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15화
제29장. 파견(6)
파견을 나온 지 1박 2일째.
두 번째 저녁 식사를 맞이하는 병사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하루에 몇 번을 근무 나가는지 모르겠다.”
오창석이 젓가락질을 하다 말고 도중에 신세 한탄 비슷한 발언을 꺼냈다.
맞은편에서 같이 식사를 하던 진수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많이 피곤하신 거 같습니다.”
“피곤 안 한게 더 비정상이지. 너 같은 놈들 말이야.”
창석은 진수를 볼 때마다 신기했다.
다른 병사들은 취침 시간을 제외하고도 휴식 시간 때마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물론 첫째 날부터 이렇진 않았다. 필두가 있음에도 휴식 시간을 보장해 준다는 정책 덕분에 병사들은 9090대대에서도 누리지 못한 자유를 만끽했다.
하나 그 자유는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TV 시청. 오로지 이것만이 병사들의 피로를 풀어줄 뿐이었다.
비디오 게임기와 코인 노래방이 있는 휴게실은 현재 봉인 상태였다. 물론 PX도 마찬가지다.
결국 병사들이 하는 일은 TV 보기와 취침. 두 가지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진수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휴식 시간의 일분일초가 아쉬운 상황에서 그는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치 밤을 새우고도 연병장을 돌던 필두처럼.
“너도 그렇고 행보관님도 그렇고.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전 이게 기본 생활 패턴이었습니다.”
“군대보다 더 빡센 사회생활은 도대체 어딜 가면 접할 수 있는 거냐.”
알면 알수록 신기한 진수의 프라이버시. 그러나 닮고 싶진 않았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젓가락을 내려놓은 창석이 다른 고충을 털어놓았다.
피곤한 건 사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래서 큰 불만은 없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1357대대 짬밥이 생각보다 너무 맛이 없다는 점이었다.
첫째 날. 하나포 반장이 탕수육을 먹고 맛없다고 대놓고 깐 것처럼 1357대대의 짬밥 맛은 최악에 가까웠다.
그 때문에 병사들은 대다수 밥을 배불리 먹지 않았다.
대신 PX에서 추진해 온 것으로 부족한 미각을 채웠다.
하나 그것도 이제는 한계다.
3박 4일을 예상하고 제법 많은 양의 먹을거리들을 추진해 온 이들이었으나, 밥맛이 너무 없었기에 소모되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먹을거리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진수야.”
“이병 황진수.”
“라면 남은 거 있냐?”
“없습니다.”
“다른 애들 거는?”
“한 개도 없는 거로 기억합니다.”
“X발, 망했네.”
이 문제는 비단 오창석, 황진수 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파견 인력 전체의 문제였다.
“어쩔 수 없지. 비장의 수를 꺼내 드는 수밖에.”
자리에서 일어선 오창석이 전투모를 눌러썼다.
“벌써 다 드셨습니까?”
“사람 먹으라고 만든 밥도 아닌데, 다 먹을 리가 있냐. 하여튼 난 행보관님하고 교섭하러 갈 거다. 먼저 올라갈 테니까 천천히 먹고 와라.”
“예, 알겠습니다.”
진수는 사실 창석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맛있기만 한데.”
오로지 황진수, 단 한 명만이 식판을 싹싹 비웠다.
* * *
행정반 앞에 마주 선 오창석. 그 곁에는 굳은 얼굴을 한 문나성이 나란히 섰다.
“야, 정말 할 거냐?”
“문나성 병장님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거,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왠지 행보관님이 허락 안 해주실 거 같은데.”
“되든 안 되든 시도라도 해보는 게 좋습니다.”
“하아, 난 모른다.”
오창석이 먼저 행정반의 문을 열었다.
“상병 오창석!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응? 뭐냐.”
오늘 하루, 당직사관을 맡게 된 하나포 반장이 이들을 응시했다.
“행보관님께 문의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행보관님? 뭔데 그래. 나한테 먼저 말해봐.”
