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30화
제32장. 우리 행보관님은 연예인(5)
“동맹이라고?”
필두의 한쪽 눈썹이 위로 향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내가 잘못 들은 거 같은데.”
“아니,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수오가 재차 자신의 의사를 드러냈다.
동맹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득이 있어서 나한테 동맹을 제안해 오는 거지?”
“드리무어는 나의 우상이니까. 레디너스에 있을 때에도 당신의 팬이었거든.”
“농담 받아줄 기분 아니다.”
“이쪽도 농담할 상황 아니야. 나도 목숨을 걸고 겨우 당신한테 접촉한 거니까. 알고 있지? 조직의 배신자에게는 오로지 죽음뿐이라는 걸.”
“…….”
김한과 조승천의 죽음은 아주 적절한 예시가 됐다.
“그 두 사람을 죽인 것도 나지만.”
“이제 와서 고해성사라도 할 생각인가.”
“어쩔 수 없었어. 두목의 명령이었으니까.”
조직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명칭이었다.
흑마법사들을 통제하는 머리가 따로 있다.
그를 찾아내는 것이 필두의 목적이다.
‘이 녀석을 잘만 이용하면, 그 우두머리라는 놈도 쉽게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가 누군지 필두는 알지 못한다. 하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보통 실력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스파이 한 명 정도는 있는 게 좋았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서수오가 조직을 배신, 그리고 필두에게 동맹을 제안해 오는 것이 작전일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수오가 필두를 안심시키고 뒤를 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쉽사리 수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네 말을 무슨 수로 믿지?”
“뭐,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수오도 바보는 아니다.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소위 말해 ‘브레인’이라 불리는 존재가 바로 서수오다. 그런 그가 필두의 의심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신뢰의 증거로 정보 하나를 흘려주지.”
“무슨 정보지?”
“정확히 오늘을 기점으로 한 달 뒤. 흑마법사 셋이 너를 습격할 거야.”
“셋이나?”
“그쪽에서도 슬슬 쫄린다는 뜻이겠지.”
흑마법사 조직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필두가 힘을 찾으면 찾을수록 그들에겐 계속해서 불리해질 뿐이다. 물론 조직원들도 본래의 힘을 회복하지만, 드리무어의 능력을 얕보면 곤란하다.
드리무어 혼자서도 조직을 상대할 만큼 강하다. 그래서 필두가 본래의 힘을 되찾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필두의 힘을 흡수하고 싶어 했다.
만약 수오의 정보가 정확하다면, 분명 필두에게 커다란 도움을 준 셈이다.
“그 세 명이 누구지?”
“한 명은 장호일이라고, 공사판에서 노가다 뛰면서 몰래 활동 중인 간첩이야. 다른 한 명은 누군지 모르고. 습격하는 당일 날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까진 나도 구체적으로 녀석이 누군지 알 방법 없어.”
“나머지 녀석은?”
“나.”
장호일과 서수오, 그리고 합류 예정인 1인까지 합해 총 3명이 필두를 습격할 거란 뜻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필두의 시선에는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수오의 얼굴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들었다.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 흑마법사들의 기본 중의 기본이지.”
“잘 아는군.”
“뭐, 지금 당장 믿어달라는 것도 아니니까. 단,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건 가급적이면 우리 조직에겐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어. 자칫 잘못하다가 나도 앞선 두 녀석처럼 죽임당할지도 모르니까. 네 입이 무겁기를 바랄게.”
“…….”
“그럼 바빠서 이만. 오래 자리를 비우면 녀석들이 의심하거든.”
필두의 바로 앞에서 모습을 감추는 서수오였다.
때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군가가 이 모습을 봤다면 필두가 뒷수습을 책임져야 했을지도 몰랐다.
‘조직을 배신하고 나에게 붙는단 말이지.’
흑마법사에게 있어서 거짓말과 배신은 흔하디흔한 일이다.
이들에겐 신의 따윈 없다. 어디까지나 악인이니까.
