앞서 가고 있었다. 문화 차이 때문에 처음에는 영 불편했으나 음식 맛 하나만큼은 정말 엄지를 추켜올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고기와의 밀당을 나누던 동안, 익숙한 인물들이 가게에 모습을 드러냈다.
“행보관님 아니십니까?”
“음? 너희가 여긴 무슨 일이지.”
하나포 인원들과 딱 맞닥뜨렸다.
설마 이곳에서 조우하게 될 줄이야. 아니, 가만 생각해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곳 지역의 시내는 전방에 있는 터라 그렇게까지 큰 규모는 아니었다.
비교적 협소하기 때문에 맛집이라든지 유명한 곳도 몇 없다. 그런 곳만 찾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는 얼굴을 만나기도 할 때가 빈번하다.
필두도 과거에 자신의 부하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 경험을 토대로 본다면, 하나포 인원들과의 만남도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닐 터였다.
병사들이 필두에게 거수경례 이후 혜정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9090대대 제1포대 하나포 병장 김조항이라고 합니다!”
“상병 전도혁입니다!”
“상병 정성태입니다!”
선임급들이 먼저 나서서 자기소개를 했다. 혜정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마주 인사했다.
“민혜정이에요. 그러고 보니 종교행사 때 자주 보던 얼굴들 같은데, 맞나요?”
“네! 종교행사 때마다 기독교 갔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전의성과 박대박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전원 기독교다.
막내 둘은 불교. 한때는 교회도 한두 번 나가곤 했으나, 그때마다 혜정이 없었기에 사실상 이들은 혜정을 처음 보는 것과 다름없었다.
“저분은…….”
대박이 진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처음에는 대답하기를 망설 여하던 진수였으나, 이내 혜정을 소개했다.
“행보관님 여자친구분이셔.”
“헉, 그렇습니까?”
“충성! 이병 전의성!”
“이병 박대박입니다!”
하기야.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
사적인 자리에, 그것도 주말에 단둘이서 식사를 하고 있으니 여자친구일 가능성이 매우 크지 않겠나.
필두에게 여동생이나 누나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으니 더더욱 여자친구일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상당한 미인이다! 나이 상으로는 병사들보다 4~5살 많은 연상의 여인이지만, 뭐랄까.
평소 관리를 잘한 모양인지 균형 잡힌 몸매뿐만 아니라 미모 역시 동안으로 보일 만큼 어여쁨을 자랑했다.
‘행보관님한테 이런 미인 여자친구분이 계실 줄이야!’
‘진짜 예쁘다. 대박이네!’
분과 외박을 나온 이후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봤던 젊은 여성들이 머릿속에서 깡그리 지워질 정도였다.
그만큼 혜정의 아름다움은 병사들의 입을 쩍 벌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단체로 외박 나오신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저희랑 같이 먹어요. 마침 자리도 많은데. 괜찮지? 필두 씨.”
“상관없겠지.”
필두가 혜정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러나 조항과 도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들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그냥 따로 먹겠습니다.”
“오붓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왜. 같이 먹지 않고.”
필두가 재차 권유했지만, 이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저희끼리 먹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서 말입니다.”
“나중에 기회 있을 때 같이 또 먹겠습니다!”
조항이 선공을, 도혁이 보조를 하는 형태로 거절 의사를 재차 밝혔다.
이들의 확고한 태도를 본 이상, 필두도 더 이상 강요할 순 없었다.
“알았다. 대신 고깃값은 내가 계산할 터이니 마음껏 먹어라.”
“정말입니까?”
“이건 거절하지 않는군.”
피식 웃음을 토하는 필두. 그렇다고 빈정 상해서 한 번 내뱉은 말을 취소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해본 말이었다.
“사병 월급도 가뜩이나 적잖아. 안 그러냐.”
“감사합니다, 행보관님!”
“잘 먹겠습니다!”
필두의 작은 베풂은 이들에겐 축복과도 같았다.
혜정도 필두의 씀씀이에 딱히 반대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렇게 하라는 식으로 병사들을 독려했다.
따로 테이블을 잡은 하나포 병사들이 재량껏 고기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향해 빙그레 미소 지어준 혜정이 다시 필두를 바라봤다.
“필두 씨, 의외네.”
“뭐가.”
“부대 내에선 ‘악마 행보관’이라고 불린다며? 그런데 이런 상냥한 점이 있을 줄은 몰랐어.”
“엄격할 때에는 엄격하고 풀어줄 때에는 풀어준다. 이게 내 철칙이니까.”
“어머, 정말?”
필두가 한 말을 귀담아듣겠다는 식으로 반응한 혜정이 상기된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그럼 오늘 밤에는…… 나, 엄격하게 대해줄 거야?”
“…….”
“상냥하게 대해줘도 괜찮은데.”
참으로 난감한 선택지였다.
* * *
필두와 혜정 커플이 가게에서 나올 때, 비슷한 시기에 하나포 병사들도 가게 밖을 나왔다.
