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28화 (128/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28화

제32장. 우리 행보관님은 연예인(3)

해피 캠프 출연 결정!

이 소식을 듣자마자 나 PD가 연신 필두에게 감사를 표했다.

-잘 결정하셨습니다, 행보관님! 그리고 고맙습니다! 덕분에 후배 녀석들한테 체면치레 좀 할 수 있을 거 같네요.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나 PD의 목소리에서 조금 전의 말이 진심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방송에 익숙한 사람도 아닌데, 괜히 가서 민폐나 끼치는 건 아닌가, 좀 걱정이네요.”

-인터뷰 촬영할 때처럼 해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리고 생방도 아니고 녹화 촬영이니까 아니다 싶으면 중간에 휴식 타임도 가지고 그럴 겁니다. 너무 걱정마세요.

“그렇다면야 다행이군요.”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든지 해서 이런 우려를 표명한 건 아니었다.

필두는 잘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냥 형식적으로 말해봤을 뿐.

레디너스 대륙 내에서도 대중 앞에 수도 없이 서봤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고작해야 녹화 촬영 가지고 벌벌 떨겠나. 천하의 드리무어가 그럴 이유는 전혀 없었다.

-구체적인 촬영 일정이라든지 이런 건 나중에 후배가 알려줄 겁니다. 하영원이라고 하는데, 해피 캠프 PD를 맡고 있습니다. 전화번호는 받으셨죠?

“예.”

-조만간 그 친구 쪽에서 연락이 갈 겁니다. 그때 필요하신 거라든지 궁금하신 점 같은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뒤.

스마트폰을 내려놓을 때, 행정반의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간부들뿐만 아니라 행정병, 당직들의 시선이 필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한테 볼 일 있나.”

“아, 아닙니다!”

당황해 하는 이들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 * *

한편, 필두의 통화 내용이 그대로 유출된 덕분에 병사들 사이에선 온종일 해피 캠프와 관련된 이야기가 떠돌았다.

하나포 포상도 예외는 없었다.

사수들과 함께 포 점검 작업을 실행하던 김조항이 먼저 화두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아까 호명이한테 들었는데, 행보관님. 해피 캠프에 출연하기로 결정하셨다더라.”

“오, 정말입니까?”

연도가 급격하게 관심을 보였다.

다른 병사들 역시 귀를 쫑긋 세웠다.

“어. 방송국 관계자랑 통화하시는 걸 들었대. 아마 이번 주 금요일 날에 촬영하러 가시는 걸로 알고 있어.”

“우와. 행보관님께서 방송에 출연하시다니.”

“연예인 아닙니까!”

연도와 의성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본인들이 출연하는 것도 아닌데, 괜한 설레발을 쳤다.

필두는 육군을 통틀어 공군, 해군 등 군대 내에선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만큼 유명한 인사가 되었다.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역시나 다큐멘터리, ‘전선을 사수하다!’였다.

방영된 지 1주일이 지났음에도 각종 커뮤니티에선 여전히 다큐멘터리 짤방이 자주 보였다.

그만큼 ‘전선을 사수하다!’가 대중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해피 캠프까지 출연하다니. 호재의 연속이다.

해피 캠프는 토크 예능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이다.

여기까지 출연을 한다면, 필두는 군대라는 범위를 넘어 대한민국에서 국방부 장관보다도 유명한 군인이 될 것이다.

유독 TV 관련 소재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연도가 부러움을 담아 말했다.

“해피 캠프에 나가면 연예인들도 많이 볼 수 있고…… 행보관님이 부럽습니다.”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무장공비 찾아서 생포하면 되잖아.”

성태가 핵심을 찔렀다. 그러나 연도는 그럴 생각까진 없는 모양인지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TV 출연 때문에 목숨까지 걸고 싶진 않습니다.”

“하긴,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필두가 대단한 거다. 물론 이들의 말마따나 TV 출연이 목적이어서 무장공비를 사로잡은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된 거 아닌가.

국방부 장관을 포함해 상부에는 이미 강필두란 존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는 연대장도, 사단장도 필두가 자기 부하라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까지 성장했다.

필두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국방부 장관인데, 누가 감히 필두를 건드린단 말인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지 모르나, 필두는 이래나 저래나 부러움의 시선을 많이 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 모습이 진수에게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희대의 악인이 희대의 영웅이 되다니.’

이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가중되는 혼란 속에 진수는 그저 입을 굳게 다물 뿐이었다.

* * *

여의도에 위치한 방송국까지 직접 차를 몰아간 필두.

촬영은 오후 2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로비 근처로 향하자 경비원이 먼저 필두를 알아봤다.

“혹시 무장공비 행보관님 아니신가요?”

“무장공비 행보관이라고 하니까 제가 마치 무장공비인 것처럼 들리는군요.”

“이런, 죄송합니다! 순간 이름이 기억 안 나서…….”

당황해 하는 경비원에게 괜찮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강필두입니다. 해피 캠프 촬영 때문에 왔습니다.”

“아! 해피 캠프면 2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스튜디오가 크니까 찾기도 쉬울 거예요.”

“감사합니다.”

경비원을 포함해 방송국 내부에서도 필두의 존재를 알아보는 이들이 심심치 않게 존재했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본래 인간이란 적응하는 동물이지 않은가. 이제는 이런 시선에 많이 익숙해졌다.