“PX하고 휴게실 이용 가능한지 묻고 싶습니다!”
거침없는 오창석의 요구. 그러나 하나포 반장은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안 될걸.”
“하나포 반장님도 저희랑 같이 행보관님한테 부탁하면 안 되겠습니까?”
“나도 너희 심정 잘 아는데, 그래도 행보관님이라면 절대 안 된다고 할 거 같은데. 너희도 행보관님 성격 잘 아시잖아.”
물론 잘 안다. 모르는 게 이상하다.
그러나 오늘의 오창석은 결의가 넘치는 사나이의 면모를 선보였다.
“도전 없이는 성공도 없습니다! 실패의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성공은 도전하는 자의 것 아니겠습니까!”
“너, 최근에 자기개발서 같은 거라도 읽었냐.”
“좀 부탁 드리겠습니다, 하나포 반장님!”
“하아, 이 녀석들이 참, 사람 난감하게 하네.”
하나포 반장도 도와주곤 싶지만, 오늘 아침에 필두와 제때 근무 교대를 해주지 못한 점 때문에 그에게 뭔가를 요구할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에 필두의 목소리가 이들의 뒤에서 들려왔다.
“언제부터 그렇게 당돌해졌냐, 오창석. 말년병장도 같이 왔군.”
“상병 오창석!”
“병장 문나성!”
“나성이가 시켰냐.”
배후를 묻는 필두에게 창석이 진실을 들려줬다.
“저의…… 아니, 저희 병사들 모두의 의지입니다! 하나포 반장까지 포함해서요.”
“얌마, 난 아니라니까?”
졸지에 이들과 한 패가 되어버린 하나포 반장이 필두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혼날 게 틀림없다.
그러나 필두가 내놓은 답변은 이들의 예상을 초월했다.
“PX하고 휴게실이라. 까짓것 괜찮겠지.”
“?”
하나포 반장을 비롯해 두 병사도 말을 잇지 못했다.
“해, 행보관님. 제가 잘못 들은 거 같아서 여쭤보는 겁니다만. 방금…….”
“허용해 주겠다고 했다. 단, 남의 부대인 만큼 허가가 필요하니 그 부분은 좀 기다려라.”
말을 마친 채 바깥으로 향했다.
그러자 하나포 반장이 곧장 그의 행보를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행보관님.”
“교섭하고 오마.”
오창석이 식당에서 진수에게 들려준 말과 비슷한 대답을 들려줬다.
필두가 걸음을 옮긴 곳은 바로 대대 연병장.
1중대 중대장이 첫날, 필두에게 말했던 일정이 있었다.
혹한기 훈련 이틀째에 1357대대는 다시 이곳 부대로 돌아와 야간 훈련을 진행한다고.
그의 말대로 현재 1357대대는 잠시 이곳 부대로 돌아와 연병장에서 야간 훈련을 치르는 중이었다.
이들이 다시 부대를 나서기 전에 1중대 중대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벅저벅.
낯선 걸음걸이에 중대장과 간부들의 눈과 귀가 필두에게 집중되었다.
“음? 행보관님 아니십니까!”
“훈련은 잘 진행되어가고 있습니까.”
“골치 아픕니다. 하필이면 야간 훈련 때 대항군 상황 조치가 떨어져서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중대장의 현재 심리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 듯한 소감이었다.
이들은 30분 전, 상급 부대로부터 대항군 상황 조치 훈련이라는 시험을 부여받았다.
하필이면 대항군으로 등장한 자들이 육군 내에서도 악명 높기로 소문난 스페셜리스트들이었다.
그 덕분에 대항군은 30분째 단 한 명도 잡히지 않았다.
필두도 이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대항군으로 활동, 지휘하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도 안다.
“박한철 하사하고 그 병사들이 대항군 역할 수행하고 있다고 했죠?”
“예. 잘 아시는군요.”