‘고민 좀 해볼 필요가 있겠군.’
방송이라는 큰 숙제를 해결했다 싶더니, 또 다른 숙제를 부여받은 기분이었다.
* * *
필두가 출연한 해피 캠프는 바로 다음 주에 방영되었다.
방송이 나간 이후, 필두의 이름은 다시금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일과가 끝난 개인정비 시간.
병사들이 재방송으로 필두가 나온 해피 캠프를 시청하고 있었다.
“역시 우리 행보관님이야! 저번 다큐멘터리 볼 때에도 느꼈지만, 카메라발을 정말 잘 받으신단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그것도 그렇고, 정말로 이미현 사인받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병사와 간부들이 우스갯소리로 필두에게 사인 좀 받아와달라고 말했었는데, 진짜로 받아오고 말았다.
게다가 한 장도 아닌 여러 장이다.
그중 하나는 각각 1생활관과 2생활관에 걸어뒀다.
나머지는 필두에게 개인적으로 사인을 부탁했던 간부들이 나눠 가졌다.
본래 필두는 사인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본의 아니게 이미현과 오제훈, 그리고 소유미까지 도합 3명의 사인을 집에 걸어두게 되었다.
덕분에 기분 좋아진 건 당사자인 필두가 아닌 혜정이었다.
연예인 사인은 처음 본다며 좋아하던 그녀의 모습을 보니, 필두도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하나 마냥 기뻐만 할 수는 없었다.
서수오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한 달 뒤. 3명의 흑마법사가 필두를 습격한다.
딱히 걱정이 되거나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필두 입장에선 놈들을 사로잡을 기회가 생겼으니 수고를 덜한 셈이었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고 한다면, 3명의 습격자 중에서 우두머리라 불리는 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기회에 일망타진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필두의 실력을 간보는 단계인 듯했다.
여기서 수오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봐야 한다.
그걸 보고 서수오를 아군으로 삼을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래도 늦지는 않을 테니까.
“한 달 뒤라. 그때 일정이 뭐가 있지?”
훈련 일정도 중요하다. 저번에는 혹한기 도중에 흑마법사들이 습격을 했던 터라 약간은 모호한 상황이 되기도 했다.
가급적이면 훈련 도중이 아닐 때에 놈들의 습격을 맞이하는 것이 훨씬 더 마음 편하다.
그래야 제약이 안 생길 테니까.
일정표를 확인하는 필두. 그러나 아직 확정된 건 없었다.
구체적으로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훈련은 몇 개 있었다.
행군이라든지, 포대전술훈련이라든지, 국지도발이라든지.
그리고…….
“유격이라.”
이게 가장 문제다.
6월로 향해가는 시기라 그런지 벌써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6월에서 7월. 이 사이 정도에 유격 훈련이 있으리란 말은 들은 기억이 난다.
하나 확정되진 않았다.
이 때문에 애매한 감이 있었다.
‘설마 유격이 걸리겠나.’
아직까지 별다른 이야기가 없으니, 아마 7월까지 미뤄지리라.
필두가 예상한 바로는 이러했다.
일단 유격은 제외. 그렇다면 가장 높은 확률이 포대전술 정도가 된다.
‘훈련 준비 좀 빡세게 해야겠군.’
포대전술훈련이 흑마법사들의 습격 시기와 맞물리게 된다면, 필두도 그만한 대응 방안을 갖춰야 한다.
괜히 병사들까지 휘말리게 되면 더 골치 아파질 테니까.
여차하면 와일드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와일드카드에 손이 잘 안 간다는 점이었다.
‘마일더. 그 녀석이 나한테 협조해 줄 리가 만무하지.’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대치 상황일 뿐이지, 서수오가 주장하는 동맹 관계라든지 그런 건 결코 아니었다.
드리무어도, 마일더도 서로를 신용하지 않는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상대방의 등을 노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무슨 부탁을 하겠는가.
