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11화
제29장. 파견(2)
파견을 위해 뽑은 14명의 병사.
하나포에는 총 두 명의 병사들이 포함되었다.
전도혁과 황진수.
필두가 직접 명단을 작성한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었을 때, 두 사람은 암묵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내가 되겠구나.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벌어졌다.
군장 꾸리기에 여념이 없는 전도혁과 진수. 두 사람을 보며 조항이 누차 강조했다.
“가서 사고 치지 말고. 내 부대 아니라고 막 난리 피우고 다니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문제를 일으켜도 안에서 일으키는 문제와 바깥에서 일으키는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안에서 트러블이 발생하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바깥에서 사고를 터뜨리면 대대 단위로 수습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상부에 보고되고, 그 여파는 9090대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조항은 이게 걱정이었다.
“도혁아. 네가 선임이니까 진수 특히 잘 챙겨주고. 알았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김조항 병장님. 저도 이제 상병입니다.”
“그래 봤자 아직 상꺽도 아니잖아. 진수, 너도 도혁이 말 잘 듣고.”
“새겨듣겠습니다.”
하나포뿐만 아니라 각 분과에서도 다방면으로 병력들이 파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FDC를 제외하고 모든 분과에서 최소 한 명의 인원들이 선발되었다.
파견은 내일 바로 진행될 예정이다.
총 3박 4일. 파견 지원을 나가기로 되어 있는 1357대대의 혹한기 훈련 일정과 딱 맞아떨어지는 기간이었다.
돌아오는 시간은 저녁 식사 시간 이후가 될 것이다. 혹한기 행군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에 치러질 오침까지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도혁과 진수를 포함해 파견이 예정된 병사들이 개인정비시간을 반납하고 짐 꾸리기에 열중했다. 그러는 동안, 행정반에서 전파사항이 들려왔다.
-행정반에서 알려 드립니다. 파견가기로 예정된 병력들은 지금 즉시 행정반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아, 또 왜.”
“바빠 죽겠는데, 진짜.”
병사들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때마침 당직이 1생활관에 모습을 비췄다. 그를 보자마자 선임병 한 명이 대뜸 물었다.
“집합 왜 시키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행보관님이 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행보관님이 집합시킨 거야?”
“예, 그렇습니다.”
“하아, 이거 참.”
행보관의 집합 명령이라면 군말 없이 따라야 한다. 그것이 9090대대 제1포대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행정반으로 속속들이 모여드는 14명의 병사.
이미 근무 조정도 다 해뒀기 때문에 한 명도 빠짐없이 행정반으로 모일 수 있었다.
아직 퇴근하지 않은 채 행정반에서 업무를 보던 필두가 병력들을 쭉 훑었다.
“하나포 반장은?”
“잠시 화장실 갔습니다.”
“그럼 따로 전해야겠군.”
하나포 반장은 필두와 같이 1357대대로 파견을 나가기로 결정된 간부였다.
3박 4일 동안 필두를 보좌하며 병력들을 통제하기로 했다.
“내일 일정을 간략하게 전달하겠다.”
필두의 말에 병사들이 귀를 기울였다.
중요한 전파사항이다.
“오전 9시 반까지 아침식사 마치고 사열대 앞으로 집합한다. 확인할 거 확인한 다음에 오전 10시에 차 타고 위병소로 나선다. 1357대대는 아마 오후 2시쯤에 부대를 나갈 거다. 그 이후부터 우리가 근무를 서면 된다. 간단하니까 다 외울 수 있으리라 믿으마.”
“예!”
“시간 엄수는 필수다. 나 한 명이 늦장 부리면 모든 일정이 망가진다. 그 점, 반드시 기억하도록.”
필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사람 간의 신뢰를 증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 바로 시간 약속이다. 그것이 필두의 평소 생각이었다.
특히나 군대라는 곳은 더더욱 그러하다.
