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89화
제22장. 불편한 손님(1)
무장공비 2명을 아무런 인명피해 없이 제압하는 데에 성공한 9090대대.
보고를 받은 국방부장관은 처음엔 반신반의했었다.
그러나 직접 확인을 통해 그것이 사실임을 알아차리고 곧장 이런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기자들한테 연락해! 바로 기사 써서 보내라고 하고!”
“예! 알겠습니다!”
장관의 지시에 따라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순식간에 언론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무장공비 2명을 생포하다!
-우리 군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으로 확인.
-무장공비를 잡은 곳은 9090대대 제1포대로 알려져…….
벌써부터 인터넷 기사들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공중파, 케이블을 불문하고 TV에서도 긴급 속보로 무장공비 침투 사건 결과를 언급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채 3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모든 것을 마무리한 9090대대.
난생 처음 국방부 장관과 마주하게 된 대대장은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하나 이것은 다른 의미로 실제상황이었다.
물론 위기의 순간은 다 지나갔지만 말이다.
“고생 많았네, 정말 고생 많았어!”
“아, 아아아닙니다! 그, 그저 군인으로서 해,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국방부장관과 독대한 상태로 이런 말을 들으니 몸 둘 바를 몰랐다.
“듣자 하니 제1포대가 잡았다고 하더군.”
“그, 그렇습니다!”
“세상에. 보병도 아닌 포병 부대가 무장공비를 두 명이나 잡을 줄이야. 게다가 부상자 없이! 허허, 기가 막히는구먼! 참으로 기가 막혀!”
여태껏 이런 성과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장까지 갖춘 간첩들을 피해 없이 잡아낸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가만 있어 보자. 조만간 일정 조절할 터이니 내일이나 내일 모래, 자네 대대에 한 번 방문하겠네.”
“저, 저희 부대 말입니까?”
“그래. 우리 영웅들 얼굴이나 직접 봐야 하지 않겠나!”
장관의 눈빛에 의욕이 가득 깃들여져 있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국방부 장관이다. 대대장 주제에 감히 그에게 오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있겠나?
대대장은 간이 배 바깥으로 튀어나온 그런 남자는 아니었다.
* * *
갑작스레 결정된 국방부 장관의 방문.
덕분에 9090대대는 말 그대로 혼란 그 자체였다.
장관이 온다고 하면 적어도 2주 동안 대청소만 해도 부족할 판국인데, 내일 바로 온다고 하니 패닉에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는데.”
오늘 아침부터 일과 시간이 끝날 때까지 포대장이 자신의 볼을 꼬집은 횟수만 하더라도 두 자리 수에 가까웠다.
포대장뿐만이 아니었다.
전포대장도, 그리고 통제관을 비롯해 부사관들도 혹시 본인들이 악몽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장공비들을 잡은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국방부 장관의 방문이 정해지자마자 병사들을 소집시켜 아침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대청소에만 집중하게끔 했다.
그래도 부족한 면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어떻게 하루 만에 부대를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단 말인가.
“하, 미치겠구먼!”
포대장이 자신의 머리를 박박 긁어댔다.
그렇다고 병사들에게 밤을 새우면서까지 대청소를 시키는 건 무리가 있었다.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벌어진 지 채 삼 일이 지나지 않았다. 혹한기 훈련과 무장공비 사건 때문에 병사와 간부들의 피로가 극도로 쌓여 있는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대청소를 계속 지시하는 것도 염치없는 짓 아니겠는가.
그때,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이가 있었다.
“제가 병사 몇 명 데리고 위생검사 다시 한번 하고 오겠습니다.”
피곤해하는 부사관들과 다르게 필두의 얼굴에는 생기가 감돌았다.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다.
본인이 스스로 하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는 없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행보관님.”
“예. 포대장님은 잠깐 눈이라도 붙이고 계시길. 내일부터 또 피곤해질 테니까요.”
“하하, 그렇죠.”
