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22화 (122/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22화

제31장. 내게도 후임이(2)

하나포로 편입된 신병은 전의성 이병과 박대박 이병.

한꺼번에 두 명이나 되는 신병을 받은 하나포는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였다.

“진수야! 보급품에 애들 이름부터 먼저 써라!”

“예, 알겠습니다.”

조연도의 말에 따라 진수가 빠르게 이들의 주기를 새겨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신병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도와드려야 하나?’

‘안 도와드리면 큰일 날 거 같은데!’

서로 눈빛 교환을 마친 의성과 대박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희가 하겠습니다!”

그러나 성태가 이들을 가로막았다.

“이런 건 전통적으로 선임들이 해주는 거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얌전히 있어.”

“그래도…….”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신병들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동질감도 느꼈다.

성태도 신병 때에는 이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전입해 왔을 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조항이 그와 도혁의 보급품에 일일이 이름을 적어주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두 신병의 기분을 잘 알기에 최대한 자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고 싶었다.

“도혁아.”

“엉? 왜.”

“애들이랑 같이 휴게실이라도 갔다 올래? 내가 행보관님한테 보고드릴 테니까 조금 있다가 PX나 같이 가자.”

“분과 회식이야?”

“뭐, 그런 셈이지.”

“그럼 거절할 이유가 없지.”

또 다른 전통 행사 중 하나.

신병이 들어오면 선임들이 PX 파티를 벌여준다.

훈련병 시절에는 PX뿐만 아니라 전화, 담배도 통제된다.

억압되었던 훈련소 생활을 보내고 이제 막 퇴소한 이들에겐 여러 가지 간절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어이, 신병 둘.”

“이병 전의성!”

“이병 박대박!”

“가자. 슬리퍼 신고 따라와라.”

“네, 알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를 내며 우르르 도혁을 따라나갔다.

햇병아리 같은 두 병사의 모습에 성태도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정성태 상병님은 이등병 때 어떠셨습니까?”

진수가 그의 말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성태가 먼저 입대를 했기에 진수는 정성태의 이등병 시절에 대해 알지 못한다.

선임의 이등병 시절. 후임이라면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태는 본인의 입으로 스스로 흑역사를 드러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인지 말을 얼버무렸다.

“내가 미쳤다고 그걸 말하냐. 하여튼 빨리 애들 이름이나 써줘. 청소 시작되기 전에 PX 후딱 다녀오게.”

“예, 알겠습니다.”

누구나 올챙이 시절은 있는 법.

그러나 모두가 다 그때 그 기억 좋아하진 않았다.

* * *

휴게실에 들어서자마자 신병들의 입에서 감탄이 튀어나왔다.

“와……!”

“여기, 정말 군대 맞습니까? 왜 비디오 게임기가 여기에 있습니까?”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들어온 지 얼마 안 되긴 했어.”

위닝 투엘브와 비바를 할 수 있는 게임기가 2대, 코인 노래방에 1대. 뿐만 아니라 책들도 책장에 꽂혀 자태를 뽐냈다.

단어 그대로 휴게실이다.

“게임기하고 코인 노래방은 개인정비 시간 때만 사용할 수 있어. 일과 시간에는 절대 금물이고. 그리고 우리 부대는 딱히 이등병이라고 마이크, 패드 못 잡게 하는 그런 문화는 없으니까 안심하고 와도 된다. 단, 어디 갈 때에는 아까도 말했듯이 본인들 이름 적힌 말판 옮기는 거 잊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중요한 미션을 알려주마.”

무게 잡고 말하는 도혁의 태도에 침을 꼴깍 삼키는 두 신병.

지레 겁을 주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너희에게 딱 내일 모래. 이틀이라는 기간을 주마. 그 안에 선임들 이름 죄다 외워라. 물론 간부님들도 포함해서.”

“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외우겠습니다!”

“특히!”

전도혁이 예고도 없이 언성을 높였다.

흠칫 놀라는 두 신병에게 섬뜩한 경고 메시지를 들려줬다.

“우리 행보관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억해라. 그리고 조심해라. 그리고 최대한 피해라! 이건 진심으로 해주는 말이다.”

“해, 행보관님이 그렇게 무서우신 분입니까?”

“물론!”

두말하면 입 아프고, 세말하면 두통이 일어난다.

실제로 도혁은 필두의 말에 거역하려고 시도했다가 엄청난 두통으로 고통을 받은 적 있었다.

도혁은 그것이 최면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물론 현실은 마법이었지만 말이다.

행보관을 주의하라는 말을 몇 번이고 계속 반복하는 도혁에게서 진실성이 느껴졌다.

‘이 부대 행보관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시길래…….’

이런 생각이 벌써부터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도 머지않았다.

“아까부터 귀가 간지럽다 싶더니만, 여기에 내 흉을 보는 놈이 있어서 그랬군.”

“해, 행보관님?”

또 귀신같이 출몰한 필두 덕분에 도혁은 기절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있는 힘을 다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행보관님을 욕보이게 하려던 게 아니라 전 그저…….”

“신병들한테 나에 대한 이상한 이미지 주입시키지 마라. 괜히 나한테 들켰다간 뒷일은 책임 못 지니까.”

“알겠습니다!”

마구 뿜어 나오는 살기 앞에서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그저 죄송하다고 비는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오늘 당직은 필두다. 그 점을 다시금 상기시킨 도혁의 얼굴에 급격하게 굳어졌다.

‘나란 놈은 진짜 학습 능력이 없나!’

자괴감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 * *

PX로 향한 하나포 일행들.

그곳에는 이미 본부포대, 제2포대에서 PX를 이용하기 위해 몰려든 병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저쪽에 자리 하나 남았습니다.”

진수가 구석에 놓인 테이블을 가리켰다.

