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98화
제24장. 진급시험(5)
계속해서 이어지는 화생방 시험.
그러나 아직까지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철남의 말대로 병사들은 무난하게 자신의 역량을 드러냈다.
“다음! 4조!”
“예!”
4조의 4명이 일렬로 나란히 마주 섰다.
이들을 응시하던 인사 장교가 옆에 남아 있는 두 명의 병사들까지 가리켰다.
“시간 아까우니까 너희 둘도 이쪽으로 와서 시험 바라.”
“네, 알겠습니다!”
인사 장교의 임시 인원 편성으로 인해 4조만 7명이 되었다.
마지막 조에는 진급 누락자 4인방 중 왕고인 윤명철도 포함되어 있었다.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병철은 저번 달 진급시험 때 이미 한번 누락을 당한 적 있었다.
체력 테스트에서 불합격을 당하긴 했지만, 화생방 시험을 통과 못 한 이력도 있었다.
원인은 명확했다.
방독면, 보호두건까지 잘 착용했는데 마지막에 ‘가스, 가스, 가스!’ 세 번 외치는 걸 깜빡해서 안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이번에는 잊지 말자!’
각오를 다졌다.
더 이상의 진급 누락은 없다! 그러한 기세로 준비 자세를 취했다.
“다들 긴장해라.”
인사장교가 이들에게 겁을 줬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가스!”
상황이 부여되자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우선은 총부터 해결한다!
가랑이 사이에 총을 끼우는 병사도 있고, 한쪽 무릎을 굽힌 채 허벅지 위에 총을 올려놓는 병사도 있었다.
자세나 방법이 달라도 장비가 지면에 닿지 않으면 된다. 딱히 정해진 행동은 없었기에 여기까지는 세이프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후드득!
방독면 주머니를 뜯어낸 병사들이 빠르게 방독면 마스크를 착용했다.
안경을 쓴 병사들은 미리 벗어뒀다.
병철도 본래는 뿔테 안경을 착용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안경이 오히려 방해 요소였다.
‘마스크부터 써야 해!’
안면에 마스크를 가져간 뒤에 앞에 있는 끈을 머리 뒤로 넘겼다.
끈 뭉치가 정확히 그의 뒤통수에 있었다.
위, 중간, 그리고 아래.
양쪽 끈들을 꽉 조인 뒤에 보호 두건을 펼쳤다.
침착하게 왼쪽 팔과 오른쪽 팔을 번갈아 끈과 보호두건 사이로 통과시켰다.
정확히 겨드랑이에 있음을 파악하자마자 목 근처에 있는 보호두건 끈을 조였다.
정화통에 공기가 새는지에 대한 여부까지 확인을 마친 후!
‘구호 외치기다!’
“가스, 가스, 가스!”
이번에는 잊지 않았다!
정확하게 세 번. 가스를 외친 윤병철 병장의 모습에 강철남이 근처에서 안도했다.
솔직히 말해서 윤병철은 좀 불안했다. 이미 화생방 시험에서 한번 탈락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과거의 실패는 교훈을 주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주는 법이다.
하나 병철은 그 두려움을 훌륭하게 극복해냈다.
강철을 믿고 따라와 준 그의 모습에 감동마저 느껴졌다.
하나 아직 진급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체력 테스트 시작할 테니까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오도록.”
“예, 알겠습니다!”
드디어 대망의 체력 테스트 시간이 다가왔다.
* * *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는 딱히 탈락할 만한 게 없었다.
여유롭게 전원 합격.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3㎞ 오래달리기다.
대대 연병장으로 내려온 진급 시험 대상자들. 때마침 컨디션을 회복한 화학 장교가 그를 맞이했다.
“시험 다 끝났어?”
“오래달리기 하나 남았습니다. 그보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괜찮아졌어. 갑자기 확 나아지더라고.”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아침 내내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었는데, 인사 장교가 찾아오고 난 이후에 컨디션이 급속도로 회복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화생방 시험이 끝났을 때였다.