경비원이 알려준 곳으로 향하자, 촬영 준비로 분주한 스태프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뿔테 안경. 게다가 목소리도 제법 컸다.

“조명부터 먼저 좀 확인해 보라고 했잖아!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죄, 죄송합니다!”

“나 참, 이래서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니까!”

한눈에 봐도 그가 하영원 PD임을 알 수 있었다.

일개 스태프가 함부로 언성을 높이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하는 편이 좋다.

“안녕하세요. 오늘 촬영 때문에 오게 된 강필두라고 합니다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순간 하 PD가 필두의 전신을 빠르게 훑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행보관님이시군요! 이야~ 실물이 훨씬 더 잘 생겼네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전형적인 사탕발림으로 받아들이는 필두였다.

한창 바빠 보이는 촬영 현장. 그곳에서 필두가 해야 할 건 지금 당장 보이지 않았다.

“무엇부터 하면 됩니까?”

할 일을 묻는 필두에게 하 PD가 친절히 답변했다.

“대기실에 가서 메이크업 받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저희 작가 한 명이 대본 전달해 드릴 거예요. 굵직한 질문들인데, 이미 메일로 받으셨죠?”

“네.”

“혹시 몰라서 다시 전달해 드리는 거니까 체크하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촬영은 2시 10분 정도에 시작할 예정이니 그전에 다른 출연자 분들 미리 소개해 드릴게요. 미현 씨하고 제훈 씨, 그리고 유미 씨요. 아, 유미 씨랑은 구면이시죠?”

유미 씨는 설틴의 소유미를 호칭하는 말이었다.

하 PD의 물음에 필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녀도 필두와 함께 해피 캠프의 게스트로 출연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필두의 출연이 결정되고 난 이후에 그녀도 출연이 확정되었다.

하 PD로부터 대략적인 촬영 일정을 들은 후에 대기실로 향했다.

이곳에도 다큐멘터리 촬영 때와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다가와 필두의 메이크업 작업을 도왔다.

두 번째 경험임에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작가로부터 대본을 건네받았다.

메일로 받았던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민감한 질문도 없군.’

아무래도 군인이라는 요소를 많이 고려한 듯했다.

국방부 쪽에서도 검열을 거쳤다고 들었다. 그 덕분에 비교적 어렵지 않은 질문들만 있었다.

필두로선 다행이기도 했다. 괜히 방송 나간답시고 국방부 귀에 거슬릴 만한 발언을 하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역풍을 받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방송이라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엄청난 파급력을 낳기 때문이다.

필두라고 예외는 없다. 그렇기에 말을 하기 전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편이 좋다.

메이크업이 거의 마무리되어갈 때, 익숙한 남자가 대기실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행보관님. 오제훈이라고 합니다.”

개그맨으로 활약 중인 오제훈이 먼저 필두의 대기실을 찾아 인사를 건넸다.

이미현이 해피 캠프의 메인 MC라고 한다면, 오제훈은 보조 MC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인기도 높은 편이어서 방송에서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는 연예인이다.

“다큐멘터리, 재미있게 봤습니다. 설마 전선의 영웅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영웅이라니요. 저에게는 과분한 말이네요.”

“과분하다니요! 너무 그렇게 겸손 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나중에 사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저도 사인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서로 사인 교환 약속까지 끝냈다.

오제훈은 유독 ‘전선을 사수하다!’를 감명 깊게 봤다.

그가 군대에 복무할 때에도 이런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는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오제훈도 직접 현장에 투입되었던 적이 있었기에 아무런 피해 없이 무장공비들을 잡아낸 필두의 업적에 특히나 많은 감동을 받았다.

필두도 과거 오제훈이 이러이러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이미 들은 바 있었다.

실제로 오제훈은 방송에 출연해 군대에 있을 때의 사건·사고들을 여러 차례 말한 적 있었다.

오제훈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아는 이들이라면, 그가 군대에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스토리도 대략적으로나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그만큼 인상적인 이야깃거리였다. 이 과거의 경험 때문에 오제훈은 필두를 유독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과한 칭찬은 필두에겐 부담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그는 레디너스 대륙에서 칭찬이라는 걸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는 악인이니까.

오제훈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오늘 해피 캠프에 출연하는 두 명의 여성 연예인들도 필두에게 찾아왔다.

“이미현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행보관님.”

“오랜만이에요, 행보관님! 저, 기억하시죠? 소유미예요!”

“물론 기억하죠.”

유미의 얼굴에 유독 반가움이 엿보였다.

그녀는 필두에게 큰 빚을 졌다.

“행보관님의 약손 덕분에 슬럼프에서 완전히 벗어난 거 같아요. 정말 고마워요.”

“그게 어찌 제 덕분인가요. 유미 양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죠.”

물론 진실은 필두 덕분임이 옳다. 하나 마법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유미에게 알려줄 수도 없었기에 겸손을 차리는 척 말을 돌렸다.

그래도 유미에게 계기를 마련해 준 건 필두다.

“나중에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행보관님한테는 꼭 보답을 해드리고 싶어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알겠습니다. 그리하죠.”

“꼭이에요, 꼭!”

그렇게 모든 출연진이 서로 인사를 마쳤다.

머지않아 하 PD가 촬영 시작을 알려왔다.

“자! 곧 촬영 들어갑니다! 준비해 주세요!”

드디어 필두의 첫 방송 출연이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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