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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97화 (97/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97화

제24장. 진급시험(4)

진급시험 당일.

오늘은 제1포대 진급 시험을 치르는 날이었다.

“남들은 다 쉬는데, 나는 진급시험 보러 돌아다녀야 한다니. 악운도 이런 악운이 없구먼.”

인사 장교의 입에서 한숨이 깊게 튀어나왔다.

전투복을 차려입고 준비를 마친 그.

관사 입구에서 화학 장교를 기다려보지만, 이상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왜 안 오지?”

결국 참다못해 화학 장교가 머무르는 방으로 찾아갔다.

똑똑.

가벼운 노크와 함께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알파 포대 진급 시험 안 가십니까?”

“아…… 미안. 오늘은 너 혼자 가라.”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게 말이다…….”

화학 장교의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아 보였다.

“아침에 화장실만 한 8번 갔다 온 거 같아…… 뒈질 거 같아.”

“배탈이라도 나셨습니까?”

“모르겠어. 갑자기 이러네……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평소랑 같은 식사, 같은 간식거리를 먹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필두가 준 토종꿀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화학 장교는 설마 토종꿀이 자신에게 이런 시련을 부여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토종꿀을 받은 건 저번 주 목요일. 받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짬이 날 때마다 꿀을 물에 타 먹어 왔는데, 그때는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필두는 정확히 딱 오늘, 진급 시험 날에 일부러 그의 장에 무리가 가게끔 마법을 걸어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는 화학 장교로선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러시다면야…… 알겠습니다. 오늘 진급 시험은 저 혼자 돌아보겠습니다.”

“미,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아프면 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푹 쉬시길.”

어차피 화학 장교가 하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화생방 과목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그 과목도 방독면을 제시간 안에 제대로 착용하는지 확인만 하면 될 일이었다.

굳이 화학 장교가 나서지 않아도 초시계만 볼 수 있으면 누가 와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업무였다.

자료들을 챙기고 알파 포대로 향하는 인사 장교.

행정반에 들어서자, 통제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오셨습니까, 인사 장교님.”

“오랜만입니다, 통제관님. 진급 시험 대상자들은 어디 있습니까?”

“2생활관에 집합시켜뒀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 장교가 통제관과 함께 2생활관으로 향했다.

이들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필두가 오늘 당직사병을 맡은 강철남에게 물었다.

“합격률은 어떻게 될 거 같으냐.”

“딱 4명을 제외하곤 100% 합격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 4명이 진급누락 4인방인가?”

“예, 그렇습니다. 다른 건 완벽한데, 오래달리기가 좀 불안합니다.”

“결국 체력 문제인가.”

그래도 그들은 틈이 날 때마다 자처를 해 연병장을 뛰거나 했다.

부족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 낮과 밤을 가리지 않은 채 연습에 연습을 해왔다.

이제 이들의 운명은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강철남이 진급 누락 4인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합격이 보장되었다는 식으로 말을 하지만, 필두 입장에선 쉽사리 그의 의견을 믿을 수 없었다.

세상만사 100%라는 말은 없는 법. 분명 무슨 변수가 생길지도 몰랐다.

‘혹시 모르니까 감시해 봐야겠군.’

필두가 항상 신경 쓰는 단어가 있다.

만약에. 설마. 혹시나.

100% 합격률을 보장했지만, 여기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그건 필두의 자존심이 용서치 않았다.

“강철남.”

“병장 강철남!”

“외곽근무 인솔자는 당직병에게 전부 맡기고 넌 나와 함께 진급 시험 치러지는 거, 감시한다. 혹시 모르니까.”

“예, 알겠습니다!”

* * *

인사 장교가 2생활관 안으로 들어서자, 병사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반갑다. 얼굴 보니까 예전에 우리 부대로 전입 왔을 때 봤던 녀석들도 있고 그러네.”

“오랜만입니다, 인사 장교님!”

