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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73화 (73/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73화

제18장. 체육대회(5)

심판의 시작 선언과 동시에 마침내 알파 포대와 브라보 포대의 축구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축구에 비교적 관심이 많은 대대장도 이번 경기 관람을 하기 위해 자리를 잡을 정도였다.

‘대대장님이 지켜보고 계신다!’

‘어떻게든 이겨야……!’

주전 멤버로 참가한 양쪽의 포대장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대대장이 보는 앞에서 패배하면 그야말로 자존심 구기는 일이 될 것이다.

게다가 축구 멤버 중에선 양쪽 포대장들이 다 참가를 한 상태였다.

더더욱 질 수 없는 싸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포대장님!”

공을 넘겨받은 알파 포대 포대장. 어설픈 드리블을 이끌며 서서히 적진으로 향했다.

한편, 수비수에서 미드필드로 포지션이 조정된 진수가 그의 뒤를 받쳐주기 시작했다.

이유는 심플했다.

‘어차피 뺏길 거니까.’

지금까지 늘 같은 패턴이었다.

마음 같아선 포대장은 주전 멤버에서 빼고 싶었지만, 포대 최고 간부였기에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는 계급이 깡패니까.

그건 레디너스와의 공통점이었다.

진수도 그걸 잘 알기에 큰 불만을 드러내진 않았다.

물론 볼멘소리를 낸다 하더라도 그의 의견이 반영될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억……!”

역시나 예상대로 금세 공을 빼앗긴 포대장.

아차, 싶었지만, 피지컬이 부족했기에 다시 탈환하는 데에 실패했다.

“브라보, 가자!”

“예!”

공을 빼앗은 브라보 포대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소소한 것 하나하나에 엄청난 반응을 보이는 이들. 그만큼 이번 경기의 중요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뜻했다.

하나 이것을 진수가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

말보다 행동을 먼저 보이기 시작한 진수. 눈 깜짝할 사이에 브라보 포대 공격수 앞으로 돌진했다.

‘왔구나!’

진수의 모습을 응시하던 브라보 포대 공격수가 옆에서 나란히 뛰고 있는 또 다른 공격수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로 의사 교환을 마쳤다.

진수가 다가오자, 공을 점유하고 있던 공격수가 잠시 시간을 끄는가 싶더니 앞서나간 공격수에게 패스를 시도했다.

브라보 포대도 진수의 실력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아 익히 알고 있었다.

녀석은 괴물이다!

어깨에 노란 견장을 달고 다니는 전입 신병이지만, 축구 실력으로 따지면 9090대대 내에서도…… 아니, 사단을 통틀어서 가장 잘하는 남자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평가를 내린 브라보 포대. 결국 한 가지 전략을 내세우게 되었다.

진수와 맞상대하지 말라! 만약, 서로 대치 상황이 된다면 괜히 어쭙잖은 개인기 시도하면서 돌파하려 하지 말고 얌전히 패스해라.

그것이 브라보 포대의 작전이었다.

진수를 최대한 브라보 포대 진영으로 끌어들인 다음에 패스로 공을 깊숙이 찔러주고, 진수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 골을 넣는다.

완벽한 작전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이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진수의 피지컬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었다.

“읏차.”

오른발을 뻗어 패스를 사전에 차단했다.

“이런!”

진수는 공을 보고 플레이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고 플레이했다.

그래서 그가 돌파를 시도할지, 패스를 할지 미리 점칠 수 있었다.

공을 가로채자마자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졌다.

‘우선 한 골 넣고 시작해 볼까.’

거침없이 상대 골문을 향해 진격했다. 살기마저 뿜어져 나오는 그 기세에 선수들조차 움찔할 정도였다.

“마, 막아!”

브라보 포대장이 다급히 외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수비수들이 진수 앞을 가로막았다.

수비수 4명 중 3명이 그를 막기 위해 뭉쳤다. 돌파는 거의 무의미하다고 보는 편이 좋았다.

그러나 그건 평범한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일이었다.

상대 수비 선수들을 예의주시하던 진수가 공을 위쪽으로 튕겼다.

이윽고 진수 역시 크게 도약했다.

“세상에!”

수비수들을 그대로 점프해 뛰어넘은 진수가 다시 드리블을 이어나갔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니, 선수들뿐만 아니라 관중조차 어안이 벙벙해질 지경이었다.

골키퍼와 1대 1 상황.

진수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빠아악!

축구공을 찼는데, 왠지 모르게 둔탁한 소리가 났다.

추진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슈우우우우우웅!

공기를 가르며 날아드는 축구공. 순간 브라보 포대 골키퍼는 자신이 막아야 하는 게 공인지 아니면 포탄인지조차 헷갈릴 정도였다.

손을 뻗었지만 이미 공은 골망을 갈랐다.

“고, 골!”

심판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경기가 시작된 지 채 2분도 안 돼서 등장한 선취점.

그것도 축구 최강, 브라보 포대를 상대로 얻은 1점이었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그러나 진수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조금 기대했건만, 별반 차이가 없군.’

이 재미없는 경기가 빨리 끝나기를.

진수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이런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 * *

축구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진수 덕분에 알파 포대는 전반전에 자그마치 7골을 기록하게 되었다.

브라보 포대는 1골조차 넣지 못했다.

후반전을 대비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선수들.

그러는 와중에 통제관이 필두에게 다가왔다.