절차와 규율에 맞게 행동하려면 기본적으로 시간 엄수는 기본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간단하게 할 말만을 남겨둔 채 병사들에게 해산을 지시하는 필두. 그때, 파견 인력 중 최고참인 문나성 병장이 손을 번쩍 들었다.
“병장 문나성! 질문 있습니다!”
“뭐냐.”
“1357대대에서 PX 이용 가능합니까?”
“가능할 거 같냐?”
역으로 들어온 질문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불가능할 거 같습니다!”
“잘 아는군. PX 이용은 훈련 도중이라 못할 테니까 추진할 거면 알아서 준비해라. 그 점은 딱히 제한하지 않으마.”
“오……!”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새어나왔다.
필두가 웬일로?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본래 FM대로라면 이들의 추진을 제한하는 게 옳았다. 그러나 필두는 이들의 사기 증진을 고려해 임시적으로 추진을 허용했다.
꿀 빨러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번 파견은 고된 점이 많다.
14명의 병사가 근무를 서야 하는 곳은 탄약고 초소 한 곳과 위병소 한 곳. 4명씩 총 3개 조로 나눠 3교대로 근무를 계속 서야 한다.
남은 2명은 번갈아가며 당직사병 임무를 소화한다. 이것을 3박 4일 동안 계속 반복해야 하는데, 과연 여기에 꿀을 빨러 간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까?
필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병력들의 사기를 증진할 만한 요소가 있다면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PX에서 먹거리 몇 개 사게끔 허용해 주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를 올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 사기증진 방법이란 말인가.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때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놀라운 발상이었다.
한편, 필두의 호쾌한 추진 허용 덕분에 병사들의 얼굴이 싱글벙글 상태를 유지했다.
“이상 전달은 끝났다. 가서 하던 거 마저 하도록.”
“예!”
집합이 끝나자마자 병사들이 쏜살같이 행정반을 나섰다.
이들이 향한 곳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PX 다녀오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PX 전쟁이 시작되었다.
* * *
어김없이 찾아온 아침 점호.
노골적인 하품을 선보인 통제관이 점호를 끝내자마자 파견 병력들을 찾았다.
“오늘 파견 가는 병사들은 식사집합 없이 준비 되는 대로 바로 식당으로 내려가서 밥 먹어라. 이후의 일정은 통제 안 할 테니까. 어제 행보관님이 몇 시까지 준비 마치라는 거, 들었을 테니 별도로 말은 안 하마.”
파견 병력들을 배려한 지시였다.
통제관이 점호 때 했던 말에 따라 파견이 예정된 병력들은 분과별로 모여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의 아침 메뉴의 탑 플레이어는 비엔나소시지.
“아싸! 아침에 일찍 오길 잘했다!”
파견 병력 명단에 이름을 올린 고만해가 환호성을 질렀다.
식사 시간보다 빠르게 식당으로 오는 건 많은 메리트가 있다.
본래 선호도가 높은 메뉴는 기본적으로 취사병이 배식을 담당한다. 그러나 식사 시간이 아닐 때에는 따로 배식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 말은 곧,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퍼갈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한 주먹 이상의 소시지를 퍼가는 고만해의 모습에 문나정 병장이 어이가 없는 웃음을 흘렸다.
“상병이나 된 주제에 아직도 짬에 욕심 내냐.”
“문나정 병장님은 소시지 2~3개로 되겠습니까?”
“얌마. 병장 정도 되면 짬에 욕심이 없어져.”
“김상철 병장님은 군데리아 잘만 드시던데 말입니다.”
“그놈은 물병장이라서 그래. 나 봐라. 비엔나소시지를 보고도 흔들리지 않는 이 모습을. 이것이 병장이라는 거다.”
파견 병력 중 유일한 병장인 문나정을 제외하고 나머지 병사들도 고만해와 마찬가지로 비엔나소시지에 욕심을 부렸다.
아니, 한 명 더 있었다.
“진수야. 소시지 더 가져오지 그러냐. 이럴 때 많이 먹어둬야지.”