“그때는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그래, 그래. 아무튼, 반갑고, 시간 없으니까 바로 진급 시험 시작하마. 첫 과목은 필기시험이다. 답안지 작성하고 바로 나한테 주면, 실시간으로 여기서 바로 채점하고 결과 알려줄 테니까 그리 알아라.”

“예, 알겠습니다!”

시험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채점하고 합격 결과까지 통보해 준다.

세상에 이런 시험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군대이기에 가능하다. 이곳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마법의 장소!

“내가 돌아다니면서 시험지 나눠줄 테니까 한 장씩 받아라. 아, 시험지는 내가 ‘봐도 좋다.’라고 말할 때까지 덮어둬라. 그전에 시험지 보면 부정행위로 알고 바로 불합격 처리할 테니까 그리 알아둬라.”

“예!”

인사 장교가 직접 시험지를 건네줬다.

하나씩 건네받은 병사들.

배포가 다 끝나자마자 인사 장교가 시험 개시를 알렸다.

“시작!”

펄럭!

시험지를 빠르게 뒤집었다.

내용물을 보는 순간, 병사들이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어!’

‘강철남 병장님, 감사합니다!’

철남이 알려준 공략 그대로였다!

족집게처럼 딱 10개의 예시 문제만을 알려준 강철남. 그의 말대로 정말 저번 달과 동일한 문제가 출제된 것이다!

이미 답을 다 알고 있기에 틀리고 싶어도 틀릴 수가 없었다.

식은 죽 먹기! 이 한 마디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시험지를 제출한 인물은 김조항이었다.

“어디 보자.”

첫 번째 문제부터 마지막 문제까지.

고개를 끄덕인 인사 장교가 그에게 결과를 알려줬다.

“10점 만점. 대단한데?”

“감사합니다!”

조항의 뒤를 이어 도혁과 성태가 순번을 기다렸다.

그 둘 역시 만점. 볼 필요도 없었다.

이후에도 나머지 병사들이 빠르게 시험지를 건네줬다.

진급 누락 4인방까지 전원 합격!

게다가 심지어 모두가 다 만점이었다!

“와, 너희. 어떻게 다 만점 받았냐?”

한 문제 정도는 틀릴 법했다.

그러나 이들은 전원 만점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번에 진급 시험 도와준 선임이 실력이 매우 좋은 거 같습니다. 문제도 콕콕 잘 찍어주셨습니다.”

“그게 누군데.”

“강철남 병장입니다.”

“강철남이라…… 들어본 적 있는 거 같은데.”

진급의 신이라 불리는 남자.

조기 진급의 길만 걸어온 강철남이었기에 인사 장교도 한 번은 들어본 듯했었다.

그러나 정확히 떠올리진 못했다.

‘뭐, 아직 과목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

필기시험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 * *

두 번째 시험은 사격.

22명의 병사들이 인사 장교를 포함해 간부 몇몇과 함께 사격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이미 필두가 도착해 있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인사 장교님.”

“하하하! 고생이랄 게 뭐 있겠습니까.”

가벼운 인사만을 나눈 채 곧장 사격 시험에 들어갔다.

총 10사로까지 있었기에 3개 조로 나뉘어 시험을 치르게 된다.

10명인 조가 2개 조, 그리고 두 명인 조가 1개 조. 이렇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운이 좋은지 나쁜 건지. 2명만 있는 조에 들어가게 된 병사는 도혁과 정성태였다.

“야, 전도혁.”

“왜.”

“이번에 누가 더 많이 맞추는지 내기할래?”

“뜬금없이 무슨 내기냐”

“질 거 같으면 안 해도 되고.”

요즘 들어 정성태는 위기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하나포의 에이스는 바로 나! 그렇게 주장하던 게 바로 정성태였다.

그러나 도혁이 필두로 인해 제정신을 차리게 되고 난 뒤, 그의 활약은 점차 정성태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하나포 에이스 자리를 위협받게 된 정성태였기에 이번 사격을 통해 도혁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도혁이 이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래도 뭐랄까. 남자의 자존심을 슬금슬금 건드리는 성태의 행동에 아니꼬움을 느꼈다.

