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42화 (142/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42화

제34장. 공포의 유격(9)

서수오. 그의 나이 23세.

마침 딱 군대 가기 좋은 나이로 설정되어 있었다.

‘설마 내가 자원입대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필두 말대로 살고 싶다면 자원입대라도 해서 그의 밑으로 들어가는 게 좋다. 그래야 필두의 지속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직까지는 흑마법사 조직에 수오의 배신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도 남은 두 명과 같이 필두에게 목숨을 빼앗긴 형태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보 왜곡이 언제까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조사하면 수오의 생존 여부는 금방 드러날 테니까.

그전에 어떻게 해서든 필두의 말대로 9090대대에 신병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필두가 생각한 시나리오다.

“155㎜ 견인곡사포로 지원하면 된다고 했지…….”

다행스럽게도 일반 지원이 아니라 따로 특정 보직으로 지원을 할 수 있게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

155㎜ 견인곡사포 특기병으로 지원을 하면 필두의 부대로 발령받을 가능성이 훨씬 늘어난다.

만약 9090대대로 전입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는 망했다고 봐야지, 뭐.’

그냥 운이다. 단지 그 확률을 많이 높였을 뿐.

목숨을 건 도박이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나은 편 아닌가. 수오도 그런 생각을 했기에 필두의 말에 따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155㎜ 견인곡사포 포병 지원 입대를 선택한 서수오.

‘좋아, 한번 도박 걸어보자!’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지원 완료 버튼을 클릭했다.

설마 입대 하나로 죽느냐 사느냐가 결정될 줄이야.

수오가 생각해도 본인의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 * *

오전의 유격 체조가 끝난 이후 오후에 잡혀 있는 화생방 훈련을 위해 제1포대 인원들이 또다시 산을 올랐다.

화생방 훈련이 펼쳐지는 건물에서 조금씩 새어나오는 CS탄 연기의 냄새가 병사들의 코끝을 자극했다.

“하…… X발.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눈물, 콧물이 콸콸 나오네!”

“왜 유격에 화생방 훈련이 있는 거야!”

“진짜 돌아버리겠네.”

병사들의 불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올랐다.

병사들이 가장 기피하고 싶은 훈련 중 하나. 그것이 바로 화생방이다.

병사 중에서도 아주 최근에 화생방 훈련을 하고 자대로 전입온 의성과 대박은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화생방에서 겪었던 공포심이 아직 몸에 제대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 앞에 마주 선 필두가 확인 차원에서 질문했다.

“오늘 화생방 훈련 못 받겠다 하는 병사들 있나.”

“병장 이성용! 오늘따라 머리가 좀 아픕니다!”

“병장 강태화! 지병인 두통이…….”

“병장 황민호! 1년 전에 헤어진 여자 친구가 생각이 나 기분이 안 좋아져서 화생방 훈련을 받을 수 없을 거 같습니다!”

“너희 세 명은 무조건 화생방 훈련받는다. 알겠나.”

어디서 잔머리를 굴리려 하는가. 필두에게 그런 핑계들이 통할 리 만무했다.

결국 예외 없이 전원 화생방 훈련을 받게 된 제1포대 병사들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

하나포가 속한 8조가 드디어 화생방 훈련 장소에 진입했다.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로 들어간 이들에게 바로 교관의 지령이 떨어졌다.

“전원 팔벌려뛰기 20회 실시한다. 몇 회?”

“20회!”

“21회 시작!”

마지막 구령은 붙이지 않는다. 이제 유격장에서 이 룰은 상식이 되었다.

굳이 교관이 말을 해주지 않아도 병사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덕분에 마지막 구령 안 외치기는 껌이 되어버렸다.

정확히 21번. 마지막 구령은 붙이지 않았다.

이들의 완벽한 협동심에 교관도 자못 놀랐다.

하나 게임은 지금부터다.

“정화통 분리해서 머리 위에 올린다. 실시!”

“악!”

교관의 말에 따라 빠르게 정화통을 분리하는 8조 인원들.

행동은 신속, 정확해야 한다. 한 명이 덤벙거리면 나머지 병사들이 지옥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긴장한 탓일까. 머리 위에 정화통을 올리는 과정에 의성이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텅!

정화통이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헉!”

당황한 나머지 의성이 바동거리며 정화통을 찾아 헤맸다.

한편, 옆에서는 벌써부터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물, 콧물 질질 짜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의성의 심장은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게다가 의성도 화생방 가스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었다.

‘망했다! 선임들한테 제대로 욕먹을 거야!’

두려움이 점점 커졌다.

그때, 조항이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의성아! 침착해라! 아무도 너 원망 안 하니까 정신 차려!”

“그래, 짜샤! 힘내!”

“정화통 어디로 떨어 졌냐! 같이 찾아주마!”

도혁과 성태도 그에게 힘을 보태줬다.

빨리하라고 윽박지르고 소리치는 것보다 응원의 말이 더 힘이 된다는 걸 선임급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조항이 이등병 시절 때, 소진언도 현재의 조항처럼 같은 말을 들려줬었다. 그 때문에 조항은 많은 힘을 얻었다.

소진언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김조항. 도혁과 성태도 잊지 않았다.

연도와 동기인 대박도 그를 책망하지 않고 같이 정화통 찾기를 도왔다.

이들을 말없이 지켜보던 교관이 오른발로 무언가를 툭! 찼다.

정화통이었다.

데굴데굴 굴러간 정화통이 의성의 발에 닿아 멈췄다.

정화통을 보자마자 의상이 곧장 머리 위로 그것을 들어 올렸다.

모든 올빼미가 정화통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음을 확인한 교관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정화통 결합!”

“악!”

