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10화 (110/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10화

제29장. 파견(1)

“그럼 그 흑마법사 둘이 얼마 전에 죽었다는 말씀이십니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예나.

전화를 통해 진수로부터 들은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김한과 조승천. 두 사람이 얼마 전에 암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이제야 들은 것이다.

-드리무어도 직접 조사해 본 거 같은데, 아마 같은 조직원들이 죽인 것으로 보인다.

“왜 동료를…….”

-녀석들도 악인이니까.

이만큼 확실한 대답이 없었다.

드리무어와 또 다른 타입의 악인. 게다가 이번에는 한 명이 아니다.

절대다수. 이들은 조직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예나는 이들의 존재를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레디너스에서 악인이라 불릴 만한 자는 오로지 드리무어, 단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드리무어 말고도 더 있다니.

“마일더 님께서 증원을 요청하신 이유를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군요.”

-하인드 님께서 최대한 방법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너도 그전에 항상 조심해라. 녀석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멋대로 마법을 사용하면 금세 위치가 발각될 수 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럼 통화는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자. 곧 점심시간이니 가봐야 할 거 같다.

“예! 아, 그리고 마일더 님.”

통화를 마치기 직전.

예나가 축하의 말을 건넸다.

“진급, 축하드립니다.”

-일병 말인가.

이번 달 초. 이병 황진수에서 일병 황진수로 진급하게 되었다.

본래 그의 진급은 다음 달이었다. 그러나 워낙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다 보니 이등병에서 조기 진급을 했다.

-축하받을 일까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낯선 부대에서 적응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닌데. 역시 마일더 님이십니다!”

-그래, 고맙다.

“나중에 또 면회 가겠습니다.”

-바쁘면 안 와도 된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자주 만나면 오히려 드리무어에게 의심을 살 수 있으니까. 한 3, 4주에 한 번 정도만 와도 충분하다.

보통 여자 친구가 있는 병사는 가급적이면 많은 면회를 오길 내심 바라곤 한다.

그러나 마일더는 달랐다.

드리무어의 눈치도 봐야 했기에 너무 잦은 면회는 피하는 편이 좋다.

“그럼 다다음 주에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기대하마.

“네! 그때까지 부디 무사하시길.”

마일더와의 통화를 마친 뒤에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예나가 통화를 마치기까지 기다리던 혜정이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애인이랑 통화 잘 끝냈어?”

“애, 애인…… 그, 그랬죠. 저하고 진수 씨는 애인이니까요.”

마일더와 본인이 애인 관계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예나의 놀라는 반응을 볼 때마다 혜정이 음흉한 미소를 뽐냈다.

그 때문일까. 살짝 뿔이 난 예나가 반격을 가했다.

“그러는 언니야말로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나? 뭘?”

“연애 말입니다.”

“그건…….”

순간 입을 닫은 혜정.

그런 그녀의 반응이 왠지 수상해 보였다.

침묵으로 일관하더니, 이내 얼굴이 사과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음?’

이건 예나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생일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혜정이 생일 때 필두와 함께 여행을 갔다 왔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혹시 여행에서 필두에게 해코지라도 당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러나 예나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나, 필두 씨랑 사귀기로 했어.”

“네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혜정이 필두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필두는 그녀의 마음을 애써 모른 척하는 태도를 고집해 왔었다.

그래서 예나도 두 사람의 연애는 잘 안 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둘이 사귀기로 했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거, 거짓말이시죠?”

“얘는.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하니.”

“고백은 누가 먼저 한 겁니까!”

“고백이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고. 그냥 내가 먼저 필두 씨한테 이성적으로 관심 있다고 어필했어. 그러더니 필두 씨도 나랑 같다고 말해주더라.”

“하…….”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은 정말로 많다.

그러나 차마 입 바깥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예나는 혜정 앞에서 필두의 흉을 봤다가 크게 혼이 난 적 있었다.

혜정이 필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뭐라 토를 달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혜정에게 ‘사실 필두의 정체는 드리무어고, 드리무어가 누구냐면 레디너스 최악의 악인이고,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이라는 식으로 왈가왈부 설명해 줄 수도 없었다.

설사 자초지종을 알려준다 하더라도 혜정이 그녀의 말을 믿어줄까?

천만에. 요즘 판타지 소설 구상하고 있냐며 역으로 질문받을 게 뻔하다.

이래저래 답답한 노릇이었다.

‘나중에 마일더 님에게 상담해 봐야겠어!’

그녀 혼자 감당하기 힘든 문제였다.

한편, 예나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감지한 혜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까 예나 너, 나하고 필두 씨가 잘 되는 걸 별로 안 좋게 보던데. 이유가 뭐니?”

“그, 그런 거 아니예요. 그냥 뭐랄까…… 군인에 대해서 안 좋게 보는 것뿐이지, 딱히 행보관님이 안 좋다고 보진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너도 군인이랑 사귀고 있잖아?”

“…….”

논리적으로도 대패(大敗)였다.

하긴. 예나도 진수와 사귀고 있다는 설정인데, 그녀가 어떻게 혜정과 필두의 사이를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수 있을까.

염치없는 짓이다.

“나중에 내가 자리 마련할 테니까 필두 씨 한번 같이 만나볼래? 이야기 나누다 보면 필두 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너도 알게 될 거야.”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건 사양할게요.”

가장 위험한 선택지였다.

