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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91화 (91/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91화

제22장. 불편한 손님(3)

“이 맛은……!”

“왜, 왜 그러십니까? 장관님?”

“입맛에 안 맞으십니까?”

갑작스러운 장관의 반응에 간부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 후추가 잘못된 건 아닐까.

그런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나 장관의 입에서 새어나온 소감은 이들이 걱정하던 것과 다른 부류였다.

“그때 그 맛이야!”

“……?”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간부들의 이목이 장관에게 집중되었다.

뜬금없이 후추를 넣은 국을 맛보더니 이상한 말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관에게는 이상한 게 아닌, 그리움을 담은 맛이었다.

“내가 소위 시절 때 먹었던 그 짬맛 그대로군! 이럴 수가. 어떻게 그 맛이 구현됐지?”

장관이 본의 아니게 필두를 닦달했다.

그러나 필두는 담담하게 답할 뿐이었다.

“전 그저 후추를 넣으면 더 맛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추천드린 것뿐입니다. 장관님이 기억하시는 그리움의 맛이 어떤지, 저는 사실 잘 모릅니다.”

우연의 일치라는 소리였다.

하나 그래도 장관의 기분은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취사병!”

“일병 이성호!”

“병장 김태석!”

“지금 당장 이 국, 레시피 적어서 오게!”

“예, 알겠습니다!”

장관이 직접 명령했다. 그런데 어찌 감히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나.

덧붙여 장관의 시선이 필두가 건네준 후추 병으로 향했다.

“이거, 내가 가져가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이거 참. 설마 여기서 그 짬맛을 찾게 될 줄이야. 정말 9090대대가 나한테 복덩이군! 안 그런가!”

장관의 물음에 간부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게 다 장관님의 은덕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하!”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간부들 또한 함박웃음을 이어갔다.

한편.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진수가 장관의 손에 들려 있는 후추 병을 예의주시했다.

‘드리무어. 마법을 썼군.’

후추 병 주변에 감도는 마나의 기운. 그것을 진수가 놓칠 리 없었다.

일종의 최면이었다. 필두의 말대로 장관이 기억하는 그 짬밥 맛은 본인밖에 알지 못했다. 제아무리 필두라 하더라도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과거의 맛을 재현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필두는 후추라는 조미료를 이용해 최면 마법을 걸었다.

장관의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그 맛을 느끼게끔 착각하도록 했다.

실제로 짬밥 맛은 변함없었다.

일종의 사기극이었다. 그래도 필두는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진수도 딱히 필두의 행동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장관을 암살하기 위한 목적도 아니고, 그의 추억을 되살리는 데에 그쳤으니 굳이 그를 방해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9090대대 제1포대에 소속된 이등병으로서 장관이 기분 좋게 돌아가는 건 본인에게도 큰 손해는 아니었다. 오히려 득이라고 보는 게 좋았다.

부대 분위기가 좋으면 군 생활이 편해진다. 진수도 이제 그걸 깨달았다.

‘나도 점점 이 세계 군인이 다 되어가는군.’

적응했다는 건 나쁜 소식이 아니지만, 뭐랄까. 이 씁쓸함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 * *

제1포대 부대를 방문한 장관의 얼굴에 만연의 미소가 번졌다.

“오! 부대 관리를 굉장히 잘했나 보군!”

장관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가 부대를 방문할 때마다 그곳은 전쟁터가 된다는 사실을.

대청소에 대청소에 대청소를 거듭하고 나서야 겨우 국방부 장관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9090대대의 경우에는 준비할 시간이 현저히 부족했다.

그럼에도 수준급의 부대관리 상태를 보여줬다.

막사 주변에 먼지, 거미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새로 건물을 지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무장공비를 생포한 것도 칭찬받을 만한 일인데, 더불어 부대 관리까지 잘해냈다. 이러니 첫 만남에도 필두가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병사들이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병사들의 눈빛에도 강한 생기가 느껴졌다.

흡족스러운 미소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국방부 장관.

“지금까지 내가 본 부대 중에서 가장 완벽한 곳이군.”

“감사합니다!”

대대장이 목청을 높였다.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몇 번을 반복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막사 바깥을 나와 상황실, 탄약고 초소까지 순방을 마친 장관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제1포대라…… 다른 부대도 이곳을 본받았으면 좋겠군.”

장관의 한 마디에 사단장과 연대장, 대대장과 포대장의 얼굴에 격한 기쁨이 묻어나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연신 9090대대 칭찬만 입에 담은 국방부 장관. 그의 곁에서 수십 년간 같이 일해온 자들도 이렇게까지 칭찬의 말을 거론하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역대 급으로 장관에게 후한 평가를 받은 부대가 아닐까 싶었다.

제1포대에서 받은 좋은 인상이 끝까지 이어진 덕분일까.

위병소를 나서는 순간에도 국방부 장관은 대대장과 연대장에게 좋은 말을 끊임없이 들려줬다.

“내가 지금까지 봤던 부대 중 최고였어. 앞으로도 계속 이대로만 해주게나.”

“예! 알겠습니다!”

국방부 장관이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올해의 우수 부대는 굳이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렇게 폭풍과도 같았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행정반으로 돌아온 필두가 자신의 목을 가볍게 두드렸다.

어제저녁. 당직사관으로 밤을 새운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마음 같아선 바로 퇴근한 뒤에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포대장이 잠시 그를 붙잡았다.