범인인 필두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내심 걱정했었는데.”
“행보관님께서 걱정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혹시 행보관님이 신경 써주셔서 나은 건 아니려나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오히려 그 반대다.’
이 말이 목 언저리까지 튀어나왔지만, 잘 참아냈다.
한편, 스타트 선에 마주 선 진급 시험 대상자들.
“뛰어!”
“어잇!”
“갓!”
천천히 앞을 향해 달려 나간다.
오래달리기의 핵심은 바로 페이스 조절이다.
괜히 무리한답시고 초반부터 스피드를 냈다간 후반에 가서 제대로 피를 볼 수 있었다.
게다가 3㎞는 결코 짧지 않은 거리다. 얕봤다간 큰코다칠지도 모른다.
빙글빙글 연병장을 도는 진급 시험 대상자들.
1㎞를 넘어갈 때부터 슬슬 기량 차이가 보였다.
선두 그룹에는 정성태와 전도혁.
두 일병이 1등 다툼을 하는 중이었다.
“힘들면 뒤에서 얌전히 따라오시지, 전도혁!”
“그러는 너야말로 벌써 호흡 거친 거 같은데. 천천히 걸어오는 게 어떠냐?”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서로 그렇게 디스전을 주고받으면서 투지를 불태웠다.
반면, 꼴찌 그룹도 있었다.
“헉, 헉…….”
체력 테스트 준비를 거듭하는 동안 내내 약한 모습을 보였던 진급 누락 4인방이었다.
그중에서도 윤병철이 맨 뒤를 차지했다.
그나마 지금 시기였기에 망정이지, 여름이었으면 이미 이 시점에서 GG를 쳤을지도 몰랐다.
“병철이, 그래도 꽤 버티는군.”
필두가 처음 그를 봤을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1주일밖에 안 지났지만 분명 체력은 늘었다.
게다가 본인이 노력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었다.
“병철이가 이번에 이를 제대로 갈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진급하겠다고 저한테 매번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의지만으로 세상 모든 일이 해결되진 않는다.
병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본인이 진급에 대한 욕심이 많아도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진급 누락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병철이 2㎞ 지점을 통과했을 때, 선두 그룹은 거의 막바지에 도달했다.
“후으읍!”
두 남자가 호흡을 깊게 내쉬면서 다리에 힘을 불어넣었다.
파바바바박!
그들이 지나가는 곳에 먼지가 자욱했다.
일등은 넘겨줄 수 없다! 강한 승부욕이 불러일으킨 결과는 인사 장교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12분 12초 12, 32라…… 특급 기준이잖아!”
“누, 누가…….”
“……12입니까?”
특급이고 나발이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누가 이겼나! 도혁과 성태에겐 그가 가장 신경 쓰였다.
“어디 보자. 거기 너.”
“일병 정성태!”
성태가 기분 좋게 자신의 관등성명을 댔다.
지목을 당했다는 건, 본인이 12라는 뜻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인사 장교의 다음 이어지는 말은 성태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네가 32다.”
“앗싸!”
전도혁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표출했다.
이겼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승리의 맛이었다.
한편, 결과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성태가 반론을 제기했다.
“저, 정말로 제가 나중에 들어왔습니까? 인사 장교님이 혹시 잘못 보신 건 아닙니까?”
“어쭈구리? 나한테 토라도 달려는 거냐?”
“그, 그건 아닙니다만…….”
“그리고 어차피 둘 다 특급 기준이잖냐, 12면 어떻게 32면 어때. 안 그래?”
“……예, 그렇습니다.”
인사 장교가 좋게 좋게 말을 해보지만, 성태는 여전히 시무룩했다.
그런 성태에게 다가간 도혁이 어깨를 몇 번 토닥여줬다.
“힘내라.”
“눈물 나게 하는 응원, 정말 고맙다.”
이를 악 물며 대답했다.
