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18화 (118/175)
  •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18화

    제30장. 그의 무용담(2)

    대대장과 포대장, 그리고 필두에게 인사를 마친 유미가 뒤이어 병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분들은?”

    “사건 벌어졌을 때 오대기로 출동했던 사람들이에요. 인터뷰 파트에 등장할 예정이니까 인사들 나눠요.”

    “안녕하세요, 소유미라고 해요.”

    “아아아아아안녕하십니까!”

    “바, 반갑습니다!”

    병사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답했다.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에 출동했던 제1포대 오대기 소대원들이 총출동했다.

    그중에는 진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여자가 군통령이라는 자인가.’

    국방부 장관보다도 위에 군림한 존재라는 정보를 들었을 때와 다르게 약간은 미심쩍다.

    정말 이 여자가 군인들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자가 맞을까.

    ‘아무리 봐도 일반 여성 같은데.’

    물론 다른 점은 있었다.

    일반인보다는 다른 포스를 지녔다. 뭐랄까. 분위기라고 표현하는 편이 옳았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지닌 거 같긴 한데.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군.’

    연예인으로서의 아우라는 있으나 강함의 척도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본의 아니게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 즈음에 오대기 소대원들과 차례로 악수를 한 소유미가 진수의 앞에 마주 섰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려요.”

    붙임성 좋게 손을 먼저 내미는 유미였다.

    진수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받아줬다.

    그 순간, 이질적인 감각이 진수의 전신을 훑었다.

    ‘뭐지?’

    단지 손을 잡은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뭘까, 이 감각은.

    그러나 유미는 그런 걸 전혀 느끼지 못한 모양인지 인사를 끝내고 다시 나 PD와 매니저의 곁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손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는 진수에게 옆에 있던 선임병이 키득키득 웃음을 토했다.

    “천하의 강철남, 황진수도 소유미 앞에서 무너지는구나.”

    “그게 아니라…….”

    “어떠냐. 요즘 핫하다는 그 걸 그룹 멤버와 악수 주고받으니까 꿈만 같지?”

    “그런 거 같습니다.”

    마지못해 말을 받아주긴 했으나, 그렇게까지 특별하진 않았다.

    그냥 여자다.

    ‘내가 군통령이라는 개념을 잘못 알고 있었나 보군.’

    진수의 속내는 딱 이랬다.

    이놈의 군대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보다 아까 그건 뭐지?’

    수상한 기척이 감지되었다.

    원인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분명한 게 있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어.’

    * * *

    인터뷰는 9090대대 내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예정은 저녁 시간 이후.

    우선은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재연하는 촬영이 먼저였다.

    상황이 대낮이었던 만큼 재연 촬영도 비슷한 시간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게 나 PD의 의견이었다.

    오대기 소대원들은 부대에서 잠시 대기. 대대장과 포대장, 그리고 그때 당시 오대기 소대장을 맡았던 삼포반장과 필두만 촬영 팀과 동승했다.

    장소는 혹한기 훈련장 근처의 작은 마을. 김한과 조승천을 발견했던 실제 장소와 동일하다.

    이들이 촬영지에 도착하자, 먼저 기다리던 손님이 이들을 반겼다.

    “충성!”

    “음?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대대장이 먼저 그를 알아봤다.

    대항군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박한철 하사. 예전에 9090대대 포대전술훈련 당시에 대항군 역할을 맡았던 그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자문으로 참가했습니다.”

    “하긴, 자네만큼 대항군 역할을 잘 소화하는 사람은 없지.”

    그런 박한철을 자그마치 두 번이나 생포해낸 남자, 강필두가 대대장의 뒤를 이어 그와 마주했다.

    필두의 원사 계급을 확인하자마자 박한철이 군기 바짝 든 목소리로 거수경례했다.

    “충성!”

    “충성. 포대전술 때에 신세 많이 졌다.

    “아닙니다!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9090대대 덕분에 알게 되었으니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군.”

