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96화
제24장. 진급시험(3)
2생활관으로 집합한 22명의 진급 시험 대상자들.
그 한가운데에 마주 선 임시 조교, 강철남이 병사들에게 프린트물을 배포했다.
“방금 내가 나눠준 건 다음 주 병기본 필기시험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 10개다.”
“이게 정말로 나온다는 겁니까?”
“확률은 높다. 적어도 90% 이상!”
“……!”
비정상적으로 높은 확률 수치에 병사들이 입을 쩍 벌렸다.
소진언이 남겨준 족보는 지금까지 출제되었던 기출문제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했다. 덕분에 분량도 꽤 된다.
그러나 강철남이 건네준 프린트믈은 고작해야 딱 한 페이지.
게다가 필기시험 문제가 총 10개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다시 말해서 그가 나눠준 예시안이 곧 시험 문제임을 뜻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질문 있습니다.”
정성태가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구했다.
“말해보도록.”
“강철남 병장님은…….”
“조교라고 불러라.”
“죄, 죄송합니다. 조교님께선 어떤 근거로 이 예시안을 고르신 겁니까?”
“감이다.”
“감…… 입니까?”
과학적인 근거가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들은 대답은 그것과 전혀 상반되었다.
“그래, 남자의 감. 아니, 진급의 신의 감이다!”
“이거, 믿어도 되는 겁니까?”
성태의 뒤를 이어 병철 역시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강철남의 태도는 확고했다.
“잘 들어라. 어차피 병기본 출제는 거기서 거기다. 매번 나왔던 문제만 반복되어 나오지. 왜인지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잘…….”
“이번에 진급 시험 측정을 담당하게 된 인사 장교님이 엄청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본부 포대의 인사 장교가 새로 내정되었다.
그것도 2개월 전. 매우 최근에 있는 일이다.
“진급 시험 합격 팁을 알려주자면, 측정하러 오는 간부가 어떤 성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인지 분석하면 된다. 우리 행보관님처럼 철저한 FM 타입이면 진급 시험 자체가 매우 빡세지고, 그렇지 않은 AM 타입이라면 진급 시험을 안 봤는데도 저절로 진급하는 일도 허다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거다.”
강철남이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진급 시험은 운이다! 운 좋은 놈이, 그리고 운 나쁜 놈이 각각 시험에 합격하거나 떨어지는 거다! 아까도 말했지만, 운이 좋으면 시험 안 봤는데도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합격할 때가 있고, 그 반대면 개 같이 노력했는데도 떨어지는 게 비일비재! 그게 바로 군대다!”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하기야. 진급 시험 제도가 도입되긴 했지만, 합격 기준은 부대의 재량에 맡기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 때문에 상황에 따라 진급 시험 합격 기준이 매번 바뀌었다.
이번 달에 보는 진급 합격 기준은 평균 그 자체. 그러나 인사 장교의 성격이 게으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번 필기시험 문제는 다음 달이랑 똑같이 나올 거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100% 동일하게 출제될 거니까 그것만 외우면 된다.”
10문제 중 7문제만 맞추면 된다. 그러면 필기는 합격.
물론 특급이 되려면 만점을 받아야 하지만, 이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합격일 뿐이지, 특급을 노리는 사람까진 없었다.
아니, 딱 한 명 있었다.
‘특급이라…….’
전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A급 병사가 되어라. 필두가 도혁에게 내린 미션이었다.
특급 자격을 미리 따놓으면, 당분간 필두가 도혁을 터치하는 일은 없을 터.
그 생각이 도혁을 의욕적으로 만들었다.
‘이 종이만 있으면, 필기는 무조건 만점이다!’
도혁은 강철남을 믿기로 했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다! 군 생활 그 까짓것 도박 한번 걸어볼 수도 있지 않은가!
“여하튼 이것으로 병기본 필기 부분은 끝내겠다. 틈날 때마다 그것만 외워둬라. 그러면 너희는 적어도 필기는 합격할 거다.”