“행보관님. 축구 결승전 끝나고 이어달리기 바로 시작한다고 하니 준비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렇군. 알았다. 곳 가마.”

“근데 연습 안 하셨는데,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괜찮다. 괜한 걱정 할 필요 없다. 내 역할은 충분히 잘해낼 자신 있으니까.”

필두의 체력은 이미 제1포대 내에선 꽤 유명했다.

그러나 체력과 달리기 실력은 별개가 아니겠는가.

제아무리 필두라 하더라도 젊은 병사, 부사관들을 상대로 이어달리기를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시작된 축구 결승전.

후반전 역시 제1포대가 유리하게 끌어갔다.

이미 제2포대 선수들은 패배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볼 필요도 없겠군.’

필두는 일찌감치 승부를 점쳤다.

특명, 황진수를 막아라! 작전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진수는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들 만큼 뛰어난 피지컬을 지니고 있었다.

수비수가 네다섯 명이 달려들어도 그는 여유롭게 이들을 제치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저게 말이 되냐?”

“심판! 도핑 검사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도핑 검사를 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곳은 군대다. 군대에서 약물 복용이 무슨 말인가.

결국, 진수의 대활약으로 인해 결승전은 제1포대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탓일까. 그대로 주저앉은 고정현이 연신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꿈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불행하게도 이것은 현실이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종목은 이어달리기.

각 포대당 다섯 명이 바통을 가지고 이어달리기를 펼치게 된다.

제1포대 마지막 주자는 강필두.

몸을 푸는 동안, 첫 번째 주자들이 곧장 스타트 선에 올랐다.

“준비!”

심판의 말에 따라 자세를 낮추는 첫 번째 주자들.

삐익!

호루라기 소리와 동시에 선봉 주자들이 매섭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간절한 눈으로 이어달리기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하는 고정현.

그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그래, 하다못해 이어달리기 정도는 이길 수 있겠지!’

아무리 점수를 긁어모아도 제1포대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하긴 글렀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심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점수 배점이 가장 큰, 그리고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이어달리기에서 1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나마 자존심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거라 보고 있었다.

고정현의 바람이 통한 걸까.

제2포대 병사가 가장 먼저 앞장섰다.

“브라보 파이팅!”

“그대로 순위만 유지해라!”

두 번째 주자에게 바통을 넘긴 브라보 포대.

여전히 1위를 지키고 있었다.

반면, 제1포대는 꼴찌였다.

심지어 바통을 주는 과정에서 주자가 바통을 놓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확실하군!’

그제야 고정현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적어도 제1포대는 이기겠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입꼬리가 절로 위를 향했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주자까지 바통이 이어지는 동안 제1포대는 여전히 꼴찌를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바통을 건네받은 필두.

“흡!”

짧게 호흡을 내쉬던 그가 냅다 뛰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바박!

지면을 박차는 그의 두 발. 뒤에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날 정도였다.

3위를 달리는 본부포대를 제치더니 코너를 돌 때 제3포대까지 완전히 따돌렸다!

“행보관님, 파이팅입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대로 역전 갈 수 있습니다!”

제1포대 인원들의 응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진수는 기묘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레디너스 대륙에선 드리무어를 응원하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희대의 악인이라 불리던 남자였으니까.

그러나 낯선 이계의 주민들은 드리무어를…… 아니, 필두를 응원하고 있었다.

비록 체육대회에 불과하지만, 다수의 사람이 드리무어를 응원하는 목소리를 내니 그의 실체를 알고 있는 진수로선 오묘한 기분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감각은 뭐라 말로 형용하기 힘들었다.

‘드리무어…….’

진수의 시선이 필두에게 향했다.

그가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건 진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필두의 마법을 눈치챌 만한 사람은 오로지 황진수, 단 한 명뿐이었다.

‘어차피 마법이 뭔지도 모를 테니까.’

잠자코 있기로 했다.

게다가 필두가 지금 이 순간, 마법을 사용하는 건 세상을 파멸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체육대회 우승을 하기 위해서였다.

예전과 다른 드리무어의 모습에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솔직히 말해서 혼란스러웠다.

‘아니, 녀석은 드리무어. 희대의 악인이다. 그 점을 잊지 말자.’

이 분위기에 휩쓸리면 안 된다.

본인의 사명을 잊지 말자.

이런 식으로 마인드컨트롤을 할 무렵, 필두가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 좀 더 빠른 몸놀림을 선보였다.

필두가 마음만 먹으면 따라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몇 초 사이에 브라보 포대 선수를 추월했다.

“큭!”

재역전 각을 만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뛰어보지만, 이미 필두는 결승전을 통과한 지 오래였다.

“후.”

작게 호흡을 내쉬는 필두.

그의 이마에는 땀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3개 포대를 전부 재치고 1등을 차지한 필두의 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대단하십니다, 행보관님!”

“역시 행보관님입니다!”

제1포대 식구들이 필두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대뜸 그를 들어 올려 헹가래 준비를 했다.

“이 녀석들, 안 내려놓냐!”

격렬하게 거부하는 필두였지만, 병사들은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하나, 둘, 삼!”

공중에 붕 떴다가 내려온 필두.

그것을 두세 차례 반복하자, 필두도 포기한 모양인지 결국 얌전히 헹가래를 받기로 했다.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던 진수는 여전히 복잡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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