‘역시 나 혼자 처리하는 게 편하겠군.’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때부터 드리무어는 늘 혼자였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 *
분대장 결산 시간.
오들도 어김없이 분대장들이 행정반을 찾았다.
본래대로라면 포대장의 주도하에 분대장 결산을 진행하지만, 오늘은 포대장이 없는 터라 필두가 대신 진행하게 되었다.
“분과별로 특이사항 있으면 보고하도록.”
“하나포,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말해보도록.”
“전의성 이병, 박대박 이병. 이번 주 주말에 부모님 면회 오신다고 합니다.”
“면회라…… 이번이 첫 면회인가?”
“예. 그렇습니다.”
의성과 대박은 입대 이후 처음으로 부모님을 만나기로 했다.
그렇기에 부대에서 신경을 써줄 수밖에 없었다.
“가만. 내가 이번에 신병들 목욕탕 데려갔었나?”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이번에는 안 데려가셨던 걸로 압니다.”
“그랬군.”
필두는 신병들이 들어올 때마다 그 신병들을 데리고 목욕탕을 데려가곤 했다.
이번에는 파견이니 다큐멘터리 촬영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한꺼번에 발생한 덕분에 잠시 그런 것들을 잊고 지냈었다.
드리무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 강필두가 행보관을 하는 시절 때부터 실행한 일종의 관습이었다.
덕분에 드리무어도 졸지에 필두가 하던 관습에 따르고 있었다. 강필두를 연기해야 하는 드리무어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신병 있는 분과들은 이번 주 토요일에 애들 데리고 목욕탕 갔다 올 테니까 준비시키도록.”
“예, 알겠습니다!”
“다른 특이사항은?”
이번에는 둘포 쪽에서 손을 들었다.
“말해 봐라.”
“혹시 유격 훈련은 언제쯤 뜁니까?”
병사들의 초미의 관심사라 한다면 바로 유격과 혹한기 훈련일 것이다.
혹한기는 반년 전에 끝났고, 유격은 아직이다.
슬슬 유격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이런 질문이 들어오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정해진 건 없다. 단, 내 예상으로는 적어도 다음 달은 아닐 거 같다.”
그렇다면 7~8월 중에 받지 않을까 예상된다.
이것으로 분대장 결산은 끝.
그러나 그다음 날. 필두의 예상을 뒤엎는 일이 발생한다.
* * *
대대장과의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포대장이 행정반에 돌아오자마자 식은땀을 식혔다.
“어휴. 날씨가 왜 이리 더워.”
“그러게 말입니다. 포대장님, 여기 냉수 있습니다.”
“오, 땡큐.”
전포대장에게서 냉수 한 잔을 건네받은 포대장이 그것을 곧장 원샷했다.
꿀꺽, 꿀꺽, 꿀꺽!
규칙적인 목젖의 움직임이 요란스럽게 보일 정도였다.
냉수로 더위를 달래는 데에 성공한 포대장이 이제 겨우 한숨 돌린 모양인지 큰 숨을 내쉬었다.
“휴우! 역시 물이 최고야!”
얼음까지 아그작 씹어 먹었다.
대대와 제1포대는 나름의 거리가 있다. 덕분에 대대에 한 번 내려갔다 오면 금세 땀투성이가 되곤 했다.
오늘의 포대장도 마찬가지였다.
더위도 어느 정도 식혔으니, 이제 본업에 충실해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행보관님은?”
“안에 계십니다.”
당직으로부터 필두의 위치를 파악했다.
똑똑.
행보관실 문을 노크한 포대장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행보관님, 바쁘십니까.”
“포대장님 오셨습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신지.”
“전해 드릴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은 포대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전에 대대장님께서 지침을 내리셨습니다.”
“어떤 지침입니까?”
“유격 훈련이 다음 달에 있을 테니, 그때까지 병사들 기초 체력 훈련에 집중해달라고 말입니다.”
“다음 달이라고요……?”
“네.”
필두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