그렇게 두 남자의 승부는 결판이 났다.
이제 남은 과제는 다른 병사들이 무사히 기준점을 넘느냐였다.
* * *
오래달리기가 시작된 지 이제 12분 50초가 지났을 때.
삑!
“오케이, 12분 52초. 합격.”
“가, 감사합니다!”
진급 누락 4인방 중 3명째 결승점을 통과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인원은 오로지 단 한 명.
윤병철뿐이었다.
“힘내십시오, 윤병철 상병님!”
“할 수 있다, 병철아! 조금만 더 힘내라!”
“목적지가 바로 코앞입니다!”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천천히, 페이스 유지하면서 뛰시면 됩니다!”
제1포대 병사들 모두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그를 응원했다.
13분 째.
혼자서 달리기를 이어나가는 중이었지만, 병철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그를 응원하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이미 닿았기 때문이었다.
“진급 누락할 쏘냐! 두 번은 없다! 두 번은!”
악에 받친 소리를 바득바득 내지르며 막판 스퍼트에 접어들었다!
13분 10초!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20초뿐!
“…….”
필두는 계속해서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이라도 그에게 버프 마법을 걸어준다면, 문제없이 체력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정말로 그게 정답일까?
지금 여기서 병철에게 버프를 걸어준다는 건, 어쩌면 여태까지 노력해 온 그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행동이 될지도 몰랐다.
희대의 악인이라 불리던 드리무어지만, 그는 처음부터 악인이 아니었다.
가족을 잃고, 믿었던 자들에게 배신당했다.
배신이라는 이름의 고통이 그를 악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그는 희대의 악인, 드리무어가 아니었다.
부대를 사랑하고 아끼는 간부.
제1포대 행정보급관, 강필두였다.
응집했던 마나 덩어리를 다시 풀어버렸다.
버프는 걸지 않았다.
대신, 윤병철을 믿기로 했다.
필두의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반드시 통과한다! 병장 될 거라고!”
있는 힘을 다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남은 시간은 10초.
9, 8, 7…….
삑!
“13분 24초 22! 고생했다, 병철아. 합격이다!”
“하, 합격……!”
인사 장교의 최종 통보를 듣고 나서야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가 해냈다!
약골이라 불리던 남자 윤병철.
오늘로서 그는 병장이 될 자격을 제 손으로 거머쥐었다.
* * *
잠시 제1포대 행정반에 들른 본부 포대 인사 장교가 혀를 내둘렀다.
“대단합니다. 제1포대 전원 진급 시험 합격이라니. 제가 여태껏 진급 시험 진행하면서 처음 있는 일인 거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몰랐군요.”
필두가 그의 말을 가볍게 받아줬다.
그는 마치 이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필두가 직접 나서면 진급 시험도 완벽하다. 그 사실이 오늘, 새롭게 증명되었다.
“아무튼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습니다. 행보관님.”
“제가 고생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인사 장교님이 다 하셨지요.”
“아닙니다. 아까 병사들한테 다 들었습니다. 행보관님, 저번 주에 쉬지도 않으시고 병사들 진급 시험 도와주셨다고 말입니다.”
“행보관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지요.”
“그래도 쉴 때는 쉬시는 게 좋습니다. 며칠 뒤에 또 대민 지원 나가기로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진급 시험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다.
대민 지원. 사람의 손이 있어야 하는 농가, 혹은 장소로 가서 직접 도움을 주는 일을 뜻한다.
9090대대도 근처 인근 마을에 가서 아직 쌓인 채 녹지 않은 눈들을 치워주기로 되어 있었다.
대민 지원에 필두가 빠질 수 없었다.
“아무쪼록 건강 잘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충성!”
“충성. 고생하셨습니다, 인사 장교님.”
인사 장교를 배웅한 후에 다시 행정반으로 돌아왔다.
‘대민 지원이 있었군. 슬슬 인력도 뽑아둬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