“어차피 난 만 발 맞힐 건데. 쫄릴 이유가 없지.”

“그럼 승낙한 걸로 아마.”

“오케이. 지는 사람이 PX 쏘기!”

“좋지!”

두 일병이 승부욕을 불태웠다.

다른 이들은 합격하느냐 마느냐 가지고 고뇌할 때, 이 두 남자는 누가 표적을 더 많이 맞히느냐로 경쟁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1조 사격이 시작되었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타앙!

부대 내에서 울리는 한 발의 총성. 첫발을 시작으로 다른 소총들도 총구에서 불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사격은 별로 걱정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의 사격 실력은 예전부터 충분히 증명된 바였으니까.

총 20발의 사격이 끝난 후에 이들에게 합격, 불합격 여부가 내려졌다.

“오케이, 전원 통과!”

인사 장교의 이 말이 얼마나 기쁘게 들려왔던가.

병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필두의 예상대로 1조 전원 무사통과!

2조 역시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들 또한 전원 합격. 남은 인원은 도혁과 성태, 두 남자뿐이었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두 남자가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누가 먼저 발포하느냐. 이것도 나름 기세 싸움이었다.

탕탕탕탕탕!

쉬지도 않은 채 무작위로 쏘는 것처럼 발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결과.

“오…….”

“저 두 녀석, 제법입니다.”

간부들이 놀라움을 토로했다.

전도혁, 20발 만발.

정성태, 20발 만발.

두 사람의 사격 실력은 비등했다.

하나 성태는 못내 아쉬움을 토로했다.

“쳇, 운이 좋았구먼, 도혁이 녀석.”

“너야말로.”

전도혁도 할 땐 하는 남자다. 애초에 그가 처음부터 마음잡고 A급 병사를 노렸다면 이렇게까지 얕보일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격도 전원 합격! 이제 남은 건 단 두 개뿐이었다.

* * *

가장 변수가 많은 과목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화생방!

그저 방독면을 꺼내 빨리 쓰기만 하면 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방독면 착용 도중에 안에 있는 부수 물자들이 후드득 떨어질지도. 그렇게 되면 탈락이다.

총기도 마찬가지다. 지면이 오염되어 있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펼쳐지는 훈련이기에 총이 땅에 닿으면 그것도 불합격 처리된다.

불행하게도 오늘, 이들은 총을 가지고 시험을 볼 예정이었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하아, 돌아버리겠네!’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강철남 역시 긴장감이 몸을 지배했다.

최악의 플랜이긴 했으나, 그래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럼 1조부터.”

방독면 착용 시험은 1개 조당 다섯 명이 팀을 이뤄 펼쳐진다.

더 원활한 감시를 위해 일부러 소수의 병력으로 1개 조를 짜게 된 것이다.

이것도 철남이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예전에는 7명씩 봤었는데.’

2명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어쨌든 이들이 잘해내기를 바라는 수밖에.

“까스!”

인사 장교의 신호와 함께 병사들이 빠르게 방독면 주머니를 뜯어냈다.

이들의 목표는 총을 소유한 채 12초 안에 보호두건까지 완벽하게 착용하기!

1조는 도혁을 비롯해 정성태 등 에이스들이 모인 조라서 그렇게까지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가스, 가스, 가스!”

“어디 보자.”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

중요한 건 방독면을 제대로 착용했느냐 여부였다.

정화통에 손바닥을 붙인 인사 장교가 도혁에게 지시했다.

“숨 쉬어봐라.”

“읍!”

공기가 통하지 않는다.

“좋아, 합격!”

“일병 전도혁! 감사합니다!”

도혁을 시작으로 다른 병사들 역시 확인 작업을 마쳤다.

그 결과.

“좋아, 전원 통과! 다음 2조!”

무난한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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