“조만간 행보관님 특진 공문 내려올 거라 합니다. 이번 달 안으로 결정될 거 같으니 기대하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포대장님. 저만 이렇게 특진 특혜를 받아서…….”

“아닙니다! 행보관님께서 세우신 공 아니겠습니까! 보상도 행보관님이 받으셔야 하는 게 정당합니다.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필두 덕분에 9090대대 제1포대 이미지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포대장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행보관님 덕분에 정말 매번 살 맛 납니다! 매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다 포대장님 인덕이죠.”

끝까지 겸손함을 유지하는 필두.

어차피 그가 굳이 티 안 내도 이미 모두가 다 필두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는 9090대대의 상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 * *

국방부 장관이 떠난 이후.

오후 4시가 되었을 때, 각 포대 포대장과 행보관들이 대대장실로 모여들었다.

기나긴 한숨을 내쉰 대대장이 의자에 몸을 묻었다.

얼굴에는 피곤함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심신이 지쳤을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 왔던 어느 훈련이 오늘처럼 더 빡셌을까.

그래도 결과가 좋았으니 대대장으로선 대만족이었다.

마주앉은 포대장, 행보관들에게 대대장이 만족하는 미소를 선보였다.

특히나 그의 시선은 알파 포대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행보관님 덕분에 오늘 하루, 정말 무사히 보낸 거 같습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전 그저 평소 하던 대로 했을 뿐입니다.”

“하하하! 행보관님은 정말 지나칠 정도로 겸손하신 거 같습니다. 아무튼, 조만간 특진 공문 내려올 테니 그때 되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원사로 특진!

이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게다가 국방부 장관이 그에게 별도의 포상을 주기로 했으니, 기대감이 절로 상승했다.

포상을 받게 된 건 간부들뿐만이 아니었다.

병사들 역시 표창장과 포상휴가로 보상을 받았다.

“조만간 삼겹살 회식이라도 추진해야겠군요.”

주임원사의 말에 대대장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래야죠! 그리고 포대장들은 장관님께서 특별 명령으로 다음 주에 한해서 병력들 휴식 보장하라고 했으니 무리한 작업 같은 거 시키지 말고 편히 쉬게 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혹한기에 이어 무장공비 침투 사건까지.

거기에 더해 국방부 장관이 부대에 방문도 했다. 피로도가 정점을 찍었을 터.

이제는 쉬게 해줄 때도 되었다.

국방부 장관의 별도 명령이 없었다 하더라도 안 그래도 대대장은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 주려 했었다. 그간 이들이 보여준 성과가 어마어마한데, 쉬지도 못하게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은가.

특히나 제1포대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좀 그러니까. 자네들도 이만 들어가서 쉬게. 어제,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

“예! 들어가 보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대대장님!”

“충성!”

대대장에게 거수경례를 한 뒤, 바깥으로 나온 포대장들이 일제히 알파 포대장에게 다가왔다.

“이번에 정말 고생했다. 네 덕분에 살았어.”

“제1포대도 이제 무시 못 하겠네. 하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타 포대의 포대장들한테조차도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 알파 포대장의 기분은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그러나 포대장들과 다르게 고정현 상사는 끝까지 필두를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렇다고 한들 딱히 필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잘 보여야 할 대상은 상관이지, 동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대장과의 만남을 마친 이후에 다시 제1포대로 돌아온 포대장과 필두.

두 사람이 행정반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간부들이 자리에서 일어서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음? 아직 퇴근들 안 했나.”

“예. 포대장님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까진 없었는데. 하여튼 대대장님도 매우 만족하신 거 같으니 걱정 안 해도 되네.”

포대장의 말에 간부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포대장님 말씀대로 퇴근준비 합시다.”

통신반장이 나서서 퇴근 준비를 주도했다.

그 와중에 삼포 반장은 이들과 행보를 달리했다.

“당직아.”

“상병 윤호상.”

“내 완장 어딨냐?”

“여기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필두가 삼포반장에 물었다.

“오늘 당직이냐.”

“예.”

“됐다. 당직은 내가 설 테니까 넌 들어가서 쉬어라.”

“……?”

순간 삼포 반장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얼굴을 했다.

그러나 필두의 태도는 확고했다.

“너, 오대기 소대장까지 했는데 제대로 쉬지도 못 했잖냐.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가서 쉬어라. 오대기 소대장은 하나포 반장에게 맡겨두고.”

“그래도…… 행보관님, 어제도 당직 서시지 않았습니까?”

“괜찮다. 잠은 당직 서면서 충분히 자뒀으니까.”

그래 봤자 2시간이 채 안 됐다.

다른 간부들도 필두의 2연속 당직에 걱정을 표명했지만, 그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지 완고하게 굴었다.

“어허.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 안 하나.”

“…….”

“…….”

눈치를 보던 부사관들이 마지못해 퇴근했다.

거의 마지막으로 행정반을 나서는 포대장이 필두에게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식의 말을 남겼다.

이후, 하나포 반장을 비롯해 당직 두 명과 행정반에 남게 된 필두는 익숙한 듯 당직사관 완장을 찼다.

병사들 못지않게 간부들 역시 피곤에 찌든 상태였다.

이들이 제때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면 오히려 필두에게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그것을 우려해 일부러 이들을 퇴근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가 당직을 자처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당직.”

“상병 윤호상!”

벌써 두 번째로 호명된 당직이 곧장 필두의 부름에 응답했다.

베레모를 착용한 필두가 특정 병사의 이름을 거론했다.

“진언이 행정반으로 오라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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