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34화 (134/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34화

제34장. 공포의 유격(1)

매미가 울기 시작하는 계절이 다가왔을 때.

군인들의 고달픔은 배로 상승했다.

하계 복을 입고 있음에도 전투복이 선사하는 피로는 여전히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건 비단 병사들뿐만 아니라 간부들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하…… 덥다, 더워.”

하나포 반장이 손으로 부채질을 해보이며 최대한 더위를 내쫓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군대 날씨라는 게 어디 그리 쉽게 물러나겠나. 지긋지긋한 무더위는 제1포대뿐만 아니라 9090대대 전체를 물들였다.

이 날씨에도 병사들은 사열대 앞에 집합했다.

대대 지침사항으로 내려온 게 있었다.

유격 훈련에 대비해 체력 단련을 하라.

유격은 상당히 힘든 훈련이다. 두 번의 장거리 행군에 3박 4일 동안 이어지는 훈련까지.

혹한기와 더불어 군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훈련으로 손꼽힐 정도니, 경각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다 집합했냐.”

“예.”

하나포 반장이 병력들을 쭉 훑었다.

현재 시각, 오후 4시.

필두가 지시했던 작업들은 이전에 다 끝내뒀다. 4시 이후부터는 대대장 지침사항대로 유격 훈련을 대비한 체력 단련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일단은 사열대 10바퀴 정도 뛰어라.”

“하나포 반장님은 안 뛰십니까?”

“얌마. 내가 왜 뛰어. 가뜩이나 날씨도 더운데.”

하나포 반장도 좋아서 병사들을 데리고 체력 단련을 시키려는 게 아니다.

그냥 짬이 안 돼서 위에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본인 차례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10바퀴 돌고 난 이후에 유격 체조 알려줄 테니까 미리 숙지해둬라. 그래야 너희가 편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인솔자는…… 조항아, 네가 해라.”

“병장 김조항. 예, 알겠습니다.”

담담하게 걸어간 조항이 인솔자 위치에 마주 섰다.

“전제 뛰어!”

“엇!”

“갓!”

오와 열을 맞춰 병사들과 함께 사열대 주변을 뛰기 시작하는 제1포대 병사들.

때마침 행정반에서 잠깐 바람 좀 쐬기 위해 나온 필두가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하나포 반장을 발견했다.

“넌 뭐하고 있냐.”

“병사들 잘 뛰고 있나 감시 중입니다.”

“또 핸드폰 게임하고 있던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렇게 말하면서 꺼내 들었던 스마트폰을 몰래 건빵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혀를 찬 필두가 사열대를 도는 병사들을 가리켰다.

“인솔 네가 해라.”

“자, 잘못 들었습니다?”

“애들 농땡이 피울지도 모르니까 네가 직접 체력 단련 훈련 주도적으로 하라고.”

“그래도…….”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아, 아닙니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풍겨 나온 필두의 살기에 하나포 반장이 깨갱 하며 바로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대열을 다시 갖춰 병사들과 함께 사열대 주변을 뛰기 시작하는 하나포 반장이었다.

한편, 병사들은 그런 하나포 반장을 향해 마치 ‘지옥으로 잘 오셨습니다.’ 라는 식의 동질감을 드러냈다.

이후에 다시 사열대 앞에 분과별로 집합을 했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병사들. 이 모습을 목격한 하나포 반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이런 거 가지고 지치면 유격 훈련받을 때 쓰러진다.”

“하나포 반장님도 얼굴에 땀 엄청 나시는데 말입니다.”

“이건…… 남자의 눈물이다.”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내뱉으며 손수건으로 얼굴 주변에 맺힌 땀방울들을 황급히 닦아냈다.

“여하튼! 이제부터 너희에게 유격 체조에 대해 교육해 줄 테니 잘 숙지해둬라. 유격장에 가서 눈물 질질 짜고 싶지 않으면 미리미리 숙지해 둬라.”