이들이 먹은 것까지 다 계산한 필두가 하나포 인원들에게 다음 일정을 물었다.
“이후에는 어디 갈 건가.”
“피시방에서 게임 한 판 때리기로 했습니다.”
“아직 오락실에서의 승부도 안 갈렸고 말입니다!”
“그렇군. 여하튼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니진 마라. 듣자 하니 저번 주부터 헌병대가 빡세게 순찰 돌고 있다고 하니까.”
“헉, 그렇습니까?”
필두가 들려준 정보는 이들에겐 상당히 귀했다.
괜히 어설프게 행동하다가 헌병대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끝이니 말이다.
물론 조항이 있었기에 큰 사고를 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하나 사고라는 건 당사자들만 조심한다고 발생하지 않는 게 아니다.
괜히 필두가 이런 말을 한 게 아니었다. 조항도 필두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알기에 알았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예. 10시 전에는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부대에 꼭 전화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잘 놀다가 들어가라.”
“행보관님도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충성!”
좋은 시간이라는 말에 혜정의 얼굴이 다시금 붉게 상기되었다.
“아, 맞다.”
혜정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중간에 뭔가 떠오른 모양인지 진수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진수 씨. 예나한테 연락 안 하셨나요?”
“예. 안 했습니다.”
“전화라도 한 통 해주시는 게 어떤가요? 그리고 시간 되면 나오라고 말해보세요. 예나 집이 여기서 가깝거든요. 예나도 좋아할 거예요.”
“고려해 보겠습니다.”
진수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부러 예나에게 외박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애초에 혼자 외박을 나온 것도 아니고, 온다고 해봤자 선임들에게 이상한 질문만 받을 거 같았으니까.
필두와 혜정이 자리를 비키자마자 진수는 머지않아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자친구 분, 이 근처 사셔?”
“가만. 생각해 보니 성가대로 자주 오잖아? 그러면 가깝긴 하겠다.”
“왜 말 안 했냐!”
“성가대 올 때마다 매번 보기도 하고 그래서 일부러 연락 안 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다음 주에 휴가 나가면 따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예나를 부르면, 진수는 분명 이들에게 ‘배신자’가 된다.
예나는 진수와 연인 사이다. 물론 실제로 그렇진 않고, 설정 상으론 그렇게 되어 있었다.
만약 여자친구가 온다면, 진수는 이들이 아닌 예나와 따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겨진 선임, 후임들은 무슨 기분이 들까.
이번 외박은 개인 외박이 아닌 분과 외박이다. 그래서 진수는 일부러 예나를 부르지 않았다.
일종의 배려였다.
그러나 그 배려가 여친 없는 남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겼다.
“하! 여친 있다고 여유 부리다니!”
“부럽다, 부러워!”
“나 같으면 당장 불렀을 텐데…… 제길!”
그래도 타인의 연애사에 왈가왈부할 만한 자격도 없었기에 그러겠거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어차피 이들이 연애하는 것도 아니니까.
* * *
피시방 이후 곧장 모텔로 향한 이들.
그중에서도 유독 성태와 도혁, 연도와 대박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럴 만도 했다.
피시방에서 팀을 나눠 대결을 펼쳤던 이들. 숫자가 맞지 않아 성태, 도혁, 연도, 대박이 한 팀을. 그리고 나머지 조항, 의성, 진수가 한 팀을 구성해 게임 대결을 펼쳤다.
종목은 유명 RTS 게임과 FPS 게임. 두 종목이었다.
진 팀은 모텔에서 벌일 술자리 값을 전부 계산하기로 했다.
인원수로 보나 게임 실력으로 보나 4인 팀이 압도적인 승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4인팀의 완패였다.
패배의 주 원인은 이들이 못해서가 아니라 3인팀이 너무 잘해서였다.
특히나 황진수. 그의 게임 실력은 어마어마했다.
“야, 진수야!”
“일병 황진수.”
“너, 혹시 프로게이머 생활하다가 들어왔냐? 왜 이렇게 잘해!”
도혁이 진수의 과거를 캐물었다. 그러나 진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심심풀이로 좀 해본 게 다입니다.”
“심심풀이 수준이 아니더구먼!”
“그래! 완전 프로게이머 수준이었다고!”
성태도 도혁을 거들었다.
한때 마일더가 이 세계로 처음 왔을 때, 그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바로 컴퓨터라는 존재였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세계 모든 정보를 대다수 얻을 수 있는 신기한 물건.
하루 종일 컴퓨터를 만지다가 우연치 않게 게임이라는 걸 접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스페이스크래프트라는 RTS 게임은 진수의 취향에 딱 들어맞았다.
전략과 전술이라고 하면 마일더 아니겠는가. 게다가 피지컬까지 따라주다 보니 금세 게임에 적응할 수 있었다.
도혁과 성태가 불평을 내뱉을 만도 했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조항이 입을 열었다.
“자자. 저기 편의점 있으니까 빨리 술하고 안주 사 와라.”
“……알겠습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