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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88화 (88/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88화

제21장. 실제상황(4)

병사들과 간부들의 초점이 흐려졌다.

필두의 마법 때문이었다.

김한과 조승천은 필두가 마법을 걸어 이들을 최면에 빠지게끔 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간이 의자를 가져와 자리에 앉았다.

무릎을 꿇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들과 시선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흠.”

눈을 날카롭게 뜨는 필두. 단지 바라만 볼 뿐이었음에도 두 사람에게 압박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바로 말하지. 누구냐, 너희는.”

“…….”

“…….”

“역시 입을 닫는군.”

필두도 이들이 쉽게 말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애초에 협박에 순종적이었다면 필두와 힘의 차이가 넘사벽으로 난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바로 항복 선언을 했을 것이다.

이들은 훈련이 잘된 병사였다.

9090대대 병사들과는 다르게.

“잊고 있는 거 같아서 미리 말해두지. 너희도 흑마법사라면 잘 알 거다. 정신조작 마법에 대해서.”

“우리한테 그게 통할 거라 생각하나?”

조승천이 호기를 부려봤다.

병사들과 다르게 이들은 흑마법을 다루는 자들이었다. 분명 정신조작 마법을 사용하는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하나 필두의 얼굴에는 걱정이라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스스로 입을 열게 하는 일이야 어려울지도 모르지. 하지만.”

필두의 오른손에 검은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정신파괴는 생각보다 쉬운 쉽더군.”

“……!”

식은땀 한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실토하지 않을 거라면, 여기서 목숨을 앗아가겠다는 뜻이었다.

하기야. 그것이 필두에게 득이었다.

이들은 적이다. 심지어 흑마법을 사용할 줄도 알았다.

가만히 놔둬 봤자 끊임없이 필두에게 시비를 걸어올 게 뻔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들을 제거하는 게 최선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드리무어다. 희대의 악인! 레디너스의 재앙! 온갖 수식어가 붙어 있는 악당에게 선처를 바라는 건 의미 없는 짓이었다.

“죽거나, 아니면 실토하거나. 너희가 선택할 건 둘 중 하나뿐. 제3의 선택지는 없다.”

“…….”

“자, 대답해라.”

강경 높은 협박이었다.

차라리 진수처럼 대한민국 군인으로 차원 이동을 해왔으면 이렇게 필두에게 개 취급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무장공비는 대한민국 군대의 주적. 두 사람을 여기서 죽인다 하더라도 명분은 충분했다.

이들이 탈주를 하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사살하게 되었다는 말을 꾸며내면 그만이었다.

불행하게도 조승천과 김한, 두 사람 역시 이런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이미 북한에 있을 때에 그런 교육을 받았으니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두 남자. 그러나 필두는 확신이 있었다.

조승천은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김한, 이 남자는 자신에게 협력할 것이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충성심보다 이기심이 더 강해 보였다. 필두와 비슷한 향기가 났다.

필두의 예상대로 김한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드리무어한테 협력하는 게 결과적으로도 괜찮을 거 같군.”

“네 녀석, 또 그놈의 결과론을…….”

조승천이 말을 이어갈 때, 필두가 김한의 편을 들어줬다.

“목숨만큼 중요한 게 또 어디 있나. 명예 지킨다고 네 목숨 내놔봤자 후세가 과연 너를 영웅 취급해 줄 거라 생각하나. 악인에게 그런 건 없다. 내 목숨이 가장 중요하고 내 목표가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건 굳이 내가 말 안 해도 잘 알겠지.”

“…….”

더 이상 김한을 설득할 자신이 없어졌다.

애초에 그는 조승천과 너무 상반되었다.

물론 조승천은 조직에 충성한다. 하나 김한은 달랐다.

처음부터 개인의 목적을 이루고자 임시로 이들과 함께할 뿐. 이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좋다, 네가 이겼다.”

결국 조승천이 먼저 항복 선언을 했다.

어차피 본인이 입을 닫고 있어도 김한이 모든 것을 털어놓을 것이다.

이미 이 싸움은 결과가 정해져 있었다.

김한이 좋아하는 결과론이 설마 여기에 적용될 줄이야.

조승천의 입장에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나 이들이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더라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었다.

“거짓을 고하는 순간, 너희의 목숨은 없다. 그리 알아둬라.”

“알고 있어.”

“그럼 우선 첫 번째.”

시간 아까우니 바로바로 이야기를 진행해야 했다.

언제 병력들이 이들을 데려갈지 모르니까.

“너희는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된 거지? 설마 날 잡으러 온 건가.”

“웃기는 질문이군.”

조승천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필두를 매섭게 노려봤다.

“네 녀석 때문이다.”

“내가?”

“그래. 네놈이 차원 이동을 시도할 때, 근처에 있던 우리까지 휘말리게 되었다.”

“불의의 사고로군.”

“글쎄. 과연 그게 정말로 사고일까?”

조승천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김한은 이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정말로 사고에 불과한 일이라고 들었을 뿐.

상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하나 조승천은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럼에도 필두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사고겠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생각하는데.”

“상상력이 풍부한 녀석이군.”

“남이사.”

드리무어 또한 뭔가 숨기는 게 있다.

하나 그걸 눈치챘다 하더라도 어차피 조승천과 김한에게 주도권은 없었다.

이 자리에서 절대적인 갑(甲)은 강필두.

두 남자는 그저 을(乙)에 불과했다.

“두 번째.”

이들에게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은 따로 있었다.

“너희 말고 또 누가 이곳으로 넘어왔지? 총 몇 명인가.”