    말은 안 했지만, 박한철을 생포한 이는 필두의 공적이라 봐도 무방했다.

    물론 이 사실은 앞으로도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촬영 팀이 분주하게 준비에 들어가는 동안, 나 PD가 박한철 하사와 포대장에게 다가갔다.

    “잠깐 회의 좀 해도 될까요?”

    “네.”

    재연 촬영이었기에 그때 당시 벌어진 실제상황이 어떠했는지도 참고삼을 필요가 있었다.

    그 참고인으로 포대장이 발탁되었다.

    무장공비를 직접 잡은 건 필두였지만,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꿰뚫고 있던 건 포대장이다.

    그렇기에 재연 촬영에는 필두보다 포대장이 더 적합했다.

    필두도 딱히 포대장의 자리를 욕심내진 않았다. 애초에 그는 촬영이 진행되는 과정을 제3의 시선으로 보고 싶어 했으니까.

    재연 배우들과 별개로 따로 떨어져 메이크업을 받는 소유미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저 여자가 진행 맡기로 했지.’

    다음으로 재연 배우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필두와 시선을 마주치는 이가 있었다.

    키도 크고 훤칠한 젊은 남성이 필두와 눈이 맞닥뜨리다 바로 일어서 그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행보관님. 이번에 행보관님 대역을 맡게 된 정성찬이라고 합니다.”

    “제 역할이셨군요.”

    군복에 상사 마크와 함께 ‘강필두’라는 주기가 박혀 있었다.

    때마침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나 PD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어떻습니까, 행보관님. 우리 성찬이, 만족하십니까?”

    “저를 재연한 것치곤 너무 잘생긴 거 같군요.”

    “하하하! 행보관님도 실제로 보니 잘생기셨는걸요, 뭘!”

    “사탕발림에도 능숙하시군요.”

    “농담이 아니라 진담입니다!”

    “말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자신을 연기할 배우와 직접 만나게 되니 신선했다.

    ‘뭐, 나 PD 말대로 적당한 미담은 괜찮겠지.’

    그래도 필두도 사람인지라 본인 배역으로 잘생긴 배우가 등장하니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 * *

    촬영 자체는 상당히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애초에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장소도 아니었기에 인원 통제에 그리 많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됐다.

    그뿐만 아니라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에 열변을 토하는 연기 실력까지 바라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철저히 사실을 고증한다. 다만, 나 PD의 말처럼 약간의. 정말 약간의 미담을 첨가한다.

    물론 필두가 보기에는 조금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대표적인 예시가 몇몇 있다.

    “김 병장님!”

    “가라…… 난 신경 쓰지 말고 무장공비들을 잡아!”

    “안 됩니다! 이대로 김 병장님을 버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잘 들어! 우리는 국가를 수호하는 군인이다! 국민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도 바쳐야 해! 그러니 가라! 가서 녀석들에게 대한민국 육군의 힘을 보여줘라!”

    “김 병장니이임!”

    이들의 연기를 보던 필두의 속내는 이러했다.

    ‘꼴값들 하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상황은 전혀 없었다.

    약간의 미담이라고 했던 나 PD. 그의 말에 신뢰도가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절로 들려왔다.

    필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 PD의 연출은 대대장과 포대장의 취향을 저격했다.

    “그래, 바로 이런 맛이지!”

    “전우애가 느껴집니다, 대대장님!”

    과한 설정에 오히려 열광하는 두 장교에 필두는 그저 할 말을 잃었다.

    한창 진행되는 재연 촬영. 배우들이 그때의 상황을 재연하고, 중간에 소유미가 나와 추가 설명을 들려주는 식으로 촬영이 진행되었다.

    그런 유미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포대장이 절로 박수를 쳤다.

    “역시! 우리 유미입니다!”

    삼촌 팬의 팬심이 발동됐다.

    포대장의 처음 보는 일면에 필두는 그저 말을 아꼈다.

    필두가 무신경한 반응을 보이거나 말거나 포대장은 자신이 할 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요즘 컨디션 난조라고 하던데, 좀 걱정입니다.”