안 그래도 드리무어한테 정체를 들키느니 마느니 하며 노심초사하고 있는 마당에 직접 대면까지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나보면 좋을 텐데.”

“나중에 기회 되면 언니 말대로 해볼게요.”

“어쩔 수 없지. 알았어.”

겨우 혜정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가 끝난 건 아니었다.

‘드리무어와 혜정 언니가 사귄다고 하는데 어쩌면 좋지?’

여전히 예나의 머릿속은 패닉 상태였다.

* * *

쉬는 날임에도 필두는 여전히 부지런했다.

행보관으로서 그의 일과 하나가 더 추가되었기에 주말임에도 계속 부대를 방문해야 했다.

마법진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

오늘도 산을 타며 그가 새겨 넣은 마법진이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막사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돌아오자, 오늘 당직사관을 맡게 된 전포대장이 필두에게 시원한 음료 한 잔을 권했다.

“고생하셨습니다, 행보관님.”

“감사합니다.”

벌컥, 벌컥.

차가운 음료가 갈증을 해소했다.

벌써 얼음물이 그리워지는 그런 시기까지 오게 되었다.

“날이 요즘 꽤 덥지 말입니다.”

“그러게요.”

전포대장의 의견에 공감대를 표했다.

확실히 상당히 더워졌다.

동계 전투복을 입고 다니는 병사들도 이제는 하나둘씩 하계 복장으로 갈아타는 추세였다.

필두도 일찌감치 하계 복을 꺼내뒀다.

처음 입어보는 하계복은 그냥 저냥이었다.

하계 복이라 하더라도 동계복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전투복이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그냥 동계복보다 약간 더 시원한 느낌? 그게 다였다.

“행보관님은 이번 여름 때 여행 안 가십니까?”

“여행이라. 듣고 보니 가고 싶긴 하군요.”

“들었습니다. 목사님 따님이랑 교제하기로 하셨다지요? 벌써 소문이 자자합니다.”

“거 참…….”

소문의 근원지가 누구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혜정의 아버지가 바로 그 정체였다.

본래 목사는 처음부터 그랬다. 필두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해서 그런 걸까.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당사자에게 듣자마자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고 다닌 것이다.

그 덕분에 9090대대에서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간부뿐만 아니라 병사도 마찬가지.

물론 진수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나와 다르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인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설령 그게 악인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다. 한때는 마법으로 이들의 기억을 지워버릴까 했지만, 그건 좀 너무하다 생각한 모양인지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어찌 되었든 9090대대는 연달아 겹경사가 이어졌다.

장관에게 칭찬세례를 받은 것에 이어 필두가 오랜 노총각 생활을 탈출했다는 소식까지.

웃음꽃이 핀 이후로 지는 시기가 없었다.

“그보다 파견 건에 대해선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습니까?”

말머리를 돌리는 필두. 그제야 뒤늦게 떠오른 모양인지 전포대장이 그간의 상황을 들려줬다.

“병사 14명, 간부 2명 이렇게 선출해서 보내기로 합의 봤습니다.”

다음 주. 제1포대는 타 부대로 파견이 예정되어 있었다.

해당 부대에서 뒤늦은 혹한기 훈련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동안 대신 위병소와 탄약고 초소 근무를 서야 할 병사들을 지원받아야 했다.

병력들을 지원해 주기로 결정된 곳이 9090대대 제1포대로 결정되었다.

그 탓에 파견 인력들을 뽑아야 한다.

“병사들은 뽑았습니까?”

“아직입니다만.”

“그럼 제가 뽑아도 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제가 할 일인데 굳이 행보관님께서 수고하실 필요는…….”

“사양 안 하셔도 됩니다. 안 그래도 파견 갈 간부 두 명 중 한 명이 접니다.”

“……?”

전포대장의 반응이 느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차피 병력들을 총괄할 수 있는 간부도 필요한 거 같기도 해서 제가 일부러 지원했습니다.”

필두는 간혹 이렇게 스스로 귀찮은 일을 자처할 때가 있었다.

솔선수범. 이 단어가 잘 어울리는 행보관이다.

그러나 필두는 솔선수범보다 호기심 때문에 파견 지원을 선택했다.

다른 부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부대를 관리하는 행보관으로서 배울 점이 있을까 싶어서 자원했다.

“염두에 둔 병력 있습니까?”

전포대장이 슬쩍 떠보기 식으로 물었다.

펜을 굴리던 필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있습니다.”

“누구누구입니까?”

“일단 전도혁하고 황진수, 이 두 녀석은 반드시 들어갈 겁니다.”

전도혁이야 필두한테 이리저리 불려다니기로 유명한 병사로 소문이 자자했기에 납득은 됐다.

진수도 최근에 전도혁과 같은 라인을 타게 되었다. 그 때문에 전도혁처럼 필두에게 여기저기 불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어차피 두 병사는 일을 잘한다.

그런 병사를 데려가고 싶어 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파견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훈련이라든지 일과 시간, 이런 거 없이 근무만 하루 종일 서다가 오면 되니까.

어떤 의미로 보면 오히려 꿀 빠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두가 같이 간다는 전제가 붙게 되면, 그건 결코 꿀이 아니다.

행복한 고민에 휩싸인 듯 필두가 펜대를 굴렸다.

그 모습을 훔쳐보던 전포대장이 속으로 필두와 함께 갈 병사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불쌍한 녀석들. 부디 살아서 돌아와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