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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102화 (102/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02화

제26장. 재회(2)

거실로 나온 예나가 그녀의 어머니를 찾았다.

“아주머니…… 가 아니라, 어머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여전히 자신의 딸아이라고 보기에 힘든 말투가 이어졌다.

가슴이 미어졌지만, 그래도 죽었다고 생각했던 딸이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이란 말인가.

그렇게 위안을 삼으며 차근히 대답해 줬다.

“작년에 찍은 사진이로구나. 네가 성가대 활동할 때 말이야.”

“성가대가 뭡니까?”

“교회에서 찬송가 같은 걸 부르는 그런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란다.”

“혹시 성가대로 다시 활동하면, 저도 이 군대라는 곳에 갈 수 있습니까?”

“아마도 그러지 않겠니? 정확한 건 혜정이한테 물어보는 게 좋겠구나.”

민혜정. 에리나도 그녀가 누군지 얼추 알고 있었다.

에리나가 처음 소예나라는 여성의 몸으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인물이 바로 민혜정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기억에 남았다.

“민혜정이라는 아가씨가 군대와 관련 있는 인물입니까?”

“직접적으로는 아니고. 혜정이 아빠가 군종 목사시거든. 매주 가니까 성가대 부르는 날에는 아마 같이 갈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너, 혹시 성가대 다시 하려고 그러니?”

“예.”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엄마로선 무리하지 말고 우선은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고 보지만, 한편으로 이거는 기회였다.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이미 예나의 상처는 전부 다 치유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독한 기억상실증을 치료할 방법은 마땅히 없었다.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예나가 예전에 했던 일들, 마주했던 사람들, 자주 접했던 환경을 반복하다 보면 본래의 기억이 돌아올지도.

그걸 생각한다면 오히려 성가대 활동을 재개하는 걸 막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혜정이한테는 내가 연락해두마.”

“감사합니다, 어머님.”

할 방법이 있다면 최대한 시도해 보고 싶다.

그것이 현재, 에리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 * *

이틀 뒤.

예나와 직접 만나기로 한 혜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재차 물었다.

“정말로 성가대 다시 하게?”

“예.”

“그래도…… 당분간은 쉬는 게 좋지 않겠어?”

“몸은 다 나았습니다.”

그건 혜정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예전과 다른 예나의 모습이었다.

사실 혜정은 예나의 어머니로부터 성가대 활동이 오히려 그녀의 기억을 되찾아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나 혜정은 내심 걱정되었다.

성가대 활동을 재개한다 하더라도 그게 반드시 예나의 기억을 되찾아줄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종의 도박과도 같았다. 그것도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은 도박.

그럴 바에야 그냥 얌전히 쉬는 게 좋지 않을까.

하나 그러기엔 예나의 의지가 너무 강했다.

“부디 꼭! 다시 성가대로 활동할 수 있게끔 해주시기 바랍니다!”

덥석!

혜정의 양손을 힘 있게 잡았다.

그녀의 적극적인 어필에 혜정도 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혜정이 알던 예나는 소극적이고 숫기없고 얌전하고 참한 성격이었다.

남들 앞에 쉽사리 서질 못하는 성격을 고치고자 일부러 성가대에 들어왔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예나는 혜정이 알던 그 예나가 아니었다.

누구세요?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일단은…… 알았어. 아빠한테 말씀드려볼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으, 응.”

* * *

새벽 2시.

“진수야. 근무 나갈 시간이다.”

진수를 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번쩍 뜬 진수가 곧장 상반신을 일으켜 환복에 들어갔다.

진수는 늘 이랬다. 보통 일반 병사들이라면 졸음에 못 이겨 몇 번의 뒤척임을 보이곤 했다.

그러나 진수는 칼같이 바로 일어나 외곽근무 준비를 서둘렀다.

볼 때마다 새로운 광경이었다.

오늘 함께 근무를 나갈 사람은 넷포의 이한엽 상병.

진수가 먼저 행정반으로 들어서 총기보관함 수정과 말판 이동 등 후임병들이 기본적으로 세팅하는 것들을 끝냈다.

이윽고 이한엽 상병이 행정반에 들어서자 총기보관함에 각자의 총기들을 꺼냈다.

이런 동작 자체가 이제는 익숙했다.

일렬로 나란히 마주 선 이한엽 상병과 진수.

“통신반장님, 외곽 근무 다녀오겠습니다.”

“……음? 어, 그래…… 근무 잘 서라.”

“예, 알겠습니다.”

꾸벅꾸벅 졸던 통신반장이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근무자 신고는 이것으로 끝.

당직병의 인솔을 받으며 탄약고 초소로 향했다.

전번근무자와 근무 교대를 마친 후에 서로 등을 진 채 사주경계 모드로 들어갔다.

둘이서 말없이 멍한 시선으로 근무를 서고 있을 때.

“이한엽 상병님.”

진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 왜.”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엽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넘어지기 일보직전에 한엽을 부축하는 데에 성공한 진수가 그를 구석 쪽에 앉혀뒀다.

“이쯤 하면 됐겠지.”

몰래 챙겨온 마석을 꺼내 들었다.

필두가 저녁 점호 끝나고 퇴근했다는 건 이미 확인했다. 여기서 차원 통신을 한다 해도 필두에게 들킬 일은 없을 터였다.

에리나와 차원 통신을 주고받았을 때, 사용 방법은 대략 들었다.

마석에 마나를 주입시키면 알아서 차원 통신망이 개방된다 했다.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미량의 마나를 마석에 주입했다.

그러자 마석이 강렬한 빛을 뿜어댔다.

“아아. 들리나.”

육성으로 말을 걸어봤다.

돌을 상대로 말하는 모습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만했다.