뒷정리를 제대로 안 하고 간 모양인지 꽤 지저분해 보였지만, 그래도 자리가 없는 것보다야 나았다.

도혁과 진수, 연도가 테이블을 지키고, 성태가 신병 둘을 데리고 PX로 향했다.

PX에 들어서자 두 신병의 동공이 급격하게 확장되었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PX!”

“너희, 훈련소 PX 가본 적 없어?”

“네. 저희 기수는 문제 일으킨 동기들이 좀 많아서…….”

“대대장님한테 찍혔구먼.”

굳이 안 들어봐도 뻔했다.

훈련을 잘 소화하는 기수가 있는가 하면, 특히나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기수도 있게 마련이다.

한 번 눈 밖에 나면 해주고 싶은 것들도 해주려는 생각이 안 들곤 한다.

전화 통화라든지 PX, 휴식 시간 보장이라든지 이런 것들 말이다.

의성과 대박은 운이 좀 안 좋은 케이스에 속했다.

덕분에 훈련소 PX는 구경도 못했었다. 탄산음료 하나가 먹고 싶어서 평소에 가지도 않던 교회를 자처해 갈 정도였으니, 얼마나 PX가 고팠겠는가.

성태도 두 신병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내가 살 테니까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골라봐라.”

“정말입니까?”

기뻐하는 의성과 반대로 대박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상반된 두 신병의 표정에 의아함을 느낀 성태. 그러나 머지않아 대박이 왜 그런 얼굴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게 끝이야?”

“예, 그렇습니다!”

마음껏 골라오라고 말을 했건만, 이들이 골라온 건 기껏해야 박스 과자 하나와 봉투 과자 하나, 그리고 아이스크림 둘이 끝이었다.

박스 과자도 큰 게 아니다. 1인분이라 불릴 만큼 크기도 매우 작은 축에 속했다.

“먹고 싶은 게 이거밖에 없어? 아니, 가만히 보니까 마실 것도 없네. 냉동은 또 왜 안 골랐냐. 맛있는데.”

“괘, 괜찮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성태가 대박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아까 너, 내가 마음껏 고르라고 했을 때 표정이 안 좋아 보이던데. 이유가 뭐야?”

“그, 그게 말입니다…….”

말끝을 흐리는 대박의 행동에서 분명 숨겨진 이유가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군 생활 팁 하나 알려주마.”

성태가 먼저 말을 꺼냈다.

“금방 들킬 거라면 웬만하면 미리 말해라. 그래야 나중에 혼나더라도 덜 혼나니까.”

“아, 알겠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막 전입한 신병이 어찌 상병의 말을 거역할까.

결국 박대박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실은 입대하기 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데.”

“신병 들어오면 일부러 PX 데려가서 먹고 싶은 거 다 사게 한 다음에 그거 다 먹을 때까지 억지로 계속 먹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만…….”

내무부조리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성태가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혀를 찼다.

“너희한테 강조하는 말이지만, 우리 분과는 그런 내무부조리 같은 거 없다. 아니, 아마 다른 분과도 마찬가지일 걸? 제1포대는 그런 식으로 후임 괴롭히면 행보관님께서 엄청 분노하셔서 웬만하면 못해.”

“그, 그렇습니까?”

“예전에 내무 부조리로 영창 간 선임들이 한둘이 아니었거든.”

필두가 본인의 손으로 직접 처단을 내린 병사가 몇몇 있다.

성태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그 전설 같았던 일화가 생생히 남아 있었다.

“아무튼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마음껏 골라.”

“예! 감사합니다, 정성태 상병님!”

때로는 군기를 잡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우선은 신병들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준다. 그 이후, 잘못을 저지르면 윽박지르기보다는 훈계 형식으로 이들에게 교육을 시킨다.

그것이 소진언 때부터 내려져 오던 하나포만의 군기 잡기 방법이다.

* * *

두 손 가득 담긴 검은 봉투들을 들고 다시 휴게실을 찾은 성태와 신병 둘.

이들이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지 도혁이 가장 먼저 복귀를 반겼다.

“늦었잖아. 기다리다 배하고 허리가 들러붙는 줄 알았다.”

“오버하기는. 연도하고 진수, 너희가 냉동 좀 돌려라. 과자하고 음료 세팅은 나하고 여기 신병들이 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전자레인지가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하는 연도와 진수의 행동은 신속, 정확이란 말이 어울렸다.

때마침 타이밍도 좋다. 5개의 전자레인지 중 사용 중인 전자레인지는 단 한 개였으니까.

냉동식품은 군대 내에서도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다. 그래서 휴게실에 올 때마다 전자레인지를 차지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경쟁을 붙어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그걸 따진다면 지금은 운이 꽤 좋은 편이었다.

“진수야. 내가 이쪽 돌릴게. 네가 그거 맡아라.”

“예, 조연도 일병님.”

두 사람이 열정적으로 냉동식품을 해동시킬 때, 도혁이 성태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알았어.”

도혁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열심히 세팅에 들어가는 하나포 인원들.

그때, 휴게실 문이 열리며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이들의 귓가에 감돌았다.

“응? 뭐야. 하나포잖아.”

다섯포에 속해 있는 오구철 병장과 서수일 병장이었다.

두 사람은 동기로, 현재 제1포대 중에서도 왕고에 속하는 짬을 자랑한다.

“충성.”

성태가 곧장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다.

그러는 동안 오구철이 휴게실 주변을 둘러봤다.

“자리가 하나도 없네.”

“이런 썅. 모처럼 PX 내려왔건만.”

두 병장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그때부터일까. 불현듯 성태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 불안감은 잠시 후, 현실이 되었다.

“야, 성태야.”

“상병 정성태.”

“자리 좀 비켜줘라.”

“…….”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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