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44화
제35장. 분과 외박(2)
갑작스럽게 결정된 분과 외박 소식에 하나포 분대원들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내일 정말 외박 나갑니까?”
정성태가 혹시 몰라 확인 차원에서 한 번 더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Yes뿐이었다.
“이때 아니면 도무지 시간 안 될 거 같아서. 그리고 마침 잘 됐잖아? 유격 훈련 끝나는 타이밍에 가는 거니까.”
“그건 괜찮은 거 같습니다.”
“나가서 실컷 즐기다가 들어오자고.”
“네!”
분과 외박 소식에 의성과 대박은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군 생활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수십 번 접했던 대박도 분과 외박 같은 건 알지 못했다.
“황진수 일병님. 분과 외박이 뭡니까?”
질문의 타깃이 진수에게 집중되었다.
“말 그대로다. 분과 단위로 외박을 나가는 거. 알겠지?”
“그래도 됩니까?”
“괜찮겠지. 위에서 외박 갔다 오라고 했으니까.”
간부가 허락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분과 외박. 의성과 대박은 이번 외박이 첫 외박인 셈이었다.
가족들이 면회를 온 적은 있었으나, 바깥으로 나갔던 건 아니었다.
오로지 필두와 대중목욕탕을 갔을 때, 단 한 번 빼고는 입대 이후에 위병소 바깥으로 나가본 적도 없었다.
그 때문일까. 기대감이 수직 상승했다.
분과 외박이라고 해도 크게 준비할 건 없다. 놀러 가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시간, 그리고 돈.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된다.
좀 더 효율적으로 잘 즐기기 위해서라도 계획은 필수다.
“김조항 병장님. 루트 어떻게 짜실 겁니까?”
“글쎄. 아침밥은 여기서 먹어야겠고. 일단 나가서 시내 도착하면 좀 돌아다니다가 점심 먹고, 피시방이나 노래방 가서 시간 좀 때우다가 저녁 먹고, 그리고 술자리 가지면 되지 않을까.”
“클럽은 안 갑니까?”
연도가 도중에 사심을 드러냈다.
“시내 근처에 괜찮은 클럽 하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너, 그 말 어디서 들었냐.”
“지나가다가 타 부대 아저씨한테 들었습니다.”
“그럼 못 들은 걸로 해라. 나도 네가 말하는 클럽이 어딘지 아는데, 거기 주말에 가면 온통 군인들밖에 없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반적인 클럽이 아니야.”
젊은 여자를 다수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던 연도였으나 조항의 한 마디로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그의 말마따나 주말 클럽은 남탕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인근에 군부대들이 다수 있다 보니 주말에 그 클럽을 애용하는 민간인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냥 술집에 가서 술이나 마시는 게 제일 좋아. 괜히 여자 불렀다가 문제 더 커질 수도 있고.”
성태가 일침을 가했다.
외박 나가는 것도 좋지만, 문제가 생길 만한 요지를 만들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괜히 기분 좋게 외박 나갔다가 헌병대한테 끌려오게 되면, 적어도 2~3개월은 쥐 죽은 듯이 살아야 한다. 그것뿐이랴. 영창이라도 갔다 오는 순간, 군 생활이 늘어나는 마법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외박이라고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다.
분대장 관찰일지 수첩을 접어놓은 조항이 분대원들에게 후일을 기약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오늘 저녁에 분과 간담회 시간 때 하자.”
“예, 알겠습니다!”
설레는 분과 외박을 앞둔 하나포.
이들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 * *
토요일 오전.
유격 훈련이 끝난 바로 다음날이 주말인 덕분에 병사들은 연이어 평안한 휴식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특히나 하나포는 분과 외박이라는 포상을 얻은 덕분에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외출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아침 점호를 마치고 식사까지 끝낸 하나포 인원들이 행정반에 들어섰다.
“충성! 병장 김조항 외 6명, 행정반에 볼 일 있어 왔습니다!”
분과 외박 신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토요일 당직을 맡게 된 통제관이 손을 가로저었다.
“신고는 생략하고, 빨리 사열대 쪽으로 내려가 봐라. 행보관님 기다리시니까.”
“행보관님이 저희를 말입니까?”
“퇴근하시는 길에 너희 시내까지 내려다 주고 갈 거라고 하더라. 왜. 싫으면 행보관님한테 말해서 버스 기다렸다 타고 가든가.”
“아, 아닙니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충성!”
“그래. 전화 꼬박꼬박 하고.”
“예!”
하나포 병사들을 빠르게 내려보냈다.
어차피 조항이 이끄는 하나포기 때문에 통제관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FM의 대명사라 한다면 바로 김조항 아니겠는가. 그가 같이 나갔으니, 별다른 문제는 일으키지 않을 터였다.
한편, 허둥대며 빠르게 사열대 앞으로 집결한 하나포 멤버들이 곧장 필두를 찾았다.
마침 차에 시동을 걸 준비를 하던 필두가 이들을 발견했다.
“준비 다 끝났나.”
“예, 그렇습니다!”
“그럼 타라. 데려다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오늘따라 서비스 정신이 넘치는 필두였다.
겸사겸사라고 해도, 시내에서 필두의 집까지는 거리가 제법 된다. 그럼에도 필두는 이들을 바래다주겠다는 선택지를 골랐다.
‘역시 우리 행보관님이야!’
병사들의 머릿속에 필두를 찬양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물론 진수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필두의 차를 타고 편하게 시내로 향했다.
만약 필두가 아니었더라면, 위병소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시내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다. 외박은 한정되어 있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그 아까운 시간을 까먹는 꼴이니 차라리 필두의 차를 타고 가는 게 훨씬 옳다.