그러나 이곳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 흔한 멧돼지, 고라니조차 보이지 않았다.

안전하게 차원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셈이었다.

“마일더다. 혹시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바로 답신해다오.”

몇 차례 수신을 보내고 나서야 반응이 나왔다.

-마일더 님이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음? 에리나가 아니군. 누구지?”

-하인드입니다, 마일더 님.

마법사 길드의 수장을 역임하는 남자, 하인드.

그가 직접 마일더의 차원 통신에 응답했다.

“하인드 님이군요. 제 목소리는 잘 들리십니까?”

-잘 들립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차원 통신이 원활한 거 같아 다행이군요.

“그쪽 동태는 어떻습니까?”

-평화롭습니다. 드리무어도 없어지고, 흑마법사 집단도 갑자기 자취를 감춘 탓에 당분간은 문제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흑마법사 집단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진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인드 님이 말씀하시는 그 집단 말입니다. 사실은 드리무어가 강제로 차원 이동을 시켰습니다.”

-역시 그랬군요.

하인드도 얼추 예상하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그들이 사라진 게 때마침 드리무어가 차원 이동을 시도했던 시기와 딱 맞물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드리무어가 차원 이동을 강요했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드리무어가 무슨 이유에서 그런 겁니까?

“하르만 학살 사건 때문입니다. 드리무어는 그곳에서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예전부터 그 사건을 일으킨 주범을 추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그 주범이 설마……!

“아직 드리무어의 추측에 불과하지만, 확률은 높은 거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하인드 님께서 혹시 조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에리나에게 제 말을 대신 전해주시면…….”

-에리나 님께서는 지금…….

하인드가 말끝을 흐렸다.

안 좋은 낌새를 눈치챈 진수가 혹시나 하며 물었다.

“에리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마일더 님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하셔서…… 그쪽 세계로 넘어갔습니다.

“이런……!”

왠지 불길했다.

에리나는 마일더가 드리무어를 추격하겠다고 할 때부터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억지를 자주 부렸었다.

그런데 설마 직접 이 세계로 넘어올 줄이야.

“에리나는 어디 있습니까?”

-일단 마일더 님이 계신 곳 근처로 차원 이동을 시키긴 했습니다만…… 저도 정확히 어디인진 잘 모르겠습니다.

차원 통신이 가능한 마석으로도 그녀를 찾을 순 없었다.

왜냐하면 마석은 차원과 차원끼리의 통신을 가능하게 만드는 물건이지, 같은 차원 내에 있는 존재들끼리 통신을 주고받는 용도로 개발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에리나부터 먼저 찾는 게 급선무겠군요.”

-죄송합니다, 마일더 님. 제가 좀 더 신중하게 처신했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에리나가 막무가내로 고집부린 탓입니다. 하인드 님께서 너무 자책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 아까 제가 부탁드렸던 것 좀 잘 조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이 늙은이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일더 님.

하인드는 유능한 마법사다.

그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터.

이것으로 드리무어와 흑마법사 조직 간의 관계를 확실하게 파악해낸다.

그 뒤, 상황에 맡게 단죄를 내린다.

그것이 마일더가 할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에리나를 무슨 수로 찾아내지?’

하인드에게는 본인이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진 않았다.

일과 시간에는 다른 곳에 돌아다닐 수 없었다. 부대를 벗어나면 탈영이 되니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취침 시간 때 몰라 돌아다녀 볼까.”

필두만 조심하면 어찌 저 찌 잘 되지 않을까.

“내일부터 시작하면 되겠군.”

진수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 * *

아침 식사를 마친 뒤 10시가량이 되었을 때, 행정반에서 종교 집합을 알리는 전파 사항이 들려왔다.

-지금 전 병력은 사열대 앞으로 종교행사 집합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을 듣자마자 상병장급들이 입을 모아 물었다.

“오늘 당직사관, 누구냐?”

“설마 행보관님은 아니겠지?”

“제발 아니어야 하는데!”

필두가 당직사관이라면 예외 없이 종교행사에 참가해야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오늘의 당직사관은 필두가 아니었다.

“삼포반장님이십니다.”

“아싸!”

“휴, 살았다!”

삼포반장도 통신반장과 같이 AM 스타일이다.

결국 상병장들을 제외하고 후임급들만 사열대 앞으로 모였다.

진수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선택한 종교는 기독교.

레디너스 대륙에 있었을 당시, 기독교와 비슷한 종교가 있었다.

레티너 교라고 해서, 마일더가 평소 믿었던 종교와 비슷했기에 그는 주저 없이 기독교의 길을 선택했다.

병사들과 함께 교회로 내려가던 진수는 이동 중에도 오늘은 어떤 식으로 에리나 탐색 작전에 임할까 고민을 거듭했다.

근 이틀간 큰 성과는 없었다.

‘혹시 나처럼 다른 지방으로 떨어진 건 아닌가?’

정말로 그렇다면 난감하다.

지방까지 갈 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었으니까.

어느 새 교회 앞에 도달한 제1포대 병사들.

때마침 평소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이스! 오늘 성가대 왔다!”

“저 아가씨, 저번에 왔던 그 사람 맞지?”

“네. 저번에 김오찬 병장님이 취향이라고 했던 그 여자분 맞습니다.”

“난 저쪽 여자가 더 마음에 드는데.”

20여 명의 성가대가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하나같이 다 젊었다.

‘성가대라.’

군인들과 다르게 자유분방한 인생을 즐기는 청춘들이었다.

한 명씩 가볍게 훑어보던 도중이었다.

‘저 여자. 뭐지?’

유독 한 명의 여성에게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다른 성가대 인원들과 다르게 마치 누군가를 찾아내려는 듯한 눈빛.

그 순간, 여성과 진수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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