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74화
제19장. 말년휴가(1)
체육대회 우승!
매년 꼴찌로 불리며 농락당하던 제1포대가 드디어 대형 사고를 쳤다.
“제가 포대장을 맡은 이후에 우승기를 손에 쥐어보는 건 아마 처음일 겁니다. 하하하!”
포대장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필두의 용병술과 이어달리기에서의 활약 덕분에 제1포대는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1위를 굳건히 지켰다.
물론 진수의 역할도 컸다.
“행보관님은 진수가 축구를 그렇게나 잘한다는 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다시 생각해 봐도 신기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필두는 진수의 정체가 마일더임을 알고 있었다.
그가 10%의 실력만 발휘해도 최소 3인분 이상은 했을 것이다.
그만큼 마일더는 강했다.
덕분에 필두도 레디너스에서 꽤 많은 고생을 했었으니까.
누구보다도 그의 강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관상 보고 알았습니다.”
“관상요? 행보관님. 관상도 보실 수 있습니까?”
“예. 취미로 조금 배워뒀지요.”
“허허, 정말 다재다능하십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참으로 신기한 남자였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존재감이 독보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사고 이후 완전 딴판이 되었다.
사고를 당한 건 물론 안 좋은 일이다. 그러나 포대장은 바뀐 행보관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사고를 당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본인 앞에서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발언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단장님께서 주신다는 특별 선물이 무엇입니까?”
“제가 아직 말씀 안 드렸었군요.”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포대장이 서랍에서 봉투를 꺼냈다.
“4박 5일 포상휴가증 3장입니다. 병사들 고생했으니 휴가 보내라고 하시더라고요.”
“병사들이 좋아하겠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루 이틀짜리도 아니고 4박 5일 포상휴가였다. 이 얼마나 매력적이란 말인가.
“포상휴가는 어떻게 분배하실 겁니까?”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체육대회 한 번으로 포대 전원이 4박 5일 포상휴가를 나가는 건 현실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그래도 3개나 떨어진 게 어디인가.
대대에서 할당한 1박 2일 포상휴가 5개, 그리고 사단에서 준 4박 5일 포상휴가 3개.
포상휴가 풍년이었다.
제1포대는 전포가 6개, 그리고 비전포가 4개로 총 10개 분과로 이뤄져 있었다.
이들에게 하나씩 할당한다 하더라도 두 개 분과가 포상휴가를 받기 못하게 된다.
그건 불공평한 일이었다.
물론 체육대회 참가 인원들이 가장 고생했지만, 뒤에서 서포터해 준 병사들의 몫도 잊어서는 안 된다.
체육대회 우승은 한 명이 만든 결과물이 아니다. 제1포대 모두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필두는 최대한 많은 병사에게 포상휴가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포대장님께서 따로 포상휴가 2개 더 챙겨주시면 10개 분과한테 하나씩은 다 돌아갈 거 같습니다만.”
“그렇군요. 제 재량으로 1박 2일 포상휴가 두 개 정도는 어렵지 않으니까요. 문제는 없을 거 같습니다.”
“3개 분과가 4박 5일, 그리고 나머지 분과가 1박 2일. 이렇게 분배하면 될 거 같습니다.”
“어떻게 고르실 겁니까?”
“이럴 때 가장 공평한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당연한 질문이라는 듯이 명쾌한 해답을 들려주는 필두.
“가위바위보입니다.”
* * *
4박 5일 포상휴가를 할당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운명의 갈림길에 선 10개 분과.
각 분대장들이 행보관실에 모여들었다.
“아까 점호 통해서 너희들한테 알려줬다시피 포상휴가 분배를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했다. 10명이 한꺼번에 가위바위보 하면 복잡할 테니까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해라.”
“…….”
“…….”
“…….”
행보관실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4박 5일과 1박 2일은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1박 2일은 단독으로 사용하지도 못한다. 정기휴가나 포상휴가에 붙여서 가든가 해야 했다.
그러나 4박 5일은 나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일수 차이도 있지만, 이 차이점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가위바위보, 자신 없는데.’
‘완전히 운 싸움이구먼.’
‘어디 보자. 가위바위보 가장 못 하는 녀석이 누구였더라.’
분대장들의 뇌세포들이 벌써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가위바위보 한 방으로 포상휴가가 결정된다!
“가위바위…….”
“보!”
그렇게 시작된 분대장들끼리의 가위바위보.
두 그룹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 하나포와 둘포, 다섯포, 수송, 행정분과가 다시 맞붙게 되었다.
이중 세 분과는 4박 5일, 두 분과는 1박 2일이다.
‘좋아. 집중하자, 집중!’
마인드컨트롤을 하기 시작한 김조항이 양 손바닥으로 뺨을 가볍게 두세 번 쳤다.
확률은 60%!
생각보다 높다!
“가위바위보!”
단 한 판으로 승부가 갈렸다.
주먹이 셋. 가위가 둘.
조항의 오른손은 주먹을 형상하고 있었다.
“아싸!”
“와, 심장 떨려 뒈지는 줄 알았네!”
승리를 거둔 분대장들이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눈앞에서 4박 5일 포상휴가 기회를 놓친 나머지 분대장들은 그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1박 2일이라도 받을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없는 것보다야 나았다.
포상휴가 분배가 끝났으니 이제 결산 회의도 마무리를 지어야 할 터.
그러나 추가로 들려온 필두의 발언에 분대장들의 사고가 정지되었다.
“혹한기 훈련 준비도 슬슬 해야 할 거 같다.”
“아…….”
“…….”
유격과 더불어 훈련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혹한기.
겨울 시즌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혹한기라는 이름의 손님이 병사들에겐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 * *
저녁점호 시간 직전.