그리고 필두는 부대 내에서만 엄격한 행보관이지, 사실 그 외적인 시간까지 이들을 엄격하게 대하거나 통제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저 걸릴 만한 행동 같은 거에만 주의하라고 하고, 나머지는 이들의 재량에 맡기기로 했다.
차량이 정차하자마자 병사들이 우르르 내렸다.
7인승이라고는 하나, 덩치 좋은 장정들이 여럿 타니 차 한 대가 이동하는 것도 평소보다 느린 것처럼 느껴졌다.
시내에 내리자마자 사회의 공기가 이들을 반겼다.
“하! 좋다, 좋아!”
“바로 이거지!”
도혁과 성태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바로 이 기분이다.
군대에서 벗어난 이 상황이 두 남자를 기쁘게 만들었다.
노골적으로 표현한 건 아니지만, 연도와 의성, 대박의 눈에도 설렘이 어려 있었다.
물론 진수는 예외였다.
‘밖이라…….’
그는 차라리 군대 안이 더 좋게 느껴졌다.
여기는 뭐랄까. 너무 정신이 산만하다. 가만히 있으면 머리도 아프고 어질 거린다.
필두도 처음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이미 현대인이 다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럼 난 들어간다. 잘 놀다가 들어와라.”
“예!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행보관님!”
필두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이들.
진수와의 묘한 눈 마주침도 잊지 않았다.
그대로 차량을 끌고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건 하나포 병사들뿐.
자유. 프리덤(Freedom)이다.
“일단 오락실부터 가자!”
도혁의 깜짝 제안에 성태가 동조를 했다.
“저번에 당한 거, 아직 안 잊었다. 오늘 되갚아주마!”
“흥! 언제든지 덤비라고!”
승부욕을 불태우는 두 상병의 모습에 조항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괜찮지 않을까.
“첫 번째 목적지는 정해졌네.”
* * *
필두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침대 위로 곯아떨어졌다.
본래는 하루 정도 밤을 지새워도 끄떡없었으나, 유격과 흑마법사 조직의 습격 때문에 피곤함이 쌓여 있었다.
그 덕분에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수면 상태에 접어들었다.
이로써 총 다섯 명의 흑마법사 조직원들을 제거하는 데에 성공했다. 남은 인원은 고작해야 4명. 그중에 우두머리가 있다.
복수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만약 우두머리를 제거하게 되면, 드리무어의 복수가 성사된다면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가족들을 죽인 이를 찾아 복수한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왔다. 그 이외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서서히 눈을 뜬 필두가 현재 시각을 확인했다.
오후 3시. 오전 10시 반에 집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고 친다면, 대략 5시간 남짓 잠든 셈이었다.
밤을 지새우고 잔 시간에 비해선 그리 넉넉한 수면 시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필두는 딱히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2~3일을 밤새고도 두 시간만 자면 모든 피로가 싹 풀리는 드리무어였다. 그런 그에게 다섯 시간이라는 수면 시간은 과분할 정도였다.
상반신을 일으킨 그가 짧은 머리를 긁적였다.
“복수 이후의 삶은 어떨까.”
문득 든 생각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레디너스에 있었을 때라면, 그는 결코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강필두로서 모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레디너스로 다시 돌아가 봤자 무엇할까.
계획은 없다.
‘아니지.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오로지 복수. 내 가족들을 죽인 녀석을 찾아내 똑같이 되갚아준다! 그것 말고 다른 건 생각하지 말자.’
손바닥으로 본인의 얼굴을 몇 번 딱딱! 치며 제정신을 추슬렀다.
그러는 동안,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띵동!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이내 잠금장치가 알아서 해제되었다.
필두의 집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아는 인물은 딱 세 명밖에 없다.
필두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여자 친구인 민혜정뿐이다.
확률상으로 따진다면 혜정이 가장 높았다. 그리고 필두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필두 씨. 자고 있어?”
“이제 막 일어났어.”
약속 시간보다 1시간가량 빠르다.
“아직 시간 남은 거 같은데.”
“일부러 빨리 왔어. 필두 씨 집 청소도 할 겸해서. 훈련 때문에 그동안 집도 계속 비우고 있었잖아?”
“그렇긴 하지.”
“마침 일어나서 다행이야. 자고 있었으면 청소기도 못 돌렸을 텐데. 그보다 먼저 씻어. 밥은 어떻게 할래?”
“나가서 먹지. 어차피 냉장고 안에 재료도 없으니까.”
“응. 그게 좋겠어.”
혜정도 그걸 예상한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필두에겐 깜짝 이벤트다. 설마 먼저 올 줄이야.
당돌한 혜정의 행동에 처음에는 좀 낯설긴 했으나, 이제는 적응이 되는 듯했다.
역시 사람이란 적응하는 생물이다.
* * *
오락실에서 그간 쌓였든 스트레스를 풀어낸 하나포 병사들이 시내 한복판을 천천히 거닐었다.
밝게 빛나는 네온사인!
거리를 걷는 젊은 청춘들!
“여기에 올 때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니까!”
“이상한 표현 쓰지 마라, 도혁아. 그보다 우리가 저번에 먹었던 고깃집 어디 있었지?”
“저깁니다, 김조항 병장님.”
이상한 상황극을 펼치는 도혁을 대신해 성태가 길 안내를 자처했다.
이들이 향한 곳은 꽤 큰 규모의 고깃집.
“여기가 양도 많고 가격도 싸고. 군인들이 자주 애용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너희도 나중에 잘 알아뒀다가 후임들에게 알려줘.”
“예, 알겠습니다!”
성태로부터 고깃집 교육을 받은 후임들이 곧장 대답했다.
씩씩하게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하나포.
그때,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마주하게 되었다.
“엇……?”
“행보관님 아니십니까?”
때마침 혜정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온 필두가 이들과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