“하나포 반장님, 유격 체조 다 기억하십니까?

병장급 병사 중 한 명이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매서운 질문 공세는 하나포 반장에게 통하지 않았다.

“얌마. 나, 작년 유격 훈련 때 조교 했던 간부야. 기억나게 해줄까?”

“죄송합니다.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뺀질이 이미지가 강하지만, 하나포 반장은 몸 쓰는 일에선 생각보다 유능한 면모를 보여주는 간부였다.

운동신경도 좋을뿐더러 체력도 좋다. 다만, 이미지가 좀 안 좋게 박혔을 뿐이다.

“유격 체조 다 기억하는 사람 있냐?”

도우미를 뽑기 위해서인지 자원자를 찾는 하나포 반장. 그때, 정성태가 손을 번쩍 들었다.

“상병 정성태. 저, 다 기억합니다.”

“오, 그래? 그럼 올라와라.”

“예, 알겠습니다.”

하나포 반장이 정면을 본 채로, 그리고 성태는 측면 자세가 보이게끔 마주 섰다.

“유격 체조는 1번부터 14번 동작까지 있다. 지금부터 숙달된 옛 조교의 시범을 토대로 구분 동작을 통해 보여줄 테니 잘 기억해둬라.”

“예, 알겠습니다!”

“1번 동작부터. 1번은 높이뛰기다.”

그렇게 하나포 반장의 유격 체조 강의가 시작되었다.

한편, 필두도 행정반 창문 너머로 유격 대비 훈련을 관찰했다.

‘저게 유격 체조라는 건가.’

필두도 처음 본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도 이번 유격이 첫 훈련이다.

이론상으로는 어떠한 훈련인지 들어본 적 있었다. 하나 포대전술훈련 때에도 그렇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체험해 보는 건 천지 차이다.

이번 유격 훈련도 마찬가지일 터.

게다가 유격 체조는 유격의 꽃이라 불린다.

1번부터 14번 동작까지 막힘없이 쭉 선보이는 하나포 반장의 동작에 필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복잡한 동작들은 아니군.’

할 만해 보였다.

그러나 직접 체험해 보는 병사들의 얼굴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특히 8번, 온몸 비틀기 동작 때가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가장 컸다.

‘이런 동작을 유격장에서 한다고?’

‘이런 미친!’

‘하, 군 생활 X같네!’

직접 입에서 욕만 안 했을 뿐이지, 표정으로 봤을 땐 이미 욕 한 바가지 내뱉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모두가 8번 동작에서 고통받을 때, 유독 한 사람만이 평온한 얼굴로 구분 동작을 착실히 수행했다.

유격 조교로 내정된 황진수였다.

하나포 반장도 유독 진수가 눈에 들어온 모양인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진수야. 유격 처음 해보는데도 어찌 그렇게 잘하냐.”

“체질에 맞는 거 같습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서 담담하게 대답하는 진수의 모습에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그날 이후, 진수에게 붙은 별명이 있었다.

유격을 위해 태어난 남자!

* * *

추스르고 추슬러서 결정된 6명의 인원.

이들이 바로 유격 조교를 맡게 될 자들이다.

진수를 비롯해 5명의 병사가 사열대에 정차된 포차에 짐을 실었다.

더블백을 어깨에 짊어진 채 사열대로 내려가던 진수에게 필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가 저번에 했던 말, 잊지 마라.”

“알고 있어.”

유격 훈련 때, 흑마법사 조직원들이 습격을 감행할 것이다.

마일더도 잊지 않았다.

서수오를 건드리고 말고를 떠나서, 진수는 다른 쪽으로 초점을 맞출 생각이었다.

필두와 흑마법사들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진 않는다.

대신, 병사들이 그들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게끔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필두는 만족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건 필두와 흑마법사 조직의 일이니까.

포차에 몸을 실은 이들은 2주간의 유격 조교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3주째에 유격 훈련을 받으러 온 9090대대 병사들을 맞이한다.