설명하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초스피드로 필기 과정을 끝내버렸다.
이것이 바로 강철남의 속성 단기 과정!
그의 필살 전략에 병사들은 전율을 느꼈다.
* * *
사격 부분에선 철남이 딱히 태클을 걸 만한 부분은 없었다.
22명의 진급 대상자들 모두가 다 사격 실력이 나쁘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병장 진급 시험 대상자는 20발 중 16발 이상을 맞춰야 하며, 일병과 상병 진급자들은 14발 이상만 맞추면 된다.
그간의 사격 성적을 쭉 훑어봐도 이들의 사격 실력은 평균 15~16발이었다.
설사 사격 실력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연습을 시키기에도 좀 그랬다.
그렇다고 병사들에게 PRI를 시킬 수도 없지 않은가. 설령 PRI 훈련을 시킨다 하더라도 그게 사격 성적에 반영된다고는 보지 않았다.
화생방 훈련도 이와 비슷했다.
“방독면을 9초 안에, 보호두건은 12초 안에 쓰면 된다. 참고로 이건 진급 시험 볼 때 꽤 실수 많이 하는 부분인데…… 도혁아.”
“일병 전도혁.”
“네가 스타트 신호 좀 줘라.”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 앞에 서서 바로 자세를 잡은 강철남.
허리춤에 있는 방독면 주머니 쪽으로 시선이 모였다.
“지금부터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여줄 테니 잘 보고 눈에 새기도록.”
“예!”
“그럼…….”
강철남이 눈치를 주자, 도혁이 바로 외쳤다.
“가스!”
상황이 부여되기 무섭게 강철남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방독면 주머니의 똑딱이 단추 세 개를 후두둑! 소리가 나게끔 거칠게 뜯었다.
이윽고 손을 집어넣어 바로 방독면을 꺼내 안면에 착용했다.
그때까지 걸린 시간, 6초 34.
하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정화통에 손을 가져가 ‘씁하, 씁하, 씁하’ 하는 동작을 세 번 반복했다.
정화통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안 하는지를 체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여기까지 도달했을 때, 강철남이 수평으로 양손을 뻗었다.
뒤이어 엄지 척 손동작을 만든 뒤 자신의 머리를 향해 팔을 안쪽으로 구부렸다.
“가스, 가스, 가스!”
“오……!”
탄식과 함께 병사들이 절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도합 7초 53.
상당히 빠른 시간이었다.
“마지막에 내가 외친 이 ‘가스’ 3번 외치는 걸 절대로 까먹지 마라. 이게 핵심 포인트다! 이거 안 해서 떨어진 놈이 실제로 몇몇 있어!”
그중 한 명인 윤병철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다시 방독면을 벗은 강철남이 브리핑에 나섰다.
“여기까지가 약식. 아마 본 시험은 보호 두건까지 착용할 거다. 그때는 난이도가 더 올라간다. 특히 보호두건 끈을 겨드랑이 밑에 끼는 동작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가끔 방독면을 꺼냈는데, 끈이 엉켜서 끈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때가 있으니까. 그것만 주의하면 된다.”
“예!”
“그리고 이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인사 장교님 대신 화학 장교님이 대신 올지도 모른다. 그때, 총을 든 상태에서 상황 부여할지도 모르니 그때는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총까지 포함하면 난이도가 급속도로 올라간다.
화생방 상황이 부여되었을 때, 훈련 물자라든지 장비는 무조건 지면에 닿으면 안 된다. 총을 든 상태에서 방독면을 착용할 때에도 총은 다리 사이에 껴두거나 아니면 앉은 채로 허벅지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동에 엄청난 제약이 걸린다.
“강철남 병장님!”
또다시 손을 번쩍 드는 정성태였다. 그러나 철남의 대답은 냉담했다.
“어허! 조교라고 부르랬지!”
“죄송합니다, 조교님!”
“그래. 할 말이 뭐냐.”