국방부 장관이 이곳에 들이닥칠 때, 과연 제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을지. 그것조차 의심됐다.
여하튼 지친 간부들을 뒤로하고 생활관에 들어선 필두.
덕분에 생활관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병사들을 쭉 훑어보던 필두가 두 사람의 이름을 거론했다.
“전도혁. 고만해.”
“일병 전도혁!”
“일병 고만해!”
“너희 둘은 나랑 같이 돌아다니면서 위생검사 실시한다. 활동복 입은 채로 바로 나와라.”
“예! 알겠습니다!”
지목 당하자 마자 속으로 욕지거리가 한 사발 튀어나왔다.
‘X발! 하필이면 왜 나야?’
‘오늘 운 한 번 더럽게 없네, 젠장!’
재수도 더럽게 없었다.
그 많고 많은 인력 중에서 하필이면 본인이 걸릴 줄이야.
전도혁이야 어차피 필두에게 찍힌 병사라 하더라도, 만해는 충분히 억울해할 만했다.
어쨌든 필두의 명에 따라 곧장 후다닥 나온 두 병사.
“1생활관 화장실부터 먼저 돈다.”
가장 가까운 곳을 시작으로 각 전포 포상, 상황실, 탄약고 초소까지.
이곳들이 제1포대에게 할당된 구역이었다.
최소한 이 장소들은 필두가 책임지고 청결을 유지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부대관리. 이것이 행보관의 중대한 업무 중 하나였으니까.
“…….”
말없이 1생활관 화장실을 둘러보던 필두가 손으로 대변기 칸들을 지목했다.
“휴지통 확인하고, 똥 휴지 있으면 갔다 버려라.”
“네!”
조금 이상한 명령이었다.
똥 휴지야 어차피 내일 아침에 비우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굳이 지금 이 시간에 비울 필요가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도혁과 만해였으나, 필두가 시킨 일이기에 군말 없이 따르기로 했다.
괜히 토 달아봤자 본인들만 손해인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대변기 사로 휴지통을 비우러 간 사이.
화장실 곳곳을 응시하던 필두가 정신을 집중했다.
마법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뚝, 뚝, 뚝.
세면대에서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물방울들이 점점 필두 앞에 모여들었다.
작은 물 덩어리가 덩치를 부풀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여인의 형상을 갖췄다.
1미터 정도 되는 작은 키의 불투명한 여성의 형상이 필두에게 머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물의 하급 정령, 워티아였다.
-오랜만입니다, 드리무어 님.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신지.
“여기 한번 싹 청소해라. 내 기준, 어떤지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워티아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불투명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녀가 웃는지 우는지 정도는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워티아가 화장실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자, 그녀를 따르는 맑은 물줄기들이 주변을 훑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찌든 때가 자취를 감췄다.
청소가 익숙한 모양인지 능숙한 손놀림으로 화장실 청소를 마쳤다.
이때까지 걸린 시간은 채 1분이 되지 않았다.
-끝났어요.
“어디 한번 볼까.”
드리무어는 꽤 깐깐한 성격이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다른 이들에 비해 기준치를 높게 잡는 필두였기에 조금의 흠집이라도 보이는 즉시 쓴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했다.
하나 이번에는 무사통과였다.
“깔끔하군. 잘했다.”
-별말씀을요.
하나 이것 하나로 끝난 게 아니었다.
앞으로 해야 할 게 더 많았으니까.
“오늘 하루는 네가 고생 좀 해줘야겠다.”
-그게 저의 임무인걸요. 언제든지 명령만 내려주세요, 드리무어 님.
그렇게 필두만의 대청소 작전이 막을 올렸다.
* * *
막사를 빠져나와 분리수거장까지 왔다 갔다 하느라 진땀을 뺀 두 남자.
거리도 제법 있었기에 본의 아니게 유산소 운동을 한 느낌이 들었다.