선탑자로 가게 된 탄약반장이 필두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행보관님. 충성!”

“조심해서 다녀와라.”

“예!”

선발대를 먼저 보내는 병사들의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다.

이들도 2주 뒤에 유격 훈련을 받으러 유격장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남은 병사들도 계속해서 체력 단련 훈련을 비롯해 유격을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물론 대대장 지침 사항 때문이기도 했지만, 필두의 개인적인 욕심도 곁들여져 있던 탓에 제1포대 유격 준비가 가장 빡셌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이것이 필두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덕분에 병사들은 유격 훈련보다 더 빡센 준비 과정을 거쳐야 했다.

2주라는 시간이 지난 뒤.

유격 훈련까지 단 하루를 앞둔 상황에서 병사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저녁 점호 시간. 당직사관을 맡게 된 필두가 병사들을 1생활관으로 집합시켰다.

통합 점호를 겸해 내일 있을 유격 훈련의 대략적인 일정을 설명해 주기 위함이었다.

“인원 체크해 보도록. 번호.”

“하나!”

“둘!”

“삼!”

“넷…….”

번호라는 구호가 떨어지자, 가장 앞에 앉은 병사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번호를 읊었다.

모든 병사가 1생활관에 집합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일 아침 식사를 하고 난 이후에 오전 10시부터 주간 행군으로 유격장까지 갈 거다. 거리는 42㎞. 고된 훈련이 될 터이니 각오 단단히 하도록.”

“예!”

“군장을 제외한 나머지 물품은 포차에 미리 실어둔다. 잊은 물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둬라. 유격장 가면 너희만 고생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이상으로 점호 마치겠다. 푹 쉬도록.”

필두답지 않은 약식 저녁 점호였다.

내일이 유격 훈련임을 고려해서라도 점호는 빡세게 할 필요까진 없었다. 어차피 필두가 점호에서 굴리지 않아도 알아서 유격장에서 구를 테니까.

* * *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장과 더블백 정리. 그리고 마음의 준비. 이것이 이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완전군장, K-2 소총과 함께 대대 연병장으로 집합한 9090대대 병사들의 모습에는 벌써부터 피곤함이 묻어 나왔다.

주간 행군을 시작하기 전에 대대장의 훈시가 먼저였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무사히 유격 훈련을 마칠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대대장 역시 낙오자 없이를 강조했다.

본부포대를 시작으로 제1포대, 제2포대, 그리고 제3포대가 뒤를 이어 행군 행렬을 만들었다.

40㎞가 넘는 장거리 행군에 병사들뿐만 아니라 간부들 역시 바짝 긴장했다.

무엇보다도 사고 없이 이번 행군을 끝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유격 행군의 첫 시작이 주간에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야간 행군보다 주간 행군은 난이도가 비교적 쉬운 편이다.

졸음과의 싸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부담감이 훨씬 덜했다.

그래도 행군은 행군이다.

“하…… 벌써부터 발에 물집 잡힌 거 같네.”

“이놈의 총은 진짜 바닥에 패대기치고 싶다.”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행군이 쉬울 리 없지 않은가. 게다가 여름이라 그런지 등에는 벌써부터 땀범벅이었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고, 5시간이 지나고.

해가 점점 저물어가는 동안에도 병사들의 피로는 점점 쌓여갔다.

그 와중에 도혁이 앞서 걷는 하나포 신병 두 사람에게 안쓰러운 듯 말을 걸었다.

“하필이면 대기기간 풀리자마자 처음 받는 훈련이 유격이라니. 너희도 진짜 운 없다.”

도혁의 말대로였다.

입대 시기 잘 조율했다면 운 좋게 유격 훈련 한 번 건너뛸 수 있었다.

그러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냥 본인들이 운이 없음을 탓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악운이 유격장에서도 계속 이어질지.

그건 두고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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