핵심 질문이었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필두는 두 남자 말고도 다른 이들이 더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구체적인 인원 통계가 필요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적어도 필두가 싸워야 할 존재들이 몇 명인지 알아둬야 하지 않겠나.

망설이는 조승천을 대신해 김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곱이다.”

“일곱?”

“그래.”

“거짓일 경우에는 네 녀석의 목숨은 없는 줄 알아라.”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해봤자 나한테 무슨 득이 있지?”

“하긴, 그렇군.”

일곱 명.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도 전부 다 북한으로 떨어졌나.”

“그것까진 잘 모른다.”

“모른다? 그럼 너희는 서로의 존재를 어떻게 확인했지?”

“원거리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뿐. 직접 접촉한 적은 없었다.”

“레디너스 때에는 같이 행동했었나.”

“물론.”

“흠.”

차원 이동을 강제로 당했을 때, 이들의 위치 역시 여기저기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만날 수 있었을 텐데도 일부러 만나지 않은 건가.’

하기야. 김한만 놓고 봐도 이들의 관계가 어떤지 대략 유추되었다.

조승천처럼 충성스러운 존재가 있지만, 김한처럼 본인의 이득만을 생각해 움직이는 존재도 뒤섞여 있었다. 그래서 보안 차원에서 일부러 직접 대면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연락은 오로지 원거리로만.

‘우두머리가 철두철미하군.’

하나 필두 입장에선 골치 아파졌다.

조승천과 김한 같은 부하들을 잡아 실토하게끔 만들어봤자 우두머리의 흔적을 잡기 어렵게 되고 말았으니까.

“이제 다 끝났나.”

적의 가득한 어투로 묻는 조승천의 한 마디.

하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세 번째.”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난 살기가 풍겨져 나왔다.

“하르만 학살 사건을 알고 있나.”

“모를 리가 있나.”

레디너스 대륙에서도 유명한 사건 중 하나였다.

무고한 민간인들이 자그마치 3천 명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희생당했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나 그 사건은 필두에게 있어서 기억에 남을 만한…… 아니,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이었다.

그의 가족도 희생되었으니까.

“좋아, 질문을 바꾸지.”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조승천과 김한조차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였다.

“하르만 학살 사건을 주도한 자가 누군지 알고 있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아…….”

“너희 우두머리가 주도했나.”

“…….”

“난 예전부터 하르만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던 어느 집단을 추적하고 있었다. 자세히 조사해 보니 일개 조직이 아닌 국가와 정부가 개입했던 대형 사건이었더군.”

그의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멋대로 학살 사건 같은 미친 짓을 벌인 조직. 난 그자들을 찾고 있다. 그리고 레디너스에서 거의 죽음에 몰렸을 때, 나는 그 조직으로 추정되는 놈들의 정체를 알아냈지.”

“그, 그게 누구길래…….”

“복수를 위해서. 나는 그 녀석들도 같이 차원 이동시켰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

“……!”

바보가 아닌 이상, 필두가 수십 년을 바쳐 추적한 복수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이들이 몸을 담고 있는 조직이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었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확신이 드는군.”

“자, 잠깐만! 다른 자들일지도 모르잖아!”

“그, 그래! 결과적으로만 따지지 말고,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결과론 예찬가인 김한조차 자신의 신념을 부정할 정도였다.

하나 복수심에 가득 찬 필두를 막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그 사건을 통해 한 가지 기억하고 있는 게 있다.”

주먹을 꽉 쥔 필두의 손에 엄청난 음기가 서렸다.

“학살 사건을 주도한 자들이 ‘흑마법사’라는 거다.”

* * *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병사들과 하나포 반장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들이 최면에서 풀려났음을 확인한 필두가 현재 상황을 간추렸다.

“저놈들, 피곤해서 그런지 곯아떨어진 거 같다. 깨어날 때까지 조심해서 감시하도록.”

“잔단 말입니까?”

“이 상황에 잠이 오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필두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이들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으니까.

근데 뭐랄까. 자세가 좀 이상했다.

잠이 들었다기보다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기절한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래, 이게.’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쩌랴. 필두의 말대로 별다른 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감시에 집중하는 게 좋았다.

CP텐트 천막을 걷어 올리며 바깥으로 나온 필두.

그러자 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드리무어. 설마 죽이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놈들은 살려둘 거다. 보험용, 그리고 미끼용으로.”

“미끼용?”

“놈들을 구하기 위해 대장이 직접 출격할지도 모르니까.”

“그럴 거라 생각하나.”

“아니, 전혀.”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족을 죽인 범인을 잡을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 것이다.

“놈들에게 각인을 새겨뒀다. 내가 각인을 풀지 않는 이상, 앞으로 녀석들은 절대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거다.”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삶이군.”

진수의 의견이 정확했다.

마법사인데 마법을 쓰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하나 반대로 생각하면, 필두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필두가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였다.

CP텐트를 떠나는 필두에게 진수가 말을 걸었다.

“하르만 사건에서 가족을 잃었었군.”

“몰래 엿듣고 있었나. 염탐은 너답지 않은 행동인 거 같은데.”

“이 상황에서 그게 중요한가.”

“하긴, 그렇지.”

진수에게 경고의 의미를 담아 말했다.

“내 일에 너무 관여하지 마라, 마일더. 그러다가 네놈도 저들처럼 될지도 모르니까.”

“…….”

사라지는 필두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러더니 혼잣말을 작게 내뱉었다.

“고슴도치 같은 녀석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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