박한철. 그는 사실 필두와 구면이다.
필두의 첫 포대전술훈련 당시, 박한철은 연대장으로부터 특별 지시를 받아 대항군으로 그와 맞선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의 결과는 박한철 부대의 참패였다.
“실은 중대장님에게 제안을 드릴까 해서 왔습니다만.”
“제안? 그게 뭡니까?”
“PX하고 휴게실을 좀 개방해 주십사 합니다. 대신, 대항군들의 위치를 알려주겠습니다.”
“네?”
보병부대인 1357대대 인력이 전부 투입되어도 찾지 못하는 대항군을 필두가 알고 있다?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 국방부 장관의 총애를 받는 강필두 아니겠는가.
게다가 필두는 실제로 포대전술훈련 당시, 박한철 부대를 상대로 완승을 한 적 있었다.
결코 손해 볼 제안은 아니다.
“제가 대항군 위치를 알려주면, 중대장님이 병력들 투입해서 대항군을 생포하면 됩니다. 그러면 1중대에도 많은 어필이 될 겁니다.”
“근데 행보관님은 대항군들이 어디 있는지를 어떻게 아신다는 겁니까?”
“제가 어제 말씀드렸죠? 신기가 좀 있다고요.”
“시, 신기입니까.”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농담 따먹기 하냐며 불같이 성을 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는 강필두다. 이미 그는 어제 분실됐던 K-2 소총을 찾는 과정에서 본인이 주장하는 ‘신기’를 발휘한 적 있었다.
충분히 믿음이 갈 만했다.
게다가 1중대 중대장은 대대장에게 그리 안 좋은 이미지를 받아온 간부다.
그런 그가 여기서 상과를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마이너스는 아니다.
결국, 결심을 굳힌 중대장이 남들이 들을까 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행보관님 한번 믿어보겠습니다!”
두 사람만의 비밀 계약이 체결되었다.
* * *
야간은 대항군에게 있어서 최고의 환경이다.
대낮에도 산속에 틀어박히면 찾기 힘든 게 대항군인데, 어둠이라는 점까지 등에 업으면 어찌 찾겠나.
‘이번에는 껌이군!’
박한철 하사가 승리를 예상한 듯 함박만 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병사 둘, 올빼미 1과 올빼미 2도 아직 단 한 명도 잡히지 않았다.
본래 이게 정상이다.
‘저번에 그 포병 부대는 좀 이상했어.’
9090대대 제1포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못 하고 무기력하게 잡혔던 나날을 생각한다면 아직도 치가 떨릴 정도였다.
‘가만 그러고 보니 근무 파견 나온 부대가 그 부대라고 하지 않았나?’
불현듯 불안감이 들었다.
‘아니, 괜찮겠지. 설마.’
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지웠다.
그 순간, 올빼미 1으로부터 통신이 들려왔다.
-여기는 올빼미 1! 지금 1357한테 둘러쌓…….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당장 포박해!
‘……?’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수상한 소리들.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온 건 올빼미 1만이 아니었다.
-올빼미 2라 알리고 오대기에게 쫓기고 있다는 통보!
‘올빼미 2까지?’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불안감에 사무친 박한철 하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동을 개시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철컥!
쇳덩이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움직이면 바로 발포한다!”
“어느 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병사들이 그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분명 철저하게 매복했다고 생각했었으나, 1357 병사들은 마치 처음부터 그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정확하게 박한철 하사를 포위했다.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올빼미 1, 2의 최근 소식도 그리 좋지 못했다.
듣자 하니 두 사람도 이미 생포된 듯했다.
‘설마 또 9090대대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1357 병사들이 다가와 박한철의 손과 발을 포박했다.
발버둥을 쳐보지만 이미 세 명의 위치가 전부 다 발각된 시점에서 대항군에게 승산 따윈 없었다.
‘망할 놈의 9090대대가 또!’
대항군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박한철 하사는 졸지에 필두로부터 의문의 2패를 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