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36화
제34장. 공포의 유격(3)
유격장에서의 하루가 끝나고 이틀째 아침이 밝았다.
하루가 지났다 하더라도 사실상 본격적인 유격의 시작은 둘째 날부터라고 보는 게 옳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입소식을 가지고 본 훈련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입소식을 앞둔 상황에서도 9090대대는 늘 그렇듯 아침 점호에 들어갔다.
유격장이라 하더라도 점호는 필수다.
점호를 주도할 인원은 바로 제1포대 포대장. 포대장이 아침 점호를 맡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다들 잘 잤는가.”
“예!”
“전제 뒤로 돌앗!”
지체 없이 뒤로 돌기를 시전하는 병사들.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은 평소에 입는 전투복이 아니었다.
유격복. 즉, 아무리 굴러도, 아무리 더러워져도 괜찮은 그런 옷이란 뜻이었다.
유격 훈련이 끝날 때까지 이들의 평상시 전투복은 당분간 봉인이다.
“전방에 힘찬 함성, 5초간 발사!”
“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함성인지 비명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목을 풀었으니, 이제는 몸도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복무신조, 애국가 제창 등 평소 점호할 때처럼 모든 식순을 마친 이후에 국군도수체조까지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 남은 건…….
“구보할 거다. 전체 상의 탈의하도록.”
올 것이 왔다!
병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아침 구보는 유격장에서도 유감없이 존재감을 뽐냈다.
평소에 하던 구보와 같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애초에 장소가 다르다. 9090대대에는 비탈길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 유격장은 죄다 비탈길이다. 평지인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가파른 공간이다.
그곳에서 뛰어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두통이 몰려오는 듯했다.
솔직한 심정으론 어떻게 해서든 빠지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상의를 탈의한 포대장이 인솔자 위치에 섰기 때문이다.
‘포대장님이 직접?’
‘망했다!’
‘이러면 뺑이 치지도 못하잖아!’
차라리 같은 병사나 혹은 부사관 중 한 명이 인솔하는 게 좋았다. 포대장이 직접 인솔하면 이런저런 핑계도 못 댄다.
포대장 덕분에 강제로 아침 구보 참석률 100%를 달성하게 된 제1포대.
“구보 중에 군가한다! 군가는 멋진 사나이! 군가 시작, 하나! 둘! 삼! 넷!”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오늘따라 군가가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 * *
점호와 구보, 식사를 마친 병사들은 곧장 연병장으로 집합했다.
연병장은 9090대대 연병장보다도 상당히 커 보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연병장 뒤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앰뷸런스. 그것에 병사들의 시선이 꽂혔다.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구급차까지 대기 중이래?’
‘얼마나 힘들기에 저런 거야!’
유격 훈련을 체험해 보지 못한 후임급 병사들은 벌써부터 지레 겁을 먹었다.
반면, 상병장급들은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또 시작이구나.’
‘이번 유격 훈련만 끝나면 전역이다, 전역!’
‘한 번만 잘 버티자!’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각오가 보였다.
그사이, 붉은 모자를 쓴 조교들과 검은 모자를 착용한 교관이 강단 위로 올라섰다.
조교들은 열중쉬어 자세를 굳혔다. 시선은 9090대대 병사들을 반겨줄 때, 처음 보여줬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눈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교관은 선글라스까지 착용했다.
“아아. 본 교관이 이번 9090대대 유격 훈련을 책임지게 되었다. 만나서 반갑다.”
병사들은 교관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본부포대 인사장교다.
그도 병사들과 함께 조교, 교관이 되기 위해 특별 훈련을 받았다.
왜 인사장교가 선출되었는지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기존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싶어서였다.
나도 충분히 무서울 수 있다. 이 점을 병사들에게 강조하기 위해 그가 먼저 교관 자리를 지원했다. 그 결과, 인사장교는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천사가 아닌 악마로의 재탄생이다.
그건 조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부터 너희의 관등성명은 ‘XXX번 올빼미’로 통일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유격에는 계급이고 짬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너희를 힘들게 하고 괴롭힐 훈련만이 존재하지.”
인사장교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먼발치에서 인사장교의 모습을 지켜보던 필두도 내심 놀랐다.
‘저런 표현도 하는 사람이었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이미지 변신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덕분에 병사들만 고생하겠지만 말이다.
“거기 너, 기준.”
“기준!”
“15열 종대로 헤쳐모여.”
“헤쳐모여!”
복명복창하며 우르르 몰려드는 병사들. 아니, 올빼미들.
그러나 도중에 인사장교가 호루라기를 삐익! 하며 불었다.
“동작 그마아안!”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인사장교의 외침에 순간 올빼미들이 황당한 얼굴을 했다.
“다시 원위치.”
인사장교의 말에 따라 본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가 화가 난 이유는 간단했다.
“목소리가 왜 이렇게 작나. 니들, 이딴 식으로 훈련받을 거냐!”
“아, 아닙니다!”
“다시 15열 종대로 헤쳐모인다. 헤쳐모여!”
“헤쳐모여!”
목소리는 한층 커졌을지 모르나, 행동은 여전히 느릿느릿했다.
그것이 인사장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쭈, 이것 봐라. 전체 엎드려뻗쳐!”
영문도 모른 채 자세를 취했다.
“하나에 정신을. 둘에 차리자. 하나!”
“정신을!”
“둘!”
“차리자!”
“목소리 또 기어들어간다! 하나!”
“정신을!”
“둘!”
“차리자아아!”
아직 유격 훈련은 시작도 안 했다. 오와 열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데도 올빼미들의 이마에는 벌써부터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인사장교가 하나의 룰을 추가했다.