도혁이 슬쩍 제안했지만, 진수는 조심스레 그의 친절을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과한 식성은 좋지 않다.
딱 적정량만 먹는다. 그것이 진수의 자기관리였다.
물론 다른 병사들은 이해가 잘 안 될 수밖에 없었다.
편안한 아침 식사를 마친 이후에 다시 막사로 돌아온 파견 병력들.
오전 9시. 필두가 행정반에 도착했다.
“충성!”
“병력들은?”
“지금 한창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집합 시간까지는 30분이 남았다.
구태여 집합을 닦달할 필요는 없었다.
필두는 집에서 오면서 파견 준비를 미리 다 끝내뒀다.
도중에 이상한 물건 하나가 통신반장의 눈에 들어왔다.
“행보관님, 이건 뭡니까?”
하늘색의 컬러로 꾸며진 도시락통 하나.
그것을 본 전포대장이 필두보다 한발 먼저 자신의 추측을 들려줬다.
“혹시 행보관님 여자 친구 분께서 만들어주신 거 아닙니까?”
“아, 예비 형수님이 챙겨주신 거였습니까!”
“딱 보면 알겠습니다.”
통신반장과 전포대장이 서로 쿵짝쿵짝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순간, 필두가 통신반장 쪽으로 눈을 흘겼다.
“예비 형수님 같은 소리 하네. 아직 그 단계까진 아니니까 섣불리 넘겨짚지 마라.”
“죄, 죄송합니다!”
그 짧은 시간에 풍겨 나온 살기가 통신반장을 얼어붙게 했다.
직접적인 표적은 안 되었지만, 전포대장도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입을 꾹 닫았다.
혜정이 손수 만들어준 도시락과 함께 사열대로 향하는 필두.
그가 모습을 드러낼 때 즈음, 13명의 파견 전사들도 이미 각자 군장과 더블백을 앞에 내려놓은 채 대기 중이었다.
남은 한 명은 하나포 전담 운전병, 소중한 상병. 그는 마지막까지 차량 점검에 집중했다.
소중한에게 다가간 필두가 차량 상태를 물었다.
“끌고 갈 만하냐.”
“예. 걱정 없습니다.”
“그럼 바로 시동 걸어라. 하나포 반장! 병력들 통제해서 탑승시켜.”
“네!”
필두의 지시에 따라 하나포 반장과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전원이 다 탑승했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뒤에서야 필두도 선탑자 자리로 향했다.
“가자.”
“출발하겠습니다!”
부르르르르르릉!
포차가 거대한 덩치를 한 차례 떨었다.
포차가 시커먼 연기를 뽐내며 앞으로 천천히 이동을 시작했다.
1357대대까지는 꽤 거리가 멀다. 차를 타고 가는 시간만 해도 대략 1시간 정도가 걸린다.
게다가 포차의 늦은 속도를 생각한다면, 1시간 반 정도까지는 염두에 둬야 한다.
어차피 급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1357대대가 부대를 비우는 시간은 오후 2시 이후일 테니까. 그전까지만 가면 그만이다.
“길은 다 외웠냐.”
혹시나 해서 묻자 소중한이 곧장 대답했다.
“예! 제가 누굽니까. 수송부 에이스, 소중한 아니겠습니까! 이미 길은 빠삭하게 다 외웠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포대전술훈련 당시에 사고가 벌어질 뻔한 적도 있었지만, 필두의 정신조작 마법 덕분에 소중한은 슬럼프 없이 본래의 컨디션을 쭉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본인은 모를 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소중한이 운전하는 포차에 몸을 실은 채 이동을 개시했다.
이후 예상 소요 시간이었던 1시간 반이 지나자, 낯선 부대의 전경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왔다.
“거의 다 도착했군.”
1357대대라는 것을 확인한 필두가 눈을 반짝였다.
9090대대와는 다른 부대.
익숙하지 않은 타 부대 환경은 설렘과 긴장감을 동시에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