돌아오던 중에 만해가 불만을 토로했다.
“왜 하필이면 우리 둘이냐.”
“아직도 그 말이냐.”
필두가 휴지통을 비우고 오라고 지시를 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했던 말이었다.
안 그래도 말이 많은 녀석이라서 그런지 듣는 것도 이제는 힘겨울 정도였다.
“그렇게 싫으면 행보관님한테 가서 따지든가.”
“싫다. 내가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목숨이 아홉 개나 있는 것도 아닌데, 뭣 하러 그런 무식한 짓을 하겠냐.”
“대들지도 못할 거면 그냥 닥치고 있어.”
“하! 너, 언제부터 그렇게 순종적인 녀석이 되어버렸냐. 이등병 때 보여주던 그 패기는 어디로 사라졌어.”
“그 녀석, 죽은 지 오래다.”
정확히 말하자면 드리무어와 만나고 난 이후, 관심병사 쇼를 자처하던 전도혁은 그날 이후로 사망했다.
상대가 드리무어라면 그냥 얌전히 머리 숙이고 저자세를 취하는 게 답이었다.
전도혁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이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군말하지 않고 필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1생활관 화장실에 도착한 두 남자.
그러나 필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행보관님, 어디 가셨지?”
“글쎄다.”
이들에게 휴지통 비우고 오라는 말만 해두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황당한 일이었다.
하나 그때, 뒤에서 이들이 찾던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지통 비우고 왔나.”
“일병 전도혁! 예!”
기척 없이 등장한 필두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필두의 이런 등장이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 슬슬 적응해야 했지만, 매번 겪을 때마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고했다. 이제 들어가서 쉬어라.”
“……?”
“잘못…… 들었습니다?”
뜬금없이 들어가서 쉬라니.
이들이 한 거로는 고작해야 대변기 휴지통 비우고 돌아온 것뿐이었다.
청소라고 할 만한 행동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돌아가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정말로 그냥 들어가면 됩니까?”
“그래.”
재차 확인해 봤지만, 이들이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손해는 아니었다. 휴지 한 번 비우고 온 거로 청소를 끝낸다고 하니, 고생도 안 하고 좋지 않은가.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충성!”
두 병사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감정 변화에 필두가 속으로 혀를 찼다.
‘티라도 좀 내지 말든가. 하여튼 녀석들.’
이들이 휴지통을 비우고 왔을 때, 필두는 정령들과 함께 청소를 마치고 돌아왔다.
포상을 비롯해 제1포대 구역으로 지정된 곳을 전부 다 혼자서 해치웠다.
전 병력을 대동해 청소한 것보다 훨씬 더 깔끔한 외형을 갖췄다. 이것이 필두의 힘이었다.
행정반으로 돌아오자 포대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위생검사 다 끝나셨습니까?”
“예. 청소까지 겸사겸사 끝내고 왔습니다.”
“청소까지요?”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나간 지 10분도 안 됐는데 벌써 다 끝내고 오다니.
설마 필두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무렵, 행정반으로 되돌아온 통신반장이 하나포 반장에게 물었다.
“혹시 또 청소했어?”
“안 했습니다. 행보관님이 위생검사 잠깐 하신 것 말고는 없는 걸로 압니다.”
“그래? 이상하네. 올 때 포상하고 막사 주변 잠깐 봤는데, 엄청 깨끗하던데. 지금까지 내가 봤던 막사 중에서 가장 깔끔한 거 같아.”
“에이. 통신반장님이 잘못 보신 거 아닙니까?”
“아니라니까? 한번 와서 봐봐.”
우르르 몰려가는 부사관들.
이윽고 다시 행정반으로 돌아왔을 때, 이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와, 대박입니다! 막사 엄청 깨끗합니다!”
“청소 업체 부른 줄 알았습니다!”
“그, 그래?”
포대장이 멍하니 필두를 바라봤다.
그러나 필두는 그저 말없이 가볍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