“대답은 무조건 ‘악’으로 한다. 알겠나.”
“예!”
“어쭈? 머리가 없나! 본 교관이 방금 뭐라고 했지?”
“아, 아악!”
뒤늦게 본인들이 실수했음을 알아차렸다.
이래서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다. 군 생활 내내 비슷한 대답만 해오다가 유격장에서 다른 구호를 내야 하니, 적응이 안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교관은 봐주는 게 없었다.
“지금부터 교관의 말을 어기거나 하는 올빼미가 있다면, 바로 뒤로 열외 한다.”
열외. 이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지 상병장급 병사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후임급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애초에 이들은 유격이라는 것 자체를 처음 경험해 본다. 알 리가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너희가 좋아하는 유격 체조를 알려주도록 하겠다.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며 구분동작으로 설명해 줄 터이니, 잘 보고 기억하도록.”
동작을 설명하는 동안에는 윽박지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시범이 다 끝난 후에는 올빼미들의 턴이다.
“지금부터 1번 높이뛰기부터 시작하겠다.”
그렇게까지 어려운 동작은 아니다.
하나 방심하면 큰일이다.
“높이뛰기 5회 실시한다. 마지막 5회째에 구호는 외치지 않는다. 만약 한 명이라도 어기는 자가 있다면, 다시 반복한다.”
말로 들었을 때에는 간단하게 느껴진다.
하나 직접 해보면 그건 또 아니다.
“높이뛰기 몇 회?”
“5회!”
“7회 시작!”
갑작스럽게 바뀐 숫자. 하나 이건 훼이크에 불과하다.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총 6회까지의 구호를 외쳤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인 7회뿐!
구호를 외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차례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일곱!”
“……?”
“……!”
올빼미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갔다.
누군가가 일곱을 외친 것이다!
“아, 씨. 누구야.”
“어떤 새끼가…….”
입에서 불만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입 다물어라!”
교관이 불같이 성을 냈다.
“같은 전우 욕할 거 없다. 전우의 잘못은 나의 잘못. 책임 역시 개인이 아닌 모두가 함께 진다. 알겠나!”
“악!”
“다시 처음부터 한다. 높이뛰기 6회. 몇 회?”
“6회!”
“5회 시작!”
이번에도 숫자 바꾸기 신공을 선보였다. 하나 이게 문제가 아니다.
마지막 구호를 외치느냐, 안 외치느냐. 여기에 모든 사활을 걸어야 한다.
넷 구호까지 외쳐지자, 올빼미들의 눈빛에 긴장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외치면 안 된다, 외치면 안 된다, 외치면 안 된다!’
‘여기서 실수하면 역적이다!’
스스로 마인드컨트롤에 돌입했다.
이들의 간절한 기원이 통했을까.
5회가 되었음에도 구호를 외치는 이는 다행히도 없었다.
“좋아, 다음 동작으로 넘어간다.”
겨우 교관의 마음에 든 모양인지 드디어 2번째 동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 * *
계속해서 반복되는 유격 체조.
특히 8번, 온몸 비틀기 때에는 말 그대로 지옥이 펼쳐졌다.
“하나……!”
“두우울!”
“……세에엣!”
그냥 하기도 어려운데, 여기에 방탄모를 쓴 채로 온몸 비틀기 동작을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온몸 비틀기는 누운 상태에서 양팔을 수평으로 뻗어 등과 팔을 지면에 붙인다. 그 상태로 하늘을 향해 두 다리를 뻗고, 머리는 땅에 닿지 않게 든다.
이후 다리와 머리를 각각 왼쪽, 오른쪽으로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틀어준다. 이것이 끝이다.
하나 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어려운 동작이다. 뒷목도 당기고, 허리도 아프고, 허벅지는 터질 거 같으며 몸은 통제가 안 된다.
게다가 이들이 신고 있는 건 일반 운동화가 아닌 전투화다. 다리의 무게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상하게도 힘든 동작에 들어갈 때마다 꼭 마지막 구호를 외치는 올빼미가 있었다. 덕분에 병사들의 체력은 삽시간에 고갈되었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조교들까지 돌아다니면서 올빼미들을 닦달했다.
“똑바로 안 합니까!”
“다리 쭉 폅니다!”
“머리 땅에 대지 않습니다!”
“125번 올빼미, 열외 되고 싶습니까!”
이곳이 지옥이 아니면 어디란 말인가.
괴로워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간부로선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인명사고만 안 나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한편, 온몸 비틀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도혁에게 다가온 조교가 있었다.
“67번 올빼미. 똑바로 못 합니까!”
진수였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도혁이 목소리를 낮춰 부탁했다.
“야…… 나 좀 쉬게 해줘라. 힘들어 죽겠다.”
“조교에게 함부로 부탁하지 않습니다!”
“너, 정말 이러기냐?”
“뒤로 열외 되고 싶습니까!”
“…….”
말이 안 통한다. 구구절절 애원해 봤자 체면만 구기지 뭔가 혜택을 받을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잔소리만 들은 채 끝난 온몸 비틀기. 10분간의 휴식 시간이 왔을 때, 도혁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진수, 저 녀석! 좀 도와주면 어디가 덧나나.”
“그만해라. 진수는 제 역할에 충실할 뿐이야. 물론 너무 지나치다는 게 문제지만.”
조항이 진수를 옹호해 줬다.
진수가 조교를 지원한다고 했을 때부터 이런 현상이 발생할 거라고는 예상했었다.
한편으로는 조교라는 직책이 어울려 보였다.
진수는 어쩌면 천직을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