빠르게 정화통을 결합하는 이들. 거의 빛이 속도라 불릴 만큼 빨랐다.

“오른쪽 올빼미부터 차례차례로 뛰어나간다. 실시!”

“아악!”

문이 열리자마자 병사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양팔을 수평으로 벌린 채 뛰어나가며 최대한 CS탄 연기를 털어냈다.

8조 훈련병들이 모두 빠져나갔음을 확인한 화생방 조교가 교관에게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혹시 일부러 정화통 굴려주신 겁니까?”

“그래. 왜. 안 되냐.”

“안 될 게 뭐 있겠습니까. 작전장교님이 하신 일인데 제가 왈가왈부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보다 좀 의외였습니다.”

“뭐가.”

“화생방 안에서만큼은 악마라 불리는 작전장교님이 그런 천사 같은 면모를 보여주실 줄은…….”

“그러게 말이다.”

작전장교의 마음을 움직인 건 김조항의 대처였다.

후임을 안심시켜주는 그 마음이 악마를 천사로 만들어준 것이다.

* * *

유격훈련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마지막 날임에도 오전의 유격 체조는 여전히 건재했다.

그러나 평소와는 좀 달랐다.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전 10시까지. 단 한 시간만 유격 체조를 진행하고 나서 모든 훈련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이후 퇴소식을 준비하는 병사들의 얼굴에는 기쁨이라는 감정이 잔뜩 어려 있었다.

“전투복이 이리도 반가울 줄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하, 매번 전투복 입을 때마다 불평하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전투복을 입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된 병사들이었다.

감탄을 연발하는 병사들에게 필두가 언성을 높였다.

“농땡이 그만 피우고 빨리 집합이나 해라. 곧 퇴소식 시작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바로 집합하겠습니다!”

집합 장소로 우르르 몰려가는 병사들의 발걸음이 유독 가벼워 보였다.

하기야.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2대 훈련이라 불리는 유격을 무사히 치렀으니, 병사들의 마음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아직 유격 훈련이 끝난 건 아니었다.

퇴소식 이후 이들을 기다리는 커다란 난관이 있다.

바로 복귀 행군.

입소 행군과 다르게 복귀 행군은 야간에 진행되기로 예정되어 있다. 게다가 거리도 그리 먼 거리가 아니기에 나름 각오를 굳혀야 했다.

병사들이 퇴소식을 위해 연병장으로 향했다.

강단 위에 올라선 검은 모자의 유격 교관, 인사장교가 병사들을 쭉 훑었다.

“그간 교관 밑에서 훈련받느라 고생 많았다. 본인들을 위해서, 그리고 다 같이 수고한 전우와 조교들을 위해 박수!”

짝짝짝!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후 대대장의 훈시를 비롯해 각종 퇴소식 식순을 마친 병사들이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

기둥과 위쪽 부분의 천막밖에 남아 있지 않은 텐트.

본래는 다 철거해야 맞지만, 점심 이후부터 오후 5시까지 병사들에게 오침을 하기에 편히 잠을 잘 수 있도록 뼈대만 남겨뒀다.

야간 행군을 대비한 오침 시간은 일분일초가 소중하다.

병사들이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조교로 활동했던 병사들이 다시 부대로 합류했다.

아직 잠들지 않은 몇몇 병사들이 이들의 복귀를 환영했다.

“고생했다, 애들아.”

“감사합니다.”

“악마 조교, 황진수 왔네.”

“온몸 비틀기 좀 그만 시켜라, 이제.”

“조교 신분 벗어났으니까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설마 진짜로 시키려고 했냐?”

“그냥 해본 말입니다.”

진수 나름대로 병사들의 농담을 받아줬다.

유격 조교들도 복귀 행군에 참가할 예정이다.

이제 이들은 더 이상 조교가 아니다. 아쉬움이 남는 진수였으나, 그래도 본인의 신분을 망각할 수는 없었다.

이후 야간 행군 시간이 도래하자, 병사들이 다시 군장을 싸고 연병장으로 집합했다.

대대장이 내건 슬로건, ‘낙오자 없이’라는 훈시와 함께 10시간 정도 걸리는 대 행진이 시작되었다.

지옥 길이라 불렸던 비탈길을 지나니 유격장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잘 있어라, 유격장이여.”

유격장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병사들의 감회는 남달랐다.

나 자신을 극복했다는 보람을 느끼는 병사가 많았다. 또한, 이번 유격을 마지막으로 모든 훈련을 끝마친 말년병장도 있었다.

반면, 연도나 의성, 대박, 진수 등 내년에 또 이곳 신세를 져야 하는 후임급들도 있었다. 이들은 내년에 다시 한번 이곳을 찾게 될 것이다.

그렇게 유격장을 뒤로하고 야간 행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본래 필두는 미리 대대로 들어가도 된다는 특권이 있었지만, 그는 행보관 중에서 유일하게 행군에 직접 참가하는 간부이기도 했다.

드리무어가 필두의 역할을 소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어져 온 나름의 버릇이었다.

처음에는 장교와 부사관들이 다들 필두를 만류했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필두의 합류를 막는 이 없었다. 오히려 병사들보다도 체력이 좋으니, 걱정할 일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야간 행군. 코스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기에 무난한 행군으로 예상되었다.

게다가 습격자들도 전부 다 처리했고 말이다.

그러나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사건, 그리고 사고라는 건 항상 방심하다가 발생한다. 행군이라 하더라도 항상 정신 바짝 차리고 임해야 한다.

“부대 복귀할 때까지 정신 바짝 차려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알파 포대 파이팅!”

필두의 선창에 병사들의 사기가 상승했다.

유격 훈련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이들의 걸음이 힘차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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