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90화 (90/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90화

제22장. 불편한 손님(2)

하루 만에 말끔해진 부대 모습에 포대장도, 그리고 소문 듣고 찾아온 대대장과 다른 간부들도 두 눈을 의심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여…….”

“세상에 참 오래살고 볼 일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봐도 신기했다.

청소 업체가 온 것도 아닌데, 막사 주변에 먼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니, 설령 전문 업체에게 맡겼다 하더라도 이 정도 퀄리티는 나올 수 없었다.

그럼에도 유독 9090대대 내에서도 제1포대만 번쩍번쩍했다.

마치 새 건물처럼!

“행보관님. 정말 위생검사만 하신 겁니까?

포대장이 혹시나 해서 추가로 질문했다.

“위생검사 하다가 좀 더러운 부분 보이면 살짝 손만 대서 청소만 했습니다.”

“허허…….”

이번 사건 덕분에 필두는 본의 아니게 새로운 별명 하나를 얻었다.

청소의 신, 강필두!

본의 아니게 또 하나의 전설을 세우게 되었다.

* * *

제1포대의 선전 덕분일까. 본의 아니게 다른 포대도 졸지에 청소 타임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나 제2포대의 열성이 대단했다.

“알파보다 무조건 깨끗하게 해라! 알겠냐!”

“아, 알겠습니다!”

고정현 상사의 목소리가 늦은 밤까지 들려왔다.

필두에게 지고는 못사는 성격다웠다.

그래도 취침 시간 넘어서까지 병사들을 굴릴 순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9시가 되고 나서야 그치게 되었다.

한편. 당직사관을 맡게 된 필두는 그저 여유로웠다.

청소는 일단 말끔히 마친 상태였다. 대대장이 와서 칭찬할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걱정은 무의미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국방부 장관이란 말이지…….’

대한민국 군대를 좌지우지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가 내일, 이곳을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국방부 장관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다수의 기자들 역시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장관이 와서 직접 상을 부여할 예정이었으나, 오히려 그게 필두의 발목을 붙잡았다.

‘가급적이면 눈에 튀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했건만.’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애초에 그는 철저하게 뒤에서 움직이는 포지션을 고집해 왔다. 그를 쫓는 자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지, 어떻게 보면 의미 없는 행동일지도.’

지금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숨기려 노력했던 필두였으나, 그를 추격하는 추격대와 하르만 학살 사건의 주범인 흑마법사 조직에게 이미 정체가 들켜버리고 말았다.

이미 발각 난 이상, 더 이상 흑막으로서 움직이는 건 사실상 자기만족에 불과했다.

세상사 어쩔 수 없는 일도 발생하는 법.

지금이 딱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었다.

* * *

다음 날 오전.

이른 아침부터 9090대대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국방부 장관이 오기로 예정된 시간은 오전 11시. 그때 상 수여식과 더불어 기자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주고받을 예정이었다.

참가 인원은 필두와 알파포대 포대장, 그리고 대대장과 제1포대 오대기 소대원들.

그 때문에 병사와 간부들은 대대장의 진두지휘 아래에 상 수여식 연습에 박차를 가해야 했다.

‘하, 이럴 거면 그냥 상 안 받는 게 훨씬 더 좋은데!’

‘힘들어 뒈지겠네!’

병사들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한편, 먼발치에서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소진언이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전역 앞두고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구나. 세상에 무장공비도 잡아보고.”

“소진언 병장님이 잡은 거 아니지 않습니까. 실제상황 벌어졌을 때 불평불만만 엄청 쏟으셨던 분이.”

김조항의 날카로운 태클이었다. 이제 유효기간 만 하루밖에 남지 않은 병장모를 고쳐 쓴 소진언이 헛기침을 했다.

“어험! 공을 세운 건 나나 너 같은 개개인이 아니라 우리 아니냐. 제1포대가 잡은 거지. 안 그래?”

“말은 잘하십니다.”

“이 녀석이. 이제 갈 사람이라고 막말하네.”

내일이면 소진언은 예정대로 전역일을 맞이하게 된다.

본래 간첩 때문에 전역일이 뒤로 미뤄지는 건 아닐까 싶은 걱정도 들었지만, 필두의 대활약으로 인해 연기 없이 전역하게 되었다.

졸지에 필두에게 크나큰 은혜를 입은 셈이었다.

따로 감사는 표하지 않았다. 필두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그가 지금 너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중요한 건 국방부 장관과 기자들의 방문이었다. 어찌 보면 무장공비 침투 사건보다 더 큰일이었다.

전 병력을 동원해 9090대대 꽃단장 작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10시 반경. 드디어 국방부 장관을 태운 차량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미 수많은 기자가 와서 대기 상태에 돌입했다.

취재 열기 역시 후끈 달아오른 상태였다.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화자가 되고 있었었다. 대통령조차도 직접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언급할 정도였으니, 국방부 장관이 9090대대 부대를 직접 방문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해가 됐다.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대대장과 포대장, 그리고 연대장과 사단장이 연달아 줄줄이 경례했다.

“충! 성!”

“충성!”

국방부 장관이 이들의 거수경례를 받아줬다.

사단장부터 시작해 한 명 한 명씩 악수를 할 때마다 관등성명을 댔다.

마치 이등병이 중대장을 대하는 듯한 그런 모습과 흡사했다.

“이쪽입니다.”

“음.”

연대장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옮기는 국방부 장관.

TV와 인터넷 채널 등 각종 미디어 매체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었다.

애국가를 필두로 식순에 들어가자, 대대장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이럴 줄 알았다면 화, 화장실이라도 다녀올 걸 그랬습니다.”

“하하,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세요, 포대장님.”

필두가 포대장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줬다.