    “유미 양 말입니까? 방송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활동은 하지만 예전만큼의 텐션은 아닌 거 같더라고요. 제가 이래 봬도 설틴 초창기 팬클럽 멤버인데, 요즘은 좀 지친 기색이 많이 보여요. 반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속사정이 있는 아가씨군요.”

    본래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게 컨디션 아니겠는가.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필두가 그녀를 걱정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팬클럽도, 뭣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다큐멘터리 촬영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필두는 어떤 경위로 무장공비를 잡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텍스트 파일로 적어 보내준 적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김한과 조승천이 마법을 사용해서 병사들을 잠재운 점 같은 건 제외했다.

    필두가 촬영 팀에 알려준 각색 시나리오는 대략 이러하다.

    오대기 인원들이 수면 가스에 의해 강제로 정신을 잃게 되고, 이들을 제거하려던 무장공비들이 방심했을 때 뒤를 쳐 습격에 성공했다.

    이것이 필두가 생각해 낸 시나리오였다.

    물론 다른 이들은 이것이 참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왜냐하면 그 상황을 증명할 사람이 필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진수도 있었으나 혹시 몰라 다른 오대기 소대원들과 같이 수면 가스에 당한 거로 하기로 필두와 자체 합의를 봤다.

    진수 혼자만 멀쩡하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이해관계 때문에 재연 촬영은 필두의 뇌에서 나온 가짜 시나리오로 꾸며지게 되었다.

    애초에 기반이 되는 이야기도 가짜였기에 재연 자체도 허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군대가 좋아하는 보여주기식.

    그것을 필두가 활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오늘 분량의 촬영이 끝나갈 때였다.

    자신의 촬영 분량을 마친 유미가 의자에 앉아 허리를 숙였다.

    그녀가 걱정되는 모양인지 매니저가 다가가 안부를 물었다.

    “컨디션 많이 안 좋아?”

    “아니요. 그냥 산행 때문에 좀 피곤해서 그래요.”

    “심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네, 오빠.”

    유미 쪽으로 다시 관심을 기울인 필두가 그녀를 찬찬히 살폈다.

    ‘아이돌인데도 체력이 약하군. 이상한데.’

    무대 위에서 계속 움직여야 하는 아이돌이기에 꾸준히 체력 단련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수상함을 눈치챈 필두가 매니저가 없는 틈을 타 그녀에게 다가갔다.

    “많이 힘드신가 보군요.”

    “아, 행보관님! 아니요, 괜찮아요. 조금 쉬면 나가질 거예요.”

    유미의 컨디션 난조는 자칫 다큐멘터리 퀼리티의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포대장이 유미에 대해 왈가왈부 떠들 때에는 간섭 안 하려고 했으나,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작은 서비스를 선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손 좀 내밀어 보실래요?”

    “예?”

    “잠깐이면 됩니다.”

    마나를 주입시켜 활력을 불어넣는다.

    간단한 회복 마법을 실행할 생각이었다.

    손을 내밀어달라는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에는 약간 떨떠름하긴 했으나, 그래도 악수회 때문에 누군가의 손을 잡는 건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다른 의심 없이 곧장 손을 내미는 유미. 그녀의 작은 손을 마주 잡아줬다.

    이윽고 조금씩 마나를 흘려보냈다.

    ‘이 정도면 되겠지.’

    금세 원기를 회복할 것이다.

    아니, 회복했어야 했다.

    ‘설마……?’

    필두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그의 표정 변화를 목격한 유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러세요? 행보관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세계로 넘어온 이후로 이렇게까지 당혹스러운 적도 별로 없었다.

    다시 손을 뗀 필두가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냥 기운 좀 차리시라고 제 기 좀 나눠줬습니다.”

    “아하. 고마워요, 행보관님. 상냥하시네요.”

    “천만에요.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러면서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틀림없어. 방금 그건…….’

    유미에게서 느껴진 익숙한 기척.

    흑마법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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