오늘따라 매우 적극적인 정성태의 교육 태도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만약 화학 장교님이 와서 보호두건에 총까지 다 들고 하라고 할 경우, 그때도 팁이 있습니까?”
“없다. 그냥 인사 장교님이 오시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다. 하루 전날에 물 떠놓고 기도해.”
“…….”
강철남이 선사하는 교육의 핵심 포인트는 바로 천명(天命)이다.
좋게 말하면 그렇지만,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운이 좋기만을 바라라는 거였다.
“자, 다음으로 넘어간다.”
드디어 진급 시험의 최종 보스라 불리는 체력 테스트가 남았다!
* * *
병사들을 데리고 대대 연병장으로 나온 강철남이 여전히 빨간 모자를 쓴 채로 외쳤다.
“오늘부터 진급 시험 이틀 전까지 하루에 3㎞ 뛴다! 목표는 전원 13분 안쪽으로! 실시!”
“시, 실시!”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이 시작됐다.
아니, 사실 그렇게 힘든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진급 시험에서 보는 체력 테스트의 합격점 기준은 병장 진급 기준 13분 30초, 상병과 일병 기준은 14분이었기 때문이다.
거리도 3㎞로 동일하다.
물론 최소 시간이며, 이 안에 들어와야 합격한다는 뜻이다.
특급 기준은 12분. 애초에 도혁은 합격보다 특급을 노리고 있었기에 좀 더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병사들의 훈련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필두가 대대 연병장을 찾았다.
그를 보자마자 강철남이 곧장 예를 표했다.
“충성!”
“애들 훈련은 잘되어가고 있나.”
“아직 갈 길이 먼 거 같습니다.”
“합격 비율은?”
“한번 진급 누락됐던 4인방 말고는 웬만하면 다 합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역시 그렇군.”
체력 테스트 부분이 상당히 취약했다.
윗몸일으키기라든지 팔굽혀펴기는 그래도 그럭저럭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오래달리기가 이들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3㎞. 결코 적은 거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제한 시간까지 걸려 있으니, 이들에겐 큰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도혁이는 어떠냐.”
“전도혁 일병 말입니까?”
“그래.”
“도혁이가 가장 열심히 합니다. 성적도 가장 좋습니다.”
“그렇군.”
도혁도 필사적일 것이다.
한때 필두에게 제대로 혼쭐이 났었으니까.
그래도 필두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나름 만족했다.
“다음 주까지 네가 힘 좀 써줘라.”
“예,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가마.”
어차피 응원차 방문했기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필두가 계속 이 자리에 남아 병사들 훈련하는 장면을 지켜보면 그들에게 부담감만 더 가중시킬 뿐이었다.
그것을 잘 알기에 선뜻 자리를 비켜줬다.
게다가 간부로서 해야 할 일도 있었다.
‘화학 장교한테 먼저 가볼까.’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
* * *
인사과를 방문한 필두가 화학 장교를 찾았다.
본부 포대에 들렸는데, 인사과에 볼일이 있어서 이곳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필두를 보자마자 화학 장교와 인사 장교가 동시에 일어섰다.
“충성! 행보관님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잠시 화학 장교님한테 볼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 말입니까?”
“예.”
타 포대 행보관이 그를 찾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따라오라는데 싫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좀 그랬다.
필두를 따라 도착한 곳은 인사과 근처에 마련된 야외 흡연실.
“이거, 선물로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선물이라니. 갑자기 왜…….”
“저번에 화생방 관련해서 타 부대 파견 나갔을 때, 저희 화생병 잘 챙겨줬다고 들어서요. 이거, 토종꿀입니다. 남자 몸에 좋다고 하더군요. 자그마한 보답이니 받아주셨으면 좋겠군요.”
“하하, 이거 참…… 병사 챙기는 거야 간부로서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싫은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필두의 친절을 받아주기로 한 모양인지 그가 들고 온 작은 종이 가방을 건네받았다.
그 순간, 필두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희미하게 위로 올라갔다.
‘일단 한 명 처리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