얼마나 긴장될까. 행여나 실수라도 하는 순간, 군 생활이 끝날 수도 있었다. 취지는 상을 받는 거였지만, 왠지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반면, 필두는 그렇게까지 큰 긴장이 들지 않았다. 이보다 더 큰 무대에도 수십 번 서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장공비를 생포해서 상을 받는 자리 아닌가. 잘못해서 국방부 장관 앞에 호출당한 것도 아니고, 칭찬을 받기 위해 마련된 무대였기에 오히려 당당함을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진수도 마찬가지였다.

‘군대란 곳은 보여주기식이 너무 많군.’

이등병임에도 이미 대한민국 군대가 어떠한 것들을 좋아하는지 파악하기를 완료했다.

레디너스 대륙에 존재하는 군대는 보여주기보다 실속을 위주로 삼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실제로 목숨이 걸려 있었으니까.

그래서 사실 이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영 적응이 되질 않았다.

앞선 식순들이 끝나고 난 이후, 드디어 상을 수여하는 차례가 돌아왔다.

9090대대를 대표해서 상을 받게 된 대대장이 감개무량한 얼굴로 장관 앞에 섰다.

“앞으로도 자네들의 활약을 기대하겠네. 고생 많았어!”

“중령 윤민식!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우렁찬 대대장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 있었을까?

목이 터져라, 외치는 대대장을 따라 포대장도, 오대기 소대장이었던 삼포 반장도 있는 힘을 다해 관등성명을 댔다.

필두 앞에 마주 선 장관이 손을 내밀었다.

“일화 잘 들었네. 자네가 직접 무장공비들을 생포했다고 말이야.”

“상사 강필두. 군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듣자 하니 자네 평가가 매우 좋더군! 내 특별히 아래에 특진을 고려하게끔 지시를 넣어둘 테니 기대하고 있게나.”

“감사합니다.”

상사에서 1계급 특진하면 바로 원사를 달 수 있게 된다.

원사. 부사관의 정점이라 불리는 계급이다. 모두가 달고 싶어 하는 원사 계급장을 필두는 상당히 젊은 나이에 달지도 몰랐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무장공비를 아무런 피해 없이 두 명이나 생포하지 않았는가. 엄청난 공을 세운 필두에게 1계급 특진의 혜택은 오히려 당연한 보상이었다.

처음에는 불편한 손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국방부 장관.

그러나 점점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필두 한정으로.

* * *

장관 일행이 향한 다음 목적지는 바로 9090대대 식당.

그것도 간부들이 식사하는 곳도 아닌, 병사 식당에 들어서게 되었다.

국방부 장관이 이곳 9090대대에서 식사를 한다는 말을 처음 접했을 당시, 취사병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가관이었다.

세상이 멸망한 듯한 그런 표정. 이 표현이 딱 어울렸다.

게다가 준비 기간도 너무 짧다! 고작해야 하루 가지고 어떻게 장관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준비한단 말인가!

“하! 미치겠네, 진짜!”

배식을 담당하게 된 취사병 하나가 머리를 박박 긁어댔다.

그의 역할은 국방부 장관의 식판에 음식을 배식하는 일.

미칠 노릇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을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긴다고 하는데, 심리적인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자칫 잘못했다가 영창이라도 가게 되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킬 무렵, 드디어 장관 일행이 병사 식당을 방문했다.

후다닥. 선두에 선 대대장이 가장 깨끗해 보이는 식판을 골라 그에게 바쳤다.

“여기 있습니다, 장관님.”

“이 식판도 참 오랜만이군.”

현 국방부 장관도 장교 생활을 거쳐 장관의 자리까지 올라온 남자였다. 소위 시절 때 병사들과 같이 어울려 식사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내가 막 임관했을 때에는 말이야. 간부 식당이 따로 없었네. 독립 부대라 그런지 부대 규모도 작았지.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우리는 하나라는 정신이 강했거든. 물질적으로는 부족해도 정신적으로는 만족스러웠던 시절이었지.”

“장관님에게 있어선 소중한 추억이시군요.”

“그때 먹었던 짬밥 맛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어찌나 그 맛이 그립던지 스스로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그 맛이 구현될 리가 있겠나. 아쉽긴 하지만, 때론 포기를 인정해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니까.”

자신의 추억담을 늘어놓던 장관이 슬슬 걸음을 옮겼다.

취사병이 두 손으로 최대한 정성스럽게 그의 식판 위에 국을 덜어줬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하하, 잘 먹겠네.”

오늘의 식단은 9090대대가 창립된 이후 가장 높은 퀄리티를 자랑했다.

멀찌감치 따로 식사를 취하던 병사들. 그 와중에 소진언이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작게 웃음을 토해냈다.

“취사병 놈들, 평소 이 정도 퀄리티 만들어낼 수 있으면 진작 좀 해주지. 이럴 때만 엄청 신경 쓰네.”

“장관님 오셨으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성태의 말이 맞았다.

장관이 직접 이곳에 와서 밥 먹는다는데 신경을 안 쓴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됐다.

예술 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식단. 그러나 장관에게는 그저 그런 맛이었다.

“그럭저럭 먹을 만하군. 못 먹을 수준은 아니야.”

“…….”

“…….”

무미건조한 그의 반응에 간부들이 잔뜩 긴장했다.

그때, 필두가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장관님. 그 국에는 후추를 뿌려 먹는 게 더 맛있습니다.”

“후추?”

“예. 절 믿고 한번 드셔 보시기 바랍니다.”

용기 있는 그의 행동에 간부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얌전히 후추를 받아든 장관이 필두의 말대로 따랐다.

칙칙.

소량의 후추를 투입한 뒤 국물을 맛봤다.

그 순간!

“……!”

장관의 동공이 급격히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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