분과별 간담회 시간 때 분대원들을 불러 모은 조항이 구석에서 늘어지게 하품하는 진언을 바라봤다.
“소진언 병장님.”
“어? 왜.”
“병장 정기휴가, 언제 쓰실 겁니까? 아직 남으셨지 말입니다.”
“어, 있긴 한데.”
혹한기 때맞춰서 사용하면, 잘하면 훈련을 안 받고 전역할 수도 있었다.
소진언의 전역일자는 혹한기 훈련이 끝나고 난 후 하루 뒤. 얼추 시기도 맞물렸다.
“행보관님도 딱히 소진언 병장님한테 혹한기 훈련받으라는 소리 안 하시니 그때 맞춰서 사용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만.”
“그거야 그렇지. 근데 왜 갑자기 내 휴가 이야기는 왜?”
“4박 5일 포상휴가, 소진언 병장님한테 드리려고 합니다.”
“나한테?”
조항의 결정은 진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꽤 의외였다.
“됐다, 됐어. 너나 쓰든가 아니면 애들 주든가 해. 어차피 난 말년휴가 있으니까 필요 없어.”
“그래도 소진언 병장님, 지금까지 포상 휴가 받은 적도 거의 없지 않습니까. 이번 기회에 4박 5일짜리 붙여서 14박 15일 갔다 오시면 좋겠습니다.”
“…….”
사전에 분대원들끼리 합의를 본 모양인지 후임병들도 군말하지 않았다.
코끝이 찡해졌다.
그러나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짜식들. 고맙다. 내가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소진언 병장님은 평소에도 저희에게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타 분과한테 견제받을 때에도 소진언 병장님이 일일이 다 커버 쳐주시고, 어려운 일 있으면 말년이라고 뺑끼 안 치고 분대원들이랑 같이 합심해서 작업하고. 그것만으로도 크나큰 역할을 해주신 겁니다.”
“그만해라. 괜히 얼굴 빨개지잖냐.”
손사래를 치면서 조항의 말을 끊었다.
군 생활 잘했다.
그런 생각이 진언의 머릿속을 채워갔다.
* * *
말년휴가를 앞둔 마지막 상담.
행보관실 안으로 들어온 진언이 필두가 들어오기 전에 잠깐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도 참…… 분대장 때 엄청 드나들었던 곳인데. 이제는 못 오겠구나.’
요즘은 분대장 지위도 조항에게 넘겨준 덕분에 잘 오지도 않았다.
상담 자체도 오랜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필두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충성. 상담은 오랜만이군.”
“그런 거 같습니다.”
“그래. 말년병장이니까 내무생활 문제라든지 그런 건 없을 테고.”
“하하…….”
있을 수도 있지만, 필두가 알고 있는 제1포대 내무생활 분위기와 소진언이라는 남자의 성격상 문제가 있을 리 없었다.
실제로 필두의 생각대로였다.
“듣자 하니 조항이가 4박 5일 포상휴가, 너한테 줬다고 하던데.”
“예, 그렇습니다.”
“설마 달라고 징징거렸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후임들을 향한 저의 마음씀씀이가 이렇게 보상으로 돌아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쓸모없는 자화자찬도 여전하군.”
그래도 밉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소진언은 자신이 맡은 바 역할에 충실히 해온 병사 중 한 명이었다.
필두도 사실 그가 나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제 진언이 전역한다는 점에 약간의 아쉬움도 느껴졌다.
“휴가는 언제 갈지 정했냐.”
“예.”
“어디 보자. 4일 날에 가겠군.”
혹한기 훈련 일자를 감안한다면 4일에 가야 훈련이 끝나는 날과 휴가 복귀일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진언의 입에서 의외의 발언이 튀어나왔다.
“28일로 잡고 있습니다.”
“28일?”
“네.”
“그때 가면 넌 혹한기 훈련 때 어디 있게. 혼자서 부대에 남아 있겠다고?”
“아닙니다. 저도 훈련받고 싶어서입니다.”
“혹한기 훈련을 자발적으로 받겠다?”
“예, 그렇습니다.”
혹한기는 유격과 더불어 병사들이 가장 기피하고 싶은 훈련으로 손꼽혔다.
그런 훈련을 일부러 받는다?
충분히 뺄 수 있음에도 진언은 꽤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하기야. 가끔 진언 같은 병사들도 예전부터 존재했다.
군대가 좋다기보다는 지금까지 동고동락해 온 병사들과 함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아마 소진언은 혹한기 훈련을 고생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화려한 군 생활의 마무리, 그리고 마지막 추억을 남기기 위한 선택.
필두는 진언의 이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후회하기 없기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진언은 스스로 혹한기 훈련에 참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 * *
혹한기 훈련에 참가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휴가를 쓰긴 해야 했다.
본의 아니게 내일 당장 휴가를 떠나게 된 진언. 빠듯해진 휴가 일정 때문에 혹한기 준비에 참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필두의 배려로 훈련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배려라고 말하기에도 뭣했다.
“일부러 혹한기를 뛰겠다니. 소진언 병장님, 언제부터 그렇게 열정적인 군인이 되신 겁니까?”
내일 휴가를 위해 정신없이 군장을 꾸리는 진언에게 전도혁이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글쎄. 저번 주부터?”
“태도 전환이 너무 늦은 거 아닙니까.”
“너도 말년 되면 내 기분 알 거다. 아, 그리고 보급품 필요한 놈들, 나한테 와라. 어차피 다 버릴 것들이니까.”
진언의 말을 듣자마자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주로 일, 이병급들이 많았다.
“저, 활동복 필요합니다!”
“하계 전투복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투화 남는 거 없습니까?”
“야, 이 녀석들아! 한 명씩 말해! 정신없다!”
베푸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